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 대표이사 회장은 “한국지멘스는 본사가 갖춘 역량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사회 공헌에 접근한다”며 “환경문제를 다루는 지멘스 그린스쿨이나 이동 건강검진 등이 그런 사례”라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염동우>
김종갑 대표이사 회장은 “한국지멘스는 본사가 갖춘 역량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사회 공헌에 접근한다”며 “환경문제를 다루는 지멘스 그린스쿨이나 이동 건강검진 등이 그런 사례”라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염동우>

한국지멘스의 김종갑 대표이사 회장은 산업부(당시 산업자원부) 차관을 지낸 관료 출신이다. 그는 2007년 경영 위기를 겪고 있던 하이닉스반도체를 4년여간 맡아 경영을 정상화시켜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하도록 토대를 만든 주역이다. 이후 그는 또 한 번의 도전에 나선다. 한 번도 한국인을 대표이사로 임명하지 않은 한국지멘스의 대표이사 회장을 2011년 맡은 것이다. 이후 한국지멘스는 아시아지역본부 2개를 한국에 유치하고 한국 투자를 크게 늘리는 등 광폭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지멘스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지 만 5년이 됐습니다.
“세 가지 측면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첫째, 지멘스의 한국투자를 확대해 왔고 한국에 두 개의 아시아지역본부를 설치했습니다. 이 중 하나인 에너지솔루션 아시아지역본부는 아시아∙태평양∙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발전 솔루션 시장을 관장하는 지역본부 역할을 맡고 있으며 또 하나의 지역본부인 전력 및 가스사업본부 아시아 세일즈 지역본부도 한국에 유치했습니다. 지멘스는 지난 20여년간 2억3000만유로(약 2852억원)를 한국에 투자했으며 그중 에너지 솔루션 사업 확대를 목표로 2013년부터 6000만유로(약 744억원) 이상 투자해 왔습니다.
둘째, 지멘스와 한국기업, 특히 한국의 해외건설업체들과 한국 혹은 해외에서 협업을 확대해 왔습니다.
셋째, 한국지멘스는 지멘스그룹 내의 위상이 높아져 2013년에는 선도국가(lead country)의 하나로 지정돼 그룹이사회에 직접 보고하는 체제를 갖추게 됐습니다. 한국지멘스가 지멘스그룹 내 204개국 중 30개 ‘선도국가’로 선정된 의미는 지역본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본사 그룹이사회에 보고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해 사업 추진의 자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제가 2011년 부임할 때만 해도 한국지멘스는 중국, 싱가포르 등의 아시아지역본부 소속이었습니다.”

취임 이후 가장 큰 도전 과제와 성과는 무엇이었나요.
“이미 언급한 에너지 솔루션즈 지역본부는 발전소를 턴키(turn key)로 지어줄 수 있는 종합솔루션회사입니다. 아시아∙태평양∙중동∙북아프리카까지 관장하게 되는 이 지역본부를 2013년 10월 1일에 한국에 유치하고 그 후 이 사업부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자 성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출범 이후 한국에서 3개의 큰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수행 중에 있습니다. 2014년 GS당진 복합화력발전소 4호기를 공급했으며 2014년 SK건설과 파트너십을 맺고 파주에 장문 발전소를, 하남에 위례 발전소를 건설 중입니다.”

지멘스의 글로벌 전략은 무엇이며 이에 따른 한국지멘스만의 전략과 경쟁력은 무엇인지요.
“지멘스는 내년에 170주년을 맞이합니다. 지멘스가 169년을 맞이하는 동안 꾸준히 성장해 온 가장 큰 비결은 체질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추진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지멘스는 정교하고 정확도 높은 고유의 미래 예측 연구기법을 확립해 사업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사업의 성공 요인을 포착함과 동시에 성공 가능성 높은 신사업 기회를 쉼 없이 발굴해 왔습니다.”

전세계 200여 국가에서 34만300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지멘스그룹은 전력화, 자동화, 디지털화 영역에 핵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사진 : 한국지멘스>
전세계 200여 국가에서 34만300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지멘스그룹은 전력화, 자동화, 디지털화 영역에 핵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사진 : 한국지멘스>

독일 지멘스그룹은 2년 전인 2014년 5월 ‘지멘스 비전 2020’을 발표했다. 전력화(electrification), 자동화(automation), 디지털화(digitalization)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이에 맞춰 조직을 개편한다는 내용이다. ‘비전 2020’은 지멘스의 미래와 성장을 위한 콘셉트다. 지멘스는 전력화, 자동화, 디지털화의 가치사슬에 맞춰 세계적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지멘스는 제조업과 같은 전통 산업에 IT 시스템을 결합해 생산시설들이 네트워크화되고 지능형 생산 시스템으로 진화하는 ‘스마트 공장(smart factory)’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지멘스의 전통적인 사업분야인 ‘하드웨어’ 분야의 전문지식과 기술, 경험을 바탕으로 전 세계 고객들이 단순한 제품 생산에서 나아가 효율적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에 적합한 ‘소프트웨어’도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한국지멘스 역시 인더스트리 4.0 관련 사업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첫째, 지속적인 현지화를 통해 고객에게 신속하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한국의 고객, 협력업체 및 파트너들과 장기적인 상생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방침이다. 서로 신뢰하에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고 협력하는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지멘스가 전략적으로 집중하는 미래 사업 부문은 무엇입니까.
“글로벌 메가트렌드는 디지털화(digitalization)입니다. 2020년까지 디지털 정보량은 44제타바이트(zettabyte)에 달할 것이며 기존 산업들의 가치사슬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미래에도 국제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국기업들도 서둘러 디지털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판단해 이 분야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려고 합니다.
지멘스는 이미 엄청난 양의 정보를 생산·운영·관리하는 세계적인 데이터 공룡 기업(data giant)입니다. 가스터빈 1대는 매일 약 25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MRI 스캐너 1대는 60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어떻게 실질적인 가치로 전환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겠지요. 지멘스만큼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융합하는 포트폴리오를 거의 완벽하게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아마 없을 겁니다. 이른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융합(cyber-physical fusion)을 구축했다고 할 수 있지요. 컴퓨터 내에서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설계 및 시뮬레이션합니다.
이를 통해 지멘스의 고객들은 더 높은 생산성, 생산 공정의 유연성과 적기 출하, 보다 더 효율적인 서비스와 유지·보수라는 성과를 얻고 있습니다.”

디지털화라는 메가트렌드 관점에서 한국 정부의 산업정책을 평가한다면.
“우리 정부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각기 다른 부처에서 관장합니다. 시대의 흐름과 전혀 맞지 않을 뿐더러 정책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도록 이 기능은 통합해서 운영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고급 소프트웨어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학교와 수요자인 기업이 함께 투자해서 양성해야 합니다.
순수 소프트웨어 인력도 필요하고 하드웨어를 움직이는 내장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도 절대 부족합니다. 이미 2000년대 초에 ‘10만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 필요성을 주창한 선각자가 있었지만, 그 후 거의 진전이 없었는데 지금부터라도 대대적인 양성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국내 제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다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조업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의 속도와 깊이가 과거 1~3차에 걸친 산업혁명 때보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각 기업이 가진 핵심역량에 맞춰 사업범위를 조정해 나가면서, 디지털화를 핵심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에 잘 대처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얘기죠. 국내 일각에서는, 제조업의 고용, 부가가치 창출이 축소되고 있는 것을 이유로 ‘제조업 가지고는 안 되니 서비스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조업이란 제조행위 그 자체만이 아니라 연구개발, 디자인, 엔지니어링, 유통, 물류, 애프터 서비스 등 제조업이 있기에 파생되는 ‘제조 관련 서비스’를 포함해서 봐야 하며 그런 관점에서 제조업은 현재 한국 경제의 중추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모든 선진국과 중국이 제조업 중흥에 미래를 걸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환경산업 비중이 높은 한국지멘스는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 지역의 초등학교 및 지역아동센터를 방문, 환경보호와 과학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지멘스 그린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 한국지멘스>
환경산업 비중이 높은 한국지멘스는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 지역의 초등학교 및 지역아동센터를 방문, 환경보호와 과학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지멘스 그린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 한국지멘스>

‘인더스트리 4.0’을 대표하는 제조기업으로서, 한국지멘스가 국내에 기여할 수 있는 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정부와 기업은 ‘어떤 것을 생산할 것이냐’보다는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디지털화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 공급망, 노동 시장 그리고 궁극적으로 기업과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죠. 한국 정부가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제조업 혁신 3.0 전략’을 제시하고 2020년까지 1만개의 스마트 공장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합니다.”

한국 제조업의 디지털화는 현재 어느 정도 진행됐다고 생각하십니까.
“제조업의 경우 자동화를 전제로 디지털화가 진행됩니다. 한국 대기업의 경우 자동화 수준이 매우 높아서 디지털화를 추진할 준비가 잘돼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중견·중소기업입니다.
이들 기업은 더 높은 수준의 자동화와 함께 디지털화를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디지털화 초기 단계에 있으며 최고 수준으로 디지털화하기 위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먼저 앞서 가고 있는 기업 사례를 벤치마킹해 단계적 투자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디지털화가 거스를 수 없는 메가트랜드임을 감안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조금은 더 속도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을 맡으셨는데 한국과 독일 간의 주요 역점 사업은.
“한독상공회소는 500여 회원을 가진 국내 두 번째로 큰 외국계 상공회의소입니다. 제2차 석유파동 때에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투자가들도 있었으나 독일계 기업들은 오히려 투자를 확대했고 그때의 한국대표들이 중심이 돼 1981년 출범했습니다. 올해는 독일과의 협력에 관심이 있거나 독일의 기업경영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Partnership Germany’란 사업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 독일의 중소·강소기업을 의미하는 미텔슈탄트(Mittelstand), 독일기업 준법윤리경영, 독일기업 마케팅 기법, 인력양성 사례, 독일의 기업정책, 독일의 사업환경 등 독일 관련 주제에 대해 강사진을 확보하고 대한상공회의소, 전경련, 무역협회,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 코트라 등의 기관에서 요청하면 무료 강의를 제공하는 사업입니다. 제안서를 보내 놓고 필요한 수요를 기다리고 있는데 독일에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의 강의 요청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하이닉스를 반석 위에 올린 주역입니다. 하이닉스 대표 때 가장 보람을 느낀 것은.
“하이닉스 회생의 주역은 당시 2만2000명의 동료들이지, CEO의 공로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2006년 8월을 정점으로 반도체는 하강국면이었는데, 2007년 3월 말에 사장으로 취임,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금융위기와 반도체 하강국면이 한꺼번에 밀려온 것이죠.
그러나 노조는 임단협을 백지위임하고 복지를 반납함으로써 재무적으로는 당시 2000여명의 잉여 인력을 줄이는 것보다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줬습니다. 취임하면서부터 과감한 의사 결정을 할 주인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하에 인수에 관심 가질 만한 기업은 모두 직접 접촉했고, SK가 인수하기로 잠정 결정을 하는 것을 본 후 하이닉스를 떠나게 된 것도 큰 보람이었습니다. 떠나기 전해에 3조원이 넘는 큰 이익을 낸 것도 큰 행운이었습니다. 하이닉스 근무 4년은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 중 가장 큰 도전이자, 가장 큰 보람으로 기억되는 기간입니다.”


▒ 김종갑
1975년 17회 행시 합격,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차관보, 특허청장, 제1차관, 하이닉스반도체 대표, 한국지멘스 대표이사 회장,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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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공장(smart factory) 사물 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과 기계의 결합을 통해 생산시설을 네트워크화하고 지능형 생산 시스템을 갖춘 공정을 일컫는다. 스마트 공장에서는 제품 설계부터 생산계획·엔지니어링·실행·서비스에 이르는 기업의 전체 가치사슬(value chain)과 제조공정이 디지털화돼 모든 생산 과정을 최적화할 수 있다.

Plus Point

암베르크 스마트 공장 불량률 100만개당 11개

지멘스는 제조업과 같은 전통 산업에 IT 시스템을 결합해 생산시설들을 네트워크화하고 지능형 생산 시스템을 갖춘 ‘스마트 공장(smart factory)’을 세계 처음으로 선보였다.

독일 지멘스 암베르크(Amberg) 공장은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인더스트리 4.0이 전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세계 유일의 스마트 공장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암베르크 공장의 생산라인 직원은 1200명이다. 지멘스 암베르크 공장은 창립 이후 인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생산성은 무려 800% 증가했다. 최근 꿈의 수율이라 할 수 있는 수율 99.9989%(11 dpm·100만개당 불량품이 11개)를 달성한 지멘스 암베르크 공장은 1초당 1개의 제품을 생산한다. 암베르크 공장에서 현재 생산하는 제품은 1000가지가 넘는다. 1000가지 이상의 다양한 제품을 동일 생산라인에서 만들어내는 스마트 공장은 각각의 공정을 상황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 하루 5000만건씩 축적되는 빅데이터를 엔지니어가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정을 개선한다.

한국지멘스도 올 6월 SK C&C와 손잡고 스마트 공장 사업 확대를 시작했다. ‘스마트 팩토리 공동 기술 개발 및 사업 협력 업무협약(MOU)’을 시작으로, 공장 공정 자동화와 부품 관리, 고장 예측 등을 자동으로 하는 솔루션을 공동 개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