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 오후 2시 서울 명동에 있는 한 사설환전소. 환전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 김문관 기자
5월 22일 오후 2시 서울 명동에 있는 한 사설환전소. 환전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 김문관 기자

“최근 원·달러 환율 오름세(원화 가치 하락)가 이어지다 보니 주고객인 중국과 일본 관광객은 물론 내국인의 환전 수요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달러가 비쌀 때 팔겠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5월 22일 오후 서울 명동 번화가에서 한창 영업 중인 S사설환전소 관계자의 말이다. 이날 둘러본 명동, 남대문, 회현동 지하상가 일대 10여 곳의 사설환전소에는 중국, 일본, 대만에서 온 관광객이 줄을 서서 환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명동 중국 대사관 근처 A사설환전소에서 남편, 자녀들과 함께 줄을 서 있던 한 일본 관광객은 “올해 2월에 이어 한국에 두 번째 관광을 왔는데 그새 환율이 좋아졌다”라며 “쇼핑을 더 할 생각”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원·엔 환율은 올해 2월 100엔당 1118원대에서 최근 1190원 수준으로 상승했다. 그만큼 원화의 상대적인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이날 이 사설환전소에는 10여 명이 줄을 서서 환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5월 22일 오후 2시 현재 사설환전소의 매매 기준율은 환전소에 따라 1달러당 1190~1197원 수준이었다. 같은 시각 시중은행 매매 기준율 1193.8원에 비해서는 높은 곳도 있고, 낮은 곳도 있었다. 매매 기준율이 낮을수록 원화를 달러화로 환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유리하다. 더 저렴하게 원화를 달러화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설환전소에는 내국인의 환전 문의가 빗발치고 있었다. 회현동 지하상가에서 2년째 영업 중인 M환전소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전화로 달러화 시세를 묻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라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 가면서 1200원대 돌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원화 가치 하락). 원·달러 환율이 오른다는 의미는 간단히 말해 한국 경기가 안 좋거나 미국 경기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의미다. 5월 21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환율 급변동을 주시하겠다”고 말하면서 1200원 선 문턱에서 제동이 걸리긴 했다. 그러나 이미 상승세를 막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대비 5월 중순 환율은 2.9% 올라 같은 기간 터키(9%), 아르헨티나(3.7%) 등 경제 위기를 겪는 나라들에 이어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이후에도 계속 올라 5월 20일 오전 8시 현재 1195.5원까지 올랐다.

22일에도 원·달러 환율이 3거래일 만에 장중 연고점을 경신했다. 당국의 구두 개입에도 불구하고 미·중 무역전쟁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데다 우리나라 성장세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더해지면서 투자자의 심리가 위축된 탓이다.

이날 서울 외환 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원 내린 1192.8원에 마감됐다. 이날 아침 1192.5원에 출발한 환율은 오후 들어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다 오후 2시 50분쯤 1196.5원을 찍으면서 5월 17일 기록한 연고점(1195.7원)을 넘어섰다. 이는 2017년 1월 11일(1202.0원) 이후 2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구두 개입에 따라 1200원 안팎에서 당분간 환율 공방전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원·달러 환율 상승세의 원인은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 확대 등 대외적인 변수와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마이너스 성장하는 등 부진한 대내 경제 상황이 겹쳤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북한 미사일 발사에 따른 지정학적 요인과 화폐 개혁(리디노미네이션) 논란 등도 원인으로 거론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외환 당국이 환율 상승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은 올해 들어 한국 수출이 부진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환율 상승이 수출에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원화 가치가 낮아진다는 것은 외국에서 더 싼 가격으로 한국 물품을 수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은 채산성 향상 효과가 크다. LG화학 관계자는 “매출이 30조원 정도인데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영업이익이 500억원 늘어나는 구조”라고 밝혔다.


서울 명동에 있는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사진 연합뉴스
서울 명동에 있는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사진 연합뉴스
서울 명동에 있는 한 사설환전소. 사진 연합뉴스
서울 명동에 있는 한 사설환전소. 사진 연합뉴스

외화예금 잔액 줄고, 금값 상승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 가면서 안전자산 선호 현상도 강화됐다. 달러화와 함께 금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데 올해 들어 가격이 오르고 있다. 신한은행의 ‘국내 금시세’ 자료에 따르면 3월 12일 1g당 4만7000원 수준이던 금 시세가 5월 22일 4만8897원으로 약 4% 상승했다.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같은 기간 금 한 돈(3.75g) 소매 가격은 21만원 선에서 22만220원까지 약 4.8% 올랐다.

시중은행의 외화예금(달러화를 직접 입·출금하는 통장) 잔액도 감소하는 추세다. 달러화가 비쌀 때 팔겠다는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KB국민은행의 외화예금 잔액은 지난 1월 75억5600만달러에서 2월 69억6600만달러, 3월 64억800만달러, 4월 63억3200만달러로 줄었다. KEB하나은행의 외화예금 잔액도 1월 176억달러에서 4월 153억달러로 줄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이 1200원 가까이 도달하자 수출 기업을 중심으로 고점 매도 수요가 반영돼 외화예금 잔액이 줄었다”고 말했다.

아직은 하반기 환율 전망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향방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체질이 개선되지 않으면 원화 가치 하락세를 막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대외 악재 이외에도 한국의 수출 부진, GDP 성장률 둔화 등 대내 악재가 하반기까지 이어지면서 환율이 고공행진을 지속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선물회사 연구원은 “당국이 강하게 개입하지 않는다면 1200원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트레이딩부 애널리스트는 “자금 유출 속도가 빠르고 미·중 무역전쟁도 확전 양상을 띠고 있다”면서 “1200원 선에서 공방전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6월 말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지만, 양국 간 충돌이 해소될 수준의 합의가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외신들 관측이다. 미·중 충돌이 계속돼 하반기에 환율이 더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달러화 강세를 유지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미국이 달러화 약세 정책으로 선회한다면 원·달러 환율도 하락 반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