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감천포구에 위치한 한진해운 감천터미널은 4000TEU급 컨테이너선 2대가 동시에 접안이 가능한 대형 화물터미널로 국내 1위의 해운업체인 한진해운의 전용 터미널이기도 하다. 태풍이 비껴간 터미널에는 장맛비가 오락가락 했다.

"중국 경제 성장 등의 영향으로 2002년 이후 호황을 구가하던 해운 업종이 지난 2005년을 정점으로 완만한 하락세에 접어든 것으로 봅니다. 해운업은 국제 경기에 가장 민감한 업종이라 세계 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가면 그만큼 물동량도 증가하고, 그렇지 않으면 매출과 수익이 즉각적으로 줄어들어요. 이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외국의 여러 회사들과 선복(화물을 싣는 공간)을 공동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진해운 부산지점장을 맡고 있는 박정률 상무는 경기 하강 국면에 대한 우려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전날 한반도를 지나간 태풍을 예로 들며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보험으로 보상받을 수 있지만 경기 하강과 고유가 같은 문제는 지속적으로 회사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상무는 “다행스럽게도 경기 하강 기미가 완만해 대처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1997년 개장해 10년째를 맞고 있는 감천터미널은 바다를 매립한 4만3000평 부지에 자리하고 있다. 바다 밑바닥을 파내 수심은 13m나 되고, 길이 300m에 달하는 4000TEU급 컨테이너선을 2대 접안할 수 있는 규모로, 부두의 길이만 600m에 달한다.

56일간 5개국 12개 항구로 향하는 한진 나고야호

부두에는 이틀 전 홍콩을 출발해 새벽에 도착한 한진 나고야호가 막 접안을 마친 상태였다. 부산 물류지점 지원팀의 김시복 부장은 “태풍은 지나갔지만 파도가 높아 접안을 미루다

가 마침 파도가 잔잔해져 접안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파도가 높은 가운데 접안을 시도할 경우 자칫 배에 손상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한 척 당 1000억원에 달하는 배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자칫 화물이 떨어져 손상이라도 생기면 안전 수송이 생명인 운송업체로선 이만저만 낭패가 아니다. 이틀 전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으로 인해 화물선에 실렸던 컨테이너가 바다에 떨어졌다는 뉴스가 새삼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진 나고야호 옆으로는 그네 모양의 크레인들이 배에서 일부 컨테이너를 내리는 한편, 부두에 대기하고 있던 컨테이너를 배에 옮겨 싣는 작업을 하느라 부산했다. 화물 정리를 마치면 배는 밤 12시에 뉴욕을 향해 출항할 예정이라고 했다. 사전 승인 절차를 밟은 뒤 한진 나고야호에 올랐다.

가로 길이만 300m로 가로 20피트짜리 컨테이너 4000개를 실을 수 있는 배의 크기는 커대한 빌딩을 가로로 뉘어놓은 것처럼 컸다. 높이만 해도 14층 건물과 비슷할 정도라서 배 안에는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돼 있었다. 1등 항해사의 안내를 받아 선장실로 가자 25년 경력의 강호정(49) 선장이 따뜻한 악수로 취재진을 맞았다. 깨끗하고 넓은 선내 식당과 붙은 선장 집무실은 어지간한 회사 중역실보다 넓었다.

“작은 고깃배 정도밖에 못 본 사람은 선원생활하면 험한 일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대형 화물선 선원은 전문 지식과 노련함이 요구되는 전문직이에요. 길게는 몇 달 동안 항해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기간이 다른 직업에 비해 길다는 점이 유일한 약점이라면 약점입니다.”

한진 나고야호에는 강 선장을 비롯해 22명의 선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20명의 정규 선원 가운데는 인도네시아 출신 선원이 4명이 있다.) 이들의 명칭은 ‘사관’과 ‘부원’으로 나뉜다. 군대의 장교와 사병 관계와 같다. 그 외에 2명은 실습생으로, 해양대학교를 나와 1년간 실습 기간을 밟고 있는 중이었다. 1년간 실습을 마쳐야 비로소 정식 기관사, 또는 항해사가 될 수 있다.

자정이면 부산을 떠나 뉴욕으로 가야하는 강 선장은 “앞으로 한 달 이상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데, 시간은 없고 일은 많아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조금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25년 동안 인생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낸 바다 사나이지만 가족사랑은 남다르다.

“딸 셋이 있는데 세 딸이 태어날 때 저는 바다에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이사를 다섯 번인가 했는데 한 번도 도와준 적이 없어요. (웃음) 그러니 배에서 내리면 가족에게 충성을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강 선장과 같은 해상 직원들 모두 강 선장과 비슷한 애환을 안고 산다. 강 선장은 “해운을 통해 국가에 이바지한다는 자긍심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했다. 편한 생활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해상 생활을 기피하는 추세에 대해서는 “실제 대형 화물선 근무는 오히려 육지보다 안전하고 편하다”고 강조했다. 선박의 모든 기능이 첨단 장비로 자동 컨트롤되고 근무시간도 주 44시간을 엄격히 지킨다. 일단 공해상으로 나가면 선장은 선원의 생사여탈권을 가질 만큼 배는 독립된 하나의 국가로 간주된다. 따라서 내부 규율은 상당히 엄한 편. 그러나 장시간 제한된 공간에서 길게는 5개월을 동고동락하는 만큼 동료애가 끈끈한 점이 특징이다.

배우 뺨치는 외모를 가진 김동철(26) 2등 항해사는 “항해 중일 때는 근무가 편한데, 육지에 접안하고 있을 때 오히려 힘들다”며 웃었다. 배가 항해할 항로를 점검하고 바다의 상황에 따라 항로를 정하는 것이 주요 임무인 항해사는 전문 교육기관(해양대학교)을 나와 항해사 자격증을 따야만 가능하다. 김 항해사는 얼마 전 25개월간의 해상 근무로 군역도 마친 상태. 경력 2년6개월째인 그는 “훗날 멋진 캡틴(선장)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젊은이들이 선상 근무를 기피한다고 하는데 다 그렇지는 않아요. 제가 아직 결혼할 나이가 되지 않았고, 애인이 없는 탓도 있겠지만 (웃음) 해상 생활이 매력 있다고 생각해요. 몇 달간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면 1~2개월 정도 휴가가 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오히려 집중해서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고요.”

취미로 윈드서핑을 즐긴다는 김 항해사는 “휴가 때면 서울의 서핑클럽 멤버들과 한강에서 윈드서핑을 즐기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취재진과 비슷한 시기에 해양대학교 재학생 50명이 한진 나고야호의 브릿지(조정실)를 방문했다. 제복을 입은 5~6명의 여대생이 눈에 띄었다. 한진해운 김시복 부장은 “선상 근무에 여성에 대한 벽이 없어지면서 항해사, 기관사를 꿈꾸는 여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김 항해사도 “여학생들이 성적도 더 좋다”고 귀띔했다. 한진해운 소속으로 현재 정식 직원으로 채용돼 선상 근무를 하는 직원도 4명 있다고 했다. 여학생들을 포함해 20명 남짓한 학생들은 학교 선배이기도 한 3등 항해사의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화물을 싣는 배의 앞, 뒤쪽에서는 갠트리 크레인이라는 이름의 대형 크레인들이 화물이 실린 트레일러를 부지런히 옮기고 있었다. 1시간에 25개의 컨테이너 처리 능력을 가진 갠트리 크레인이 감천 부두에는 모두 5기가 있다. 지원팀 김경우 과장은 “화물선에 트레일러를 싣는 순서와 위치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가장 먼 곳으로 갈 화물은 배의 아래쪽에, 가까운 곳에 갈 화물은 위에 싣는다. 같은 화물이라면 무거운 것은 아래쪽에 가벼운 것은 위쪽에 싣는 것이 원칙. 최대 4000개의 컨테이너를 실어야 하기 때문에 화물이 자리할 위치를 따로 계산하는 전문부서가 회사 내에 있을 정도다. 김 과장은 “싣는 위치가 잘못되면 배의 무게 중심이 흐트러질 수도 있어 고도의 계산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칫 잘못된 자리에 놓이면 확인 후 다시 자리를 옮겨야 하는데, 한 번 작업할 것을 두 번 작업하게 되면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했다. 정확한 작업은 안전과 비용 면에서 필수인 셈이다.

연매출 6조원 회사의 유류 비용 무려 1조원

배에 화물을 싣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컨테이너가 부두에 들어서면 야드 트랙터라는 컨테이너 운송 전문 차량이 컨테이너를 부두 가장자리에 옮겨 놓는다. 가까운 거리는 트랜스퍼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들어 올려 옮기기도 한다. 부두에 배가 접안을 하면 캔트리 크레인이 배 위로 컨테이너를 들어올린다. 마지막으로 컨테이너의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 작업자가 컨테이너를 서로 연결하는 고리를 묶는 것으로 작업은 끝난다. 김 부장은 “크레인의 대당 가격은 가장 큰 갠틀리 크레인이 70억원, 트랜스퍼 크레인이 10억원에 달한다”고 했다.

“최초 배에 실어 외국으로 보낼 화물의 구체적인 내용과 날짜, 화물을 싣고자 하는 선박명, 화물선의 컨테이너 위치 등은 회사가 자체 개발한 HANTOS(Hanjin Shipping Terminal Operrating System)라는 자동 전산시스템에 의해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정확하게 진행됩니다. 이러한 정확하고 신속한 물류정보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140대에 달하는 한진해운 소속 선박이 연간 1억 톤 이상의 화물을 운송할 수 있는 거죠.”

현대적 의미에서 한국 해운의 역사는 불과 60년이 채 되지 못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대한해운공사 창립으로 시작된 해운산업의 역사는 짧은 시간 동안 눈부신 발전을 이뤄 국가 경제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 국내 해운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한진해운은 세계 7위의 컨테이너 운송사로 성장해 아시아-북미 화물 운송 능력 세계 3위, 아시아-유럽 화물 운송 능력 세계 5위를 자랑하고 있다(2005년 기준). 연간 매출액도 6조원에 육박(5조9800억원, 2005년 기준)할 정도로 국가 경제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박정률 상무는 “전체 매출 가운데 90% 이상을 외국의 화물을 외국으로 운송해 얻는 수익”이라고 설명했다. 외화 획득이라는 측면에서도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진해운은 2003년부터 중국의 코스콘, 대만의 양밍라인, 일본의 케이라인, 독일의 세나토라인과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결과 CKYHS 얼라이언스를 결성했다. 제휴 회사들끼리 보유 선박을 공동으로 이용하다보니 안정적인 물량의 확보가 가능한 것이다.

도무지 떨어질 줄 모르는 유가의 고공 행진도 해운업계엔 큰 영향을 미친다. 대형 화물선들이 벙커C유를 주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김시복 부장은 “총 매출 6조원 가운데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조원에 달한다”고 했다. 박정률 상무는 “경기 하강 국면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올해 한진해운의 매출은 2005년만큼은 안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환적 화물 확보에 동북아 물류 패권 달렸다

현재 부산 지역에 4곳의 터미널을 확보하고 있는 한진해운은 광양만에 건설 중인 부산 신항에 추가로 20만 평 규모의 전용 컨테이너 터미널을 확보, 오는 2009년에 신규 개장할 예정이다. 감천터미널의 5배 규모에 달하는 신항 터미널이 완공되면 화물 처리능력도 그만큼 늘어날 전망이어서 치열한 수주 쟁탈전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한진해운 측은 낙관하고 있다.

김시복 부장은 “국제적인 물류 쟁탈전에서 승부는 결국 환적 화물을 누가 더 많이 유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했다. 2회 이상, 서로 다른 운송 수단을 이용해 운반되는 화물을 뜻하는 환적 화물의 물동량이 전체 물량의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대형 컨테이너선박을 접안할 수 있는 항구는 많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컨테이너가 최종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부산항 같은 곳에 컨테이너를 부렸다가 주변 다른 항구나 도시로 다시 이동해야하죠. 결국 부산 신항의 성공 여부도 경쟁 항구에 비해 얼마나 편하고 빠르게 물동량을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는 셈입니다.”(김시복 부장)

오후 3시 경, 강호정 선장의 휴대전화기가 울렸다. 짧은 통화를 끝낸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잠깐 스쳤다. “지금 아내가 선원 가족 대기실에 와 있다고 연락이 왔다”는 거였다. 기상 악화로 접안이 늦어진 데다 취재진의 방문, 안전 점검, 학생들의 선상 견학 등으로 50일이 넘는 긴 항해를 앞두고도 집에 가지 못하게 되자 아내가 대신 남편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이다. 해운 강국의 위용 그 이면에는 강 선장과 그 가족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애환이 있었다. 강 선장은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 중동으로 간 건설 노동자가 있었듯이 바다를 누빈 사람들도 있었다는 걸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잊지말고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