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몬 회장은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은 오랜 전통의 산물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따라하기 어렵다”면서도 “국제화와 직업교육에 관해서는 한국 기업들이 히든챔피언 기업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임영근>
지몬 회장은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은 오랜 전통의 산물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따라하기 어렵다”면서도 “국제화와 직업교육에 관해서는
한국 기업들이 히든챔피언 기업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임영근>

‘독일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헤르만 지몬(Hermann Simon) 지몬-쿠퍼 앤드 파트너스(SKP) 회장. 올해는 그의 저서 <히든챔피언>이 출간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히든챔피언>은 전 세계 2000여개에 달하는 기업을 추려 그 가운데 숨겨진 강소기업 500여개를 분석해 그들의 성공 비결을 소개한 역작이다. 전 세계 16개국에 번역 출간됐고 국내에서도 당시 재벌 중심 경제 성장의 한계에 대한 우려와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몬 회장은 독일 출신의 경영학자로 전략·마케팅 분야의 권위자다. 1979~95년까지 독일 빌레펠트대와 마인츠대에서 경영학 교수를 지냈고 이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스탠퍼드대, MIT, 인시아드, 런던 비즈니스 스쿨, 일본 게이오대 등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그가 1985년 설립한 경영컨설팅회사 SKP는 미국과 영국, 스페인, 일본 등 24개국에 33개 사무소를 두고 있다. SKP는 특히 가격결정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히든챔피언> 출간 20주년을 맞아 지몬 회장의 특별 대담을 기획했다. 지몬 회장의 오랜 친구이자 한국 파트너인 유필화 성균관대 SKK GSB 경영대학원 교수가 진행을 맡았다. 대담은 유 교수의 서울 대방동 서재에서 진행됐다.  

1996년 <히든챔피언>이 한국에서 <숨은 강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던 당시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후 책의 내용과 관련해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히든챔피언 기업들을 둘러싼 상황은 많이 변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된 국제화의 물결을 타고 당시 소개된 히든챔피언 기업들의 상당수는 그 사이 10배나 성장했습니다. 연구개발(R&D) 비중이 늘면서 혁신 역량도 강화됐고요. 오늘날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 관리자들의 교육 수준이나 국제감각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인더스트리 4.0’으로 불리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것도 큰 변화입니다. 하지만 야심찬 목표와 고객 친화적인 마인드, 장기적인 접근 등 히든챔피언의 핵심 성공 원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유필화 성균관대 SKK GSB 경영대학원 교수(오른쪽)와 지몬 회장이 유 교수의 서울 대방동 서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임영근>
유필화 성균관대 SKK GSB 경영대학원 교수(오른쪽)와 지몬 회장이 유 교수의 서울 대방동 서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임영근>

한국 정부도 2년 전 ‘중견기업 성장 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중견기업특별법)’을 시행하는 등 ‘한국형 히든챔피언’육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과 한국 중소·중견기업의 가장 큰 차이는 국제화 수준입니다. 한국의 대기업은 국제화가 잘돼있지만 중소·중견기업은 그렇지 않아요. 본연적인 사업 경쟁력이 낮아서라기보다는 언어와 문화적인 장벽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차이는 직업 교육에 대한 관점입니다. 한국은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대학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직업 교육은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가 전체적으로 봐도 80%에 달하는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너무 지나칩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학문적으로 우수하다고 보기도 어려울 뿐더러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첨단 기술이 발달할수록 복잡한 제품을 만들고 수리할 수 있는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1인당 수출액은 미국의 3.5배, 중국의 10배 가까이나 된다. 반면 청년 실업률은 7.4%로 젊은층의 취업난이 심각한 수준인 프랑스(27.3%)와 스페인(44.7%) 등 다른 유럽 국가는 물론 미국(10.8%)과 우리나라(12.5%)보다도 현저하게 낮다. 그 중심에는 산업현장 중심의 도제교육(apprenticeship)이 있다. 210만개가 넘는 독일 기업 중 43만8000개가 도제교육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인지도가 높은 인기 기업의 경우 훈련생이 되기 위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만하임에 있는 미국계 농기계 생산업체 존디어 공장과 프랑크푸르트의 도이체방크는 경쟁률이 매년 50 대 1에 달한다.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간의 격차가 큰 한국 상황을 고려하면 독일식 히든챔피언 모델을 직접 적용하는 데 한계도 있어 보입니다.
“독일 시스템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죠. 무엇보다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은 오랜 전통의 산물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따라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앞서 언급한 국제화와 직업교육에 관해서는 한국 기업들이 히든챔피언 기업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독일에 국제화 교육이란 건 찾아보기 어려웠고 외국어를 구사하는 이들도 적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묵묵히 세계시장을 보고 나갔습니다.
국제적인 위상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물론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야 합니다. 직업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에서 ‘마이스터(meister)’로 불리는 기술 장인이 되면 웬만한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보다 나은 대우를 받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하면 가치관도 따라서 변하게 될 겁니다.”

삼성과 현대 등 한국의 재벌 기업들이 경제 발전과 국가 경쟁력 제고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국가 경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의 재벌 기업들은 한국이 빈국에서 부국으로 변신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산업화 초기 한국 상황에서는 재벌 기업이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것이 불가피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직도 소수 재벌 기업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것은 문제입니다. 한국은 노키아의 실패에서 배워야 합니다. 2004년 핀란드의 노키아 본사를 방문했는데 ‘우리를 이길 기업은 없다’는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렇게 오만한 기업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시 노키아의 글로벌 휴대전화시장 점유율은 40%에 달했고 연구개발 인력만 1만9000명을 헤아렸습니다. 핀란드 전체 수출의 25%를 노키아 혼자 책임졌고요.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으로 고객과의 거리를 가깝게 유지하지 못한 게 실패의 원인이 됐고 노키아가 무너지면서 핀란드 경제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201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대비 삼성전자 매출 비율은 13.83%나 됐다. 같은 해 주요 15개국의 대표기업 매출액과 소속 국가 GDP의 비율을 순위로 매겨 보면 삼성전자가 1위, 영국의 BP(12.01%)와 러시아의 가즈프롬(7.97%)이 각각 2~3위다. 삼성전자와 현대차(5.98%)의 매출을 합치면 우리나라 GDP의 약 20%를 차지한다.

대기업 의존도를 줄이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 재벌 기업은 사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작은 계열사들을 매각해 경쟁력이 높은 분야에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매각된 계열사들이 히든챔피언 기업으로 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독일이 높은 수준의 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외국 자본의 역할이 컸습니다. 중소 공급업체들이 특정 대기업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도 바꿔야 합니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많지만 중요한 건 실행입니다.”

핀란드는 이후 노키아 몰락의 충격을 딛고 국가 차원에서 성공적인 산업 구조조정을 이뤄냈다. 경쟁력이 떨어진 휴대전화 제조 분야를 과감히 포기하고 핀테크와 모바일 게임 등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며 노키아의 빈자리를 채워 나간 덕분에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강국으로 재도약했다는 평가다.

경직된 산업 구조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스타트업 창업 육성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텐데요. 창업 성공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창업을 장려하는 건 혁신역량과 경쟁력 강화에 분명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스타트업 창업이 부진한 것은 대기업 취업 선호와 관련이 있습니다.
몇년 전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제2차세계대전 이후 MIT 동문들이 창업한 스타트업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미국보다 한국과 독일 출신 창업이 더 많았어요. 한국인이 기질적으로 창업을 꺼리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죠. 한국과 문화적으로 비슷한 중국이 창업 강국으로 부상한 것을 보면 이런 사실은 더 분명해집니다. 결국 창업에 대한 인식 변화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도 성공사례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창업에 대한 인식에 관해서는 독일도 아직 미국에 많이 뒤처져 있습니다. 하지만 2005년을 기점으로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창업에 나서는 젊은이들이 빠른 속도로 늘었습니다. 창업 성공이 늘면서 이제 베를린과 뮌헨, 카를스루에의 스타트업 클러스터는 인재들이 넘쳐납니다.”

최근 경기침체로 주춤하긴 하지만 중국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하루 평균 1만1000개의 기업이 새로 설립되는 등 세계적인 창업 대국으로 거듭났다. ‘대중창업(大衆創業), 만인혁신(萬衆創新)’의 기치 아래 정부가 창업을 국가 성장 동력으로 선포하고 정책과 재정 지원을 강화한 결과다.

지난해 중국 국무원은 등록자본등기제도 개혁을 통해 최소 창업 자본금 요건을 철폐했다. 과거에는 기업 설립에 최소 3만위안이 들었지만, 현재는 1위안만 있어도 창업을 할 수 있다. 창업을 위해 160여단계를 거쳐야 했던 절차도 대폭 줄여 사흘 이내에 기업 등록을 마칠 수 있도록 했다.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일본 기업의 몰락과 중국의 급성장에서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은 뭘까요.
“한국이 중국과 가격 경쟁을 통해 이길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따라서 혁신과 서비스, 브랜드를 앞세워 경쟁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혁신은 단순한 기능이나 서비스의 개선이 아닌 상황을 뒤집을 만한 혁신(breakthrough)을 말합니다.
일본 기업은 바로 이 부분에서 실패했습니다. 브랜드도 일본 기업의 취약점이었습니다. 물론 소니를 비롯해 유명한 일본 브랜드가 없지는 않았지요. 그렇다고 사람들이 애플에 열광하는 것만큼 소니에 열광했던 것은 아닙니다. 단순한 브랜드 인지도가 아닌 ‘선호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요타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성능과 가격 등에 관한) 이성적 판단 때문이지 브랜드를 좋아해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헤르만 지몬(Hermann Simon)
독일 본대학 경영학 박사, 독일 마인츠대 경영학 교수, 프랑스 INSEAD 객원교수,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기업은행 경영 자문위원

▒ 유필화
미국 노스웨스턴대 MBA,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독일 빌레펠트대 초빙교수, 일본 게이오대 초빙교수,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SKK GSB)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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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챔피언(hidden champion)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펴낸 동명의 저서에서 비롯됐다. 매출이 40억달러 이하인 기업 가운데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각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3위 또는 소속 대륙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업을 뜻한다.

Plus Point

히든챔피언 성공의 5가지 비결

1996년 출간된 <히든챔피언> 영문판 표지
1996년 출간된 <히든챔피언> 영문판 표지

지몬 회장이 지목한 히든챔피언 기업의 공통점은 5가지다.

첫 번째 공통점은 ‘원대한 목표’다. 그는 “성공은 목표를 원대하게 세우면서 가능한 일이 된다”며 “끊임없이 성장하는 목표 설정을 통해 1인자 자리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고 조언한다.

두 번째 비밀은 한 분야를 집중해서 깊게 파는 것이다. 히든챔피언들은 한 분야를 조금이라도 더 깊게 파기 위해 아웃소싱도 하지 않는다.

히든챔피언이 되는 세 번째 비결은 국제화다. 특정 분야에 깊이 있게 집중하는 동시에 세계화 전략으로 매출을 확대했다.
네 번째 공통점은 고객과 가까워지려는 노력 속에서 혁신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다섯 번째는 고(高)성과 문화 창출이다. 지몬 회장은 이와 관련해 사람수를 줄여 직원들이 바쁘도록 해야 하며 이들이 창출한 고부가가치에 대해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히든챔피언들을 분석한 결과 △제품의 품질 △고객과의 친밀성 △납품기한 엄수 △고객 컨설팅 △경제성 △서비스 △시스템 통합 △유연성 등 8가지에서 경쟁사를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