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하 스페이셜 공동 창업자 겸 최고제품책임자(CPO) 도쿄대 전자공학, MIT 미디어랩 석사,전 삼성전자 VD사업부 인터랙션그룹장 사진 스페이셜
이진하 스페이셜 공동 창업자 겸 최고제품책임자(CPO) 도쿄대 전자공학, MIT 미디어랩 석사,전 삼성전자 VD사업부 인터랙션그룹장 사진 스페이셜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를 둘러싼 정보기술(IT) 업계의 기대가 다시 커지고 있다.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 박람회 CES 2023에는 사상 처음으로 메인 전시장에 메타버스 전용 공간이 등장했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올해 첫 혼합현실(MR) 헤드셋을 출시할 예정이다. 메타버스 플랫폼 대장주 격인 로블록스의 2022년 12월 일간 활성 사용자 수는 6150만 명으로 전년 동기(5210만 명) 대비 18% 뛰었다.

기세를 몰아 최근 미국, 태국에 이어 한국에 진출한 메타버스 플랫폼도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메타버스 갤러리’를 표방하는 스페이셜이다. 2017년 설립된 스페이셜은 보그, 엘르, 위블로, 크리스티 등 브랜드들과 협업하며 패션·예술 분야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2020년 우버, 인스타그램 창업자를 비롯해 카카오벤처스, 삼성넥스트, LG테크놀로지벤처스 등으로부터 170억원 규모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한 이래 현재까지 600억원가량의 투자액을 모았다.

이진하 스페이셜 공동 창업자 겸 최고제품책임자(CPO)를 1월 26일 화상으로 만났다. 1986년생인 이 CPO는 경기과학고를 수석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 이후 매사추세츠공대(MIT) 건축학대학원 산하 미디어랩에서 예술·과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MIT 미디어랩 시절엔 모니터에 손을 넣어 조작할 수 있는 컴퓨터 스페이스톱(SpaceTop), 만질 수 있는 3차원(3D) 픽셀 제론(ZeroN)을 개발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국내에서는 27세의 나이에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인터랙션그룹을 설립, 최연소 수석연구원과 그룹장을 역임했다.

이 CPO는 실리콘밸리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에도 메타버스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를 ‘소속의 욕구’에서 찾았다. 그는 “메타버스 출현의 저변에는 무리를 지어 소통하고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 있다”며 “이제까지는 기술의 한계로 이 본능을 온라인 세계에서 실감 나는 형태로 구현하지 못했지만, 정말 머지않은 미래에 가능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이 CPO와 일문일답.

1 맥도널드가 2023년 계묘년을 맞아 디지털 창작자 캐런 X 쳉(Karen X Cheng)과 스페이셜에 개설한 아시아 문화 체험 공간. 2 해외 유명 아티스트 DJ STILO가 스페이셜에 개설한 콘서트 공간. 팬들은 이곳에서 음악을 듣고 춤을 추거나 하늘을 나는 택시를 타고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3 이진하 CPO가 MIT 미디어랩 시절 개발한 컴퓨터 스페이스톱(SpaceTop). 모니터에 손을 넣어 이미지 등을 회전시키며 작업할 수 있다. 사진 스페이셜
1 맥도널드가 2023년 계묘년을 맞아 디지털 창작자 캐런 X 쳉(Karen X Cheng)과 스페이셜에 개설한 아시아 문화 체험 공간. 2 해외 유명 아티스트 DJ STILO가 스페이셜에 개설한 콘서트 공간. 팬들은 이곳에서 음악을 듣고 춤을 추거나 하늘을 나는 택시를 타고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3 이진하 CPO가 MIT 미디어랩 시절 개발한 컴퓨터 스페이스톱(SpaceTop). 모니터에 손을 넣어 이미지 등을 회전시키며 작업할 수 있다. 사진 스페이셜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에 이르게 된 계기는.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보다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더 중요시한다. 나와 내가 다루는 대상이 온전히 하나가 되는, 몰입의 경험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쓰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서는 이런 경험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한계를 기술로 넘어설 것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인간은 스스로를 좀 더 자유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어디서든 사회와 연결될 수 있게 해주는 온라인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오프라인의 장점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게 맞다고 결론 내렸다. 언젠가는 스페이스톱이나 제론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제품이 상용화될 수 있겠지만,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는 먼 미래의 이야기인 만큼 단계를 차근차근 밟기로 했다.”

스페이셜 창업 전 삼성전자에 몸담은 것도 그 단계의 일환이었나.
“그렇다.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같은 기술이 고도화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면 그 전에 디스플레이 스크린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였다. 우선 ‘TV도 공간이다’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TV 자체도 공간이고 TV가 놓인 곳도 거실이라는 공간이지 않은가. 공간은 여러 사람이 함께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즉, 혼자만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보다 실험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은 것이다. 

그다음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이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미디어스퀘어(MediaSquare)다. 미디어스퀘어 환경에서는 누구나 TV에 자신의 스마트폰을 연결해 사진, 비디오,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할 수 있다. 각자 가고 싶은 음식점을 골라 TV 화면에 띄워 놓고 저녁 메뉴를 고를 수도 있다. 기술로 한 공간에 있는 사람과 사람 간 거리를 좁힌다는 게 삼성전자에서 스페이셜로 이어진 테마라고 볼 수 있겠다.”

AR·VR은 글로벌 빅테크인 메타도 고전하는 영역이다. 여전히 전망이 밝다고 생각하나.
“AR·VR 시대가 오는 건 확실하다. 이미 사람들은 정보를 소화하는 걸 넘어 경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AR 기술이 ‘제대로’ 구현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실시간으로 합치는 MR 기술은 ‘곧’ 온다고 본다. 물리적으로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과 한 회의실에서 나란히 앉아 회의하는 상황은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이 될 것이다. 그러지 않을 확률은 0%라고 생각한다.”

AR·VR이 보편화되는 시기에 대비해 스페이셜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사용자가 스페이셜에서 하는 모든 경험에 걸림돌이 없도록 ‘최적화’에 집중하고 있다. 최적화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우선 정밀한 그래픽을 부하가 덜 걸리도록 로드하기 위한 시스템 최적화가 있겠다. 여러 대역폭에 맞춰 그래픽을 순차적으로 로드하거나 저화질로 먼저 로드한 뒤 고화질로 전환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다. 스페이셜은 대작 게임 수준의 그래픽을 웹에서 구동하기 때문에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

두 번째는 디자인 최적화다. 온라인 경험이 오프라인 경험과 비교했을 때 위화감이 없으려면 그래픽도 사실적이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이건 뭐지’ ‘이건 어떻게 하지’ 같은 장벽이 없어야 한다. 한 번의 클릭으로 웬만한 건 다 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실시간으로 운영되는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돌발 상황을 고려하는 것도 어려운데, 이 플랫폼이 3차원 환경을 지원한다면 생길 수 있는 변수가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특허도 많이 취득했다.”

얼마 전 맥도널드가 스페이셜에 체험관을 열었던데, 국내 기업들의 러브콜도 적지 않을 것 같다. 
“현재 스페이셜 사용자가 약 350만 명이다. 브랜드 및 개인 창작자를 제외하면 절반가량이 20대 중반이다. 이는 플랫폼을 웹에서 구동한다는 점 외에 경쟁사들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또 다른 차이점이다. 경쟁 플랫폼 사용자들의 주 연령층이 10대이기 때문이다. 내부에서는 스페이셜의 섬세한 그래픽, 실사와 비슷한 아바타 등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기존 메타버스 플랫폼들은 그래픽의 정밀도가 떨어지는 데다 만화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아바타를 내세워 ‘10대들의 놀이터’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스페이셜은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느낌을 줘서다.

국내 기업들의 시각도 비슷하다. 구체적인 명단을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앞서 시리즈 투자에 참여한 기업 중 일부와 협업 논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