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훈카이스트(KAIST) 전산학(중퇴), 전 넥슨 메이플스토리 북미 서비스 개발(산업기능요원)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박태훈
카이스트(KAIST) 전산학(중퇴), 전 넥슨 메이플스토리 북미 서비스 개발(산업기능요원)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국내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서 공룡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토종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왓챠(Watcha)’다. 이 회사는 2011년 설립,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영화·드라마 등 동영상 콘텐츠를 추천하는 서비스로 큰 인기를 얻었다. ‘왓챠가 나보다 내 취향을 더 잘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소비자들은 국내 1위 인터넷 포털 네이버가 아닌, 왓챠 사이트에 들어가 자신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추천받고 찾는다.

왓챠는 2016년에는 영화 추천에서 나아가 직접 영상을 재생하는 OTT 시장에 뛰어들었다. 고객이 매긴 영화 등 콘텐츠에 대한 평가는 물론 고객이 어떤 영화를 검색하고 실제로 봤는지 등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천하는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다. 영화·드라마·예능·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 등 보유 동영상은 9만 편에 달한다.

현재 국내 OTT 시장은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내 동영상 콘텐츠 소비가 대폭 늘었고, 이로 인해 디즈니·HBO 등 해외는 물론 SK텔레콤·KT·쿠팡 등 자본력이 있는 큰 기업들이 한국 OTT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1월 18일 서울 강남 왓챠 사무실에서 박태훈(35) 왓챠 대표를 만나 치열한 경쟁 속 왓챠의 전략에 대해 들었다. 긴 머리에 후드티를 입은 박 대표는 젊고 자유분방하며 자신감이 넘쳤다. 박 대표는 군에 가는 대신 산업기능요원으로 넥슨에서 게임 개발자로 일했고, 이후 다니던 카이스트(KAIST)를 중퇴하고 왓챠를 창업했다. 창업 초기 한동안 프로그래머 역할도 했지만, 현재는 최고경영자(CEO)로서 회사 전략을 짜고 성장을 이끄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외 대형 업체들과 경쟁에서 왓챠의 강점은.
“고객이 원하는 동영상 콘텐츠를 추천할 수 있다. 왓챠는 단순히 인기 동영상 위주로 서비스하지 않는다. 고객이 매긴 영화 등 콘텐츠 평점은 물론 고객이 어떤 콘텐츠를 검색하고 실제로 봤는지, 콘텐츠 재생 중 끊지 않고 얼마나 집중해서 봤는지 등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콘텐츠를 추천한다. 고객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개인화 추천 분야에선 왓챠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실제로 왓챠 이용자 중 70%가 추천 서비스를 통해 콘텐츠를 소비한다. 2011년 왓챠 설립 후 매년 190%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추천 서비스를 하려면 보유 동영상 콘텐츠가 많아야 하는데.
“소비자들은 넷플릭스에 없는 동영상 콘텐츠를 왓챠에서 찾는다. 왓챠는 영화·드라마·예능·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 등 총 9만 편에 달하는 동영상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이 방영한 드라마는 물론 HBO 등 해외 콘텐츠 사업자(CP)가 제작한 드라마 등을 서비스한다. 넷플릭스와 비교해 드라마는 5배 많고, 영화는 15배 많다. 유튜브 콘텐츠의 경우 차별화를 위해 메이킹 필름 등 확장판을 제공한다.”

스타트업이 많은 콘텐츠를 보유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비결이 있나.
“왓챠의 추천 서비스가 있어 가능했다. 우리에게 콘텐츠를 제공했을 때 얼마나 많은 소비자가 그 콘텐츠를 소비할지, 이로 인한 이익은 어느 정도일지 등 구체적인 데이터를 CP들에게 제공했고, 실제로 그들에게 이익을 줬다. OTT 사업 초기 우리가 먼저 CP들에게 연락했다면, 2018년 이후부터는 반대로 우리에게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는 연락이 많다.”

2019년 HBO의 화제작 ‘체르노빌’을 국내에 독점 서비스해 큰 인기를 얻었다.
“국내 CP들이 제작한 콘텐츠를 서비스하며 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해외 CP들과 거래는 쉽지 않았다. 그들은 한국 시장을 잘 몰랐다. 해외 영화제에 가서 CP들과 직접 만나는 등 해외 영업을 꾸준히 했다. 그 결과 2018년 HBO와 첫 계약을 했다. HBO와 접촉한 지 1년 6개월 만이었다. 2019년에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룬 드라마 ‘체르노빌’을 왓챠 독점으로 국내 서비스했다. 다양한 해외 콘텐츠를 꾸준히 공개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경쟁해 이길 자신이 있나.
“왓챠가 지속 성장하려면 넷플릭스는 물론 다른 OTT 업체와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OTT 시장은 승자 독식 시장이 아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가구당 OTT 플랫폼을 평균 4.5개 이용한다. 이 안에 들어가는 게 생존의 조건이 될 텐데, 콘텐츠가 많고 추천을 잘하는 왓챠 서비스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넷플릭스 등과 왓챠를 같이 이용하는 소비자가 많다. 이런 시장 구조를 잘 이용해야 한다.”

왓챠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HBO·디즈니 등이 자사 OTT를 국내에 선보인다. 이들이 왓챠에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데.
“2016년 OTT 사업 초기 왓챠가 보유한 동영상 콘텐츠는 5000편이었다. 2021년 현재는 9만 편에 달한다. 국내외 200여 개 CP를 통해 콘텐츠를 받고 있고 신작도 계속 서비스하고 있다. 한 CP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자체 콘텐츠 제작도 준비 중이다. OTT 시장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왓챠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드라마·예능·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려고 한다. 이미 회사 내에 PD 등으로 구성된 콘텐츠 제작팀을 꾸렸고, 빠르면 올해 하반기에 직접 제작한 콘텐츠를 공개할 계획이다. 공동 제작도 고려 중이다. 2~3년 내에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벽히 갖추려고 한다.”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는 대형 업체와 비교해 왓챠 자체 콘텐츠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들과 똑같이 갈 생각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유명 배우 등을 캐스팅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 꼭 유명 배우가 출연해야 영화·드라마 등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내용이 좋고 재미있으면 된다. 국내 웹 드라마를 보면 유명 배우가 출연하지 않아도 인기를 얻는 경우가 많다. 왓챠만의 콘텐츠를 제작할 것이다.”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왜 일본인가.
“일본 동영상 콘텐츠 시장은 매우 크다. 한국과 비교해 인구가 2.5배 많다. 상당히 매력적이다. 한국 소비자는 트렌드에 민감한 편이다. 1000만 영화라고 하면 안 본 사람도 본다. 그런데 일본은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 등 콘텐츠만 본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의 개인화 추천이 더 강력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일본 왓챠를 이용하는 고객이 한국 고객보다 영화 등에 대한 별점 평가를 더 많이 하고, 추천받는 횟수도 더 많다. 한국에서처럼 우선 일본 현지 소비자에게 영화 등 콘텐츠를 추천하며 데이터를 구축했고, 이후 동영상 콘텐츠를 모으며 2020년 OTT를 시작했다. 현지 시장에서 투자받고 상장(IPO)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올해 또는 내년에 상장할 계획이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