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길 대표는 ‘기부 천사’다. ‘중졸 신화’의 주인공인 김 대표는 가난으로 배움을 다하지 못했지만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한준호>
김원길 대표는 ‘기부 천사’다. ‘중졸 신화’의 주인공인 김 대표는 가난으로 배움을 다하지 못했지만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한준호>

밑창이 푹신해 신기에 편안한 신발인 ‘컴포트화’ 국내 1위 브랜드인 바이네르의 김원길 대표는 최종 학력이 중학교 졸업이다. 고향인 충남 당진에서 5남2녀의 셋째로 태어난 그는 1977년 중학교 졸업 후 당진 인근 서산 읍내에서 작은 구둣방을 하던 작은아버지 밑에서 구두 만드는 일을 배우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남보다 덜 배웠지만 남보다 일찍 기술터득에 나섰고 타고난 성실함으로 지금은 연매출 500억원의 번듯한 제화업체 대표이사가 됐다.

김 대표는 지난 10월 말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초청강연을 했다. 베이징대학이 어떤 대학인가. 학부생·대학원생을 합쳐 학생수만 3만명이 넘는 중국 최고의 대학이다. 그곳에서 중졸 출신의 김 대표가 강연을 한 것이다. 김 대표는 “내가 강연을 한 베이징대학 강당은 세계적인 명사들이 서는 곳으로 유명한데, 대학 측에서는 ‘이 강당에서 강연을 한 한국인은 김 대표가 처음’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있는 바이네르 본사에서 김원길 대표를 만나 그의 성공 스토리를 자세히 들었다.


베이징대학에서는 어떤 내용의 강연을 하셨나요.
“제가 쓴 책이 있습니다. ‘멋진 인생을 원하면 불타는 구두를 신어라’는 제목의 책이죠. 이번 베이징대학 강연에서도 ‘불타는 열정이 모이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학교 졸업 후 구두 일을 배우다 서울로 올라와 갖은 고생 끝에 회사를 차리고, 또 인생을 살면서 느낀 점과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강연했습니다. 이제 전 세계 공통의 감탄사가 돼버린 ‘와우(WOW)’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학생들에게 강조했죠. ‘성공한 사람들이 듣는 감탄사가 WOW다. 성공하고 싶으면 세상에 WOW를 외쳐라’라고 말입니다. 제가 중국말로 한 것도 아니고 통역을 썼는데도 강의 평가와 반응이 좋아서 다음에 칭화대학에서도 강연을 추진하겠다고 하더군요.”

베이징대학 강연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요.
“제가 배운 게 많지는 않지만 군부대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외부 강연은 자주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몇년 전에 어디에선가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데 어떤 청년이 저를 찾아와 인사를 하더군요. 그런데 얘기인즉슨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기로 했는데 장학금 1000만원만 지원해달라’는 겁니다. ‘학부 과정도 아니고 박사학위씩이나 하려는 사람이 중졸인 나에게 장학금을 달라고 하느냐, 나는 그렇게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니다’고 거절했죠. 그런데 다른 자리에도 나타나 계속 조르지 뭡니까. 그래서 장학금을 주고는 잊어버렸죠. 그런데 정말 몇년 후에 학위를 마치고 베이징대학 연구원으로 일한다면서 다시 찾아왔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이후에 제 외부 강연을 여러 번 보고 나서 베이징대학 초청강연을 주선했습니다.”

지난 10월 김원길 대표는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초청강연을 했다. <사진 : 바이네르>
지난 10월 김원길 대표는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초청강연을 했다. <사진 : 바이네르>

중학교 졸업 후 작은아버지 밑에서 구두 일을 배우던 ‘청소년’ 김원길은 ‘구두를 만들더라도 서울에서 큰 기술을 배우자’는 생각에서 1978년 봄 영등포역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작은아버지가 준 여비 몇 푼이 전부였다. 김 대표는 영등포 인근에서 구두 일을 시작했지만 일감이 없어 몇달 만에 구둣방에서 잘리고 강원도 설악산으로 다시 일자리를 구하러 간다.  설악산 산장에서 두어달 번 돈 55만원을 갖고 다시 서울로 온 그는 그제야 제대로 구두 일을 시작한다. 케리부룩에 구두를 납품하던 참스제화였다. 5년간 그곳에서 일한 그는 케리부룩에 스카웃된다. 이후 그는 구두 제조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저를 불러주신 케리부룩 사장님에게 생산직이 아닌 관리직에 배치해달라고 계속 졸랐죠.” 그는 생산관리뿐 아니라 영업 마케팅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케리부룩이 수도권 한 백화점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하자 직접 영업을 도맡아 한달 매출을 이전보다 20배나 늘려 ‘영업의 달인’ 칭송을 듣기도 했다.

우리 경제가 극심한 내수 침체를 겪고 있습니다. 바이네르는 매출 부진을 어떻게 극복하시는지요.
“저희 회사에서 ‘불경기’는 금기어입니다. 직원들이 가장 하기 좋은 핑계가 ‘손님이 없다’ ‘불경기라서 안 팔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끝입니다. 손님이 없어 제품이 안 팔린다는데 좋은 제품 만든다고 해결이 되나요? 그래서 제가 직원들에게 말했습니다. ‘구두가 안 팔리면 불경기인가? 그게 아니다. 안 팔리게 만든 우리가 잘못이지, 세상 핑계대지 말자’고요. 그래서 몇년 전에 MBC방송 캠페인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바이네르 구두 대표 김원길입니다. 사업을 시작한 지 26년이 됐는데, 지금까지 한번도 불경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연구개발해서 세상이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면 불경기는 멀리멀리 도망갑니다’라는 캠페인을 했습니다. 저는 여태까지 불경기라는 말을 안 하고 살았는데, 요즘 보니까 지금 심각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힘든 순간이 계속 가겠나, 현재는 오르막 구간이지만 꼭 내리막 길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매출은 작년 수준 비슷하게만 가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1990년 케리부룩에 사표를 내고 서울 용산에서 구두 제조회사를 차려 그럭저럭 회사를 꾸려가던 김 대표에게 뜻밖의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1994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구두박람회에서 바이네르의 컴포트화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는 바이네르 측과 한국 독점판매 계약을 맺었다. 예상대로 바이네르는 국내 중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 현지 수입물량이 제때 오지 못하자 국내 생산까지 하게 됐다. 김 대표는 마침내 국내 판매호조를 등에 업고 바이네르와  담판을 짓고, 유럽과 아프리카를 제외한 지역의 바이네르 판매권을 샀다. 바이네르 브랜드를 통째로 산 셈이다. 그게 2011년 일이다. 

바이네르 브랜드는 어떻게 인수하게 됐습니까.
“1994년 한국 판매권 계약을 맺은 이래 국내 바이네르 판매가 아주 잘 됐습니다. 회사도 안정적으로 유지됐고요. 그런데 악재가 터졌습니다. 바이네르 본사 회장이 돌아가시고 그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았는데, 회계사 출신인 그는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왔습니다. ‘한국에서 그렇게 잘 팔리는데 로열티를 이 정도밖에 안 내나’ ‘본사 수입 물량을 더 늘려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바이네르와 사업을 접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마침 유럽과 홍콩 증시에 상장을 준비하던 바이네르는 투자자들이 빠지면서 자금난을 겪게 됐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2011년 이탈리아 본사로 찾아가 아들을 만났죠. ‘내가 지원할 테니 바이네르 브랜드를 나에게 팔아라’고 제안했죠. 자금난이 극심했던 바이네르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바이네르 신발이 편안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고객의 마음은 항상 변하고 있다는 걸 명심합니다. 고객은 늘 더 예쁘고 더 편안한 구두를 찾게 마련입니다. 그걸 떠올리면 절대로 연구개발을 게을리하거나 맘 놓고 쉴 수가 없죠. 만약 우리 제품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고객이 한 번은 몰라도 절대로 두 번은 봐주지 않는다는 걸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바이네르는 발이 편안한 신발을 뜻하는 ‘컴포트화’로 연간 5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사진은 일산 본사 공장의 생산 현장. <사진 : C영상미디어 한준호>
바이네르는 발이 편안한 신발을 뜻하는 ‘컴포트화’로 연간 5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사진은 일산 본사 공장의 생산 현장. <사진 : C영상미디어 한준호>

김원길 바이네르 대표는 ‘기부왕’이다. 매년 10억원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고 있다. 장학회 설립과 복지시설 기부, 아프리카 우물파기, 노인효도잔치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육군 훈련병이다. 본사가 있는 일산 인근의 9사단, 1사단에서 해마다 강연을 할 뿐 아니라 매년 우수병사를 뽑아 유럽 및 호주 연수까지 보낸다.

군부대 강연은 어떤 계기로.
“큰아들이 2010년 11월쯤 군대를 갔어요. 그런데 아들이 ‘군대는 시간이 참 안 간다’며 지루해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군 전역하고 나서 시작할 70년짜리 네 인생 설계를 군대 있는 동안 해봐라’고요. 제 아들이 이걸 한 다섯 번 하니까 시간이 후딱 갔다고 얘기합디다. 이런 얘기를 주변 부대 장교들에게 했더니 ‘우리 부대에 와서 장병들에게 같은 얘기를 해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군부대 강연이 시작됐습니다.”

모범 장병들에게 해외연수 기회까지 주고 있다면서요.
“모범 장병을 일년에 두 번 3명씩 뽑아 7박8일 유럽 여행을 보내줍니다. 하지만 아무나 보내줄 수는 없죠. 그래서 제가 강연할 때마다 강조합니다. 선배를 존경하고 후배를 사랑할 것, 그리고 전우애가 있을 것. 이것만 잘 익히면 사회에 나와서도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군단 예하 부대에 조리병들이 1600명 정도 되는데, 조리경연대회를 일년에 두 번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대회에서 입상한 조리병을 일년에 두 번 호주 연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건 저 혼자 하는 건 아니고, 호주의 스시 전문업체와 제휴를 맺어 저는 항공료만 부담합니다. 올해는 모범간부들도 태국여행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군부대 강연 중 본인이 작사한 ‘힘들어도 괜찮아’ 노래도 부르신다면서요.
“제가 효도잔치를 서울·광주·부산·당진·일산 등지에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섭외한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사회는 제가 직접 봅니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제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남의 노래만 할 것이 아니라 내 노래도 만들어 불러야겠다’고 생각해서 2013년에 가사를 지었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과정을 거치고 이제 번듯한 회사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노래 가사로 풀어낸 것이죠. ‘힘들어도 괜찮아/ 힘들어도 괜찮아/ 힘든 건 나의 추억이니까/ 때로는 힘들어 쓰러지면은/ 오뚝이처럼 일어날거야/ 시련아 덤벼라/ 시련아 덤벼라/ 힘들수록 내 미래는 빛이 날거야/ 지금은 세찬 눈보라 힘들겠지만/ 이 순간 지나고 나면 봄날은 온다/ 힘들어도 할거야/ 시련아 덤벼라/ 힘든 건 나의 추억이니까.’ 4분의 4박자 노래라 부르기도 쉽습니다. 군부대 강연 가서 손뼉 쳐주면 이 노래를 곧잘 부릅니다.”

‘성공’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많은 분들이 말하기를, ‘성공하려면 우선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먹고 살만 하고 돈만 버는 게 성공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행복지수 1등 회사’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장학금이다, 군부대 강연이다, 효도잔치 등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경기도 청평과 제주도에 직원 전용 별장을 갖추고 여름에는 직원들을 위한 수상스키 강사, 겨울에는 스키 강사로 제가 나섭니다. 회사 앞에 놓인 스포츠카, 요트도 직원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큰 기업을 만들기보다는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드는 것, 매출이 높은 기업보다 나누는 기쁨을 아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 김원길
전국기능경기대회 제화 부문 동상, 케리부룩 근무(1982~1993), 안토니 설립(1994), 바이네르 인수(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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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포트화 굽이 낮고 넓으며 밑창이 푹신해 신기에 편안한 신발을 말한다. 주로 중·장년층이 애용하지만 최근에는 편안한 착용감은 물론, 가볍고 세련된 디자인까지 갖춘 제품들이 많아 젊은층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Plus Point

퇴사 후 사장되는 바이네르 직원

바이네르 직원은 퇴사를 하면 곧바로 사장이 될 수 있다. 다른 회사에서는 보기 드문 대리점 창업지원제도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이네르에서는 정년이 없다’고 말한다. 바이네르는 근속기간 15년 이상인 우수사원들에게 대리점 개설 기회를 주고 있다.

김원길 대표는 곧잘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열심히 배워서 사장으로 은퇴하라”고 얘기한다. 오랜시간 동안 같이 고생한 직원들이 퇴직 이후에 사장으로서 시작할 수 있게 초도 물량을 보증금 없이 분할 납부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현재 광주·대구·남양주·안양 등 전국 60여개 매장 중 16개 매장이 퇴직 직원이 사장인 대리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남 광주 금남로점 조기춘 지점장

“김원길 대표와 18년 동안 일하다가 2009년에 바이네르 최초로 광주에서 로드숍 대리점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3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요. 다른 구두회사 대리점과 달리 바이네르 대리점은 돈만 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5년 이상 근속한 직원들 중 우수직원들에게만 대리점 창업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 개인적인 자부심도 있고,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회사의 대리점주라는 게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