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직 회장은 “올해를 도약의 원년으로 삼아 생산성 본부가 글로벌 전문기관으로 성장하는데 주력할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신영>
홍순직 회장은 “올해를 도약의 원년으로 삼아 생산성 본부가 글로벌 전문기관으로 성장하는데 주력할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신영>

매주 토요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국생산성본부 12층 대회의실이 북적인다. 홍순직 회장을 비롯해 대학구조개혁·특성화 사업 컨설팅을 담당하는 임원과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들이 참석하는 ‘토요 품질점검회의’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물론 일반 기업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홍순직 회장은 “주로 지방 대학에서 진행하는 컨설팅 사업을 점검하기 위해 주말에 회의를 연다”며 “평일에 회의를 열면 고객과 함께할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에 토요일을 반납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1957년에 설립된 한국생산성본부(KPC)는 우리나라 산업계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 경영 전략에서 재무·회계, 마케팅, 리더십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과정을 두고 근로자들이 핵심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한다.

생산성본부는 또한 기업의 애로 사항을 정확히 진단하고 해결해주는 ‘기업 주치의’이기도 하다. 경영 혁신, 고객 만족, 지속 가능 경영뿐만 아니라 최근 산업현장에서 화두로 떠오른 ‘사물인터넷(IoT)’, ‘4차 산업혁명’ 관련 컨설팅 서비스가 눈길을 끈다.

생산성본부는 산업 분야 컨설팅과 교육 사업으로 지난해 133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대비 10% 넘게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직원들에게 창립 이래 최대 성과급을 지급했다. 이러한 성과의 이면에 홍순직 회장의 ‘고객 중심, 디테일 경영’이 있다.

홍 회장 취임 이후 생산성본부는 눈에 보이는 부분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놀랍게 변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30년 된 지하주차장과 화장실을 바꾼 일이다. 홍 회장은 담당 직원과 함께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삼성동 코엑스 지하주차장을 직접 찾아갔다. 또 서울 시내 신라호텔과 롯데호텔의 화장실도 찾아가 사진을 찍어 리모델링 공사에 참고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지상과 같은 지하주차장, 고급스럽고 편한 화장실이 탄생할 수 있었다.

홍순직 회장이 ‘토요 품질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홍순직 회장이 ‘토요 품질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교육생 위해 호텔급으로 인프라 개선

홍 회장은 경기도 이천에 있는 생산성본부 연수원도 싹 뜯어고쳤다. 때가 타서 반질반질한 기숙사의 이불을 최고급으로 바꿨고, 샤워 시설도 호텔급으로 수리했다. 브라운관 TV는 벽걸이 TV로 교체했다.

교육장 등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교육 과정·교재 등 소프트 인프라도 대거 개선했다. 교육 과정은 선진국의 우수사례를 벤치마킹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 들쭉날쭉한 교재 디자인도 일관성 있게 바로잡았다. 1년에 2번 교수진 평가를 실시해 강의 품질도 높였다.

홍 회장은 “고객의 불만이 나온 후 아무리 빨리 대처해도 그땐 이미 늦다”며 “고객이 말하기 전에 미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회장의 이러한 ‘고객 중심 경영’은 삼성에 있을 때 몸에 밴 것이다. 1975년 공직 생활을 시작한 홍 회장은 1995년 산업통상부 부이사관을 끝으로 삼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에 들어가면서 이건희 회장에게 5시간 30분간 단독 면접시험을 치렀다. 형식적인 면접인 줄 알았던 그는 이 회장의 현장 중심의 세세한 질문에 몇 번이나 말문이 막혔다.

그는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로 입사한 뒤 1년 동안 경기 용인의 삼성 인재개발원에서 이건희 회장이 직접 설명하는 ‘신경영’에 관한 비디오 56개를 매일 봤다. 지금도 신경영 테이프의 여러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그중 한 토막. ‘카페에 온 손님이 출입문 한 번 보고, 시계를 본다면 그 손님이 속 탄다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손님이 달라 하기 전에 물을 갖다 줘야 그게 제대로 된 서비스다.’ 홍 회장은 “이건희 회장은 고객의 마음까지 디테일하게 챙겼다”며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 회장의 고객 제일주의는 이후 나의 경영 원칙이 됐다”고 설명했다.

삼성자동차 전무, 삼성SDI 부사장 등을 거치며 잘나가던 그는 2010년 전북 전주에 있는 전주비전대 총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홍 회장은 평소 다니던 온누리교회 담임목사의 권유를 받고 고심 끝에 삼성을 떠났다. 당시 전주비전대의 취업률은 50%로 전국 140여개 전문대학 중 104위였다. 입학 정원도 채우지 못했다.

총장 취임 직후 돌아본 학교는 엉망이었다. 학생식당을 맡은 업체는 장사가 안 돼 그만두려고 했고, 특히 청소가 안 된 화장실은 들어가기 싫을 정도였다. 실습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곳에서 실습이 가능할지 의문스러웠다.

그는 자신이 먼저 철수세미를 들고 변기를 손수 닦았다. 교수들에게도 실습 기자재를 정리하고 닦자고 말했다. 더러운 실습실에서 공부한 학생이 어떻게 좋은 기업에 취업하겠냐는 그의 말에 교수들이 따랐다.

학생들은 졸업장이나 따자는 분위기였지만 그는 학생들을 대기업에 많이 취업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홍 회장은 삼성반, LG반, 두산반 등을 개설해 저녁 시간에 취업 맞춤형 교육을 시작했다. 지역 내 기업을 설득해 치킨과 빵 등을 학생 간식으로 조달했다. 집안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이 아르바이트 때문에 빠지는 것을 본 그는 직접 학생 부모를 지역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면접하는 날에는 교수들과 함께 전세버스를 타고 학생을 인솔했다. 학생들의 취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과 일일이 눈을 맞췄다. 사후 관리도 했다. 홍 회장은 “취업에 성공하면 3개월 후에 기업을 찾아가 ‘우리 학생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말해주면 다음 학기에 반영하겠다’고 했더니 학교를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타지에서 생활하는 졸업생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적금통장을 만들어주는 행사를 열었다. 홍 회장은 “적금통장과 함께 ‘이 악물고 1억원을 모을 때까지 버티자’는 선언문을 읽게 하면 아이들도 울고, 행사에 참석한 그 기업의 임원도 울더라”고 덧붙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첫해 40명이었던 대기업 취업자 수는 이후 160명으로 늘었다. 전주비전대의 2014년 취업률은 87.4%로 전국 2위를 기록했다. 현재 전주비전대는 삼성전자와 LG화학, 세아베스틸 등 136개 기업과 산학 협약을 맺고 있다. 전주비전대는 산학 협약을 맺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맞춤형 교육을 하고, 기업은 졸업 즉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 홍 회장이 총장 시절 이뤄낸 성과다.

공무원, 대기업 임원, 대학 총장 등을 거친 홍 회장은 “직접 발로 뛴 게 여러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며 오래 일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4월 25일 오후 생산성본부 본사 회의실에서 만난 홍순직 회장은 한국 경제와 한국 기업의 경쟁력, 청년 취업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말했다. 그는 여전히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홍순직 회장이 두원공대를 방문해 대학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한국생산성본부>
홍순직 회장이 두원공대를 방문해 대학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한국생산성본부>


고객 중심 문화를 생산성본부에 어떻게 체질화했나.
“생산성본부의 주요 사업인 컨설팅과 교육은 고객의 고민을 정확하게 알아야 답을 줄 수 있다. 회장이나 직원이나 현장에 가서 그들의 고민을 듣고 함께 회의를 해 그 답을 찾는다. 직원에서 부서장, 임원을 거쳐 회장에게 보고하는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의사 결정 시스템을 바꿨다. 가장 아래 직원부터 회장까지 함께 모여서 토론하고 의사 결정을 한다. 오류도 줄이고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다.”

홍 회장은 1주일 중 2~3일은 현장을 돌아다닌다. 그는 “대학 컨설팅이 많아지면서 지방 출장도 늘었다”며 “앞으로도 고객을 만나기 위해 현장을 찾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즘 그가 현장에서 기업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한국 경제에 대한 걱정’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은 소득 정체다. 소득 정체는 국내총생산(GDP)의 성장 둔화가 근본 원인이다. GDP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결국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생산성을 어떻게 높여야 하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은 기업의 투자 부진, 우수 인력을 양성하지 못하는 교육 시스템, 유연하지 못한 노동 시장, 성장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 등이다. 이러한 걸림돌을 하나씩 제거해야 한다. 여기에다 정보통신기술(ICT)에 대한 투자 확대, 서비스업 활성화를 통한 신시장 창출 등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 성장은 한마디로 무역과 생산성 향상에 달려 있다. 중소기업 생산성은 대기업 대비 30% 정도고, 서비스업도 제조업 대비 46% 수준이다. 이를 감안해 중소기업과 서비스업 생산성 향상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물론 외부 리스크에도 잘 대처해야 한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사드 문제 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미국 등 일부 선진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대두되고 있지만 자유무역주의의 당위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보호무역주의의 한파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반도체, 석유화학 등 10대 수출 품목 중심인 무역 구조에서 빨리 탈피해야 한다. 사드 배치로 인해 우리 중소기업, 관광 산업 등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우리보다 먼저 중국의 경제 제재를 받은 대만이나 일본이 어떻게 이겨냈는지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다. 사드 문제가 아니라도 중국은 이제 소비시장이나 생산기지로서 매력이 줄어들고 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전 세계로 시야를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청년 실업 문제를 풀 방안은 무엇인가.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은 저성장과 기업의 투자 부진 때문이다. 최근엔 기업의 생산 공정이 개선되고, 자동화되면서 고용이 줄고 있다. 대학 총장을 하면서 느낀,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 미스 매치’다. 청년은 일자리가 없다고 하는데 중소기업은 일할 사람이 없어 난리다. 여기엔 대학에 책임이 있다. 사회와 기업에 필요한 인재 육성은 대학이 책임지고 해야 한다.”

일자리 미스 매치 문제는 대학 하기 나름이라는 게 홍 회장의 지론이다. 대학이 학생 개개인 능력과 적성에 맞게 상담하고 진로 교육을 전략적으로 설계해 차별화한다면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기업이 제품을 만들 때 구매층의 성향과 니즈를 파악해 생산하듯 대학 교수들이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취업까지 책임지겠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홍 회장은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서비스 산업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우리나라의 서비스업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는 46억달러로, 전체 산업 투자 규모의 8.5%에 불과하다. 그는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업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며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고급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불고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준비는 선진국에 비해 뒤처져 있고, 신흥국의 추격을 받는 상황이다. 특히 큰 틀에서 국가적인 대응이 불투명하다. 4차 산업혁명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단순히 국가 경쟁력이 한두 단계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과 정부가 하나의 목표를 갖고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야 한다.”

생산성본부는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
“국가 생산성 싱크탱크로서 생산성본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깊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받아들이고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생산성에서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 투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존의 요소 중심이 아닌 유연성과 혁신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생산성 향상의 기반이 될 것이다. 기존의 경영 컨설팅 중심에서 스마트공장 등에 대한 기술 컨설팅과 서비스 업종에 대한 컨설팅도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갈 것이다. 특히 스마트 공장 컨설팅 모델을 완성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수출할 계획이다.”


생산성본부는 급변하고 있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 맞춰 새로운 노동생산성지수도 개발하고 있다. 봉제·신발을 단순 생산하던 시대엔 노동 강도(强度)를 높여 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었지만 지금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스마트폰, 자동차 등에서는 디자인·브랜드·기술융합 등에서 부가가치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창의성이 생산성의 잣대라는 얘기다.

홍 회장은 “과거의 노동생산성 측정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며 “ICT 산업 융합, 연구·개발 투자, 기술 혁신, 브랜드 파워, 글로벌화, 인적 자본의 질적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새로운 종합 생산성 지표로 GPI(Global Productivity Index)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홍 회장의 시선은 국내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그는 “생산성본부가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10월에는 생산성 관련 국제 콘퍼런스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를 새로운 도약의 원년으로 삼아 아시아에서 미주, 유럽, 아프리카 등으로 협력을 확대해 생산성본부가 글로벌 생산성 전문기관으로 성장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 홍순직
1946년생, 동국대 경영학 석사, 인천대 경영학 박사, 산업통상부 부이사관,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삼성자동차 전무, 삼성SDI 부사장·고문, 전주비전대 총장,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