(왼쪽) 부(副)캐릭터 6월 20일 피트니스스타 강릉 대회 무대에 선 신성욱 판사. 사진 신성욱 / (오른쪽) 본(本)캐릭터 본캐로서 법복을 입은 신성욱 판사. 사진 신성욱
(왼쪽) 부(副)캐릭터 6월 20일 피트니스스타 강릉 대회 무대에 선 신성욱 판사. 사진 신성욱
(오른쪽) 본(本)캐릭터 본캐로서 법복을 입은 신성욱 판사. 사진 신성욱

2019년 연말 MBC 연예대상에서 인기곡 ‘사랑의 재개발’을 낸 신인 트로트가수 유산슬이 신인상을 받았다. 유산슬은 국민 MC 유재석의 부캐다. 그는 또 다른 부캐인 ‘유두래곤’으로서 ‘린다G’ ‘비룡’과 혼성 그룹을 준비 중이다. 린다G와 비룡은 각각 가수 이효리, 비의 부캐다. 그야말로 부캐 전성시대다.

부캐는 부(副)캐릭터의 줄임말로, 온라인 게임에서 원래 캐릭터가 아닌 다른 캐릭터 계정으로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원래 가진 캐릭터를 ‘본(本)캐’라 하면, 본캐 이외의 다른 캐릭터가 부캐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2020년 소비 트렌드 10개 중 하나로 다중적 자아를 뜻하는 ‘멀티 페르소나’를 제시했다. 출근과 퇴근 후, 온라인과 오프라인 등 다양한 상황에서 다른 인격의 페르소나(분신·分身)를 투영하는 현상이다. 시대 변화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이기도 하며, 새로운 것을 원하지만 실패는 두려워 부캐를 통해 욕구를 충족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일반인도 관심이 많다. 인스타그램에 부캐를 해시태그(#)한 게시물은 약 4000여 개다. ‘이코노미조선’은 성공적인 부캐 활동을 마친 신성욱(34)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판사를 6월 26일 서울 이촌동에서 만났다.

판사 하면 떠오르는 게 법정에서 법복 입고 재판을 진행하는 엄중한 모습이지만, 6월 20일 강릉 리카이샌드파인 리조트에서 신 판사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그는 수영복을 입고 무대에서 근육을 뽐내기 바빴다. 신 판사는 100일간의 노력 끝에 ‘피트니스모델’이라는 부캐로 피트니스스타 강릉 대회에 출전해 피트니스모델 3위, 노비스 스포츠모델 5위, 애슬레틱모델 6위를 수상했다. 파격적인 부캐 도전을 한 셈이다.

신 판사는 아주 높은 순위가 아니어도 성공적인 부캐 활동이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부캐로 선택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 ‘부캐의 성공’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나는 이보다 부캐를 통해 다시 본캐에 집중할 수 있는 활력소, 에너지를 얻는 것이 진정한 부캐의 성공이라 본다”고 했다. 이어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본캐인 법원 업무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며 “대회를 통해 얻은 성취감으로 까다로운 사건은 물론 무슨 일이든 정직하게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성취감,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피트니스모델이라는 게 생소하다.
“피트니스모델은 생활체육인을 위한 종목으로 민소매와 청바지를 입고 건강한 몸매와 퍼포먼스를 심사받는다. 노비스스포츠모델은 균형미 있는 신체, 외모, 패션 센스, 무대 표현력, 대중성을 심사받는 종목으로 수영복만 입고 진행한다. 애슬레틱모델은 레깅스만 입고 상체만 심사하는 종목으로 건강미 넘치고 강인한 표현력을 심사한다.”

판사가 피트니스대회에 참여하는 게 이례적이다.
“대회 주최 측이 변호사가 아닌 현직 판사가 참여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같이 무대에 오른 선수 대부분이 나보다 10살 이상 어리고, 체육 전공자 또는 트레이너가 많았다.”

왜 부캐를 만들고 싶었는가.
“대학 입학 후 판사 임관, 판사 임관 후 법원 생활 그리고 결혼, 결혼 후 남편과 아이 둘의 아빠로서의 가정생활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다른 사람보다 비교적 빨리 본캐를 형성했지만, ‘내가 공부나 업무 이외 전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해본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어 도전했다.”

신 판사는 2008년 서울대 법대 4학년 재학중 만 23세에 5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40기)을 수료한 후 군법무관으로 군 복무를 마친 뒤 인천지방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을 거쳐 현재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만 28세에 판사로 임관된 것. 그는 2015년 MBC 김초롱 아나운서와 결혼해 슬하에 자녀 2명을 뒀다.

운동 결과가 궁금하다.
“키가 184㎝인데 100일간의 준비 기간 몸무게는 80㎏에서 피트니스대회 출전일 67.5㎏으로, 체지방률은 20% 초반대 수준에서 5%대로 줄었다. 고강도 웨이트 트레이닝과 함께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적정 비율로 섭취하는 엄격한 식단관리로 체중은 줄었지만,  근육량은 오히려 조금 늘었다.”

부캐로 왜 피트니스모델을 선택했나.
“처음에는 ‘멋진 몸을 만들어 100일 후 보디프로필을 찍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보디프로필 촬영 예정일 하루 뒤 강릉에서 피트니스모델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참가를 결정했다. 운동은 내가 관심이 있으면서도 지금의 생활 패턴을 유지할 수 있는 분야다. 또 앞으로 성공적인 본캐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체력관리는 필수다.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체력이나 집중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도 받았다.”

어떤 게 가장 힘들었나.
“운동이 직업이 아니다 보니 본캐와 부캐를 놓치지 않기 위한 철저한 자기관리, 시간 관리가 가장 힘들었다. 피트니스대회를 준비한다고 본업에 충실하지 않거나 지장이 있으면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웠다. 대회를 준비한 100일간은 정말 고3 수험생, 사시 2차 시험을 앞둔 고시생처럼 시간 단위로 생활을 관리하면서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사건이 몰려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간을 쪼개 틈틈이 운동하고, 몸이 피곤해도 본업을 할 때는 최고의 집중력을 유지하려 했다. 물론 정해진 식단을 지키는 것도 어려웠다.”

동료들의 부정적인 시선도 많았을 것 같다.
“동료들과 식사 자리에 매번 현미밥, 고구마, 닭가슴살, 달걀 등을 챙겨가서 먹는 게 조금은 눈치가 보이고 미안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이 몸 상하지 않게 하라는 격려와 응원을 해줬다. 다른 분야보다는 보수적이라는 평이 많은 법조계지만 법원도 업무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는 취미생활, 여가활동 등을 충분히 보장하는 분위기라 부정적인 반응이 많지는 않았다.”

주말부부인데 집에서 반대는 없었나.
“2018년부터 강릉지원에서 근무해 주말부부로 생활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려 주중에는 아내가 가사와 육아를 도맡아 하고 있다. 주말에는 아이들을 같이 돌봤지만, 대회를 준비하고부터는 주말에 육아시간을 줄이고 운동에 집중해야 했다. 주말에도 나만의 시간을 갖다 보니 아내와 육아를 도와주는 장모님께 미안한 상황이 이어졌다.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포기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후회 없도록 열심히 해보라는 지원을 아끼지 않아 힘을 낼 수 있었다. 대회가 끝난 후 아내가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로 발탁돼 지금은 내가 독박 육아를 담당하며 아내의 고생을 몸소 느끼고 있다.”

부캐 활동이 본캐에 미치는 영향은.
“부캐를 통해 얻은 새로운 경험, 에너지를 본캐에 쏟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부캐는 본캐의 역량에 긍정적인 영향이 매우 많다. 물론 자칫 본캐에 소홀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영향도 있다. 하지만 ‘부캐는 어디까지나 부캐’라는 생각을 명심하며 적정한 수준의 부캐 생활을 하면 부정적인 영향은 크지 않다.”

예비 부캐 도전자에게 한마디.
“한 번 사는 인생이라고 해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저하고 망설이고 있는 그 순간이 바로 시작할 때다. 나도 모르고 살았던 내 안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그 순간, 인생의 즐거움은 더 커진다.”

안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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