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상우(박해수, 왼쪽에서 첫 번째)와 기훈(이정재, 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 넷플릭스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상우(박해수, 왼쪽에서 첫 번째)와 기훈(이정재, 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 넷플릭스

“TV에서 했으면 오징어 게임을 하다가 연애하는 결말이었을 텐데 넷플릭스가 다양성을 늘려줬다.” “TV에선 상상도 못 할 자극적인 화면 연출, 지루하게 질질 끌지 않되 볼거리는 풍성한, 편수 제약 없는 스토리까지. 한국에도 훌륭한 감독, 작가가 많다는 게 밝혀지고 있다.”

글로벌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최대 히트작 ‘오징어 게임’ 관련 유튜브 콘텐츠에 올라온 댓글이다. 오징어 게임은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으로 이름을 알린 황동혁 감독이 영화가 아닌, 드라마, 그것도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물로 첫 도전에 나선 작품이다. 저마다의 이유로 삶의 막다른 곳에 다다른 사람들이 상금 456억원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뛰어들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동시 공개된 뒤, 현재까지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미국 등 83개국 모두 1위를 차지하며 역대급 흥행 신화를 쓰고 있다. 테드 사란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 겸 최고콘텐츠책임자(CCO)는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비영어권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이며, 넷플릭스가 현재까지 선보인 모든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인기몰이에 일약 ‘K콘텐츠’ 선봉에 서게 된 황 감독을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황동혁 감독 서울대 신문학,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대학원 영화전공, 2007년 영화 ‘마이 파더’로 데뷔 / 처음 드라마에 도전한 황동혁 감독. 사진 넷플릭스
황동혁 감독 서울대 신문학,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대학원 영화전공, 2007년 영화 ‘마이 파더’로 데뷔 / 처음 드라마에 도전한 황동혁 감독. 사진 넷플릭스

전 세계에서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다면.
“‘글로벌 시장에 한번 콘텐츠를 내밀어보자’ ‘전 세계 지지를 받아보자’라는 마음으로 넷플릭스와 처음 함께했다. 반응이 궁금했다. 가장 처음 봤던 것이 ‘포브스’ 기자의 평인데 ‘너무나 이상하고, 기이하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이야기인데 계속해서 보게 만든다’라고 하더라. 내가 의도했던 대로 받아들여졌구나 했다. 가장 응원이 됐다.”

전 세계 관객이 대상이었다. 특별히 신경 쓴 것은.
“이야기를 풀어내기 전부터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고 싶었다. 색감, 세트, 인형.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서바이벌 장르와 다르게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볼거리로 대조를 주고 싶어서 신경 많이 썼다. 서바이벌 장르 콘텐츠는 많다. 그래서 쉬운 아이들 게임을 가지고 목숨을 건 게임을 하는 식의 대조 장치를 뒀다. 누구나 어린 시절 놀이를 하지 않나. 어린 시절 놀이는 단순하기 때문에 사람의 내면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세상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더 살기 힘들어지고, 빈부 격차가 심해졌다. 작품 외적인 시대적 요소가 더 많은 공감을 끌어낸 것 같다.”

게임 그 자체보다 휴머니즘에 초점을 뒀다는 얘기가 있다.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기훈’이란 캐릭터는 그 결정체처럼 보인다.
“기훈은 자동차 회사에 잘 다니다가 구조조정으로 파업, 해고당한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친구)을 잃고, 그 후엔 치킨집, 분식집 하다가 망했다. 점점 더 삶의 바닥으로 몰리고 망가져 가는 인물이다. 사회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통을 기훈이란 인물에 다 담아보고 싶었다. 누구나 기훈처럼 될 수 있지 않나. 기훈은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졌는데도 인간미, 인간성을 잃지 않는다. 경쟁 사회에서 그래도 기대야 할 것은 인간에 대한 믿음 아닐까. 인간성은 유일한 희망 아닐까. 그래서 기훈이란 캐릭터를 만들었다.”

여러 게임이 나온다.
“전통놀이는 아니지만 중간에 ‘징검다리 건너기’가 나온다. 이 게임은 어떤 기법도 없다. 오직 운(運)에 의해서 다리를 건널 수 있다. 다리를 건널 순서는 정해진다. 앞사람의 실패를 보고 뒷사람이 길을 찾게 돼 최종 승자가 된다. 승자가 끝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앞사람의 희생, 노력, 헌신 덕분이다. 패자가 있기에 승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도 그렇다. 경쟁하던 사람이 실패했기 때문에 승자가 있는 것이다. 극 중 상우(박해수)는 그들 덕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기훈(이정재)은 그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첫 드라마 도전이다. 영화 만드는 것과 비교해본다면.
“시리즈 보면 끝부분에 뒤편을 볼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지 않나. 대본 작업하면서 그런 순간을 어떻게 만들까에 가장 많이 신경 썼다. 시리즈의 장점은 시간이 충분히 허락된다는 것이다. 2시간짜리 대본으론 충분하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게임 사이사이 다 넣을 수 있었다. 한 톤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영화와 달리, 에피소드마다 다양한 장르를 해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오징어 게임을 보면 어느 순간 코미디였다가 공포물이었다가 액션이었다가 휴먼드라마가 된다. 특히 넷플릭스는 길이, 형식, 시간, 수위에 제한을 두지 않으니 맘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시리즈 9개, 총 8시간 분량의 작업을 혼자 쓰고 찍는 건 아주 힘들었다. 영화 4편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혼자 할 일은 아니다 싶었다. 시즌 1을 찍으면서 너무 힘들어 이 6개가 빠졌다.”

넷플릭스와 처음 손잡고 일했다.
“2008년 오징어 게임을 기획해 대본을 써놨지만, 투자하겠다는 데가 없어서 만들 수 없었다. 선택지는 넷플릭스밖에 없었다. 다른 데서 받아보지 못한 자유와 충분한 예산을 준 곳이다(넷플릭스는 올 한 해 한국 콘텐츠에 5500억원을 투자했고, 오징어 게임에는 이 중 200억원을 투입했다). 넷플릭스가 아니면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는 11월) 디즈니플러스 등 다른 OTT가 계속 한국에 들어온다. 창작자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넷플릭스도 안주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게 될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 인기로 미국 진출에 대한 기대감도 나온다.
“지금 미국에서 연락이 많이 오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 공개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처럼) 한국에서 자본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해 전 세계가 즐길 수 있다면 굳이 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로운 장르에 계속 도전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이유 자체가 똑같은 삶을 못 견딜 것 같아서였다. 반복되는 일상에 맞지 않는 사람이다. 항상 리스크(위험)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도 있다. 두려움이 있어야 성공도 있다. 그 두려움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동기부여가 된다. 오징어 게임은 가장 큰 두려움을 느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망작’ 또는 ‘괴작’ 또는 ‘명작’.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릴 것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정도의 큰 모험이었다. 결과적으로 리스크가 있었기에 새롭게 생각해주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