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등 SNS상에는 ‘타짜’ 속 곽철용 대사와 관련한 각종 게시 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새로 생긴다. 영화 ‘타짜’ 속 장면(위). 네티즌이 만든 패러디 창작물(아래). 사진 CJ ENM
유튜브 등 SNS상에는 ‘타짜’ 속 곽철용 대사와 관련한 각종 게시 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새로 생긴다. 영화 ‘타짜’ 속 장면(위). 네티즌이 만든 패러디 창작물(아래). 사진 CJ ENM

10억원의 판돈이 모인 도박판. 긴장감 넘치는 빠른 음악을 따라 화투패가 오간다. 그러다 주인공 타짜(고니 역·조승우)의 계획대로 ‘파투’가 나버린 순간. 상대역인 건달 보스 곽철용(김응수)이 단호하게 외친다. “묻고 더블로 가!” ‘이전에 잃은 건 됐고 다시 두 배로 걸겠다’는 뜻이다. 최근 네티즌 사이에서 대범한 ‘상남자’의 상징으로 널리 쓰이는 말이다.

2006년 개봉한 영화 ‘타짜’ 속 인물 곽철용 신드롬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곽철용은 극 중 주인공의 복수로 큰돈은 물론 목숨까지 잃은 악당이다. 주인공은 물론 초창기 주목받았던 조연도 아닌 새로운 인물이, 그것도 영화가 개봉된 지 13년 후인 2019년 큰 반향을 얻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곽철용 신드롬 현상과 원인을 세 가지 포인트로 분석했다.


포인트 1ㅣ13년간 반복 시청으로 충성팬 ↑

“나 깡패 아니다. 나도 적금 붓고 보험 들고 살고 그런다.” “화란아, 나도 순정이 있다. 니가 이런 식으로 내 순정을 짓밟으면은 마 그때는 깡패가 되는 거야! 내가 널 깡패처럼 납치라도 하랴?” “(운전기사가 “회장님 올림픽대로가 막힐 것 같습니다”라고 하자, 그럼 돌아서 가면 되지 그대로 가느냐는 의도로)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이 XX야!”

영화 속 인물 곽철용과 그의 대사를 분석한 유튜브 영상 조회 수는 업로드 3주 만에 177만 회를 넘어섰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패러디물과 영상물이 새로 올라온다. “누군 깡패 수사 안 해봤는 줄 알아?” 같은 ‘범죄와의 전쟁’ 속 최주동(김응수) 검사 대사도 덩달아 화제다. 배우 김응수 소속사인 얼반웍스이엔티 쪽으로 한 달 사이 광고 섭외가 30건 이상 들어왔고, 영화 제작사 싸이더스 측에도 하루 30통이 넘는 문의 전화가 걸려올 정도다.

곽철용 붐은 9월부터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 네이버 검색어를 분석하는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곽철용’ 검색 건수는 9월 초 상승하기 시작해 넷째 주 절정을 기록했다. 특히 3편 격인 ‘타짜: 원아이드잭’ 개봉을 앞두고 1편인 ‘타짜’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새로운 인물을 재발굴하려는 움직임이 더해졌다.

일각에서는 신작 개봉을 앞두고 바이럴(Viral·바이러스와 입소문을 합친 말로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인터넷에 메시지를 퍼뜨리는 것) 마케팅을 펼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하지만 영화·마케팅 업계 관계자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1편 판권을 가진 배급사(CJ ENM)와 2, 3편 판권을 가진 제작사(싸이더스)가 다른 데다, 콘텐츠도 계획적으로 제작해 터뜨릴 수 없는 내용이란 것이다. ‘타짜: 원아이드잭’의 관객 수는 220만 명으로 ‘타짜(568만 명)’ ‘타짜-신의 손(401만 명)’에 못 미친다. 싸이더스 관계자는 “보통 영화 바이럴 마케팅은 소셜네트워크(SNS)나 기사, 카드뉴스 등을 통해 아이템을 홍보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사실 ‘타짜’는 충성도 높은 팬층이 두꺼운 영화로 유명하다. 2006년 극장에서 막을 내린 이후 케이블채널인 채널CGV에서 꾸준히 방영됐고,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엔딩까지 봐야 하는 영화’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이런 식의 반복 시청을 통해 최동훈 감독 특유의 차진 대사를 외운 팬도 많아졌다. 특히 7월 개그맨 유병재가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제1회 타짜 덕력 시험 평가’ 콘텐츠를 올렸고, 출연자 중 한 명이 곽철용 대사를 모사한 것을 계기로 인기가 급상승했다. 해당 영상은 조회 수 122만 회를 넘겼다.


포인트 2ㅣ옛날 것 꺼내와 갖고 노는 20·30 ‘뉴트로’ 열풍

곽철용 열풍의 시작은 두꺼운 팬층이었지만, 그 신드롬은 세대를 아우르며 퍼져나갔다. 30~50대가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인기가 확산됐고, 여기에 뉴트로(new+retrospective·새로운 복고) 바람을 타고 젊은 세대가 열광했다. 이들은 과거 유행했던 것들을 다시 꺼내 즐기는 것을 놀이처럼 여긴다. 곽철용뿐 아니라 ‘온라인 탑골공원’ ‘4딸라(달러)’ 열풍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1990년대 방영된 ‘인기가요’ 무대를 24시간 실시간 스트리밍하는 유튜브 방송 ‘SBS 클래식’은 ‘온라인 탑골공원’으로 불린다. 종로구 탑골공원에 노인들이 모여들듯 당시 10대 청소년이던 30대들이 모여 추억에 빠진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 채널 구독자는 10월 2일 기준 17만5000명에 달한다. 또 2002년 방영한 드라마 ‘야인시대’ 사례도 있다. 당시 김두한 역을 맡은 김영철이 미군 장교와 임금 협상 장면에서 일당을 “4딸라(달러)”로 고집한 모습이 재조명받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문화 소비 현상이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SNS와 유튜브 등으로 누구나 콘텐츠를 자유롭게 만들고 재창작해 퍼뜨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곽철용 대사들도 보험회사, 패스트푸드, 화장품 광고 등으로 자유롭게 변형되면서 퍼지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 것이라고 하더라도 유튜브 같은 매체를 통해 확장성이 생겼다”면서 “생명력이 길지 않지만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인트 3ㅣ악역이지만 합리적인 ‘강한 남자’에게 열광

“(주인공이 자신이 운영하는 도박판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2억원을 딴 후에도 주인공 몫의 돈을 분배하며) 어이 젊은 친구, 신사답게 행동해.”

“(주인공 계략에 넘어가 도박판에서 수억원의 돈을 털린 상황에서) 너 내 밑에서 일할 생각 없냐?”

사회·심리학자들은 곽철용 캐릭터가 요즘 대중에게 정확히 어필했다고 분석한다. 건달임에도 폭력이나 부정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패배를 인정하고 ‘정정당당’하게 상대 몫을 나눠주는 모습 등이 메시지를 준다는 것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냉철하게 사업적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인 모습도 보여주는 등 요즘 세대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공정성’에서 높은 점수를 땄다”면서 “이런 ‘쿨’하고 ‘폼나는’ 모습들이 재부각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곽 교수는 “주인공 대사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계 전문가들은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현실적인 역할을 담당한 곽철용 캐릭터도 인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김시선 영화평론가는 “인물도 좋고 도박도 잘하면서 돈에 매몰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주인공과 비교해 곽철용이라는 현실성 있는 인물이 영화 몰입감을 더했다”면서 “최근 영화계 트렌드는 관객들이 곽철용뿐만 아니라 ‘조커’처럼 악한 캐릭터에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