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등이 인건비를 절감을 위해 고용을 줄이면서 최저소득층의 소득이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중소업체 공장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중소기업 등이 인건비를 절감을 위해 고용을 줄이면서 최저소득층의 소득이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중소업체 공장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소득주도성장’을 내건 문재인 정부가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16.4% 올렸지만 오히려 저소득층의 소득은 줄고, 소득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설득력을 잃으면서 최저임금 인상도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가 소비와 성장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을 주도해왔다. 최저임금 인상이 근로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생계를 보장해 사기를 올려주고, 이는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7년 11월 경제장관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의 출발점이자 혁신 성장의 기반”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결국 저소득층의 소득을 줄인 것으로 나타나 소득주도성장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지적이 거세다.

5월 27일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소득 10분위별로 살펴보면 지난 1분기 2인 이상 가구 가운데 최저소득층인 소득 하위 10%(1분위) 가구의 월평균 명목소득은 84만1203원에 불과했다. 이는 1년 전보다 11만7368원(12.2%), 지난해 4분기에 비해서는 22만6182만원(21%) 줄어든 금액이다. 관련 통계가 있는 2003년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구체적인 소득 항목을 살펴보면 최저소득층 소득 감소 요인이 확연히 드러난다. 소득 1분위의 지난 1분기 월평균 근로소득은 15만9034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6%(8만7978원)나 급감했다. 직전 분기인 지난해 4분기(29만9639원)에 비해서는 약 14만원 감소했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 단 석 달 만에 월평균 근로소득이 47% 감소한 것이다. 이는 올해 1월 1일부터 최저임금이 16.4% 인상된 이후 자영업자·중소기업 등 영세 업체들이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고용을 줄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오준범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올해 들어 취업자 수 증가폭이 10만 명대 초반 수준으로 급감한 것이 저소득층 소득 감소로 이어졌을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가계 소득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10분위의 월평균 명목소득은 지난 1분기 1271만7465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2만5064원(10.7%)이나 늘어났다. 실질소득은 1223만3037원으로 9.3%(103만8414원) 증가했다. 역시 2003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정부는 저소득층 소득 감소와 양극화 심화는 일자리 문제라기보다는 경기 침체가 원인이라고 강변한다. 경기가 악화돼 고령층 등이 많이 몰리는 일용직 일자리가 줄어 이들의 임금소득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저소득 일자리 감소가 원인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23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올해 1분기 고용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긴 시계열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도소매, 음식·숙박업 등 최저임금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직종에서 대규모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최저임금이 고용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 지난 4월 도소매, 음식·숙박업 등 최저임금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직종에서 전년 동월 대비 1만5000개(-8.6%)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가계동향조사로 제 발등 찍은 기재부

최근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5월 25일 서울대에서 열린 ‘최저임금의 소득고용 효과’ 정책 심포지엄에서 이정민 서울대 교수, 전현배 서강대 교수 연구팀은 “최저임금 상승이 고용을 소멸시킬 뿐 아니라 고용 창출 또한 억제한다”고 밝혔다. 이정민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기존 사업체의 고용 감소는 감원, 근로시간 단축 및 퇴출 형태로 나타난다”며 “심할 경우 기존 사업장이 아예 문을 닫을 가능성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통계 오류 가능성은 없을까. 일부에선 3개월 정도 통계자료만 가지고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1분기 도소매 및 숙박음식점업의 취업자 수가 급감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최저임금 16.4% 인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분기별로 소득을 조사하는 가계동향조사는 지난해 4분기를 끝으로 없어질 예정이었다. 가계동향조사가 고소득층에서의 표본 누락이 심각해 소득 조사 결과 왜곡이 컸기 때문이다. 분기별로 발표되는 가계동향조사는 전국의 9000표본가구가 월 단위로 소득을 직접 가계부에 기입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고소득층이나 저소득층이 소득 공개를 꺼려 무응답률이 20%가 넘는 등 통계로서의 신뢰도가 낮다. 반면 가계금융·복지조사는 전국 2만 표본가구의 국세청 납세자료를 활용해 자산·부채를 연 1회 조사해 소득 및 소득분배 지표 등을 발표하기 때문에 가계동향조사보다 정확하다.

이에 따라 통계청은 지난해 5월 가계동향조사를 가계금융·복지조사와 연말까지 통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통계청은 “학계와 정부기관에서 유지할 필요성이 제기돼 2018년에도 지속하기로 했다”고 말을 바꿨다. 이를 두고 통계청 안팎에서는 “기획재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운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가계동향조사를 계속하기로 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지난해 4분기 조사에서 가계 실질소득이 9분기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자 기재부와 민주당은 소득주도성장 정책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지표가 정부 입맛에 맞게 나오면서 가계동향조사를 소득주도성장 정책 홍보 도구로 쓰겠다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올 1분기 조사 결과로 인해 기재부가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셈이 됐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동향조사는 소득분배 지표의 오류로 인해 폐지 직전까지 갔다”며 “고소득 가계에 대한 통계 정확성이 떨어졌던 과거 조사를 감안하면 소득 양극화 실제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갈수록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란 점이다. 자영업은 계속 무너지고 있으며, 편의점·주유소 등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응해 무인점포나 셀프 서비스를 확대하는 추세여서 고용 시장에 악재가 될 전망이다. 오준범 선임연구원은 “정부의 공공 일자리 창출, 청년 일자리 추경 집행 등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제조업 고용 위축 등으로 고용 시장 개선이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Plus Point

정부 경제팀 불협화음

저소득층 소득이 줄고, 빈부격차가 심해진데다 향후 전망도 부정적인데도 정부 경제팀은 불협화음을 쏟아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 대해 “긍정적인 효과가 90%”라고 했다. 또 그는 정부와 여당을 향해 “최저임금 정책의 긍정적 효과를 자신있게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론’이 나오자 교통정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김동연 부총리는 5월 23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저임금 1만원 도달 시점을 신축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이날 부총리를 질타하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홍장표 경제수석 등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은 지난 5월 29일 긴급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충돌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