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3㎡당 1억원을 돌파한 서울 반포 1단지와 아크로 리버 파크. 사진 연합뉴스
최근 3.3㎡당 1억원을 돌파한 서울 반포 1단지와 아크로 리버 파크. 사진 연합뉴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강남 반포 아크로리버 아파트에 사는 이모씨는 요즘 휴대전화를 꺼놓는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매일 집을 팔라고 수십 통의 전화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씨는 “보통 10통 이상 전화가 오는데, 일일이 대응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4년 전인 2014년 초에 84.95㎡(25평형)를 10억9000만원에 매입했지만 지금 가격은 25억원에 가깝다. 며칠 전 단지 내 한강 뷰의 같은 평형대 아파트가 24억50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이씨는 이번 정부에서는 30억원이 넘어가지 않으면 아파트를 팔지 않을 계획이다. 이씨의 예상대로 이번 정부에서 그의 아파트는 30억원을 돌파할까?

문재인 정부는 △서울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 분양권 전매 금지 △다주택자 양도세 인상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쏟아낸 8‧2대책(2017년 8월)을 발표한 지 1년 만인 8월 27일 다시 부동산 규제책을 내놨다. 서울 종로 등 4개 구를 투기지역으로 추가 지정(서울 지역 총 15개 구)하고 경기도 일부 지역도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으로 정해 대출 한도를 낮추고 세율을 높였다. 노무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를 다시 부과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강도 높은 투기억제책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판박이’라며 실패를 반복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부동산 가격도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계속 천정부지로 상승하고 있다. 이씨처럼 부동산 거래를 ‘투기’로 규정하며 반드시 잡겠다고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보다 서울시 아파트값의 지속 상승을 믿는 이들이 더 많다는 지적도 있다. 현 정부 그리고 이 정부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시장원리의 어떤 점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을 비교해보면 공통적으로 포함된 것 중 하나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강화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10‧29대책에서 3주택 이상자에 대해 60%(기본세율 9~36%), 2005년 8‧31대책 때는 2주택자에게도 50%의 양도세를 중과했다. 현 정부도 지난해 8월 양도세 중과 카드를 꺼냈다. 주택 보유 수와 관계없이 양도차익에 6~40%의 양도세가 부과되던 것을 2주택자에게는 기본세율의 10%포인트, 3주택 이상 보유자에게는 20%포인트의 세율을 더 매겼다.

문제는 양도세를 인상하면 주택 소유자의 주택을 파는 거래비용이 증가해 집을 팔지 않고 보유하려는 의지가 강해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주택 공급은 축소되고 수요가 일정한 상황에서 공급이 축소되면 수급원리에 따라 가격이 상승한다. 노무현 정부 초기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저금리가 계속됐던 시기라 시중에 자금이 많이 풀려 있었다. 또 외환위기 당시 택지 공급과 주택 건설이 줄면서 주택 공급 대비 수요가 많았다. 이렇게 수요보다 공급이 적어 문제를 겪던 시기에 거래세를 올려 공급을 더욱 위축시킨 결과가 부동산 가격 급등(서울 아파트값 56.58%인상‧한국감정원)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16개월간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도 평균 1억3000만원씩 올라간 것으로 추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됐다.

정부가 정책을 내놓을 때 간과하고 있는 또 다른 부분은 정책의 유효기한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놔도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노무현‧문재인 정부가 모두 사용했던 분양권 전매제한 정책도 여기에 해당한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5월 수도권 전역과 충청권 일부의 분양권 전매를 금지했고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8월 서울 전역과 경기 과천 분양권 전매를 금지했다. 분양권 전매는 분양권이 있는 사람이 입주 전에 그 권리를 제3자에게 팔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청약통장이 없거나 청약 경쟁에서 떨어진 수요자들이 분양권을 사간다. 분양권 거래를 지역별로 기간을 둬서 금지하는 것이 정책의 핵심인데 보통 1~2년간의 거래 금지 기한을 둔다. 하지만 이 기간이 지나서 분양권 전매제한이 풀리면 다시 프리미엄이 붙어 고가에 거래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대출 규제 등 종전방식 실효성 떨어져

최근에도 지난 6월 전매제한이 풀린 서울 마포구 ‘신촌그랑자이’, 중구 ‘경희궁롯데캐슬’, 양천구 ‘목동파크자이’ 등 6개 단지에서는 분양권이 6000만원에서 5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됐다. 정부의 규제 기한이 끝나기를 기다렸던 잠재 수요가 규제가 풀리는 시점에 시장가격을 끌어올린 것이다.

이남수 신한은행 도곡PWM센터 PB팀장은 “정부의 규제로 공급량이 줄어들어 유통되는 물량이 적은데 이 중 일부 단지의 매물이 풀리고 몇 채의 가격이 뛰어버리면 그 단지 내 최고가가 갱신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했다.

부동산 시장에 몰리는 돈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는 점도 양 정부는 닮았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킨다며 내놓는 정책에서 담보인정비율(LTV), 부채상환비율(DTI)을 강화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LTV, DTI 조정은 신규로 받을 수 있는 대출 한도를 줄이는 것인데 이렇게 하면 부동산에 돈이 몰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8‧2대책에서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와 마포‧용산‧성동 등 11개 지역을 투기지역으로 묶어 주택담보대출을 가구당 1건으로 제한하고 주택담보대출 만기연장을 불가능하도록 한 것도 비슷한 대출 규제 정책이다. 하지만 이후 1년간 서울 투기지역의 평균 집값 상승률은 8.18%(8월 20일 기준‧한국감정원)대로 서울 지역 평균 상승률(6.95%)보다 높았다. 대출을 못 받게 해도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시중에 1000조원에 달하는 유동자금이 풀려 있고 이미 서울 지역 아파트가 금, 채권처럼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신규 주택대출을 줄인다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전문위원은 “투자자들은 서울의 고가 아파트들이 이미 안전자산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자금을 집어넣는데, 계속 종전의 방식으로 대출 규제나 세금 강화로 집값의 안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정책을 펴고 있다”고 했다.

이현석 건국대 교수(부동산대학원장)는 “경기가 안 좋다고 하지만 대기업 임직원을 중심으로 상당한 부가 축적돼 있는 상황이고 그 사람들이 투자하고자 하는 분야가 부동산이어서 고가의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계속 있다”며 “정부가 대출 규제를 해도 막아낼 수 있는 수요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미국 맨해튼처럼 우리도 서울 도심지역에 대한 고층 규제를 완화해 도심에서 살고 싶어 하는 수요를 끌어안아야 하는데 수요자가 관심이 없는 서울 외곽이나 신도시에 택지를 조성하는 방법으로 잘못된 공급책을 모색하고 있어 좀 답답하다”고 했다.

서울은 평균 35층의 경관규제를 하고 있는데 맨해튼은 일률적인 경관규제가 없어 50층 이상의 주거용 건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