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의 구조 개혁 실패를 외면하고 싶었을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8월 28일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긴급 사퇴 기자회견에서 ‘아베노믹스(Abenomics·아베 내각의 대표 경제 정책)’를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차기 일본 총리는 인위적인 경기 부양책에 의존하지 않고 구조 개혁을 통해 일본 경제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서 구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9월 2일(현지시각) 미국 로이터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주요 경제연구기관과 투자은행(IB)의 일본 담당 이코노미스트들은 누가 차기 총리가 되든 아베노믹스의 계승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내년 9월 일본 자민당 신임 총재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하락을 초래할 수 있는 긴축 정책으로의 갑작스러운 전환은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다.

아베노믹스는 아베 총리가 2012년 말 발표한 경제 정책이다. △대규모 금융 완화를 통한 엔화 가치 절하(엔저) △재정 지출 확대 △규제 개혁 등을 통한 성장 전략 등 이른바 ‘세 개의 화살’을 골자로 한다.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고 엔화 약세를 유도해 실적이 개선되면 투자가 늘고 내수 중심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이코노미조선’은 대표적인 국내 일본 경제 전문가들과 함께 ‘아베 없는’ 아베노믹스의 미래를 네 가지 시나리오로 나눠 살펴봤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진경제실 선임연구위원, 사공목 산업연구원 동북아산업실 일본 담당 연구위원이 참여했다.


시나리오 1│엔저 효과 완화 가능성?
큰 폭의 완화는 기대하기 어려워

김규판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엔저를 통한 수출 경쟁력 회복과 기업 주가 부양이다. 9월 14일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의 선출이 유력한데, 이는 그간 아베 총리가 추진한 코로나19 대책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아베노믹스를 계승해야 한다는 일본 국민의 기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신임 총재는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화살인 양적 완화 기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일본은행(BOJ)의 양적 완화 기조만으로 엔저 지속을 전망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현재 일본 경제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엔저 지속을 위해 추가적인 양적 완화가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엔저가 계속되면 우리 기업의 수출 반사이익 또한 적을 것이다.”

사공목 “아베 총리의 사임 소식이 전해진 8월 28일 오후 도쿄 증권시장에서는 주가 하락, 채권 가격 하락(금리 상승), 1달러당 약 104엔 정도의 엔화 강세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아베노믹스가 후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시장에 확산한 결과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부터 시장은 급속히 안정됐다. 아베 정권은 BOJ의 적극적인 금융 완화 정책을 통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수행해 왔으나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금융기관의 수익성 악화, 금융시장의 기능 저하, BOJ의 재무 상황 악화를 초래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관련 대응 차원에서 대규모의 금융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현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BOJ 총재 체제가 계속되는 한 금융 완화 정책을 전면적으로 변경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 이에 따라 향후 1년 이내에 급격한 엔화 가치 조정의 가능성도 작다. 일본 다이이치경제연구소의 후지시로 코이치 주임이코노미스트는 엔화는 현재와 큰 차이 없이 향후 1달러당 105엔 전후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했다. 결국 한국 수출 기업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할 것이다.”


시나리오 2│대한(對韓) 수출 규제 완화?
당장은 가능성 낮으며 더 악화할 수도

이부형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완화는 총리가 바뀌어도 어차피 자민당 측 인사이며, 중장기적으로도 아베 총리의 파벌 외 세력에서 새 총리가 탄생해야 기대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당분간 일본은 한국과 분쟁에서 기존의 태도를 고수하면서 실리를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한국의 소재 부품 개발력이 예상외로 상당하다는 점을 일본 측도 알고 있어, 자국 기업에 대한 반사적 피해 회피를 위한 조치를 취할 수는 있다.”

사공목 “한국에서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가 현재 거론되는 차기 총리 후보들에 비하면 친한파라는 말도 있다. 현재 거론되는 후보 중에 누가 당선되더라도 강제 징용 피해자 문제 등에 대해 아베 총리 이상의 강한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가 이어질 것을 의미한다. 다만 일본에서도 아베 총리의 퇴임을 계기로 한국과 관계 개선에 대한 여론이 어느 정도 형성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새로운 일본 총리 선출을 계기로 양국 정부가 기존의 악화한 한·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해 서로 양보하고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 3│인위적 경기 부양 한계 노출?
코로나19 영향으로 당장은 방법 없어

사공목 “아베노믹스에 의한 확장적 재정 정책과 함께 최근 코로나19 긴급 경제 정책과 두 차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으로 일본의 공적채무잔고가 급증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대책으로 1인당 10만엔(약 111만원) 지급과 기업의 고용 보조금 및 매출 감소 보전금, 관광 보조금 등의 일반회계 세출 규모가 160조3000억엔에 달했고, 그중 90조2000억엔을 국채 발행으로 충당했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의 192% 수준이던 일본의 공적채무잔액이 GDP의 220% 이상으로 높아졌다. 후임 총리가 누가 되든지 간에 경제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코로나19 대응이 될 것이다. 인위적 경기 부양의 한계는 분명히 노출됐지만, 현재와 유사하게 확장적 재정 정책으로 계속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지평 “아베노믹스의 한계가 드러난 데다 코로나19 위기가 겹쳐 재정 확대 정책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의 GDP 대비 총부채 비중은 240% 정도로 우리나라의 40%대 수준과 비교하면 막대한 규모이지만 금리 급등, 초 엔저 발생, 극심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등은 억제되고 있다. 아베노믹스는 재정 개혁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지만, 차기 정부는 재정·연금 개혁 등을 모색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 4│새로운 성장 전략 제시?
임기 1년 총리에겐 버거워

이부형 “현재 무파벌의 흙수저 스가 요시히데, 반(反)아베 인기 1위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자민당 온건 합리파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외무상 등이 후임으로 거론된다. 누가 되든 당장 성장 전략 제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임기가 1년으로 짧기 때문이다. 다만 저생산성, 정보통신기술(ICT) 등 첨단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이는 경쟁력(인적 자본 포함), 경제 주체의 낮은 지급 능력(일자리와 소득) 등이 지금 일본이 고민하는 가장 큰 문제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아베노믹스가 보완된다면 상술한 부분에 대한 정책들을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지평 “아베노믹스에서 애초 초점이었던 성장 전략은 사실상 잊혔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는 차기 정부의 과제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 및 산업 트렌드에도 변화가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가 잘 감지한 것처럼, 디지털화와 그린화가 가속화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일본도 디지털 혁신, 그린 혁신을 통한 차세대 산업의 확대 유도가 중요할 것이다. 스타트업 기업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의 고도화도 중요할 것이다.”

사공목 “일본의 경우 향후 생산성 향상을 통한 구조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2018년 일본의 1인당 노동생산성(부가 가치)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21위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수요 창출 정책에서 경제 효율을 높이는 공급 측면의 정책으로 이행해야 한다. 일본 노무라연구소는 디지털화 추진과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 개혁을 가장 중요한 정책이라고 제언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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