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수 티앤알바이오팹 대표가 배양액 속에 담겨 있는 인공 미니 귀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신영>
윤원수 티앤알바이오팹 대표가 배양액 속에 담겨 있는 인공 미니 귀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신영>

“이건 실제 환자의 CT 이미지로 만든 겁니다. 이 환자는 어릴 때 안구암에 걸려서 치료를 위해 눈 밑 뼈가 제거됐습니다. 그래서 안구가 처져 다른 쪽 눈과 균형이 맞지 않았습니다. 양쪽 눈 높이가 다르면 보기에도 좋지 않고 사물을 볼 때 초점이 잘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CT 이미지에서 뼈가 정상적으로 자란 반대쪽과 비교해 비는 부분을 그린 뒤, 3D프린팅으로 완전한 환자 맞춤형 보형물을 만들어 냅니다. 이걸 그대로 끼워 넣으면 됩니다.”

지난 7일 경기도 시흥시 한국산업대학교 산학융합본부에 있는 티앤알바이오팹 사무실을 찾아가자 윤원수 대표는 두개골 모형과 생분해성 의료용 메쉬(T&R mesh) 제품을 테이블에 놓고 바로 설명부터 시작했다.

윤 대표는 1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 마지막에 인간 세포를 원료로 삼고 3D프린팅 기술을 적용해 직접 만든 ‘인공 귀’를 핀셋으로 집어들었다. 그리고 “인간의 장기와 조직을 체외에서 만들어 이식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시판한 생분해성 T&R 메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3D프린팅으로 소재를 한 줄씩 10층을 쌓았습니다. 재료를 엇갈리게 쌓아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3D프린팅 기술이 아니면 만들 수 없습니다. 이 보형물은 몸 안에 들어가면 주변 조직이 공간을 채우고 보형물 자체는 몸 속에서 분해돼 사라집니다. 평생 이물질로 몸 안에 남게 되는 기존 제품과 다른 점입니다.
얼굴에 야구공을 맞거나 다이빙할 때 안구 밑 뼈가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안와골절). T&R 메쉬는 환자 맞춤형으로 제작할 수 있지만, 한국인 얼굴 크기에 맞는 표준형 제품도 생산합니다. 지금까지는 뼈가 많이 손실된 경우 다른 부위에서 뼈를 떼어와 수술실에서 의사가 성형한 후 이식합니다. 이럴 경우 수술 시간이 10시간 걸리지만, 맞춤형으로 제작한 이 제품을 사용하면 2시간이면 수술이 끝납니다. 지금까지 3D프린터로 대량생산한 표준형 보형물은 모두 500건이 넘고 환자의 특정부위에 맞춰 맞춤형으로 생산한 제품은 4건입니다. 성형외과에서 코끝을 높이는 시술을 할 때도 이 제품이 쓰입니다. 코를 높이는 시술에만도 200명 넘게 이 제품을 사용했습니다.”

3D 바이오 프린팅 분야에서 다른 나라 기업과 비교해 기술력이 어느 정도 된다고 보십니까.
“감히 티앤알바이오팹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프린팅한 후에 세포가 살아있도록 유지하는 건 어렵습니다. 저희 회사는 프린팅 후에 세포가 장기간 살아있는 채로 유지되고 미니 장기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기술은 3D 바이오 프린팅 분야에서 선두에 있는 몇 개의 대학 연구기관과 기업만 갖고 있습니다.
대표적 경쟁사는 미국 오가노보(Organovo)입니다. 이 회사는 세포들의 군집을 알갱이로 만들어 하나씩 떨어트린 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갱이들이 붙는 방식을 씁니다. 이 경우 자유로운 형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일본의 사이퓨즈(CyFuse)는 세포를 하나씩 위치를 잡아줘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역시 자유로운 형상이 불가능합니다. 티앤알바이오팹은 세포를 바로 프린팅할 수 있고 또 여러 종류의 세포를 한꺼번에 프린팅할 수 있습니다.”

윤 대표는 노트북에서 3D프린터로 간 세포를 프린팅해 가로 4㎝, 세로 3㎝의 ‘미니 간’을 만드는 장면을 보여줬다. 또 3D프린터로 찍어 낸 미니 심장은 마치 진짜 심장처럼 주기적으로 뛰고 있었다.

인공 장기 제조 기술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예를 들어 간이 손상됐다면 지금은 간으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주사로 몸에 주입합니다. 그런데 줄기세포는 10%도 남지 않을 정도로 효율이 낮습니다. 그래서 줄기세포를 원료로 삼아 원하는 신체부위 형태로 프린팅한 뒤 직접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저희는 미니 간을 만들어 겔(Gel) 형태로 모양을 유지하며 20일 이상 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이걸 신체에 이식하면 장기 재생에 효과적입니다. 또 인공피부는 화장품 회사가 화장품을 개발할 때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인공피부는 표피만 있지만, 저희 회사의 3D프린팅으론 그 밑의 진피까지 만들어낼 수 있어 실험에 더 효과적입니다. 반창고처럼 심장 근육 패치를 만들어 실험해보니 심근경색이 일어난 심장에 심근이 재생돼 정상적으로 심장 박동이 일어납니다. 3D프린팅으로 제조한 미니 간은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할 때 간 독성 테스트에 유용합니다.”

기술적으로 우위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저희 회사는 세포를 프린팅하기 위한 장비와 재료인 바이오 잉크 그리고 소프트웨어도 자체 개발합니다. 이런 전체적인 공정에 쓰이는 기술력을 전부 확보하고 있는 회사는 전 세계에 티앤알바이오팹밖에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미국, 일본 회사는 장비를 사와서 사용하고 세포 프린팅에 들어가는 바이오 잉크도 외부에서 사옵니다.”

해외시장 진출 계획을 알려주십시오.
“T&R 메쉬는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FDA 승인을 신청한 상태입니다. 내년 1분기 안에는 FDA 승인을 받을 걸로 보고 있습니다. 인공피부는 한 글로벌 화장품 회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계약을 맺은 상태입니다. 인공 간은 세계적 제약사와 공동 연구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 윤원수
부산대 기계공학과,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석·박사,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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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노이드(Organoid) 인공장기 유사체. 줄기세포나 장기세포에서 분리한 세포를 배양하거나 재조합해서 만든 미니장기를 뜻한다. 보통은 배양접시에 키워 만드는데,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을 이용하면 세포를 프린팅해서 입체적인 장기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Plus Point

3D 세포 프린팅

3D 프린팅 기술로 세포를 프린팅해 만든 미니 간.
3D 프린팅 기술로 세포를 프린팅해 만든 미니 간.

윤원수 대표는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로 재직하며 3D 바이오 프린팅을 연구했다. 그는 지도교수인 조동우 포항공대 교수가 15년간 연구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2013년 티앤알바이오팹을 공동 설립했다.

기계공학과 교수인 윤 대표는 3D프린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궁리하면서 바이오와 인연을 맺게 됐다. 10여년 전, ‘3D프린팅’이라는 용어도 없이 ‘적층 가공’ ‘쾌속 조형’과 같은 이름으로 부를 때였다. 그는 “3D프린팅으로 미세 구조물을 만들었는데 어디에 써야 할지 몰랐다”며 “그러다 의사들과 만나 인공 지지체를 만들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고, 그때부터 세포를 프린팅하는 기술까지 발전하게 됐다”고 했다.

2014년 9월에는 서울 성모병원에서 T&R 메쉬로 환자 맞춤형 보형물을 제작해 안면윤곽 재건 수술에 성공했다. 3D프린팅으로 맞춤형 생분해성 보형물을 만들어 이식한 것은 세계 최초였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미국과 싱가포르의 기존 3D프린팅 기술은 한 가지의 생체 재료만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지만, 티앤알바이오팹의 기술은 신체 조직 재생 능력이 높은 복합 생체 재료를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또 인체 세포를 포함한 바이오 잉크(Bio Ink)로 장기·피부·연골·심근조직 등 다양한 인체 조직을 재생할 수 있는 세포 프린팅 시스템으로 기술을 확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이 발전하면 망가진 장기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어 간이 손상된 환자라면 간세포로 지지체를 만들어 이식한 뒤 간이 스스로 재생하는 방식으로 병을 고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