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당 내분이 심상치 않다. 지난 7월11일의 전당대회가 내분의 출발점이었다. 이 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은 5선의 강재섭 의원을 당 대표로 선출했다. 그의 임기는 2년이다. 강 대표 임기 중에 2007년 대선과, 여기에 출마하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 일정 등이 잡혀 있다.

한나라당이 이번에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선출한 목적은 단 하나였다. 한나라당 내부의 대선후보 경선 과정을 공정하게 관리할 중립적인 당 지도부를 구성하자는 것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심판진을 뽑기 위한 전당대회였다. 그래서 당헌·당규에 아예 대선 후보들은 전당대회에 출마할 수도 없도록 했다. 박근혜 전 대표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이 무대에 오르지 않고, 객석에서 전당대회를 지켜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소장파의 리더인 원희룡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대선후보들이 그냥 손 놓고 지켜볼 수만도 없었다. 특히 양강(兩强) 구도를 이루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사정이 그랬다. 운동 경기에서도 실력이 대등한 팀끼리의 시합은, 심판의 판정에 따라 결과가 좌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당연히 누가 심판이 되느냐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인지 양 진영의 주요 인물들이 심판을 보겠다고 나섰다. 박근혜 전 대표의 최측근이라는 전여옥 의원, 박 전 대표와 가깝다는 강재섭·강창희·이규택 후보 등이 출마했다. 강 신임대표에 밀려 2위를 차지한 이재오 전 원내대표는 이명박 전 시장과 가까운 사이다. 결국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 경쟁이 가열되면서, 박·이 전면전 양상으로 번진 것이다. 이명박 전 시장이 은근히 이재오 의원을 지지하는 양상을 보이자, 박근혜 전 대표는 선거 막판에  자신이 미는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결과, 박 전 대표의 완승으로 전당대회는 막을 내렸다.

전당대회 직후, 이재오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가 배신을 했다”며 반발했다. 당 회의에도 불참했다. 박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있을 때, 자신이 원내대표로서 그렇게 잘 모셨는 데 정반대의 보상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이를 계기로 친박(親朴, 박근혜 전 대표와 가까운 세력) 진영과 반박(反朴) 진영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그러나 전당대회 결과를 둘러싼 전투가 그리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전초전이었고, ‘박·이 장기 레이스’ 중 1라운드에 불과하다는 것을 양측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에 치러진 초반 전투가 끝나기 무섭게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 “두 사람이 갈라설 것”이라는 말들이 한나라당 안팎에서 터져나오는 현상이다. 그만큼 양측의 갈등과 경쟁 양상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다.

사실 정치권 주변에선 오래전부터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 불리한 쪽이, 한나라당을 뛰쳐나갈 것이란 얘기들이 떠돌았다. ‘믿거나 말거나’ 식 소문에 불과하던 얘기들이 7월 전당대회를 계기로 살까지 붙어 번진 게 ‘한나라당 분당설’ 내지는 박근혜·이명박 결별 시나리오다.

현재의 정치 지형을 감안할 때 2007년 대선의 가장 큰 변수를 꼽는다면, 한나라당이 대선 후보 선출 이후에도 통합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5·31 지방선거 이후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율은 50% 안팎이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10~15%대다. 박근혜, 이명박 두 후보의 지지율이 20%대 중반인 데 반해, 열린우리당의 대선후보라고 할 수 있는 정동영 전 의장, 김근태 현 의장의 지지율은 3% 미만이다. 도저히 승부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물론 범여권 후보로 고건 전총리가 거론되고 있지만, 그는 아직 장내에 진입도 하지 않은 상태다. 결국 당 지지율과 후보 지지율을 보면, 박근혜·이명박 두 사람이 호각지세를 이루는 상황이다. 이 두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1차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당내 경선이다. 그러나 대선과 달리, 당내 경선은 패자가 흔쾌히 승복하지 않곤 했던 게 지금까지 우리 정치사에서 반복돼 온 일이다. 1998년 대선 때 이인제 후보가 당시 신한국당을 뛰쳐나가 독자 출마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게다가 2007년 한나라당내 경선을 관리할 심판을 뽑는 지난 11일 전당대회를 놓고도 양측은 거의 감정적인 충돌 직전까지 갔다. 이같은 갈등과 대립, 내분은 앞으로 1년여 가까이 진행될 전망이다.

그렇다고 해서, 벌써부터 한나라당의 분당 같은 상황을 점치긴 이르다. 실제 한 정당을 뛰쳐나가 독자적인 생존을 모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한나라당 후보가 주는 매력이 현재로선 너무 많다. 정권을 되찾아 오겠다는 보수 진영의 의지가 워낙 강한 상태라 이들의 표 결집력이 엄청난 데, 이들은 누가 됐든 한나라당 후보를 우선 선택할 개연성이 높다. 그만큼 한나라당 후보로서 가질 수 있는 프리미엄이 대단하다는 얘기다. 또 경선까지 간 상태에서 이에 승복하지 않는 사람은, 지금 한나라당을 향해 쏟아지는 보수 진영의 압박 강도를 감안할 때 자칫 정치적 자살로 끝날 수도 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들은 모두 이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박·이 두 사람의 전투는, 경선을 겨냥한 당내 투쟁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다. 무엇보다 강재섭 신임대표가 공격 소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전당대회 과정에서 ‘친박’ 성향을 보여줬고, 또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한 공개적인 공격도 서슴지 않았었다. 이 전시장 측에선 강 대표에 대한 공격 수위를 서서히 높여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 전시장 측은 일단은 ‘한나라당의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것에서 전단(戰端)을 찾을 전망이다. 이래저래 한나라당 내부 사정이 요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