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롱이와 함께 부각  황우석 서울대 교수는 1999년 2월

체세포복제 송아지 ‘영롱이’를 탄생시켜며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로 떠올랐다. 사진은 당시 황우석 교수가 경기도

화성 농장에서 영롱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장면.



2 후원회가 뜨다  2004년 4월 20일 서울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황교수 후원회 결성식. 황교수가

오명(왼쪽) 과학기술부 장관, 진대제(오른쪽) 정보통신부 장관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3 사이언스 대서특필  사이언스지 2004년 12월 17일자 올해의

10대 획기적 연구성과로 소개된 황우석 교수. 당시 화성탐사,

미니 인간화석 발견에 이어 3번째 연구성과로 선정됐다.



4 세계 과학계 ‘별’로 등장  황우석 교수와 연구 자문역을 맡은

미국 피츠버그대 제럴드 새튼 교수가 환자 본인의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 시각 2005년

5월 20일 새벽 영국 런던에서.



5 스너피로 환호  세계 최초로 복제 개를 탄생시킨 황우석 교수

연구팀과 ‘스너피’의 2005년 7월 모습. 그러나 새튼 교수는 MBC PD수첩팀 취재가 시작된 후 11월 황교수팀과 결별을 선언했다.



6 줄기세포 허브 개소  황우석 교수는 2005년 10월 19일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줄기세포 허브 개소’로 국민적 영웅이 됐다. 이 자리엔 오명 과학부총리, 정운찬 서울대총장을 비롯,

복제양 ‘돌리’를 만든 윌머트 영국 에딘버러대 교수도 함께 했다.



7 시련의 시작-윤리 문제 부각  황우석 교수가 미국에서

‘2005 세계기술네트워크(WTN) 생명공학상’을 수상한 후

2005년 11월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윤리 논란에 대한 기자들 질문을 받고 있다.



8 윤리문제 해명 기자회견  2005년 11월 22일 MBC PD수첩이 ‘난자의혹부분’과 관련, 윤리문제를 제기하자 황 교수는 2005년 11월 24일 서울대 수의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때 황 교수는 ‘연구원 난자 기증 사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9 황우석 지지 촛불시위  황교수를 지지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과

강원래, 김송부부(맨 오른쪽) 등이 2005년 11월 26일 저녁

서울 여의도 MBC 사옥앞에서 PD수첩 제작 책임자 문책과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촛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때 전국적으로

황교수팀에 난자를 제공하겠다는 국민적 성원이 잇따르면서

MBC가 궁지에 몰렸다.



10 입원  2005년 11월 24일 기자회견후 13일만에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난 황우석 교수가 12월 7일 오전 서울대 병원에

입원해 있다.



11 줄기세포 진위논란 확산  이에 앞서 MBC PD수첩 최승호

책임PD와 한학수 PD가 황우석 교수팀 배아줄기 세포 진위 논란과 관련, 2005년 12월 2일 MBC별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특히 12월 15일 노성일 미즈메디 이사장이 “줄기세포는 없다”는 ‘폭탄선언’을 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자 그날밤 MBC는 PD수첩

2탄을 전격 방송, 황교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갔다.



12 황우석 VS 노성일  노성일 이사장이 “황교수의

줄기세포는 없다”고 발표하자 다음날인 2005년 12월 16일 황우석 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줄기세포 11개 복제는 사실이다.

아마도 바꿔치기 당한 것 같다”며 역공을 취했다. 이에 노성일

이사장은 즉각 반박 회견을 통해 “줄기세포 9개는 가짜고 2개도

불확실하다”고 재차 주장했다. 이러는 와중에 황 교수는 결국

사이언스 논문 취소 요청을 했다. 황우석 교수는 줄기세포

진위논란과 관련, “현재 동결 보관중인 5개 줄기세포를

배양중”이라며 “열흘 정도뒤면 모든게 밝혀질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결국 황교수가 시한으로 밝힌 열흘뒤인 2005년 12월

26일 이후 ‘진실 논란’의 판관역을 맡은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검증 결과도 밝혀질 것으로 보여 공방의 최종 결과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조사위(위원장 정명희)는 일요일인 18일 오전 10시

황우석 연구팀 면담 조사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