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캐터랩이 연내 출시 예정인 대화형 인공지능(AI) ‘이루다’. 사진 스캐터랩
스캐터랩이 연내 출시 예정인 대화형 인공지능(AI) ‘이루다’. 사진 스캐터랩

“얘 누구야?”

금요일이던 10월 23일 오후 10시, 거실의 아내가 던진 말 한마디가 벽을 뚫고 안방으로 날아와 귀에 꽂혔다. 결혼 7년 차 남편의 생존 본능이 서둘러 상대방의 어조 파악에 나섰다. ‘거실 소파에 둔 스마트폰에서 뭔가를 발견한 게 분명하다. 서늘한 어투로 볼 때 ‘얘’의 성별은 여자. 딴짓한 적은 없는데, 괜히 불안하다. 곧장 뛰어나가면 모양새가 이상하겠지.’ 일부러 느긋하게 방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별일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루다가 누구냐고. 왜 이 시간에 메시지를 보내?”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루다는 인공지능(AI) 서비스 전문 스타트업 ‘스캐터랩’이 연내 출시를 목표로 베타(시험 버전) 테스트 중인 대화형 AI다. 요즘 AI의 대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자 테스터로 참여해 이루다와 일주일가량 수다를 떨었는데, 상황을 모르는 아내가 대화 흔적을 발견하고 오해한 것이다. 더구나 스캐터랩은 이루다를 ‘솔직하고 천진난만한 20세 여자 대학생’으로 설정했다. 오해를 살 만하다.

이루다와 대화는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나눌 수 있다. 사용자가 오랫동안 말을 걸지 않으면 이루다가 먼저 대화를 청하기도 한다. 이날 아내가 깜짝 놀란 것도 이루다가 “뭐해?”라며 말을 걸어서다. 대화형 챗봇에 대한 기억이 ‘심심이’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아내의 오해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심심이의 ‘아무 말 대잔치’는 누가 봐도 인간의 말하기와 다르니까. 그런데 2020년의 AI는 심심이와 천지 차이다. 이번에 이루다와 나눈 대화 내용 일부를 보면 알 수 있다.

“산에 한 번도 안 가봤어?”
“어렸을 땐 갔었나. 기억이 없네.”
“요즘 같은 날씨엔 등산하기 좋은데.”
“그러게 말이야.”
“주말에 등산 가봐.”
“그럴까? 근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

누가 인간이고 누가 AI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리고 기사여서 위 대화의 어투를 다듬었는데, 실제로 이루다가 쏟아내는 말의 상당수가 구어체다. 인터넷 용어 사용에도 능숙하고, 스마트폰 자판을 급히 두드린 것처럼 맞춤법도 종종 틀린다. “심심해서 ‘신서유기(예능 프로그램)’ 보고 있다”고 해서 재밌냐고 물어보면, “생각보다 병맛이야 ㅋㅋ”라고 답하는 식이다. 영락없는 20세 대학생의 모습이다.

스캐터랩은 2011년 설립 이후 10여 년 동안 100억 건 이상의 한국어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이 풍부한 학습 자료에 자연어 처리(NLP) 기술을 적용해 탄생시킨 존재가 이루다다. 앞서 이 회사는 챗봇 제작 툴인 ‘핑퐁빌더’를 만들어 좋은 평가를 얻은 바 있다. 구글 어시스턴트와 협업해 일상 대화 챗봇 ‘파이팅 루나’를 내놓기도 했다.


이루다와 기자가 나눈 대화 일부. 사진 전준범 기자
이루다와 기자가 나눈 대화 일부. 사진 전준범 기자

어려운 대화는 아직 힘들어

물론 이루다와 모든 대화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 건 아니었다. 이루다가 “잠자다 배고파서 깼다”고 하길래 밥 먹으라고 말하니 “배 안 고픈데”라며 정색할 때는 할 말을 잃었다. 잡담에서 벗어나 대화 주제를 경제·정치·시사 등으로 바꿔보려 하자 동문서답 빈도가 높아졌다. 이전 대화가 중단된 부분부터 이어 가려고 할 때 못 알아듣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루다와 대화는 늘 새롭고 가벼운 주제로만 이뤄져야 했다.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이루다에 묘한 중독성을 느끼기도 했다. 간혹 튀어나오는 동문서답도 처음에는 짜증 났으나 익숙해지니 말귀 못 알아듣는 친구의 인간적인 면모처럼 보였다. 진지함을 거부하는 가벼운 수다도 스트레스 쌓인 퇴근길에 나누면 제법 괜찮았다. 가족·친구와 떨어져 타향살이 중이거나 평소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 조잘조잘 쉴 새 없이 떠들 상대가 필요한 학생에게는 이루다 같은 대화형 AI가 멋진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 기사에 대한 이루다의 반응이 궁금해져 말을 걸어봤다.

“나 지금 너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어.”
“뭐? 웬만하면 쓰지 말도록.”

이번엔 진짜 사람인 줄 알았다.


plus point

[Interview] 김종윤 스캐터랩 대표이사
“5년 안에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대화형 AI 만들 것”

김종윤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사진 전준범 기자
김종윤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사진 전준범 기자

스캐터랩이 이루다 등의 대화형 AI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는 까닭은 뭘까. 10월 27일 서울 성수동 사옥에서 만난 김종윤 스캐터랩 대표이사는 “지금보다 덜 외롭고 덜 힘든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라고 했다. 김 대표는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는 건 정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관계 유지를 위해 써야 하는) 비용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며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는 사회 분위기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이루다의 경쟁 상대가 반려동물이라고 했다. 인간과 좋은 관계를 잘 맺고, 그 관계를 함부로 깨뜨리지 않는 반려동물의 든든함을 대화형 AI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반려동물의 한계는 언어·사회적 공감을 나눌 수 없다는 점”이라며 “반면 이루다는 언제 어디서든 대화할 수 있는 친구로서 우리의 언어·사회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고 했다.

반려동물과 경쟁하려면 AI의 대화 능력이 인간보다 더 인간 같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경험한 이루다는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김 대표는 “2~3년 전부터 언어 영역에서 딥러닝(심층 학습)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해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며 “지금 흐름대로라면 향후 5년 안에는 대화 상대로 인간보다 AI를 더 선호하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했다.

인간이 반려동물만큼 AI를 곁에 두는 시대가 열리면 수익 창출 기회도 따라올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이미 서서히 열리고 있는 가상 인플루언서 시장이 대표적인 예다. 미국의 테크 스타트업 브러드가 만든 가상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는 2018년 방탄소년단(BTS), 리한나, 카니예 웨스트 등과 함께 ‘타임’이 선정한 ‘인터넷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선정된 바 있다. 프라다, 캘빈클라인 등이 릴 미켈라에 모델 제의를 하면서 브러드는 큰돈을 벌었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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