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사물인터넷·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전력산업을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 조선일보 DB>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사물인터넷·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전력산업을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 조선일보 DB>

글로벌 전력 회사들은 2010년 이후 예외 없이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다. 화석연료를 주로 이용하는 발전 시스템으로 전기를 만들어 공급하는 지금의 방식이 더는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저유가로 전력 생산 단가가 낮아졌는데도 이러니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국의 전력 회사들은 또 다른 고민까지 여럿 안고 있다. 수년 동안 이어진 폭염과 전기요금 폭탄에 성난 소비자를 달래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전기요금 인하 방안을 내놨다. 한국전력은 연간 1조원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정권이 바뀌자 새 정부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매년 봄 노후 석탄화력 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또 원자력 발전을 줄이는 대신 값이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늘리라고도 했다. 전기를 파는 값은 그대로인데 만드는 값만 비싸지는 셈이다.


정통 산업관료 출신, ‘솔선수범’ 리더십

겹겹이 위기 환경을 맞았지만, 전력 산업의 수장은 의외로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 겸 대한전기협회장의 머릿속에는 이미 전봇대를 타고 전깃줄로 이어진 전력망이 하나의 거대한 정보기술(IT) 시스템으로 바뀌어 있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이 이 시스템을 타고 움직인다. 그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업으로 구현하겠다고 했다. ‘계량기 뒤(Behind the Meter)’의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데도 아닌 ‘전기’ 업계가 꿈을 현실로 만들겠다니 놀랍기만 했다.

정통 산업관료 출신인 조 사장은 1974년 행정고시 14회로 공직에 입문해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과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산업자원부 차관 등을 거친 그는 공직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으로 변신했다. 한국수출보험공사(현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을 거쳐 2012년 12월 한전 사장에 취임했다.

산업부 산하 3대 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를 모두 거친 이는 그가 처음이다. 연간 8000억원대의 적자를 보던 한전이 그가 취임한 이후 1조5000억원대 흑자로 돌아섰다.

조 사장은 강력한 리더십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솔선수범은 그의 장점으로 꼽힌다.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자를 설득하기 위해 현지를 무려 40회 넘게 찾은 것은 그의 실행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조 사장은 이런 경영 실적을 인정받아 한전 사장 중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로 미소를 머금은 채 질문에 답했다.


최근 전력 산업의 변화는.
“전기를 팔아서 먹고사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신기후 체제가 본격화되면서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커졌고, 결국 전기만으로는 수익모델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어진 인공지능 ‘알파고’의 신드롬을 봐라. 4차 산업혁명이 전력 산업계에 가져올 파장은 강력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압도하는 ‘특이점(Singularity)’의 시대가 눈앞에 왔음을 느낀다. 여기에 통신사 등 전력 시장에 뛰어드는 플레이어들도 늘고 있다. 그런데 부담은 늘어만 간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중 41%를 전력 부문이 담당해야 한다. 대비하지 못하면 결국 도태될 것이다. 전력 산업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분야로 진출해야 하는 이유다.”


한전이 에너지 신산업 관련 기업과 연구소 등을 지원하기 위해 나주 혁신도시에 짓고 있는 ‘에너지밸리 기업개발원’의 조감도. <사진 : 한국전력공사>
한전이 에너지 신산업 관련 기업과 연구소 등을 지원하기 위해 나주 혁신도시에 짓고 있는 ‘에너지밸리 기업개발원’의 조감도. <사진 : 한국전력공사>
한전이 제주도에 설치한 전기차 충전소. <사진 : 한국전력공사>
한전이 제주도에 설치한 전기차 충전소. <사진 : 한국전력공사>

새로운 분야란 어떤 것인가.
“에너지 신산업 분야다. 에너지 신산업은 투자 비용이 많이 들고 회수는 오래 걸리는 문제가 있다. 장기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한전 같은 공기업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한전은 올해 신재생에너지와 스마트그리드 분야에 약 3조30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2020년까지 총 8조3000억원을 투입하게 된다. 지능형 계량 인프라(AMI)와 전기차(EV) 충전 인프라 등이 대표적인 예다. 2016년까지 480만 호에 AMI를 구축했다. 2020년까지 2200만 호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구축할 예정이다. EV 충전 인프라의 경우, 올해 서울과 제주 등을 중심으로 공공급속충전기 500기를 구축할 예정이다.”


전력 업계에 4차 산업혁명은 어떤 것인가.
“전력망이 전기만 수송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와 정보를 동시에 전달하는 ‘에너지 인터넷망’이 되는 것이다. 전국 900만 전신주가 일종의 기지국으로 바뀌는 셈이다. 전력설비에 스마트 센서를 부착해 데이터를 생산하고 바로 전달한다. 이를 활용하면 지금의 전력 산업은 정말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 예를 들어 발전 회사들은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를 결합해 정교한 설비 고장 예측 모델을 구축한다. 또 인공지능이 스스로 판단해 발전소를 돌리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는 시스템도 개발한다. 한전이 가진 전력 빅데이터는 이미 3조6000억 건에 달한다. 앞으로 ‘전력 데이터 마켓’을 구축해 데이터를 거래하도록 하고, 이런 기술들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만들어 세계 시장에 내다 팔 것이다. 또 공공 부문에도 이 데이터를 제공해 공유 가치를 높이겠다.”


인터뷰 중간쯤 조 사장은 검은색 재킷을 벗고 최근 산하 발전사 사장들과 잇따라 개최한 긴급회의 이야기를 꺼냈다. 미세먼지 감축과 일자리 창출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는 대한전기협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1965년 창립된 대한전기협회는 전력 공기업과 민간기업 등 222개 법인이 회원사다. 협회는 최근 ‘지속가능 전력정책 연합’을 발족해 기후 변화 대응과 관련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로 했다.

그는 “빚을 내서라도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2만 명가량이 근무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공기업인 한전이 일자리 창출에 가장 먼저 나서겠다고도 했다.


새 정부가 미세먼지 주범으로 노후 석탄화력 발전소를 꼽았는데, 대책은.
“5월 19일 (한전의) 발전 자회사 긴급 사장단회의를 열었다. 기존 발전소 설비 교체에 6조2000억원, 건설 중인 발전소의 환경 설비 강화에 1조3000억원 등 총 7조5000억원 규모의 미세먼지 줄이기 대책을 마련했다. 현재 운영 중인 석탄화력 발전소는 총 58기, 30년 이상 노후 발전소는 10기다. 이 중 가동을 멈춰도 큰 지장이 없는 8기를 주기적으로 멈추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조기 폐지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2022년 석탄화력의 오염물질 배출 규모를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익성에 부담 요인이 될 것이다. 이것을 한전이 모두 감수할 것인지, 전기요금을 인상할 것인지는 종합적인 검토를 해봐야 한다.”

결국 신재생에너지가 답인가.
“파리협정 체결 이후 세계적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약진하고 있지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으로 뒤처져 있다. 2015년 기준으로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이 30.4%, 일본은 16.3%까지 올라왔다. 반면 한국은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을 2% 밑돈다. 분발이 필요하다. 새 정부는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 중 2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대규모 투자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한국은 땅이 좁고 바람과 태양이 강하지 않아 신재생에너지에 불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지능형 ESS 기술이 발달했고, 전국 전력망이 촘촘하다는 장점이 있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공공기관 일자리가 화두다. 한전의 대응은.
“2014년 한전 본사가 나주로 이전한 후 에너지 밸리 구축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을 통해 오는 2020년까지 500개의 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 3만개를 창출하려고 한다. 5월 말 현재 200개 기업과 투자협약을 체결했는데 8810억원의 투자와 6086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 협약 기업 중 78%(155개사)가 ESS, 스마트계량기(AMI), 태양광 등 에너지 신산업 분야 기업이다. 효성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스위스 전력 회사 에이비비(ABB)와 같은 외국 기업들도 포함됐다. 또 오는 2020년까지 300개의 전력 관련 스타트업 기업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예비 창업자와 7년 이하 창업 기업에 연간 1억원 한도로 최장 2년 지원하는 ‘KEPCO 에너지 스타트업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지난 2월에는 ‘빛가람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개소해 스타트업 사무실 제공, 시제품 제작 지원, 특허 금융 등 전문가 멘토링 지원도 시작했다. 한전이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한 인원을 추가로 직접 채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에너지 신산업이 나가야 할 방향을 요약한다면.
“지속 가능성이다. 경제성뿐만 아니라 안전성과 환경성까지 모두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투명성은 물론 국민과의 공감대까지 요구되고 있다. 신기후 체제에 대응하면서 이를 통해 경제를 도약시키는 것, 4차 산업혁명을 전력 산업에 구현하는 것, 미세먼지 등 사회적 이슈가 계속해 나오는 것 등이 동시에 존재하는 지금이야말로 과연 한국의 전력 산업이 지속 가능한지를 검토해 봐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위험 요소들이 모두 사업적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기회의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한 전력 정책은 국제 협력 관계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동북아 수퍼그리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 새로운 성장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 조환익
1950년 서울 출생, 한양대 경제학 박사, 산업자원부 차관,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 한양대 안산캠퍼스 석좌교수, 저서 ‘조환익의 전력투구’


Plus Point

해외 24개국에서 사업, 작년 5조원 벌어들여

한전이 건설, 운영중인 중국 내몽고 풍력발전소. <사진 : 한국전력공사>
한전이 건설, 운영중인 중국 내몽고 풍력발전소. <사진 : 한국전력공사>

조환익 사장은 4월 18일(현지 시각) 미국 콜로라도주(州)에 있는 30㎿(메가와트)급 태양광 발전소 운영을 개시하는 현장을 방문했다. 이는 한국전력공사가 미국 전력 시장에 진출한 첫 번째 사례다. 발전소 설비·유지·보수는 한전이 수행하고, 생산된 전력은 현지 전력 유틸리티 회사인 콜로라도전력에 전량 판매된다. 한전은 25년의 사업 기간 중 약 2500억원(2억3000만달러)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단지 내 유휴부지에 태양광 패널을 증설하거나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하는 데 국내 기자재를 활용해 150억원가량의 수출 증대 효과도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전은 2016년 말 기준 중동과 개발도상국 등 24개국에서 36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해외 사업 매출액은 4조9000억원으로 누적 매출은 25조원에 달한다. 한전은 오는 2025년까지 해외에서 연간 매출액의 20% 수준인 2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10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운영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5600㎿ 규모의 바라카 원전을 향후 60년간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2020년에 원자로 4기가 완공되면 UAE 전체 전력 수요의 25%를 담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매년 1200만t의 탄소 배출량이 줄어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