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
김우창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DH)에 합병된다. 총지분 가치는 4조8000억원이다. 외부 투자자의 지분 87%는 딜리버리히어로가 인수하되,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를 포함한 경영진의 지분 13%는 딜리버리히어로의 지분으로 전환되는 스와프 딜의 형식이다. 개인으로서 딜리버리히어로의 최대 주주가 된 김 대표는 앞으로 딜리버리히어로가 아시아 사업을 총괄할 목적으로 싱가포르에 새롭게 만들 회사의 회장으로 취임해 아시아 전역의 사업을 진두지휘한다고 한다. 한국 스타트업 역사에 남을 의미 있는 성공을 이끌었기에 우아한형제들은 아낌없는 축하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다만 배달의민족이 해외의 거대 자본에 합병되는 것을 보며 씁쓸함을 느낀 사람도 꽤 있는 듯하다. 국내 기업이 해외 자본에 팔리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자본과 산업이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현시대엔 촌스러운 감정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배달의민족은 토종 기업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름부터 그렇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운 광고도 그런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몫을 했으리라. 그런 배달의민족이 이젠 게르만족이 돼 버렸다. 소비자 입장에선 친한 친구가 훌쩍 이민을 가버린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김봉진 대표를 알고 있는 사람은 상실감마저 토로하고 있다. 김 대표가 한국 대표 창업가로서 토종 스타트업을 대변하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의장을 맡는 등 그 역할이 컸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씁쓸함을 느껴야 하는 지점은 토종기업의 해외 자본에 의한 인수가 아니다. 김봉진 대표가 우아한형제들의 임직원들에게 이번 합병 건을 설명하기 위해 보낸 이메일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가 진정 고민해야 하는 문제는 우리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인수·합병을 통한 엑시트(exit·투자 자금 회수)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낸 통계에 의하면 한국 내에서의 인수·합병을 통한 엑시트는 12%에 불과하다. 미국은 82%의 엑시트가 인수·합병을 통해 이뤄졌다.

인수·합병을 통한 엑시트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선순환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기업공개(IPO)를 통한 엑시트는 기업이 자생적으로 비즈니스가 가능한 수준까지 성장해야 가능하다. 눈에 보이는 지표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좋은 기술을 개발했더라도 이를 상품화해 경쟁하는 것은 충분한 자본력과 시장을 뚫어낼 수 있는 인프라가 없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몹시 어려운 일이다. 회사를 접지도, 팔지도 못하고 허송세월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유니콘이 많이 나오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창업자가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 충분한 경험을 쌓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인수·합병을 통한 엑시트가 드물게 일어나는 국내 현 상황은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재능의 사회적 낭비다.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분모, 즉 창업을 늘릴 필요가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자생적인 비즈니스가 불가능하더라도 어느 정도 가치를 가진 회사를 만들어내면 누군가가 사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훨씬 쉽게 창업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인수·합병이 드문 우리나라에서는 엑시트의 허들이 미국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이는 새롭게 스타트업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을 망설이게 할 수밖에 없다.


12월 13일 오후 서울 방이동 우아한형제들 본사 방문자센터로 한 직원이 들어가고 있다. 국내 배달 앱 1위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과 국내 2위 배달 앱 요기요를 운영하는 딜리버리히어로(DH)는 이날 DH가 우아한형제들의 국내외 투자자 지분 87%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12월 13일 오후 서울 방이동 우아한형제들 본사 방문자센터로 한 직원이 들어가고 있다. 국내 배달 앱 1위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과 국내 2위 배달 앱 요기요를 운영하는 딜리버리히어로(DH)는 이날 DH가 우아한형제들의 국내외 투자자 지분 87%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규제·인식이 국내 M&A 자금 회수 걸림돌

국내 벤처 생태계는 왜 인수·합병을 통한 엑시트가 어려운가. 우선 규제의 영향을 들 수 있다. 국내 대기업이 벤처를 인수하고 7년이 지나면 대기업 집단에 편입된다. 그 이후 시점부터는 부당지원행위 금지, 일감 몰아주기 금지,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금지 등 대기업에 적용되는 많은 규제가 그대로 적용된다. 얼마 전 대기업 집단 편입 유예기간이 3년에서 7년으로 늘어나며 숨통이 좀 트이긴 했지만, 유니콘이 되기에 7년은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또한 유예기간 중이라도 벤처인증을 통한 각종 혜택은 포기해야 한다. 대기업이 벤처에 대한 지분투자를 할지언정 인수·합병은 잘 하지 않는 이유다.

우리 사회가 대기업을 바라보는 태도도 인수·합병을 통한 엑시트를 어렵게 하는 중요한 이유다. 배달의민족이 롯데와 같은 유통 대기업에 인수됐다고 생각해보자.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라는 비판이 당장 나올 것이다. 시너지를 내고 싶어도 사회적 비판이 두려워 대기업 입장에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협업이 중요하다. 충분한 규모의 경제를 이룬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활용해줘야 건전한 성장을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스타트업들은 대기업의 하청업체 같은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협업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수·합병을 하는 것이 대기업에도 좋은 일일 텐데,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중하고 나아가 독점 계약을 통해 성장을 원천적으로 막거나 아예 기술만 빼먹고 나 몰라라 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마 한국 특유의 갑을관계 문화 때문으로 해석된다.

무엇보다도 인수·합병을 통한 엑시트가 잘 일어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자본시장이 아직 충분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1000억원 이상의 밸류에이션을 받은 스타트업을 인수·합병할 수 있는 기업의 절대적인 수가 몇 되지 않는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합병하는 이유는 이른 시간 안에 스타트업의 역량을 흡수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것도 경쟁이 있을 때 이야기다. 어차피 해당 스타트업을 사줄 회사가 하나밖에 없다면 굳이 인수·합병을 할 이유가 없다. 배달의민족이 외국계 회사에 인수·합병되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희망적인 것은 최근 2~3년 사이에 상황이 많이 호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합병에 대한 규제도 많이 풀리고 있으며, 앞으로 개선해 나가려는 정부의 의지도 보인다. 대기업 역시 스타트업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어서 동반자로 생각하는 문화도 어느 정도 생겨나는 듯하다. 다만 자본시장의 규모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