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주 대표는 “요즘 와인이 대세라고 하지만, 위스키는 와인이 범접할 수 없는 깊이의 향과 맛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양수열>
김일주 대표는 “요즘 와인이 대세라고 하지만, 위스키는 와인이 범접할 수 없는 깊이의 향과 맛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양수열>

윈저, 발렌타인, 임페리얼, 골든블루, 그린자켓. 모두 위스키 브랜드 이름이다.

이 술들은 위스키 업계에서 ‘위스키 마케팅의 달인’으로 통하는 김일주 대표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는 현재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업체인 윌리엄그랜트앤선즈의 한국법인인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WGSK) 대표다. 그가 위스키 업계에 종사한 지는 올해로 34년째.

우선 윈저부터 보자. 1996년에 탄생한 윈저는 김 대표가 두산씨그램 근무 당시 기획부터 론칭까지 진두지휘한 위스키로, 현재 국내 위스키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임페리얼은 1999년 진로발렌타인스(현 페르노리카코리아) 마케팅 임원으로 일하면서 업계 최초로 위조방지 장치인 ‘키퍼 캡’을 도입한 술.

위스키 시장점유율 2위인 골든블루는 2009년 국내 최초로 알코올 도수 40도의 벽을 깬 36.5도 위스키로, 그가 수석무역 대표로 있으면서 개발한 술이다. 그리고 올 4월에 나온 그린자켓은 국내 유일의 숙성 연수가 표시된 저도(36.5도) 위스키. 2013년부터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대표를 맡고 있는 그가 본사 창립 130년 역사상 처음으로 현지 법인이 주도해 개발한 로컬 위스키이기도 하다. 김 대표의 다음 작품은 프리미엄 소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쯤 선보일 이 술은 국내 소주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할 ‘다크 호스’가 될 것이란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국내 판매 1위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 증류시설. 글렌피딕은 스코틀랜드 현지어인 게일어로 ‘사슴의 계곡’이란 뜻이다. <사진 :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국내 판매 1위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 증류시설. 글렌피딕은 스코틀랜드 현지어인 게일어로 ‘사슴의 계곡’이란 뜻이다. <사진 :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저도주 선호, 경기침체, 김영란법 시행 등으로 한국 위스키 시장 규모가 매년 줄어들고 있습니다.
저도주 선호, 경기침체, 김영란법 시행 등으로 한국 위스키 시장 규모가 매년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 위스키 시장이 나날이 침체를 겪고 있는 요인에는 국내 리딩 업체들의 노력 부족도 크다고 봅니다. 위스키 시장이 어려워진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잖아요. 외부환경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도 유흥주점만 공략하는 전통적인 영업만 고집해온 게 사실입니다. 일찌감치 시장을 내다보고 대비를 철저히 했어야 합니다.
일본 위스키 업체들은 ‘하이볼(위스키에 소다수 등을 탄 칵테일)’ 같은 칵테일이 대중화되면서 침체됐던 시장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국내 위스키 시장도 지금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업체들이 다양한 형태의 음용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저희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가 국내 처음으로 숙성 연수가 표시된 저도 위스키 그린자켓을 내놓은 것도 소비자들의 새로운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김 대표는 위스키 시장에 ‘컬러 마케팅’을 첫 도입해, 성공한 주역이기도 하다. “제품의 ‘컬러’를 강조하면 소비자들이 가장 쉽게 인식한다”는 게 김 대표의 지론이다. 위스키 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맛과 향이지만,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포장형태가 무엇인지도 깊이 고민한 것이다. 그래서 김 대표가 2009년에 내놓은 골든블루는 병 색상을 파란색으로, 이번에 내놓은 그린자켓은 녹색을 채택했다. 김 대표는 “골든블루의 청색병을 보고 처음에는 ‘위장약 병 같다’며 다들 반대했지만 결국 성공했다”며 “기존에 갖고 있던 선입견을 뛰어넘지 못하면 새 제품을 개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1983년 조선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베리나인골드를 판매하는 백화양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김 대표는 2년 만에 대기업인 두산그룹 직원으로 신분이 상승(?)된다. 두산이 백화양조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부터 수많은 콤플렉스들과 싸워야 했다. 인수된 회사의 직원으로서 공채출신인 두산그룹 직원들의 냉대, 거기에 지방대 출신인데다 외국 합작기업 직원이면서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다는 점 등. 그는 이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3개의 주류업체에서 잇따라 대표를 맡고 있다.

위스키업계에만 34년간 몸담으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두산그룹에서 위스키 영업맨으로 일을 시작하던 당시 수원·평택·오산·안성 등 광범위한 지역의 도매상 관리를 담당했었습니다. 도매상 직원 트럭을 같이 타고 다니면서 대리점들을 직접 다 돌아다녔죠. 그 와중에 재정 상황이 어려운 대리점들에는 직접 보증을 서주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도매상들이 살아나고 실적이 좋아지면서 최우수사원으로 뽑히고 승진도 빨리 하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무작정 겁 없이 덤벼들었던 셈이지만, 그만큼 남들보다 적극적으로 일했기에 이런 결과를 얻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최근에 출시된 그린자켓의 개발 배경과 시장 반응은 어떻습니까.
“그린자켓을 내놓은 것은 무엇보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국내 위스키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싶어서입니다. 때문에 출시 전 위스키 원액 선정 과정에서 약 1700명의 주류업계 관계자 및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맛, 향, 색 등 다양한 평가를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개발했습니다. 과거 (36.5도의 첫 국내 저도 위스키) 골든블루 출시 때보다 초기 반응이 훨씬 좋습니다. 초기 물량이 달려 항공운송을 통해 추가공급을 받을 정도입니다.”

그린자켓은 저도 위스키 중에서는 처음으로 연산(숙성연도)을 표시했습니다.
“주류업계에서는 ‘와인은 빈티지(원료로 쓰인 포도 작황연도)로 마시고, 위스키는 에이징(연산)으로 마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린자켓은 국내 저도주 중 유일하게 숙성 연수가 표기돼 있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숙성 연도가 표시돼 있지 않은 무연산 위스키들과는 다르게 소비자가 품질을 신뢰할 수 있는 제품입니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는 블렌디드 위스키 비중은 낮지만 글렌피딕, 발베니 등 싱글몰트 위스키는 여러 제품을 갖고 있습니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 본사는 위스키 회사가 아니라 증류주 회사입니다. 위스키뿐 아니라 진, 럼, 보드카 등 다양한 증류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가진 여러 제품을 효율적으로 판매할 새로운 음용 방법과 트렌드 등을 개발해서 시장을 넓혀 나갈 방침입니다. 그린자켓을 만든 이유도 유흥주점에 성공시킨 뒤 이를 발판으로 싱글몰트 위스키도 유흥주점에서 판매할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맥주와 섞어 마시는 폭탄주 문화에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비싼 위스키를 언제까지 폭탄주로 만들어 마실 겁니까. 요즘 와인이 대세라고 하지만, 위스키는 와인이 범접할 수 없는 깊이의 향과 맛을 갖고 있습니다. 향과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마시는 술, 위스키도 알고보면 ‘슬로 푸드’입니다.”

앞으로 국내 위스키 시장이 어떻게 바뀔 것 같습니까.
“국내 정통 위스키 시장이 윈저, 임페리얼 등 알코올 도수 40도 이상의 스카치 위스키 위주의 시장이라면, 비정통 시장은 그린자켓처럼 저도 위스키 시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도수 낮은 위스키 시장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위스키 시장 자체가  이전처럼 규모가 쉽게 확대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위스키의 치명적인 단점은 한국 음식처럼 껄쭉한 음식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입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먼저 식사를 한 뒤 위스키는 따로 마시는 술로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식사에 곁들여 위스키를 마시기에는 위스키 도수가 너무 높고 가격도 비싼 게 흠입니다. 아무튼 위스키가 한국에서 다시 살아나려면 식사와 함께할 수 있는 술이란 인식이 널리 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위스키 회사들도 일반 식사를 할 때 어울릴 수 있는 위스키를 새로 개발하든지, 아니면 기존 위스키를 원액으로 한 칵테일을 다양하게 보급해야 합니다.”

앞으로 위스키 원액을 일부 넣은 소주를 개발한다는 건가요.
“꼭 위스키만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는 위스키, 럼, 진, 보드카 등 다양한 증류주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개발을 검토 중인 소주 역시 주정을 여러 증류주 중에서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국내 소주들은 대부분 고구마 비슷한 전분 주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저희가 어떤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한국인의 입맛에 꼭 맞는 소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소주 신제품은 이미 개발이 거의 끝난 상태로, 내년쯤 출시하려고 합니다.”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 있는 글렌피딕 증류소 전경. ‘위스키의 성지’로 알려진 이곳은 전 세계 위스키 마니아들이 찾고 있는 관광명소다. <사진 :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 있는 글렌피딕 증류소 전경. ‘위스키의 성지’로 알려진 이곳은 전 세계 위스키 마니아들이 찾고 있는 관광명소다. <사진 :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소주 시장은 탄탄한 영업망이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유통망이 중요한 성공 요인인 것은 맞습니다. 유통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소비자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차별화된 제품을 만드는 겁니다. 그 다음이 좋은 제품을 어떻게 유통시켜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것이냐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위스키만 취급하던 저희 회사가 소주 시장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와 거래해온 도매상들이 적지 않아 이들의 영업력을 잘 활용해서 소비자 접점 포인트인 식당까지 저희 제품이 도달할 수 있도록 애써봐야죠.
또 다른 영업방법은 지방의 중소 소주업체와 연계하는 겁니다. 저희가 만드는 소주 제품은 기존 소주와 다르기 때문에 영호남 등 각 업체들의 영업망을 활용해 협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점유율을 높여나갈 방법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주 신제품 가격은 어느 정도로 책정할 계획인가요.
“기존 소주의 소매 가격이 1000원 좀 더 되는 것을 감안해, 2000~2500원 정도로 봅니다. 저희 제품을 프리미엄 소주로 생각하시면 가격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전에도 프리미엄 소주가 여러번 나왔다가 얼마 안 돼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시도 자체는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에서 실패하는 제품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나온 프리미엄 소주 제품 자체는 좋았지만 출시 타이밍이 좋지 않았거나(대부분 외환위기 때 시장에서 퇴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포인트가 없었다고 봅니다. 결국, 소비자들이 일반 소주보다 비싼 돈을 내고 해당 제품을 구매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 확실한 차별화 포인트가 없었기 때문에 실패한 거죠. 저희로서도 전체 소주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신제품이 소주 전체 시장의 1%만 공략해도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의 글로벌 전략은 무엇이며, 이에 따른 한국 시장에 대한 전략과 경쟁력은.
“윌리엄그랜트앤선즈 본사는 요즘 아시아 시장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10년 내 아시아 비즈니스 비중을 현재 8%에서 50%까지 끌어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고, 특히 한국은 세계 2위의 프리미엄 위스키 시장인 만큼 ‘가장 신경 써야 하는 5개국’에 이름을 올려놓았습니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는 글렌피딕과 발베니 등 고품질의 싱글몰트 위스키의 판매량을 더욱 끌어올리는 한편 한국형 위스키 ‘그린자켓’으로 국내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켜 나갈 것입니다. 빠르면 내년에 내놓을 신제품 프리미엄 소주에 대해서도 본사가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 김일주
조선대 무역학과, 두산씨그램 마케팅 총괄본부장, 진로발렌타인스 이사, 수석무역 대표, 골든블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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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그랜트앤선즈(William Grant & Sons) 1886년 윌리엄 그랜트가 몰트 위스키 성지로 불리는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지역에 세운 증류소에서 시작됐다. 현재 스코틀랜드에서 5대째 가족경영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종합 주류회사다. 세계 판매 1위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 정통 수제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와 블렌디드 위스키 그란츠, 프리미엄 진(Gin) 제품인 헨드릭스 진 등을 판매하고 있다.

Plus Point

캐나다산 원액 쓴 그린자켓

그린자켓은 윌리엄그랜트앤선즈 역사상 최초로 현지 법인이 출시한 로컬 위스키다. 국내 위스키 업계의 ‘미다스 손’이라 불리는 김일주 대표와 글로벌 본사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돼 탄생한 한국형 위스키다.

출시 한달 만에 초도 물량 약 10만병이 모두 판매돼 국내 업계에 그린 돌풍을 일으켰고 향후 중국, 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으로 판로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한국인이 추구하는 위스키의 절대 가치는 부드러움이다. 부드러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추구할 수 있는데 하나는 알코올 도수이고 다른 하나는 숙성 연수이다. WGSK는 수십 년 전부터 미국의 LA, 뉴욕에 있는 한국인 거주 지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위스키 중의 하나가 캐나디언 위스키임을 착안,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해 캐나디언 위스키 원액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가볍고 부드러운 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리서치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했고, 1700여명 고객 대상 테이스팅을 통해 확신을 가지게 됐다는 게 김일주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위스키의 기본 가치인 숙성 연수를 고수하면서도 고객들에게 가격부담을 주지 않는 제품을 만들겠다고 오랜 고심과 수소문 끝에 천혜의 자연 환경에서 생산된 고품질의 캐나다산 원액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만든 36.5도 위스키 ‘그린자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