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호가 출범한 지 만 2년이 흘렀다. 우려와는 달리 현정은호는 지난 2년간 순항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퇴진을 놓고 벌어진 북한과의 대북사업권 분쟁은 현대그룹의 미래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분쟁은 해소되었지만, 언제든 같은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북사업을 중심으로 현대그룹의 미래를 다각도로 진단해 본다.
 진단 1 대북 사업

 그룹의 ‘뜨거운 감자’로 지속될 듯



 # 장면 1

 10월28일 오후 2시30분, 현대그룹 홍보팀 직원들은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랴, 방금 전 결정된 인사에 대한 보도자료를 작성하랴 동분서주하였다. 그룹의 경영전략실 사장인 최용묵 사장의 사임이 막 외부로 통보되는 순간이었다.

 “북한의 요구 때문은 아니고, 감사보고서가 내부에서 유출되는 일이 발생하고, 내부의 기밀이 외부에 유출되는 일이 발생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제기가 있었어요. 본인(최용묵) 스스로도 책임지겠다는 말을 해왔고요. 다른 건 없고, 그런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사퇴한 겁니다.”(홍주현 현대그룹 홍보팀 차장)

 질문의 핵심은 “북한의 지속적인 사임 요구에 결국 현대가 굴복한 것 아니냐”는 것. 아니나 다를까. 이날 오후 언론의 보도는 대부분 ‘읍참마속’이란 표현으로, 최용묵 경영전략실 사장의 사임을 바라보았다. ‘북한의 요구를 현대가 수용’으로 해석한 기사가 송고된 것이다.



 # 장면 2

 11월10일 오후, 경기도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 설치된 기자회견장을 들어서는 현정은 회장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 당일 오전, 육로를 통해 개성에서 북한의 조선아태위원회와 1차 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현 회장의 손에는 ‘금강산관광 규모 원상회복’이라는 선물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을 전격 경질한 뒤 석 달에 걸쳐 파국으로 치닫던 북한과의 관계가 가까스로 복원되었다.



 김윤규 전 부회장의 경질로 시작된 현대그룹의 대북사업 파행은 지난 11월, 현 회장과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의 이틀에 걸친 협상 끝에 가까스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김 전 부회장의 경질이 불러온 파장을 수습하는 일련의 과정은 현대그룹의 핵심사업인 대북사업이 현 회장의 입지는 물론, 현대그룹 전체에도 얼마든지, 또 언제든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 계기이기도 했다.

 드러난 손실로만 보자면, 북측의 일방적인 금강산 관광객 규모 절반 축소, 김 전 부회장의 경질 후 현대그룹의 실세 중 실세인 최용묵 사장의 사임,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의 방북 불허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대북 사업=현대그룹’이라는 공식이 향후에는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걸 강하게 시사했다는 점에서 현 회장이 입은 내상(內傷)은 만만치 않다. 개성관광과 육로 이용 백두산관광 사업에서 현대그룹을 배제한 채 롯데관광과 접촉한 일이 단순히 ‘현대 길들이기’용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현 회장 체제가 들어선 후 현대의 대북사업이 많이 달라진 데다, 북한에 그다지 이익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유길재 경남대 교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김윤규 전 부회장을 퇴출시킨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나타낸 것이다.”(김영윤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김윤규 전 부회장 사태에 대한 북한의 의도는 다중 포석이지만, 그 가운데 독점권 허물기 의도도 없지 않은 것 같다.”(남성욱 고려대 교수)

 “인치로 대표되는 김윤규 방식은 이제 퇴장해야 한다. 대북사업 개척기에는 불가피했지만, 시대가 다른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시스템과 투명성이다.”(이상만 중앙대 교수)

 금강산관광 사업으로 시작된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은 현대그룹에게 희망인 동시에 부담이다. 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필생의 사업인 북한 개발의 전권을 따내는 성과를 얻었으나, 후계자 정몽헌 회장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아울러 현대건설 등 그룹의 주력 기업이 부도 끝에 채권단 손에 넘어가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1998년 금강산사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0억5000만달러(1조500억원)가 투자되었으나, 7년 동안 2500억원의 적자만을 기록했다. 지난 2004년에서야 겨우 7억원의 순이익을 발생시켰지만, 영업이익은 1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아산이 5억달러를 북한에 제공하고 북한으로부터 얻은 사업권은 모두 7개. 30년 독점권을 얻은 사업은 남북철도 연결, 통신사업, 전력공급사업, 백두산, 묘향산 등 관광 명승지 개발종합사업을 꼽을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개발, 개성관광을 포함해 이들 7개 사업의 성과 여부에 따라 대북사업의 궁극적인 성패가 가려진다.

 현대그룹으로 볼 때, 이 사업권은 고 정몽헌 회장의 목숨과 바꾼 것이기에 더더욱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권 하나하나가 막대한 자금 동원이 불가피한 까닭에 섣불리 진척시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 회장 체제 이후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의 적자 규모가 줄어든 건 고무적이지만, 나머지 대북사업을 통해 수익을 올릴 것이라는 예상은 현 시점에서 매우 불투명하다. 이래저래 대북사업은 현대그룹의 미래에 내내 ‘뜨거운 감자’로 작용할 전망이다.



 진단 2 ‘현정은호’의 2년 평가

 리더십은 후한 점수, 적대적 M&A 가능성은 여전



 난 2000년 왕자의 난과 2003년 숙부의 난을 겪는 가시밭길 속에서 출범한 현정은 회장 체제는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취임 첫 해인 2003년, 현대그룹 산하 계열사들은 5조4446억원의 매출에 436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2654억원의 엄청난 적자를 기록해 대북송금 사태 이후 부실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아산이 각각 453억원, 1901억원, 63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04년에 들어서면서 현대그룹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그룹 전체 매출이 6조6519억원으로 전년 대비 20% 이상 신장되었고, 영업이익도 6596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무엇보다 순이익도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 5741억원을 기록해, 부실을 완전히 털어 내고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다.

 2005년, 현대그룹은 7조원 매출에 9000억원의 영업이익이란 목표를 설정한 상태다. 상반기까지만 보면 매출 3조2268억원에 영업이익 3636억원, 순이익 3842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계열사는 현대증권. 2005년 상반기 영업이익과 순익 면에서 2004년 연간 금액을 초과한 상태다. 그룹 총 매출의 80% 가량을 점하고 있는 현대상선도 상반기 2조3857억원의 매출과 243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등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지속적인 유가상승과 환율하락이 수익률을 떨어뜨릴 수도 있어, 현대상선 측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현대그룹 부실을 제공한 ‘애물단지’ 현대아산도 수익률이 상당히 개선되고 있다. 올 상반기 실적만 보면 1170억원 매출에 1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순이익 3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손실이 2003년 573억원, 2004년 100억원으로 빠르게 줄어들어, 올해는 처음으로 영업이익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룹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고유가와 달러화 약세 등 수출 환경이 점차 어려워지긴 하지만, 올해 목표에 근접할 것으로 본다”며, 목표 달성을 낙관하는 분위기를 전했다.

 현대그룹 내에서는 물론, 재계에서도 취임 2년이라는 빠른 시간 안에 쓰러져 가는 현대그룹을 안정시켰다는 점에서 현 회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특히 김윤규 부회장을 배제한 채 대북사업을 직접 챙기고, 북한과의 경색 국면을 무릅쓰면서도 실속경영의 원칙을 지켜내자, “생각보다 훨씬 강단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그룹 내에서 현 회장의 경영스타일은 전문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전권을 준 뒤 시시콜콜한 간섭은 하지 않는다. 그룹 내에서는 “간섭하지 않으니 오히려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된다”며, 현 회장의 책임 경영스타일에 대해 호감을 표시하고 있다. 취임 이후 현대그룹이 매출과 이익 측면에서 빠르게 안정을 되찾게 된 데에는 현 회장의 실속 위주 경영, 책임경영이 단단히 한몫했다는 것이 그룹 내부의 중론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현대그룹의 현 회장 체제가 일단 안정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순탄한 앞날만이 남아 있는 건 아니다. 지난 여름 유럽계 투자사 게버런 트레이딩은 현대상선을 집중 공략, 지분율 13.57%까지 높여 2대 주주가 되었다. 이로 인해 현대상선이 외국인 손에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돌기도 했다. 왕자의 난과 숙부의 난을 경험한 현대그룹으로선 가슴 철렁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현재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를 지주회사로 계열사간 순환출자 구조 방식을 취하고 있다. 게이번 트레이딩의 사례는 여전히 제2, 제3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현대그룹이 순항하는 이상 범 현대가(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KCC·현대백화점그룹)에서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차지하려는 움직임은 없을 것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며 “현 회장이 생각보다 빠르게 그룹을 안정시킨 점을 인정하는 데다, 두 차례의 경영권 분쟁 과정을 겪으며 더 이상 가족들이 돈 앞에서 싸우는 모양새를 보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고 현대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이는 범현대가가 현 회장의 리더십에 문제가 생겨 현대그룹이 흔들린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진단 3 미래 청사진

 2010년 매출 20조원·재계 10위 목표



 난 2004년 8월,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 취임 1주년을 맞아 ‘새로운 비약, 현대 2010’이라는 슬로건 아래 중장기 경영비전을 발표했다. 2010년 매출 20조원, 재계 10위권 진입이라는 구체적 수치 제시와 함께 이 기간 내 그룹의 새로운 이익을 창출해 낼 신 성장산업 진출기반 확보에 모두 7조원 규모를 투자하겠다고 천명했다.

 1년 이상이 지난 지금, 현대그룹에 신 성장사업 진출을 위한 가시적인 투자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책임경영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신 성장사업 기반 마련 또한 각 계열사 자율로 맡겨 놓은 상태”라고 전했다. 지난해를 도약의 원년으로 선포했지만, 현 회장은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 대신 여전히 ‘내실경영’을 중시하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현 회장의 이런 실속 위주 경영을 ‘잔뜩 움츠렸다가 한꺼번에 도약하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그룹이 일찍이 현대왕국 신화의 모태였던 현대건설을 M&A시장에서 사오기 위해 물밑 작업 중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현대건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꽤 오래 전부터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 타당성 검토를 해온 것으로 안다”고 인수 준비를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외형상 현대상선에 대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그룹의 상황을 감안할 때, 매출 4조6000억원에 순익 1714억(2004년 결산기준)의 현대건설 인수는 어쩌면 당연한 욕심으로 보인다. 여기에 범 현대가의 적통을 이어받은 현대그룹이 채권단에 넘어가기 전 그룹의 모태 역할을 해온 현대건설을 인수해 명실상부한 본류임을 알리는 의미도 있다. 즉, 명분과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이 현대건설 인수 계획에 담긴 셈이다.

 채권단도 “가격만 맞으면 문제가 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대그룹의 뜻대로 현대건설을 인수하게 되면, 현대그룹은 외형만 해도 매출 7조원대에서 일약 10조원대의 매출규모를 갖게 된다. 현재 20위권인 재계 순위도 단숨에 10위권으로 껑충 뛰어오르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인수에 소요될 자금 마련은 크게 어려울 것이 없다고 채권단 관계자는 말한다. 시가총액 3조500억원 규모인 현대건설의 경영권 인수를 위해서는 최소 2조원 이상의 인수자금이 소요될 예상인데, 금융권을 이용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일반화되어 있고, 사모 펀드를 통해 인수자금을 모집할 수도 있는 등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적자금이 투입돼 회생한 기업을 부실의 1차 책임이 있는 모기업이 인수하게 되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시선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그룹이 아직은 공식적으로 인수 의사를 밝힌 바 없기 때문에 다른 인수 의향자들도 관망만 하고 있는 추세지만, 막상 인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나서면 경쟁자들이 이 문제를 집중 부각할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에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는 “고 정주영 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사재를 모두 출연하면서 살리려고 애썼다”는 점과 현 회장 취임 이후 내실과 투명 경영을 통해 도덕적으로 투명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난 점을 부각시킨다는 전략을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현대건설 매각은 2006년 상반기 중 채권단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매각하는 방법으로 새 주인을 맞게 된다. 업계에서는 미국계 건설사인 벡텔, 웅진그룹, 군인공제회, 교직원공제회가 현대건설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웅진그룹은 지난 10월, 현대건설 인수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나선 상태다.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는 절반의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진 상태다. 협상의 키를 쥐고 있는 채권단은 적정한 가격을 제시하는 쪽에 매각한다는 입장이다. 경쟁이 본격화되면 인수 금액의 규모는 예상보다 더 올라간다고 감안할 때, 현대그룹의 현금동원 능력 여하에 따라 인수 가능성도 결정될 수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항간에는 “현대상선을 팔아서라도 현대건설을 인수한다”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회장에 취임한 이후 2년 동안 내실경영과 투명경영을 주창해 온 현 회장의 경영스타일에 비춰볼 때, 현재 현대그룹의 모태나 다름없는 현대상선을 매각하는 모험은 없을 것”이라고 그룹 관계자는 일축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연말께면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팔 걷고 나서지 않겠느냐”며, 이미 물밑으로는 인수를 위한 사전작업이 꽤 많이 진행되었음을 시사했다. 내년쯤 본격화될 현대건설 쟁탈전에서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성공할 경우, 현대상선이라는 1개의 엔진에 외롭게 의지해 온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이라는 강력한 엔진을 얻는다는 점에서, 현대건설 인수 여부는 현대그룹의 재도약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전망이다.



 진단 4 현정은 회장 사람들

 1세대 가신 퇴장 후 2세대, 사외이사 중용



 난 7월 단행된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전격 경질은 창업자 정주영 회장의 1세대 가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정주영, 정몽헌 회장을 보필하며 그룹의 핵심사업인 대북사업을 지휘했던 김 전 부회장의 전격 경질을 불러왔던 사내 감사팀의 지휘책임자 최용묵(57)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은 현대그룹의 실세 중 실세로 꼽힌다. 김 전 부회장의 경질 과정에서 내부정보 유출에 대한 책임을 지는 모양새로 그룹 경영기획팀 사장에서는 물러났지만, 그는 여전히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대북사업 창구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윤만준(60) 현대아산 사장도 현 회장이 아끼는 대표적인 가신이다. 지난 11월 협상에서도 현 회장은 북측에 윤 사장을 김 전 부회장의 뒤를 잇는 공식 협상 파트너로 인정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북한의 요구대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그룹과 현 회장의 자존심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윤 사장에 대한 현 회장의 신임이 어느 정도인지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대북협상이 재개되는 과정에서 떠오른 인물로는 현대아산의 영업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정만 전무를 들 수 있다. 윤 사장을 대신해 개성공단을 총괄하는 심재원 부사장과 함께 방북한 김 전무는 이후 개성에서 열린 백두산관광 실무협의에도 참석, ‘포스트 김윤규’로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그룹의 실질적인 주력 기업인 현대상선을 이끌고 있는 노정익(52) 사장은 수출 호황에 맞춰 공격적인 경영으로 매출과 이익 증대에 큰 공을 세웠다. 회사 운영에 대해선 현 회장이 노 사장에게 일임할 정도로 깊은 신임을 받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1년 선배로 ‘유명한’ 김지완(59) 현대증권 사장도 현 회장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숙부의 난으로 불리는 경영권 분쟁에서 현 회장 측에 방어 전략을 제공, 그때부터 현 회장의 신임을 얻고 있다.

 김병훈(56세) 현대택배 사장은 2004년 1월, 현 회장 취임 후 직접 뽑은 인물로 고 정몽헌 회장의 보성고 동기생이기도 하다.

 한편 투명경영을 선포한 현 회장은 계열사 별로 사외이사를 적극 영입하고 있다. 비상장회사인 현대아산을 제외한 4개 주요 계열사의 사외이사는 모두 15명. 현대엘리베이터는 이사회 임원 5명 중 2명, 현대상선은 임원 9명 중 5명, 현대증권은 8명 중 5명, 현대택배는 6명 중 3명이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다. 임원 숫자로만 보면 사외이사 비율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면면 또한 다양하다. 교수, 은행장, 변호사, 증권사 대표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룹 관계자는 “단순히 거수기 노릇을 하는 사외이사가 아닌 회사 현안과 미래에 대해 확실한 자기주장을 통해 적극적인 경영 참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년 동안 우려에 비해 무난한 리더십을 보여 온 현 회장이지만, 다양한 인적네트워크란 측면에선 한계가 분명하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현 회장은 그룹 외부의 다양한 인재를 사외이사로 초빙, 경영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