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이슬 리슬 대표 전북대 산림자원학, 숙명여대 대학원 의류학 석사, 현 충남대 의류학과 겸임교수,‘나는 한복 입고 홍대 간다’ ‘한복 입는 CEO’저자 사진 리슬
황이슬 리슬 대표 전북대 산림자원학, 숙명여대 대학원 의류학 석사, 현 충남대 의류학과 겸임교수,‘나는 한복 입고 홍대 간다’ ‘한복 입는 CEO’저자 사진 리슬

‘최초로 밀라노 패션위크에 데뷔한 한복, 방탄소년단(BTS)도 입은 한복, 세계 수출 1위 한복.’ 모던 한복 브랜드 업체 리슬의 황이슬 대표가 이뤄낸 결실이다. 황 대표가 한복의 세계화에 앞장설 수 있던 배경에는 전통 한복의 틀을 깨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디자인뿐 아니라 소재, 제작법, 입는 방식 등 진화된 형태의 ‘모던 한복’을 개척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황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예복 중심의 한복을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만 입는다”라며 “어떻게 하면 한복을 일상에서 더 입게 할 수 있을까 연구한 결과물이 ‘리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리슬이 반가운 시선을 받아온 것만은 아니었다. 업계 일각에서 ‘그것도 한복이냐’ ‘한복 문화를 해치고 있다’ 등 새로운 시도에 대한 비난이 있었다. 게다가 한복 시장은 연간 7000억원 규모로 의류 시장의 1.6% 수준에 불과하다. 해외 진출로 시장 창출이 필요한 이유다. 

그는 지난해 11월 낸 신간 ‘한복 입는 CEO’를 통해 한복의 세계화 꿈에 다가서는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황 대표는 “한복 업계는 대부분 50대 이상 소상공인이 많은 만큼 소비자의 트렌드를 읽지 못한다”며 “시대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해 고객이 요구하는 사항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9월 26일 밀라노 패션위크 무대에 오른 리슬의 한복. 사진 글로벌 패션 컬렉티브(Global Fashion Collective)
지난해 9월 26일 밀라노 패션위크 무대에 오른 리슬의 한복. 사진 글로벌 패션 컬렉티브(Global Fashion Collective)

한복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한복에 빠진 건 2006년 대학생이 된 뒤 만화 동아리에 가입하고 나서부터다. 당시 학교 축제가 열리면 동아리들은 전시를 하거나 주점을 열었는데, 만화 동아리는 코스프레를 하고 만화를 그리기로 했었다. 그때 가장 좋아했던 만화가 있었다. 여고생 주인공이 황실 문화가 있는 궁으로 시집을 가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궁’이다. 주인공이 입고 나오는 현대화된 한복이 예뻐서 궁 코스프레를 했고, 의외로 친구들한테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옷 센스가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렇게 한복의 매력에 빠졌고, ‘축제가 아니어도 한복을 입고 등교해볼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됐다.”

직접 창업까지 하게 된 이유가 있나.
“시작은 취미 창업이었다. 패션 전공도 아니고 그냥 입었던 한복을 한번 온라인으로 팔아볼까 하는 농담으로 시작했다. 한복이 팔린 뒤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해 예정에도 없던 창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 팔았던 상품은 예복 중심의 한복이었다. 그러다 전통 한복보다는 진화된 형태였음에도 여전히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만 한복을 입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업 이후 한복을 매일 입으며 ‘어떻게 하면 한복을 일상에서 입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그 연구의 결과물이 2014년 '리슬'이다.”

전통 한복과 어떻게 다른가.
“전통 한복에서 바꿔야 할 다섯 가지에 주목했다. 첫째는 디자인이다. 치마를 짧게 만드는 수준의 변화가 아닌 더 진화된 ‘넥스트 한복’을 추구했다. 둘째는 세탁이 편하도록 소재를 바꾸는 것, 셋째는 만드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전통 한복은 맞춤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하고 양복처럼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일반 옷처럼 양산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했다. 넷째는 입는 방식이다. 한복은 치마 입는 방식, 고름 매는 방식 등이 정해져 있어 틀리면 지적을 받는다. 사람들이 한복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다. 청바지를 마음대로 입는다고 지적당하지 않는 것처럼 한복도 그렇게 입을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는 비주얼이다. 한복 하면 우아한 올림머리를 한 여성 등을 떠올리지만, 한복도 펑키할 수 있고 섹시할 수 있다. 편향된 이미지를 깨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20대 젊은 사람들도 입을 수 있게 청바지와 선글라스 등과도 매치할 수 있는 다양한 무드의 생활 한복을 만들었다. 이것이 소셜미디어(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난해 한복 브랜드 최초로 밀라노 패션위크에 참가했다.
“밀라노 패션위크로의 도전은 부담감이 엄청났다. 무대에 서길 간절히 바랐지만 동시에 한국을 대표해 나가는데 망신당하면 어쩌나 걱정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패션위크를 위해 통상 5개월 정도 소요되는 작업을 2개월 만에 끝내야 했다. 밀라노를 향하는 비행기에서도 바늘을 잡아야 했지만, 결국 잘 마쳐서 축하를 많이 받았다. 이후 ‘포브스’ 등에서 다뤄지며 해외 문의가 정말 많이 들어왔다. 세계적인 무대의 파급력과 관심의 깊이가 정말 다르단 것을 알게 됐다.

여기에 BTS도 모던 한복계의 길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가장 깜짝 놀란, 지울 수 없는 영광의 순간으로 ‘BTS가 리슬 한복을 입었을 때’를 꼽는다. 이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한복을 콘셉트로 하는 아이돌이 많이 늘었고, 연말 특별 무대 등에도 한복이 자주 보이게 됐다.”

결실을 보기까지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다.
“모던 한복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다 보니 ‘그것도 한복이냐’ ‘한복 문화를 해치는 일이다’ 등 의견을 받을 때가 많았다. 굉장히 위축되며 스스로 고민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생각을 다 정리했다. 일상에서도 한복이 친근해져야 전통 한복도 입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옷을 만든다는 건 정말 까다로운 일이다. 치수를 정확하게 맞춰야 하고 품질 좋은 원단을 사용해서 몇 번을 세탁해도 옷에 변형이 없어야 한다. 처음으로 유니폼 납품을 받았을 때 주문이 갑자기 많아져서 감당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대량 생산을 처음 시도해 봤을 때는 양 조절에 실패했고, 품질이 미흡하다 보니 판매도 부진했다. 몇백 벌이 고스란히 방치된 적도 있다.”

한복 산업은 규모가 작다는 한계가 있다.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소비자의 눈은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 그렇기에 한복 업체도 시대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해, 고객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친환경 행보를 보이는데, 한복 업체가 전혀 동참하지 않는다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브랜드의 가치관도 마찬가지다. 미적 기준에서도 다양성이 인정받고 있지 않나. 흑인, 백인을 나누지 않고 날씬한 것만 아름답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아직 한복 업계에서는 대부분 50대 이상의 소상공인이 많은 만큼 이런 트렌드를 읽진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8년 만에 두 번째 신간을 냈다.
“첫 책 ‘나는 한복 입고 홍대 간다’는 한복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도움이 되기 위해 쓴 책이었다. 패션 비전공자인 내가 독학으로 한복을 배울 때, 책이 스승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책을 낸 이후로는 ‘나도 비전공자인데 패션으로 진로를 정하고 싶다’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등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마케팅, 사업을 어떻게 확장해야 하는지 등 노하우와 실패담도 공유하고 싶었다. 이를 통해 일상의 모든 창작자를 응원하고 싶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등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꿈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창작자들이 주목받는 시대가 왔다. ‘무슨 한복을 세계적으로 만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게 사업 초기에 들었던 말이다. 그럼에도 꿈을 실현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주형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