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 건강한 시장 경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 박정엽 기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 건강한 시장 경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 박정엽 기자>

정권교체로 9년 만에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하루가 멀다하고 정부 부처 장관들을 국회로 불러 당정협의를 하고 있다. 여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김태년 의원은 정부와 민주당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비즈는 9월 6일 오후 2시 김태년 정책위 의장을 만났다.  그는 이날도 바빴다. 오전에 이미 회의를 한 차례 했고, 인터뷰 직후인 오후 4시에 회의 일정을 앞두고 있었다.


“IMF 등이 권고하는 포용적 성장 추진할 것”

일할 때 사용하는 회의용 탁자 위에는 각종 자료가 흩어져 있었다. 그중 ‘8·2 부동산 대책 이후 시장동향과 추가 검토사안’이라는 보고서가 눈에 띄었다.

김태년 의장은 1965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순천고와 경희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경희대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상임중앙위원을 거친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 운동권’ 세대다. 대학 졸업 후 경기도 성남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했던 김 의장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19, 20대 총선에서 연거푸 승리해 3선 의원 반열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승리한 19대 대선에서는 총괄특보단장으로 활동했고, 지난 5월 새로운 원내지도부가 구성되면서 정책위 의장에 취임했다. 문재인 정부의 정권인수위원회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국정운영 100대과제 선정 과정을 이끌었다.

김 의장은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경쟁은 약탈경제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 경제철학을 갖고 있다. 그는 “경쟁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강자가 승리를 독식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시장의 공정성을 지키는 심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 정책 사령탑인 김 의장에게 민주당이 추진하는 경제정책 방향을 물어봤다.


6월 16일 김태년(가운데) 의장이 당시 김재수(왼쪽 세번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과 당정협의를 하고 있다. <사진 : 김태년 의원실>
6월 16일 김태년(가운데) 의장이 당시 김재수(왼쪽 세번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과 당정협의를 하고 있다. <사진 : 김태년 의원실>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을 각각 2~3%포인트씩 올리는 세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배경은.
“조세형평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최고세율을 내는 고소득자와 대기업은 세율 2%포인트 인상이 큰 부담이 아닐 것이다. 세금을 좀 더 내서 양극화와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공동체 와해를 막을 수 있다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더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소득자와 대기업이 사회에 더 큰 기여를 한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법인세 인하가 논의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는 이유는.
“우리나라는 기업 규모가 클수록 (각종 세액 공제후 기업이 부담하는) 실효세율이 낮아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초대기업에 대한 세율 인상으로 이런 추세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또 2000년대 중반까지는 법인세 인하가 국제추세였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달라졌다. 프랑스·포르투갈은 법인세율을 올렸고 호주는 유지, 일본은 내렸다. 그렇지만 이들 나라는 법인세 최고세율이 모두 우리나라보다 높다. 세율은 국가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법인세 인상 후 기업의 세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세전이익이 3000억원인 기업들이 법인세율 3%포인트 인상으로 늘어나는 세부담은 30억원 정도다. 세전이익 5000억원, 1조원인 기업들은 각각 90억원과 240억원가량 세부담이 늘어난다. 기업경영에 차질을 빚을 정도는 아니다.”

김태년 의장은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가계 가처분 소득을 증대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의료·주거·교육에 관련된 비용을 낮춰서 가계가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이 확충되면 내수경기가 살아나고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회복된다는 논리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의 주요 골자이기도 하다. 김 의장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IMF
(국제통화기금)가 보고서 등을 통해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를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협으로 지적했다”면서 “가계 경제를 튼튼하게 만드는 정책이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튼튼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이유에서 김 의장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8·2대책을 한국 경제 기초체력을 강화하기 위한 첫번째 처방으로 지목했다.

현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고강도의 부동산 규제를 추진하는 이유는.
“집값이 안정돼야 경제성장에 필요한 가계의 소비여력이 확충될 수 있다. 부동산에 의존하는 단기 경기부양은 우리 경제 기초체력을 현격하게 약화시켰다.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면 가계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이자부담은 소비여력을 위축시킨다. 가처분소득과 소비여력 확충을 위해서는 집값 안정을 통한 주거비 부담 완화가 필수적이다.”

내년 예산안에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줄인 이유는.
“우리나라는 G20국가 중에서 국토 면적당 고속도로 세계 1위, 국도 2위, 철도는 6위에 올라있다. SOC 총량으로는 세계 최상위권이다. 그런데 경제효과만 놓고 보면, SOC예산과 보건·교육예산의 지출 승수가 똑같다. 고용유발효과는 SOC 투자보다 사회서비스일자리에 투자하는 것이 효과가 더욱 크다. 또 SOC예산은 매년 상당한 규모가 전년도에서 이월되기 때문에 한 해 예산을 조금 줄이더라도 사업 추진에 차질이 크지 않다는 점도 감안했다.”

복지예산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출규모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중장기 재정에 어려움을 줄 소지는 없나.
“비용 면에서 보면 맞는 얘기다. 하지만, 투자 관점에서 보면 달라질 수 있다. 정부가 의료·교육 등 복지서비스를 밑바탕에 깔아주면 한계소비성향이 큰 저소득층의 가처분 소득이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사회전체적으로는 소비가 늘어나서 내수수요가 확충되고 경제성장이 활성화되는 효과가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 조세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에 지출 증가를 감당할 수 있다. 복지지출이 늘어나더라도 국가채무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40% 수준으로 관리될 것이다.”

김태년 의장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를 꿈꾼다. 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해 3선(選) 국회의원에 올랐지만 정치를 시작할 때의 초심(初心)은 여전하다. 여당 정책위 의장이 된 지금은 ‘서민을 위한 경제 성장’을 위해 뛰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경제성장 방향은.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했던 경제성장은 양적인 성장이었다. 기업들이 수출을 많이해서 GDP를 키워도 국민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국민 가처분소득 증가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IMF, OECD, 세계은행(WB) 등이 제시하는 ‘포용적 성장’은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질적 성장’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실물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나.
“우리가 질적 성장을 추구한다고 해서 양적 성장을 도외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 정부 정책이라도 경제에 도움이 되면 변화된 환경에 맞춰 추진할 생각이다. 예컨대 서비스발전산업법은 의료 영리화 부문만 빼고 나머지 부문은 추진하기로 각당 원내지도부 차원에서 합의했다. 규제프리존법은 다른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생명, 안전, 환경에 관련된 규제를 너무 쉽게 무력화시킨다는 점이 논란거리다. 이런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하면서 4차 산업혁명이나 지역의 혁신경제를 촉진할 수 있도록 새로운 대안을 만들고 야당과 협의를 해볼 생각이다.”

정부는 올해 3% 성장을 자신하고 있다. 믿어도 되나.
“물론이다.(웃음) 미국·유로존·일본·중국·아시아 등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고, 국내적으로도 수출과 설비투자, 취업자 수 등이 증가세다. 11조원으로 편성된 추가경정예산이 집행되면 3% 가까운 성장이 가능하다.”


▒ 김태년
1965년 전남 순천 출생, 순천고, 경희대 행정학과, 경희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17·19·20대 국회의원, 19대 대선 문재인 후보 총괄특보단장,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부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

Plus Point

中企 많은 지역구에서 당선 중소기업 진흥 입법에 적극적

2016년 20대 총선에 출마한 김태년 의장이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 : 김태년 의원실>
2016년 20대 총선에 출마한 김태년 의장이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 : 김태년 의원실>

17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이 산업자원위원회에서 의정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역구인 성남시 수정구 사정이 크게 작용했다. 1970년대 초 서울시 무허가 판자촌 철거민 이주단지가 조성됐던 수정구는 성남의 대표적인 구도심이다. 그는 이곳에서 전통시장 상인들과 중소기업인들이 지역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지켜봤다. 중소기업정책을 다루는 산자위에서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진흥을 위한 입법활동에 매진하며 지역구 발전을 모색했다.

당시 김 의장은 초선 의원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진흥을 위한 법안을 두개나 통과시켰다. ‘중소기업인력지원 특별법 개정안’과 ‘중소기업창업지원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앞장섰다. 중소기업 인력지원정책을 수행하는 전담조직을 만들고, 중소·벤처기업 창업활성화 기반을 만드는 것이 이 법안들의 골자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민생경제를 튼튼하게 만드는 기반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집권당 정책사령탑 위치에 올랐지만 ‘민생경제가 우선’이라는 그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김 의장은 “초선 때부터 민생경제법안을 발의해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앞장섰던 경험이 정책위 의장 활동에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시민단체 활동가에서 3선 국회의원으로
“‘운동권 출신은 경제 모른다’ 는 편견 깨려 기재위 신청”
文 대통령과 인연… 새 정부 5년 정책 밑그림 그려

박정엽 조선비즈 정치팀 기자

김태년 의장이 2014년 5월 지역구인 성남시 수정구에서 당시 문재인 의원과 함께 이재명 성남시장 후보를 지원 유세하고 있다. <사진 : 김태년 의원실>
김태년 의장이 2014년 5월 지역구인 성남시 수정구에서 당시 문재인 의원과 함께 이재명 성남시장 후보를 지원 유세하고 있다. <사진 : 김태년 의원실>

‘논두렁 정기를 받은 정치인.’ 선거용으로 영입된 유명인사가 아닌, 지역정치의 밑바닥부터 성장한 정치인을 일컫는 정치권 은어(隱語)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학생운동 출신이지만 논두렁 정기를 받은 정치인이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우상호 전 원내대표, 이인영 전 최고위원이 전대협 출신이라는 것은 알지만, 김 의장이 전대협 출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시민단체 활동 10여년 한 후 국회 입성

김 의장은 1987년 경희대 수원캠퍼스 총학생회장으로 전대협 1기 멤버였다. 그해 6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김 의장은 대학졸업 후에도 경기도 성남에 남아 시민단체활동을 시작했다. 김 의장의 고향은 전남 순천이지만,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대학 근처의 사회단체들과 맺은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성남미래준비위원회 대표, 민주주의 민족통일 성남연합 공동의장, 성남 청년단체협의회 의장, 성남시 고도제한해결 공동집행위원장 등을 지내며 10년 넘게 지역에서 활동했다.

김 의장은 지역활동의 일환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국회도 지역구 의원으로 진출했다. 2002년 대선 당시 김 의장은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국민참여운동본부에서 성남공동본부장을 맡았다. 김 의장은 유시민 전 의원과 개혁국민정당을 만들어서 노무현 정부의 개혁을 뒷받침했다. 이후 개혁국민정당은 새천년민주당 탈당파와 함께 열린우리당을 만들었고, 김 의장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성남 수정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는 ‘MB바람’에 낙선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19대와 20대 총선에 연거푸 당선돼 3선 중진 반열에 올랐다.

이같은 이력 때문에 김 의장은 자신을 “‘금강팀’ 출신이 아닌 자원봉사자 친노”라고 부른다. 금강팀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보시절 핵심 참모 그룹의 별칭이다. 안희정 충남지사,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금강팀 멤버다. 늘 주류에 치였던 변방 출신의 정치역정이 느껴지는 표현이다. 그러나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식물이 뿌리를 깊이 내리듯, 김 의장은 어느새 웬만한 스타 학생운동가 출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진 정치인으로 무게감을 갖게 됐다.

김 의원은 문재인정부의 정책 입안과 입법화를 책임지는 위치에 올랐다. 당 정책위 의장,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하면서 문재인정부 5년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 초선(17대 국회) 첫 상임위를 산업자원위원회로 택하는 등 경제관련 상임위가 어려워도 피하지 않고 성실히 임한 결과다. 19대 국회에서는 누리과정 보육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몇년간 국가재정과 씨름했고, 20대 국회에서는 기획재정위원회를 맡았다. 김 의장은 “학생운동 출신은 경제에 약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경제 상임위를 신청했다”고 했다.

김 의원과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국회에서 의원회관 같은 층 사무실을 쓰며 가까워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4년 2월 출판된 김 의장의 책 ‘성찰과 혁신’ 추천사에서 “국회의원 김태년은 열정이 넘치는 정치인이다. 그 열정만큼이나 좋은 정치에 대한 철학도 확고하다”고 했다. 김 의원은 문 대통령을 “매우 원칙적인 분이면서도 따뜻한 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