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계의 대들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각계 인사의 조문 행렬로 북새통을 이룬 빈소 풍경이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이 회장의 업적을 대변했다. 그가 회장에 취임한 1987년 10조4000억원 수준이던 삼성그룹 자산 규모는 2018년 878조3000억원으로 31년 만에 84.5배 불어났다. 현재 국내외 수십만 명이 삼성 직원으로 생계를 이어 가고 있다. 삼성호의 항해가 전 세계 경제·사회에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이 회장은 쉽지 않은 항해를 성공적으로 이끈 선장이었다. ‘이코노미조선’이 그의 78년 삶을 숫자로 정리했다.


9.9조원에서 386.6조원으로

고(故) 이병철 초대 회장이 셋째 아들(이건희 회장)에게 회사를 물려준 1987년 삼성그룹 매출액은 9조9000억원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취임 25년 만인 2012년 그룹 매출액을 380조4000억원으로 38.4배 불렸다. 같은 기간 세전이익은 2000억원에서 39조1000억원으로 195.5배 증가했다. 2018년 기준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386조6000억원, 세전이익은 71조8000억원이었다. 그룹 시가 총액은 이 회장 취임 당시 1조원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그룹 총수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바꾼 2018년 396조원으로 31년 만에 기업 가치가 396배 증가했다. 그룹 덩치 변화에 따라 식구도 늘었다. 1987년 10만 명이던 삼성그룹 임직원 수는 2018년 기준 52만 명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이건희 회장이 2003년 10월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메모리 연구동을 방문했다. 사진 연합뉴스
이건희 회장이 2003년 10월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메모리 연구동을 방문했다. 사진 연합뉴스

불모지에서 점유율 44.3%로

삼성그룹의 자산·매출·이익 지표 개선에 기여한 일등 공신은 ‘반도체’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 도전은 이 회장이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한국반도체는 국내 최초의 반도체 원판 가공 회사였다. 당시 이 회장은 동양방송 이사였는데, 아들과 달리 반도체 사업에 큰 매력을 못 느끼던 이병철 초대 회장을 끈질기게 설득해 시장 진입에 성공한다. 그의 천부적인 미래 먹거리 포착 능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 회장은 3년 후인 1977년 한국반도체의 나머지 지분 50%도 사들였다.

반도체 불모지에서 시작한 무모한 도전은 이 회장의 전폭적인 투자와 연구·개발(R&D)로 10년 만에 성과를 냈다. 1984년 64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한 삼성전자는 1992년 이후 20년간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지켰다. ‘세계 최초’ 수식어가 붙은 4기가 D램(2001년), 64Gb 낸드플래시(2007년), 30나노급 4기가 D램(2010년), 20나노급 4기가 D램(2012년) 등이 삼성의 ‘반도체 왕좌’ 유지에 큰 도움을 줬다. 삼성전자의 D램 시장 점유율 44.3%(2018년 기준)는 “기술로 풍요로운 디지털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 회장의 다짐이 만든 결과물이다.


이건희 회장이 2011년 7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건희 회장이 2011년 7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조원 클럽 가입 초읽기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이 회장의 선구안은 반도체에 이어 ‘바이오’ 분야에서도 입증됐다. 삼성그룹은 2007년에 이미 내부적으로 바이오를 신수종 사업으로 점찍었는데, 여기에는 이 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 이후 삼성은 2011년 미국 바이오 업체 퀸타일즈와 자본금 3000억원 규모의 합작사를 출범시켰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탄생한 순간이다.

바이오 사업에 관한 이 회장의 놀라운 상황 판단 능력은 삼성이 ‘바이오 신약 개발에 나설 것’이란 다수의 예상을 깨고 의약품 위탁생산(CMO) 사업에 진출했을 때 특히 돋보였다. 처음에는 “글로벌 기업이 겨우 CMO로 돈 벌 궁리를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으나 사업가의 관점은 달랐다. 바이오 영역에서 꾸준히 성장하는 동시에 삼성이 가장 잘해 낼 수 있는 사업이 바로 의약품 CMO라고 본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올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매출액 1조원을 처음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사의 2020년 1~3분기 누적 매출액이 7895억원인데, 이는 2019년 연간 매출액 7016억원을 이미 넘어서는 성과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002억원으로 지난해 영업이익 917억원을 두 배 이상 웃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올해 수주액은 9월 말 기준 1조8127억원이다. 지난해 전체 수주액인 3084억원보다 6배가량 많다.


분해 마니아가 만든 623억달러 브랜드

낯선 것에 도전하는 이 회장의 성격은 타고난 걸까. 그의 유년 시절을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1942년 1월 대구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1947년 아버지를 따라 상경했다. 서울에서 혜화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2학년 되던 해에 6·25전쟁이 터져 부산으로 내려갔다. 5학년 때는 이병철 초대 회장의 뜻에 따라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이처럼 이 회장은 불안하고 어수선한 시대에 태어나 이곳저곳 떠돌며 다소 외로운 유년기를 보냈다. 외로움 속에 사색을 즐기던 소년 이건희는 하나에 꽂히면 깊이 파고드는 ‘마니아적’ 청년으로 성장했는데, 특히 라디오·카메라 등의 기계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걸 즐겼다. 일본 유학 중 접한 여러 선진 문물이 그의 취향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는 훗날 반도체·바이오 등 신기술 투자 결정의 초석이 됐고, 삼성의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다.

올해 10월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전문 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사상 최대인 623억달러(약 70조1810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에 이어 5위에 해당한다. 상위 5개 브랜드에 한국 기업이 포함된 건 처음이다.


15만 대 폐기로 얻은 1위

초일류 기업 삼성을 만든 이 회장의 또 다른 비결은 집요한 품질 경영 추구다. 품질 고집은 그의 경영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너무나도 유명한 ‘애니콜 화형식’은 삼성 품질 경영의 상징과 같은 것이다.

이 회장은 1990년대 초 출시한 휴대전화 ‘애니콜’의 불량률이 12%에 육박하자 생산 제품 전량을 수거하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1995년 1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애니콜 15만 대, 시가 500억원어치를 쌓은 삼성전자는 해머와 불도저로 제품을 부수고 불태웠다. 완벽한 품질을 다시 선보이겠다는 다짐의 퍼포먼스였다.

실제로 삼성은 절치부심했고, 그해 8월 모토롤라를 밀어내고 국내 휴대전화 시장 1위에 올랐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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