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환은행 매각과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비자금 수사과정에서 변양호 전 금융정책국장, 연원영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이 체포 또는 구속됐고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계좌추적을 당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외환은행장이었던 이강원 전 한국투자공사 사장이 검찰 소환을 받았고 현직인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도 감사원 감사에 이어 이젠 검찰 조사까지 받아야 할 상황이다. 이름도, 출신 지역도, 나이도 다른 이들을 한데 묶는 말이 있다. 바로 ‘모피아(MOFIA)’다. ‘관(官)은 치(治)를 위해 존재한다’던 모피아의 유령이 지금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피아의 유래는 일본으로 건너간다. 과거 대장성 관료집단이 법이 준 규제권한을 이용해 선후배 동료들의 사익을 챙겨주고, 낙하산 인사를 일삼으며 뇌물 스캔들을 일으키는 등 ‘마피아 같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한국에선 명확히 정의가 내려지진 않았지만, ‘모피아’라는 표현을 쓸 땐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재무부(MOF) 출신 금융관료, 다른 하나는 재정경제부(MOFE) 출신 관료가 그것이다. 전자 쪽을 ‘본류’로 본다면 ‘본류 중의 본류’로는 재무부 이재국(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출신들로 볼 수 있다.

원래 재무부 출신 금융관료를 뜻하던 모피아의 의미가 재경부 출신 관료로 확장된 과정은 이렇다. 1994년 12월 김영삼 정부는 재무부와 경제기획원(EPB)을 재정경제원으로 통합했다. 경제정책의 수립과 금융, 세제 등 정책 집행을 원스톱으로 해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경제 정책 집행에 있어 너무도 막강해진 재정경제원에 견제와 균형이 사라지면서 외환위기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2월 공룡조직 재정경제원을 재정경제부로 개편하고 예산(기획예산처), 금융 감독(금융감독위원회)을 별도조직으로 떼어냈다. 각 조직 간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도입하자는 취지였다. 이후 재정경제부 안에 재무부 출신과 경제기획원 출신이 함께 일하게 되면서 재경부 출신들도 ‘모피아’라 지칭하기 시작했다

MOF 출신 모피아의 시작은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김 전 장관은 1966년 재무부 이재국장을 거쳐 차관, 장관에 오른 ‘전문 금융관료’다. 여기에 장덕진 전 농수산부장관을 포함시켜 1세대로 칭하기도 한다. 2세대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임창렬 전 경제부총리, 윤증현 금감위원장, 유지창 은행연합회장,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 신동규 수출입은행장 등이고, 이어 변양호 전 금융정책국장(현 보고펀드 대표),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등이 3세대로 분류된다.

MOF의 ‘대부’ 이헌재

“국내 금융기관이 외국자본에 넘어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이헌재 펀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이 전 부총리가 서두를 꺼내더구먼. 아직 관련 법률도 정비가 안됐는데 가능하겠냐고 묻자 ‘그건 내가 재경부에 얘기하면 되니까 당신들은 돈 많이 모으는 데만 신경을 쓰라’고 하더라.”

한 일간지의 인터뷰를 통해 금융계 고위인사가 전한 이 말은 이헌재 사단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한다. 이른바 ‘이헌재 사단’은 이 전 부총리를 보스처럼 따르면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경제 분야 요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사를 가리킨다. 이 전 부총리가 1998년 초대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재정경제부 장관, 경제부총리 등을 맡으면서 함께 일한 관료들과 각계 전문가 그룹, 그리고 서울대(법대)와 경기고 인맥이 그들로 거의 200여 명에 달하지만 그 중심엔 모피아의 ‘대부’ 이헌재 전 부총리가 있다.

이 전 부총리가 ‘모피아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7년 말의 일이다. 당시 조세연구원 자문위원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직접적인 네트워크가 없었던 이 전 부총리는 비상경제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용환 전 장관의 부름으로 받고 비상경제대책위 실무단장으로 임명된다. 

김 전 장관은 1997~1998년 정권교체기에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던 인물로, 김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얘기를 듣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고 말했을 정도라고 한다.

김 전 장관과 이 전 부총리의 인연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전 장관이 재무장관 시절 이 전 부총리는 재무부 금융정책과장이었다. 그들은 1970년대 말 ‘율산 사태’로 동시에 옷을 벗었다. 율산 사태는 1979년 4월3일 신선호 율산그룹 회장이 외국환관리법 위반과 횡령죄로 구속되고, 14개의 율산그룹 계열사가 도산하거나 경영권이 넘어간 사건이다.

이 전 부총리는 1998년 4월 금감위원장으로 직무가 이어졌다. 물론 김 전 장관의 낙점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 전 부총리가 IMF 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과 부실기업 정리를 주도하는 금감위원장을 맡으면서‘이헌재 사단’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

이헌재 사단의 고위 관료 출신으론 이정재 전 금감위원장, 정기홍 서울보증보험 사장(전 금감원 부원장), 김영재 칸서스자산운용 회장(전 금감위 대변인) 등이 꼽힌다.

이 전 금감위원장은 1999년 이 전 부총리가 “내가 가장 총애하는 사람은 이정재다”고 했을 정도로 신뢰가 두터웠다. 그는 부원장으로서 위원장이던 이 전 부총리를 든든히 보좌했다. 재정경제부 차관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율촌의 고문으로 있다.

정 전 부원장은 구조조정과정에서 4개 감독기관을 통합하는 통합기획실장을 맡아 매끄러운 일처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정 전 부원장은 공적자금 10조2500억원이 투입된 서울보증보험에 2005년 4월 사장으로 취임, 그해 사상 최대인 5196억원의 순익을 올려 세간을 놀라게 했다.

금감위 대변인을 맡았던 김영재 칸서스자산운용 회장은 이 전 부총리의 심중을 가장 잘 헤아리는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금감원 부원장보를 거쳐 솔로몬신용정보와 솔로몬상호저축은행, 솔로몬AMC 등의 회장을 맡았다가 현재 칸서스자산운용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모피아로 분류되진 않지만 이헌재 사단의 한 축에는 금감위원장 당시 이 전 부총리를 도왔던 민간 전문가 그룹이 있다. 김상훈 전 은행감독원 부원장, 서근우 하나은행 부행장, 이성규 코레이 CKO(최고지식책임자), 최범수 한국개인신용 부사장, 권재중 SC제일은행 상임감사위원 등이 그들이다.

금융권에서는 박해춘 LG카드 사장, 김기홍 국민은행 수석부행장,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사장, 정홍렬 금감원 부원장, 정태석 광주은행장, 정의동 증권예탁원 사장, 강문수·이덕훈·이성남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이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된다.

이 밖에 강정원 국민은행장, 이 전 부총리와 40년 지기 오호수 전 증권업협회장, 김진만 액츠투자자문 부회장(전 한빛은행장), 연원형 전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최명의 외환은행 감사, 신명호 HSBC은행 회장, 이강륭 전 조흥은행 부행장도 이 전 부총리와 가깝다.

더불어 경기고 인맥으론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 유회원 론스타 어드바이저 코리아 사장,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 이강원 한국투자공사 사장, 금규복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김진만 대성그룹 상임고문, 정운찬 서울대 총장, 백영철 건국대 교수 등이 있다.

또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 박금옥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박선숙 전 환경부 차관, 박영선 열린우리당 의원, 강금실 전 장관 등도 이헌재 전 부총리와 돈독한 관계로 알려지고 있다.

참여정부 요직에 EPB 출신 모피아

현대차 로비사건, 외환은행 헐값 매각설과 관련해 ‘모피아’가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대부’인 이 전 경제부총리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을 비롯, 현대차 비자금사건의 불똥으로 변양호 보고펀드대표, 연원영 전 자산관리공사사장, 김유성 전 대한생명감사 등 ‘성골’ 출신 모피아 3세대의 핵심멤버가 줄줄이 구속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모피아의 본류인 MOF 출신이 ‘기우는 달’이라면 EPB 출신은 ‘지지 않는 태양’이다. EPB 출신들은 노무현 정부 후반기 들어 정부와 여당, 청와대의 핵심라인을 장악하며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7월17일 입각한 권오규 경제부총리,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 등 3명은 모두 EPB출신이다. EPB와 MOF의 통합체인 구 재정경제원이 외환위기 직후 분리되면서 권 부총리는 재경부 변 정책실장과 장 장관은 기획예산처를 택했지만 그 뿌리는 같다.

이들 뿐 아니라 EPB 출신들은 참여정부 곳곳에 포진해있다. 전윤철 감사원장은 EPB 출신 현직 가운데 ‘최고참’이다. 장관급으론 김성진 해양수산부장관과 김영주 국무조정실장이 있고, 노준형 정보통신부장관도 EPB 출신이다. 차관급에도 박병원 재경부 1차관, 변재진 보건복지부차관, 인상규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유영환 정통부 차관 등이 있다.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도 공무원의 출발은 EPB에서 했고, 노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고 알려진 박봉흠 전 정책실장도 EPB 사람이다.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도 EPB 출신이어 권오규 경제부총리,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 등 당·정·청의 경제 사령탑 모두 EPB가 장악했다.

여기에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강봉균, 진념, 전윤철 전 재경부장관과 이기호 전 경제부수석 등이 EPB 출신이므로 근 10여 년에 이른 ‘EPB 천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MOF 출신 중에서도 금융라인이 아닌 세재파트는 건재하다.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를 모두 지낸 김진표 전 부총리, 국세청장을 거친 이용섭 행자부장관이 그들이다.

이들 EPB 출신들이 ‘잘나가는’ 이유는 과연 뭘까. 흔히 EPB 출신은 총론에 강하고 MOF 출신은 각론에 강하다고 평한다. 경제정책을 총괄했던 EPB 출신들이 전략과 기획에 강하고 금융, 세제 등 구체적 정책을 맡았던 MOF 출신들이 실물경제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그러다 각종 정책의 ‘큰 그림’을 중시하는 노무현 정부 들어 기획력이 강한 EPB 출신들이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예전부터 EPB는 강력한 예산권을 무기로 장·차관이나 공기업 사장 등 정부·공기업 부문으로 진출했던 반면, MOF는 규제를 무기로 민간 금융권 부문으로 진출이 잦았다. 때문에 EPB는 정부 내에서 거대 인재풀을 형성했고 이 안에서 정부 내 핵심인사들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배출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 요직 독식한 모피아

“내가 2004년 국회에 처음 들어가서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재경부의 관리실장인데, 이 분이 8월 바로 삼성경제연구소로 갔다. 그리고 현재 조달청장, 통계청장, 관세청장 등 대부분 재경부 산하에 있는 기관들이 다 재경부 실장 출신이고, 현재 청와대의 정책실장, 경제수석, 경제보좌관, 국민경제비서관이 다 재경부 출신이고,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등 4대 민간금융협회장도 재경부 출신이고,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장들, 국민은행, 우리은행장 등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사실 대한민국의 경제 권력은 모피아 권력과 삼성 권력이 공유하고 있다.”(2006년 6월16일 심상정 민주노동당의원. CBS와의 인터뷰에서)

모피아들이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원천은 바로 금융당국이 틀어쥐고 있는 규제에 바탕한 ‘관치 금융’이다. 1960~70년대 개발독재시대에는 정부가 금융시장과 금융기관을 직접 통제했다. 자본이 부족한 시대에 자본을 어디에 배분하느냐는 정부의 뜻에 달렸었고, 이를 집행하는 금융관료의 권한은 절대적 이었다. 이들은 대기업 대출 여부는 물론 환율, 금리, 심지어는 은행권 인사까지도 좌지우지했다. 물론 금융산업의 특성상 적절한 수준의 규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모피아는 불필요한 규제까지 틀어쥐고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이런 흐름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엘지카드 사태 때는 재경부와 금감위가 은행장들을 불러 모아 엘지카드에 대한 자금 지원을 사실상 강요하기도 했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말 한마디에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이 단번에 경색되고, 관치금융 논란이 인 것이 단적인 예다.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금융권 인맥을 완전 장악했던 모피아의 위세는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다소 약화되는 모습을 보이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퇴조할 것으로 보였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이 “재경부 출신들의 낙하산식 인사만큼은 반드시 규제할 것”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새 금융권의 요직은 다시 모피아 출신들이 싹쓸이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참여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2002년 말 금융 유관기관의 모피아 출신 인사는 총 22명이었으나, 지금은 23명으로 1명이 늘어났다. 다른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재경부를 퇴직한 4급 이상 관료는 81명. 이중 퇴직 후 진로를 확인한 결과 64%인 52명이 국내 금융기관 최고 경영자 및 임원, 감사 등 요직을 거쳤거나 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모피아는 이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재경부와 청와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의 정부의 요직을 장악함은 물론. 나아가 산하 금융기관과 심지어 민간금융회사나 대기업의 상층부에 이르는 막대한 네트워크를 구출했다.

모피아의 힘

지난 1998년 금융감독기구 개편으로 출범한 금융감독위원회의 경우 역대 6명이 모두 재무부나 재경부 출신이다.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김중회 부원장을 제외한 부원장급 이상 전원이 모피아 출신이다. 윤증현 금감위원장은 재경원 금융총괄심의관, 세제실장, 금융 정책실당 등의 요직을 거쳐 지난 2004년 8월에 금감위원장에 취임했다.

4개 금융협회도 마찬가지다. 유지창 전국은행연합회장, 남궁훈 생명보험협회장, 안공혁 손해보험협회장, 김유성 저축은행중앙회장 등이 재경부 출신이다. 특히 이들 협회의 상당수가 민간 금융전문가를 수장으로 두고 있다가 다시 모피아 출신을 회장으로 맞이했다.

이뿐만 아니라 산업, 수출입, 기업은행 등 3대 국책은행은 물론 신보, 기보 등 2대 신용보증 기관장 역시 재경부 출신이다. 신동규 수출입은행장, 김창록 산업은행장, 강권석 기업은행장, 김규복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한이헌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이 그들이다.

증권가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까지 증권 유관기관의 임원이나 기관장 자리에 재경부 출신 고위관료들이 선임돼온 관행이 있었지만 최근 관련기관의 노조가 적극적으로 반발하는 와중에도 모피아의 낙하산 인사가 끊이지 않아 말썽이 되고 있다. 이영탁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 정의동 증권예탁원장, 이종규 코스콤(옛 한국증권전산) 사장 등이 재경부 출신이다.

이 같은 금융기관장 ‘독식’은 재경부 출신이라는 즉 모피아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해준다. 선배, 후배 등 비공식적 관계와 공식적인 관계가 모호해지면서 전화 한통, 식사 한끼로 튼실한 업무 협조가 이뤄진다.

모피아의 힘에 대한 단면을 코스콤 사장 인선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 3월22일 코스콤은 성명서 발표를 통해 재경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한정기 전 사장의 임기가 4월중 만료됨에 따라 사장 후보에 재경부 출신인 이종규 현 사장이 거론됐기 때문이다. 당시 성명서에 따르면 코스콤은 ‘낙하산 인사’의 불허 방침을 명시했다. 전문성이 없으며 정치권의 뜻에 따른 결정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입장도 잠시. 20여 일도 지나지 않아 코스콤은 낙하산 인사 반대 입장을 돌연 취소한다. 윗선과 충분히 ‘대화 통로’가 돼 줄 수 있다면 재경부 출신 인물  중 나름대로 입지가 넓은 사람을 바랬다. 이는 증권거래소가 코스콤을 하청업체화하고 증권거래소 출신 인사를 코스콤 사장에 올리려 했다는 움직임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재경부 출신의 힘을 빌어 증권거래소와의 ‘파워 게임’에서 밀리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금감원 출신의 경제단체 간부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어쩌다 외부에서 수혈을 하더라도 ‘왕따’ 당하다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며 “자기들끼리 ‘저 선배는 실력있다. 청렴하다. 천재다’라고 추켜올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들의 결정이 최고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모피아를 위한 변명

이 같은 모피아의 힘은 재경부를 ‘견제’할만한 집단이 사라졌다는 게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또한 금융은 대개 비밀을 관행으로 하기 때문에 밀실회의가 일반화돼 있다는 것도 한 요인이다. 한 금융계 인사는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금융관료들은 늘 공익을 위해 결정을 내린다고 하지만 때로는 공익과 사익이 일치될 수 있다”며 “법체계 정비 및 추진 이면에는 이들의 로비가 숨어있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모피아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정책이 검증되지 않은 채 ‘한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 금융계 인사는 “공직생활 30년 동안 번 돈보다, 나와서 3년간 번 돈이 더 많다”며 “선배에게 밉보이면 ‘자리’가 안 돌아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선후배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구조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이 쉽지 않다. 다양한 의견이 논의를 거친 뒤 하나의 정책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정책 당국자 윗선에 의해 한 방향으로 결정된 뒤 그 쪽으로 ‘지시’되는 구조인 것이다.

하지만 모피아를 ‘악의 축’으로 비난만 하긴 곤란한 측면도 많다. 시장이 제 역할을 못하는 시기에 정부가 나서서 시장을 움직이고 때론 공익을 위해 제어하는 것이 후발개도국이었으며, IMF 경제위기처럼 강력한 추진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기도 있었다.

또 외환은행 사건처럼 몇 년 전의 정책 판단을 현재의 결과로 재단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이들도 있다. 물론 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비리’가 개입돼 있다면 엄정히 처리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위기 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금융 분야에서 법 규정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등 복지부동 현상이 고착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여지가 크다.

때문에 이를 해결키 위해선 금융 관련 정책의 법적 절차를 좀 더 정교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의영 군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금융제도는 모호하고 미진한 부분이 많아 관료들의 해석에 좌우되는 경향이 많다”며 “제도와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으니 제도를 해석하는 사람과 인맥이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과천 관가에선 ‘모피아 개혁’은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문제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미 힘의 균형추가 ‘정부’에서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고, 과거 엘리트 충원 구조가 매우 제한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민간에서 글로벌 인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장급 이하 금융관료들은 “모피아, 모피아 하는데 선배들은 다 누렸건만, 뒤늦게 남아있는 후배들은 곤욕만 치루는 것 같다”고 하소연을 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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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의 실버라이프 ‘삼성’

경제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승진이 되지 않을 경우 삼성에 취업하는 사례가 100건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효석 민주당 의원이 2005년 10월 재경위 국감에서 지난 1995년 이후 삼성으로 옮겨간 공무원들의 출신 부처를 조사한 결과, 경제 관련 부처 출신이 모두 101명(63%)에 달한다고 밝혔다.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삼성 임원진으로 취업하는 사람 10명 중 6명이 경제부처 출신이라는 뜻이다.

지난 1995년 이후 재경부 출신 공무원 20명이 삼성 임원진으로 자리를 옮긴 것을 비롯해, 금융감독기구 18명, 국세청 12명, 공정위 7명, 산업자원부 7명, 감사원 5명, 국무총리실 4명, 경찰 3명, 군인 3명, 법무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2명 등 무려 101명이 퇴직 후 삼성에 둥지를 틀었다. 이직자들 대부분 고위직 출신으로 재경부 출신은 20명에 달한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공무원 출신이 삼성에 취업한 게 문제가 아니라 공직 재직 과정에서 취업을 위해 어느 정도의 유착 관계가 형성됐느냐는 게 문제”라며 “이들이 취업 후 재직 시 취득한 정보와 자료를 해당 기업의 행위에 도움을 주지 않았겠느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