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6월 21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프레스룸에서 누리호 발사 성공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6월 21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프레스룸에서 누리호 발사 성공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윤석열 대통령이 6월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보고 있다. 왼쪽은 이종호 과학기술 정보통신부 장관. 사진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보고 있다. 왼쪽은 이종호 과학기술 정보통신부 장관. 사진 연합뉴스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 산학연(産學硏)의 유기적 협력은 반도체 기술 패권 국가의 시작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고급 인재가 육성될 수 있고 초격차 기술 개발이라는 선순환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습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6월 22일 서울 상공회의소에서 반도체 강국이 되기 위한 조건을 이렇게 말했다. 최근 이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과 장관들이 참석한 국무회의와 국민의힘 의원들을 대상으로 ‘반도체 특강’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반도체 업계는) 고급·실무 등 만성적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며 “반도체 분야 인력의 숫자 증가도 중요하지만 ‘탁월한 인재’ 양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반도체 인력 3만6000명 양성’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미래 선도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고급 인력’ 육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고급 인력 양성을 위한 전략으로 이 장관은 산학연 협력을 꼽았다. 단순히 이론 교육만 학습하면 결국 기업에서 실무를 위한 재교육이 필요해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이 투입된다. 하지만 기업이 원하는 기초기술을 대학과 연구소 등이 개발하는 산학연 생태계가 조성될 경우, 기술 개발 과정에서 실무형 고급 인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지고, 기업의 연구개발(R&D) 부담도 대학과 연구소에서 분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패권 국가, 공식은 ‘유기적 산학연’

이 장관이 이러한 철학을 가지게 된 것은 산학연 과정에서 2002년 비메모리 업계의 표준 기술인 ‘3차원(D) 벌크 핀펫’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다. 이 기술은 이 장관에게 ‘3차원 반도체 아버지’라는 별칭을 선사했다. 이 장관은 장관 취임 전까지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며 반도체 전문인력을 키웠다.

이 장관이 발표한 저널·학회 논문만 700여 편이 넘고 국내외에 등록한 특허도 100건에 달하는 등 그는 국내 최고 수준의 반도체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2016년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의 석학회원(펠로)으로 선출됐으며, 2018년부터 올해 4월 장관 지명 전까지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맡았다. 윤 대통령과는 지난해 5월 서울대에서 반도체 관련 강연을 한 것이 인연이 돼 내각에 참가했다.

이 장관은 6월 23일 대전 유성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열린 ‘위기 극복과 도약을 위한 출연연구기관(출연연)장 간담회’에서도 “출연연이 국가전략기술의 저장고이자 산학연 협력의 매개체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산학연의 대표적인 성과로 누리호 발사 성공을 꼽았다. 실제 누리호는 국내 산학연 역량이 모두 집중된 첨단 산업의 집결체로 평가받고 있다. 예를 들어 누리호 탱크·동체 등의 구조체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필두로 민간 기업인 두원중공업·이노컴이 맡았다. KAI는 300여 개 기업이 납품한 부품들을 조립하는 총괄 역할도 맡았다. 우주에서 사출되는 큐브위성 4개는 조선대·서울대·연세대·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개발했다. 발사체와 위성 등 기술 개발→설계→제작→시험→발사까지 전 과정이 산학연 협력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이 장관은 “누리호 발사 성공을 통해 우리는 핵심기술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는 것이 어떤 성과로 돌아오는지 눈으로 확인했다”며 “앞으로 출연연이 나아갈 모습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특허권 침해’ 삼성전자에 승소한 이 장관

이 장관은 삼성전자와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00년대 삼성전자와 차세대 반도체 제조공정 기술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를 진행했고, 연구가 종료된 이후에도 벌크 핀펫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했다. 그 결과, 이 장관은 원광대에 재직하던 지난 2002년 KAIST 연구팀과 공동으로 소비전력을 낮추고 속도를 향상시킨 ‘3D 벌크 핀펫’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평면구조의 반도체 설계로는 그 크기를 줄이는 데 물리적 한계가 있다. 통상 20㎚(나노미터·10억분의 1m)가 평면 구조로 비메모리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는 최소 크기로 꼽힌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3차원 반도체 공정 기술 핀펫이다. 핀펫 기술 활용으로 비메모리 반도체는 10㎚, 7㎚를 넘어 3㎚까지 공정과 소자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 장관은 이러한 핀펫 기술을 2003년 미국에 특허를 출원했다. 이후 2016년 7월 KAIST 특허 자회사인 KIP와 특허 사용료를 일정 비율로 나눠 갖기로 하고 특허권을 양도했다. 인텔과 애플은 지난 2012년과 2019년 KIP와 합의 후 사용료를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KIP는 삼성전자가 2015년 갤럭시S6부터 이 기술에 대한 특허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며, 2016년 삼성전자를 상대로 미국 텍사스 동부지법에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 그때부터 이 후보자와 삼성전자 간 불편한 인연이 시작됐다. 

2018년 현지 배심원단은 삼성전자의 KIP 특허 침해를 인정했고, 배심원단은 KIP에 4억달러(약 5100억원)를 배상하라고 평결을 내렸다. 이후 삼성전자는 항소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2020년 양측은 관련 소송에 합의 하고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구체적인 합의 조건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인텔과 애플처럼 특허 계약을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


산학연 경험한 이 장관…R&D 개혁 ‘적임자’

업계에서는 이러한 독특한 이력 때문에 이 장관을 ‘산학연 반도체 원팀’을 이끌 적임자라고 평가한다. 산학연을 통해 세계 최초 기술을 개발한 연구자이면서도, 성공적인 연구 결과로 막대한 특허료를 지급받은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업, 학교, 연구소 간의 지식재산권(IP) 분쟁을 막고,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방안을 경험적으로 축적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산학연 생태계 구축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에 희소식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30년 이상 독주해 온 메모리 분야에 비해, 비메모리 분야의 기술 경쟁력이 취약한데,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개발을 분담하는 ‘산학연 R&D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도 ‘추격자형’이던 R&D 정책을 ‘선도형’으로 재설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장관은 지난 5월 취임사를 통해 “기술이 주권인 시대에 민관의 역량을 결집해 전략적 투자와 전방위적 지원을 강화하고, 보다 실질적인 산(産)‧학(學)‧연(硏)의 혁신생태계를 공고히 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반도체학과 교수는 “(이 장관은) 핀펫 기술을 개발한 연구자로, 직접적으로 삼성전자와 특허 소송에 나서지 않았지만, 전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다”라며 “이러한 과정에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수요 기업과 기술을 공급하는 연구자 등 인재 사이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충분한 식견을 쌓았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