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이 불황과 중국 기업의 등장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다. 특히 전 세계 해운 시장 초과공급으로 인해 선박 신규 발주가 급감하면서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의 조선 빅3로 꼽히는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은 현재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외국의 구조조정 전문가들은 한국 조선업의 구조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글로벌 기업 구조조정 컨설팅 업체인 알바레즈앤드마살(Alvarez & Marsal) 제임스 듀보(James Dubow) 아시아 공동대표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의 조선업 구조조정은 조선업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간다는 전제하에 이뤄져야 한다”며 과감한 구조조정을 촉구했다.


한국 조선업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구조조정 방안과 방향은 어떠한가요.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개별 기업의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한국 조선업의 구조조정 방향성을 제시하기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기업이 경쟁력을 잃은 원인이 시장 환경 변화에 있다면 이는 환경 변화를 감안한 객관적인 중기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부분에서 한국 조선업 구조조정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현 사업 규모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중기 사업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시장 환경 변화를 감안한 중기 계획 수립 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산업의 이전(migration) 가능성입니다. 핵심 경쟁력이 제조기술·설비·인건비에 있는 산업은 언젠가 그 분야에서 경쟁력이 뛰어난 기업에 선두를 뺏길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산업을 전망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업 불황의 원인이 전 세계 해운 시장 초과공급으로 선박 신규 발주가 급감한 것에만 있는 게 아니라, 보다 창의적인 역량이 차별적 경쟁력이 되기 어려운 성숙한 산업 특성에서 오는 성장 한계라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조선 시장이 다시 호황기로 돌아섰을 때 한국 조선업이 최고의 제조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도 주도권은 중국을 비롯한 저비용 생산 가능 국가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가정하에 산업 전반을 점검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조선업뿐만 아니라 어떤 산업 구조조정이든지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경쟁력 회복과 지속 성장 가능성을 분명히 확인해야 합니다. 이는 구조조정의 출발점이자 핵심 포인트입니다.”

구조조정을 이끄는 기업 경영진의 태도도 중요합니다.
“경영진은 실적 악화 원인을 시장 상황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장이 안 좋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경향도 있습니다. 기업은 시장 변화에 맞춰 인력·시설 등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조정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어려운 의사결정도 빠르게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신규 시장 진출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다가올 상황 변화에 대비해 준비하고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한 선도 기업만이 미래 시장을 이끌어나갈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 경영진은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조조정은 미래를 내다보고 중기 계획을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현재 문제를 면밀히 분석하며 고쳐나가는 과정입니다. 출자 전환과 증자,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회사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거나, 회사의 미래를 확신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 기업 경영진은 경영권을 잃는 것을 상당히 두려워하며, 난국을 돌파할 파트너를 찾는 것에 소극적입니다.”

기업이 사업 다각화, 새로운 시장 개척 등을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구조조정이 단순히 사업 규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구조조정은 기업이 단순히 설비와 인력을 줄이는 과정이 아닙니다. 구조조정은 경쟁력을 상실한 또는 상실할 위험이 높은 기업이 경쟁력, 즉 현금 창출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모든 이해 관계자가 동참하는 과정입니다. 주주·종업원 등 내부 이해 관계자와 외부 협력업체의 희생이 불가피한 경우도 발생합니다.
기업은 영속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모두가 윈-윈 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만약 내부 이해 관계자의 희생 없이 현재의 어려움을 신사업, 새로운 시장 개척으로 극복할 수 있다면 이를 구조조정 계획에 명확히 반영하고 달성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해당 계획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리스크 역시 기업의 몫입니다. 성공 가능성이 낮은 신규 사업을 추진할 경우 기업의 회생 가능성은 당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 인해 주주와 종업원이 감내해야 할 고통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현대중공업은 경쟁력 강화 일환으로 조선과 해양 플랜트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 부문을 자회사로 분할해 각 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태양광·로봇 등 비조선 부문 역량을 강화해 현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일각에선 ‘기업이 사업 부문을 분할 또는 합병하는 경우, 명분은 각 사업에 집중(분할), 통합 후 시너지 효과(합병)라고 밝히지만 사실은 회사를 분할하며 인력 구조조정을 보다 쉽게 하려는 전략’이라는 부정적 의견도 제기된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역시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력 조정 과정에서 연구개발(R&D), 설계 등 핵심 인력이 빠져나가면 미래 호황기에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 인력 감축은 상당히 민감한 부분인데,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력 감축은 기업이 지닌 핵심 역량을 정확히 판단한 후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향후 경쟁력을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현재 기업이 지닌 역량과 미래에 필요한 역량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업을 보면 과거에는 대량생산 능력이 중요했지만 미래에는 설계·기획 능력이 보다 더 중요할 겁니다. 과거, 현재와 미래 핵심 역량이 다를 수 있고 이를 제대로 파악한 후 인력을 감축해야 하는 것이죠.”

구조조정은 정부, 민간 기업 각각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현재 한국의 조선업 구조조정은 민간 자율 형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한발 물러서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 활약을 강조합니다. 구조조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구조조정의 의사결정은 상당히 복잡하지만 민간 기업이 자체적으로 구조조정 과정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한 기업의 경우,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해당 기업이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면 채권단이 나서서 구조조정 여부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정부는 채권단과 기업이 구조조정을 긴밀하게 논의하고 있는지, 구조조정 방향이 적절한지 등을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합니다.”


▒ 제임스 듀보
뉴욕대 스턴비즈니스스쿨 MBA, 메이야 파워 컴퍼니 C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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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이전 산업 경쟁력이 다른 국가 또는 기업으로 이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환경오염·안전 등의 문제가 제기되는 일명 3D업종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되는 경우 △자원 생산국에 머물렀던 국가가 정제·가공 능력을 갖추면서 산업을 흡수하는 경우 △원가 경쟁력이 높은 국가로 산업이 이동하는 경우다. 벌크선·컨테이너선을 제조하는 조선업의 경쟁력이 한국에서 중국으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현상은 세 번째 유형이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