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학의 양대 산맥인 서강학파와 학현학파가 참여정부의 임기말에 한판 붙을 모양이다. 서강학파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위기에 빠진 시장경제 이념을 구하겠다’며 최근 서강대에 시장경제연구소를 설립, 전열을 정비하고 나섰다. 이쯤 되자 개별적으로 한미FTA 반대 목소리를 내온 학현학파 일원들이 아예 집단적으로 움직일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들의 경제논리를 들여다 봤다.

리 경제의 담론을 창출한 지식인 그룹 형성에는 경제학자들이 있었다. 1970년대 이후 고도 압축 성장을 주도했던 서강대 교수 출신의 고위 경제 관료를 일컫는 서강학파는 ‘선 성장-후 분배’를 주장하면서 정부주도하의 집중성장전략을 폈다. 남덕우 전 총리, 이승윤·김만제 전 경제부총리,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러나 이들은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압축 성장에 대한 비난으로 급속히 퇴조했다.

서강학파가 한창 고도성장을 주도하고 있을 당시, 민주화운동과 함께 제도권 밖에서는 학현연구실(현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을 중심으로 일단의 학자들이 모여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학현학파로 불리는 이들은 서울대 변형윤 명예교수의 제자들로 성장보다는 불균형과 분배 왜곡에 한층 높은 관심을 보였다.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전면에 등장했던 학현학파는 중반 이후 잠시 퇴조하다 참여정부 출범으로 다시 힘을 얻어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으로 균형성장론과 상대적 분배중시론을 자리 잡게 했다. 그 중심에 이정우·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있었다.

서로 상반된 경제논리를 폈던 이들 두 학파가 최근 한국 경제의 발전 방법론적 측면에서 각기 다른 목소리로 세를 규합하고 있다. ‘성장이냐 분배냐’는 해묵은 논란이 아닌 ‘대안을 제시하는’ 경제정책으로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서강학파는 지난 6월 서강대에 시장경제연구소를 개소하고 김대중 정부 이후 흩어졌던 전열을 정비했다. 서강대 시장경제연구소는 1970~1980년대 압축 성장을 주도했던 서강학파 인맥이 다시 뭉쳤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의를 가진다. 개소식에는 대부 격인 남덕우 전 총리를 비롯해 이승윤 전 경제부총리,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등 주요 인맥이 대거 참석했다.

시장경제 이념을 지지·수호하는 서강학파가 시장경제연구소를 통해 재결집에 나선 것은 지난 2월 청와대가 “압축 성장을 이끈 서강학파가 종언을 맞이했다”고 공격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남 전 총리는 “대학생 리포트 같은 소리”라며 일축했다.

시장경제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은 김광두 서강대 교수는 “특정 상대방(학현학파)을 의식하고 연구소를 만든 것은 아니다”며 학현학파와의 대립각은 애써 피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몇 년간 우리(서강학파)가 보기에 경제의 기본질서가 시장경제 원리에서 벗어나 경제적 성과가 좋지 않게 나타났다”며 “이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통해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시민단체 출신의 인물들이 여론 몰이를 통해 권력을 갖게 되고 시장경제 원리를 무시하는 정책을 펴왔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경제정책을 이론적, 실증적으로 평가하는 데 주력하겠다며 이론에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연구보고서 발간은 물론 여론조사를 통해 연구결과를 검증하는 등 정책 평가에 대한 대안을 찾고 이를 알리는 데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그의 말에는 참여정부의 경제 패러다임을 이끌어 온 학현학파의 잘못된 경제 인식을 바로 잡아 주겠다는 숨은 뜻이 담겨 있다. 학현학파와의 대립이 예사롭지 않게 전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학현학파의 대응도 만만찮다. 이들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학현학파가 주도하고 있다는 데 대해 동의하지 않고 있다. 단지 변형윤 명예교수 주변의 제자나 동료들이 입각했다고 학현학파가 경제정책을 주도했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학현학파의 경제학자들로 구성된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의 정일영 소장(한국외대 국제통상학과)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좌파적’이라고 일컫는데 이는 이념적 공세일 뿐”이라며 “오히려 서강학파가 말하는 시장주의는 정부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정 소장은 “이슈가 되고 있는 양극화에 대해서는 압축 성장의 결과로 재벌과 양극화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며 양극화 심화가 서강학파에 있음을 내비쳤다. 그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분배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정부의 중요한 경제정책 이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개인 차원에 머물렀던 연구를 조직적인 형태로 발전시킬 것이라는 계획도 감추지 않았다.

FTA 등 시장개방과 정부의 개입 등에 대해서도 양 학파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서강학파는 일단 원론적인 측면에서 시장개방에 찬성하고 있다. 반면 최근 학현학파의 경제학자들로 구성된 한국사회경제학회는 한국 사회의 미래와 국민의 삶의 기본 틀을 뒤집는 엄청난 지각 변동을 가져올 중대한 사안인 한·미FTA 협상을 정부가 미국의 시간표에 얽매여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즉각적으로 협상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정부의 시장 개입에 대해서도 학현학파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서강학파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김병주 명예교수는 정부의 규제 틀에서 벗어나 오히려 시장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소장은 “시장주의자들은 정부 역할을 줄이라고 하면서도 경제의 책임은 정부에 지우고 있다”며 “양극화 방지, 환경 오염, 세계화에 대한 대응 등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소득없는 이념대립 지양돼야

하지만 이러한 학현학파와 서강학파간의 논쟁을 바라보는 경제학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일단 이들이 ‘학파’로 불리는 것조차 못마땅해 한다. 서강학파의 경우 개발경제시대에 성장을 위주로 경제정책을 짰다는 것은 사실 교과서적인 얘기라는 것이다. FTA 등을 두고도 이를 찬성하면 우파고 반대하면 좌파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이라든지, 기득권을 옹호하면 ‘보수’로 불리고 모든 것을 개혁하는 것을 ‘진보’로 부르는 것 역시 정치적 이념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김대식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보수는 잘못된 것이고 진보는 개혁이므로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에서 나온 것”이라며 “보수 대 진보는 경제 이념으로 논쟁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보수 대 진보의 경제 이념은 결국 경제성장을 통한 높은 고용 달성이라는 정책 목표를 어떠한 정책 수단을 사용해 이룰 것이냐에 대한 차이”라며 “‘제3의 길’이라고 하는 경제정책은 이념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강학파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축구 경기에 코드만 맞는다고

  농구 선수 써도 되나”

병주(67) 서강대 명예교수는 남덕우 전 총리에서 시작된 서강학파의 맥을 잇는 마지막 주자로 통한다. 그는 경복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프리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서강대에서 34년 동안 경제학을 가르쳤다.

제자가 사무실을 내줘 신문이나 읽는다는 그는 요즘 왜 이렇게 인터뷰 요청이 많은지 모르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경제가 안 풀리니까, 답답하고 그러니까 찾는데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 아니냐”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속 얘기’를 할 때가 됐다며 입을 열었다.

-서강대 시장경제연구소가 문을 열면서 다시 서강학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서강학파란 말은 1970~1980년 당시 서강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을 지칭하기도 했지만, 서강대 교수 출신의 정부 고위 관료를 말하는 약간의 비꼼도 있었습니다. 아마 언론에서 먼저 붙인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서강대 교수들의 능력은 탁월했습니다. 경제학을 실증적으로 제대로 연구한 것은 서강대 교수들뿐이었습니다. 경제정책 관료로서도 대단했어요. 남덕우 전 총리, 이승윤·김만제 부총리 등 6~7명이 큰일을 한 것이죠. 나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용역을 받아 일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그 더웠던 여름이 기억납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제대로 없던 시절, 속옷만 입고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서강대에 교수진이 탁월했던 이유가 따로 있었나요.

서울대에 있던 이승윤 교수가 왔기에 왜 왔냐 했더니 월급이 3배라고 합디다. 교수가 보따리장수 같던 시절 엄청난 월급이었죠.(웃음) 1960년대 서강대는 좋은 선생, 좋은 학생, 엄격한 학사관리가 원칙이었어요. 그 중 ‘좋은 선생’을 위해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학사관리도 엄격했는데, 학점이 굉장히 짰어요. 졸업 못한 학생들도 많았어요. 요즘 성적 안준 제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서강학파가 주도했던 압축 성장에 대한 지적들이 많습니다.

압축 성장이라는 말은 사실 서울대에서 만든 말입니다. 양극화가 압축 성장의 부산물이라는 견해에 대해 완전 부정을 못하지만, 그 당시에는 양극화건 뭐건 간에 대다수가 절대빈곤이었어요. 양극화라는 것은 배부른 소립니다. 그때 상황을 모르고 하는 소리죠. 요즘 하고 있는 과거사 정립이니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문제도 그때 상황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진짜 답답한 심정입니다.

-지난 2월에는 서강학파가 끝났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청와대에서 그런 말이 나왔죠. 아마 애국심에서 한 얘기일 겁니다. 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백면서생은 아무 쓸모도 없는 것입니다. 현실과 시장을 알아야 합니다. 정년퇴임하면서 한 마지막 연설이 생각납니다. 제목이 ‘발가벗은 연설(Undressed Address)’이었습니다. 38년 동안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논문이 발표되고 이것이 교과서가 되는 데 3~5년이 걸립니다. 이런 교과서를 가지고 수십 년 동안 가르친 겁니다. 요즘은 학생들에게 교과서보다 신문을 읽어보라고 말합니다. 시장이 경제학자들에게 스승입니다. 청와대 누군가가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예를 들었는데 그건 벌써 150년 전 일입니다. 미국의 고도 성장기에 경제는 진보했지만 빈곤은 심화됐다는 것이 내용인데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긴 하지만 이것이 바이블이 아닌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현 정부가 너무 현실에서 떨어져 있다는 얘긴가요.

현 정부의 개혁 목표는 타당하다고 봅니다. 단지 수단이 문제죠. 또 개혁하려는 사람은 자기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하지만 개혁을 추진하는 세력의 중심이 썩었어요. 도덕성을 잊어버린 겁니다. 개혁은 쉬운 게 아닙니다. 특히 인사문제는 능력과 청렴도 등을 보고 뽑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축구경기에 농구선수를 쓰고 있고, 일류 선수보다는 이류, 삼류 선수를 뽑고 있어요. 코드만 맞으면 들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요.

-요즘 FTA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겁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말하자면 지금의 정부는 두 개의 정부입니다. 관료와 국민이 투표해 뽑은 대통령으로 이뤄진 정부와 시민단체를 등에 업고 있는, 소위 말하는 386으로 이뤄진 정부가 그것입니다. 한·미FTA는 관료가 추진하면서 후자의 정부는 공감하지 못하는, 그러면서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 꼴입니다. 대체 정부가 FTA를 하려는지 안하려는지…. 개방화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정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언론 등을 통해 국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얼마 전 빗속에서 FTA에 반대하는 시위를 보면서 정부가 참 불쌍하다고 느꼈습니다. 또 그렇게 반대하는 사람들도 경제 마인드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김 명예교수는 회의실에 놓인 화이트보드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열성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FTA 반대론자들은 자기 이익만을 대변하는 집단이기주의에 빠졌다는 것이 김 명예교수의 분석이었다. 이것을 깨는 게 시장개방 논리라고 설명했다. 김 명예교수는 대통령이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정부의 틀 속에서 하기보다는 민간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경제를 보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제가 금융 분야 전문가니까 금융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금융은 음양이 조화가 돼야 합니다. 시장 규제를 통해 건전성을 규제해야 하는 동시에 한편으론 경쟁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적인 경영을 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시장개방 전에는 음(규제)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개방 후에는 외국계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따라잡지 못했어요. 양(시장에서의 효율적 경영)이 따라가지 못한 거죠. 사실 시장도 따라가지 못했지만 규제당국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 더욱 큽니다. 외환은행의 론스타 인수로 국부가 유출됐다고 하는데 정부의 규제가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은 결과입니다. 이제 유사한 일이 생기면 어떤 공무원이 팔을 걷고 일하겠습니까. 그때는 더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될 겁니다. 이제는 해외에 나가야 돈 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김 명예교수는 요즘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 때문에 헷갈린다고 한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욕심도 많은 법인데 워렌 버핏이 37조원을 기부한 것을 보면 부자가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김 명예교수는 “워렌 버핏은 자신을 행운아라고 한다. 부자가 된 것을 사회와 운에 돌린 것이다. 왜 우리나라에는 저런 기업가가 없을까. 우리나라 경제에도 저런 사람이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 많다고 했다. 빌 게이츠가 모 고등학교의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에게 한 11가지의 충고 중 하나인 ‘인생은 불공평하다. 하지만 여기에 익숙하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극화 문제도 이런 개념으로 풀 수 있습니다. 양극화를 풀기 위해서는 결과나 기회가 평등해야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절대 풀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면 풀 수 있습니다. 말 그래도 각자의 능력 따라 사는 것이죠. 잘나가는 기업, 부자를 키워 세금을 받아 빈곤층을 도우면 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빗대 현 정부 경제정책의 한 단면을 꼬집었다.

“요즘 부자들은 돈을 쓰지 못하고 있어요. 불안하니까요. 나도 26년 전에 강남 대치동에 2000여만원으로 집을 샀어요. 지금 엄청 올랐죠. 나도 투기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돈을 벌지 못하는 요즘) 세금이 얼마나 나올지 불안해서 다른데 돈을 쓸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웃음)

 학현학파

정일용 서울사회경제연구소장

“노무현 정부가

  솔직히 무엇을 잘못했는가”

일용(58) 서울사회경제연구소장(한국외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이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의 부름을 받아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의 소장직을 맡은 것은 지난 2월 말. 정 교수는 변 명예교수의 명성과 사회적 관심 등에 부담감을 느껴 고민도 많이 했다고 한다. 서울사회경제연구소는 한국 경제학계의 ‘분배론자’를 대표하는 변 명예교수의 뒤를 잇는 연구 집단이다. 

변 명예교수의 제자들로 구성된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의 회원은 200명가량. 매달 한 차례의 세미나를 개최하고, 1년에 심포지엄 1회와 방학 중에는 워크숍을 개최해 이를 연구총서로 펴내고 있다.

-서울사회경제연구소는 어떤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나요.

민주주의 발전, 양극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에 이념적 지향점을 두고 있습니다. 분배는 성장과 같이 가야 한다는 거죠. 농업과 중소기업 등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시장경제는 발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분야에서 연구소의 사회적 참여도 이뤄질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 양극화 해소 등을 기치로 내걸고 있습니다. 최근 이와 관련 학현학파가 현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좌파 경제정책이라고 일컫고 있는데 이는 이념적 공세차원일 뿐입니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온건한 분 아닌가요.(웃음) 김대중 정부 때부터 학현학파의 비율이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민주화 과정에서 탄생한 정부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경제 입안 참여도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단지 변 명예교수 주변의 제자나 동료 등이 입각해 그런 말이 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경제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관료 조직입니다. 공무원의 사고가 변하지 않고는 경제정책이 변하지 않습니다.(그는 국장급 이상의 고위직을 공무원이라 표현했다.) 경제부총리의 지향과 청와대 경제수석의 지향점이 다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즘 FTA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겁습니다. 개방은 대세라고 보는데.

꾸준한 개방 추세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미FTA 문제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상황에서 더 이상 협상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최근 한국사회경제학회도 FTA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당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현 정부의 추진에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이렇게 찬반 논란이 끊이질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한·미FTA에 대한 찬반 논란이 끊이질 않는 것은 정부와 대통령이 광범위하게 의견을 수렴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봅니다. 자문교수를 비롯해 경제학자들이 주위에 포진해 있을 텐데 대통령이 한쪽 목소리만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됩니다. 결국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것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OECD 가입으로 자본시장을 개방했지만 비판적 평가가 더 많았습니다. 그 때도 OECD에 가입하면 더 잘 될 거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OECD 가입은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을 받았습니까. 또 다시 이러한 모습이 되풀이 돼선 안 됩니다.

-올 초 청와대는 양극화는 압축 성장의 결과하고 하면서 서강학파의 종언을 고했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성장 극대화를 추구하다 보니 재벌이 생기고 양극화가 생겼습니다. 양극화는 압축 성장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장이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분배정책과 사회정책이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장기 성장이 추구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이 옳다, 분배가 옳다’고 하는 이분법은 기업과 재벌 등 기득권의 입장일 뿐입니다.

-성장이나 분배처럼 정부의 개입과 시장우선주의는 딱 자를 수 없는 것이 아닌가요.

흔히 서강학파가 말하는 시장주의는 정부주의입니다. 시장주의자들은 정부 역할을 줄이라고 하면서도 경제의 책임은 정부에 지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순입니다. 기본적으로 시장을 통해 움직여야 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커야 합니다. 양극화 방지, 환경 오염, 중소기업 활성화, 세계화에 대한 대응 등에 있어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 해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환경 문제를 방조한다고 합시다. 환경을 파괴하면서 얼마나 성장하겠습니까. 물론 집행에 있어서 권위주의적인 방식이 지양돼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야말로 ‘좋은 정부’가 필요합니다. 힘이 없으면서도 책임만 많은 경우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세우기는 어려울 겁니다.

- 정부의 핵심에 몸담았던 인사가 최근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서민들은 예전보다 더 힘들다고 합니다. 참여정부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요.

노무현 정부가 사실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하고 되묻고 싶습니다. 불만 요인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불만 요인은 성장률이 낮아졌다거나, 실업률이 높아졌다거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정책을 실시하고 나서 여론에 밀려 뒷걸음치거나 우왕좌왕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경제정책만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서강학파는 최근 시장경제연구소를 열고, 현 정부가 잘못하고 있는 것을 바로 잡겠다고 나섰습니다. 앞으로 경제 이슈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생각입니까.

경제학자들의 현실참여는 그동안 줄어든 게 사실입니다. 행동보다는 연구를 통해서 이뤄졌죠. 사실 과거보다 민주주의적인 정부로 전환된 것도 이유라면 이윱니다. 하지만 앞으로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는 연구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필요성은 많이 느꼈죠. 하지만 재원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요 이슈에 대해 조직적인 연구를 하지 못한 게 현실이었습니다. 아마 서강대의 시장경제연구소는 기업의 지원이 잇따를 겁니다.(웃음) 분배와 양극화 문제 등에 대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업은 드뭅니다. 하지만 요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어 좋은 연구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기업들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제는 정책 이슈에 대한 자체 연구를 통해 적극적인 대안 제시 등도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