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14일 서울옥션하우스에서 열린 ‘제 99회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서 박수근 화백의 작품이 최고가 9억원에 낙찰됐다. 이어 조선시대 백자가 6억2000만원에 팔려, 굵직한 두 작품의 낙찰가만 해도 15억원을 훌쩍 넘었다. 그 현장으로 들어가 본다.

 “8 억2000만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000만원씩 호가합니다.”          

  ………(중략)

 “네, 9억! 9억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9억1000만원 없으십니까?”

 “전화응찰하신 분께 9억원에 낙찰됐습니다. 고맙습니다.”

 2005년 세밑, 서울 옥션하우스에서 열린 ‘제99회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서 박수근 화백의 작품 <시장의 여인>이 낙찰되는 과정이다. 8억2000만원에서 시작한 랠리는 4~5번 정도 응찰자 사이를 오갔다. 짧은 랠리를 펼쳤지만, 시작가가 가장 고가였다는 점에서 시선과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공개석상이 아닌, 전화로 응찰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약 15초간의 경합은 숨을 죽이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경매시작 30분여 전부터 응찰자와 관계자, 취재진의 열기로 실내온도는 1~2℃가량 올라간 듯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철저히 회원제로 운영되는 서울옥션 경매. 약 150석의 자리를 마련해 놓은 경매 홀의 정면에는 경매사와 부경매사, 기록인의 상단이 마련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전화응찰자를 위한 자리가, 왼쪽은 경매물품을 영상으로 보여주기 위해 관계자들이 자리해 있었다. 더불어 홀에서 진행되는 경매의 모든 과정을 모니터 화면으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VIP룸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비공개로 전화응찰을 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다. 특히 대외적으로 공개되기를 꺼리는 국회의원들도 참석한다”고 말해 베일에 감춰진 전화응찰자들의 신분을 더욱 궁금케 했다.

 오후 5시10분. 여성경매사 박혜경씨(38)가 보조경매사, 기록인과 함께 입장한다. 경매를 시작하기에 앞서 서울옥션의 경매 방식에 대해 설명한다.

 “같은 가격에 응찰하더라도 서면이 우선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일단 응찰을 하고 나면, 취소·유예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깊이 숙지하시고,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웅성거리는 참가자들의 말소리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눈빛 교환까지…. 경매 홀 내에서는 경매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삽시간에 긴장감이 감돈다.

 이날 경매에는 총 197개의 작품이 출품되었지만, 3개의 작품은 위탁자의 사정으로 인해 출품이 취소됐다. 단 3초에서 10초 사이에 한 작품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또는 수억원에 이르는 값이 결정된다. 100만원에서 1000만원을 넘나드는 스릴 넘치는 경매현장. 그 현장을 묵묵히 지켜보는 미술 애호가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액수인 만큼, 단 몇 초 안에 큰 액수를 쥐락펴락 하는 모습에 씁쓸함을 감추기는 어렵다.

 옥션하우스 옆 가나아트센터에서는 경매에 출품될 작품이 경매시작 전까지 전시됐다. 이날 참석한 응찰자들은 경매 시작 전, 작품을 직접 살펴보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또, 수첩에 일일이 메모를 하며, 소장하고 싶은 작품을 미리 점찍어 놓는 등 모두들 조심스럽고,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작품을 감상한 후 경매 홀로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처럼 되어 버렸다.

 홀을 가득 매운 응찰자들과 미술애호가들의 평균 나이대는 얼른 눈짐작으로도 50대를 웃돌았으며, 여성보다 남성의 비율이 더 많았다. 잘 정돈된 좌석에 패들(숫자판)을 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뒤쪽부터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오늘은 뒤에서 응찰하는 분위기네요. 보통 앞좌석에 앉기보다는 중간이나 뒤쪽, 아니면 서서 응찰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패들도 보통 가슴선 쪽에서 낮게 드시는 분들이 많고요.”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된다. 추정가보다 다소 낮은 내정가(위탁자가 합의한 최저 낙찰가)에서 시작된다. 20만원씩, 50만원씩 호가하며 몇 초 안에 낙찰가와 낙찰자가 결정된다.

 지난 1998년 첫 경매가 시작된 이후 이날 99회 경매 가운데 총 97회를 도맡아 진행한 베테랑 경매사 박혜경씨는 구매충동을 자극하는 화술과 절제되어 있지만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응찰자들의 순간적인 판단을 도왔다.



 작품 2점의 낙찰가격이 무려 15억원 

 이날 경매 시작 전부터 출품될 몇몇 작품에 대해 응찰자들의 관심과 이목은 집중됐다. 박수근의 <시장의 여인>, 이인성의

<파란 배경의 자화상>과 <정물>, 조선시대 백자 <청화백자오족용문대호>와 <백자양각매조난문편병>이 그것이다.

 추정가도 별도 문의를 해야 했던 작품들이기에 시작 전부터 내정가나 시작 가가 얼마일 것인지 이목이 집중됐다. 8억2000만원, 2억2000만원 등 억대에서 시작하는 작품 가격은 패들을 들기 조심스러울 만큼 1~2초에 1000만원씩 상승했다.

 이날 치러진 경매에서 박수근의 <시장의 여인>이 9억원에 낙찰돼 근·현대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 작품은 길가에 나와 노점을 벌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그려낸 1960년대 작품이다. 박수근 특유의 화강암 같은 바탕의 질감을 제대로 살린 데다가, 소박한 서민의 삶을 담은 소재로 보존 상태와 작품의 완성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최상급으로 평가받았다.  다음으로 조선시대 왕의 상징, 오족(五足) 용이 그려져 있는 조선시대 백자인 <청화백자오족용문대호>가 6억2000만원에 팔렸다. 오랜만에 경매에 출품된 요절작가 이인성의 <파란 배경의 자화상>은 낙찰되지 못했고, <정물>만 1억원에 낙찰됐다.

 박수근의 작품이 계속해서 최고가를 경신한 것만도 2005년 한해 동안 벌써 세 번째다. 지난 2005년 1월26일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된 작품 <노상>이 5억2000만원에, 11월9일 K옥션 경매에 출품된 작품 <나무와 사람들>이 7억1000만원에 낙찰됐다. 또한 2004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앉아 있는 아낙과 항아리>가 14억6200만원에 판매돼 한국 현대 미술품 중 최고가라는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이날 경매에는 총 194점이 출품돼 139점이 낙찰됐고, 낙찰률 71.65%, 낙찰 총액 23억8920만원이라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고가품일수록 경매에 내놓는 사람이나 낙찰 받는 사람이 내는 수수료(낙찰가의 8~10%)가 커 규모가 크지 않은 국내 경매회사들로서는 경영과 직결되는 수입원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고가의 미술품 경매. 이렇게 큰 액수로 낙찰을 받은 후 철회하면 어떻게 되나?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보통 낙찰자는 낙찰을 철회할 수 없지만, 당사가 인정하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낙찰가의 10%에 해당하는 위약금을 낙찰일로부터 20일 내에 납부해야만 낙찰을 철회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낙찰을 받은 후 구매대금을 7일 이내에 완납하지 않은 경우엔 연 18%의 연체이자가 부과된다”고 언급했다. 재미와 스릴 있는 문화생활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그만큼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현실로 다가온 미술품 경매. 이제는 수치(數値)화 된 문화로 예술에 더 친근감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경매도 문화라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예술에 다가가 보자. 구입을 해야 맛이 아니다. 현장에서 또 다른 문화를 즐기는 기분을 만끽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문화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