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체제 이후 8년. 한국의 기업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IMF체제 이후 경영상황의 변화를 가늠하기 위해 기업경영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국제경영원과 공동으로 CEO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망라한 이번 조사에는 모두 51개사 CEO들이 참여했다.
4 한국의 CEO 51인 긴급 설문



 문에 참여한 기업인 3명 중 2명은 현재 경영상황이 IMF체제 당시와 비슷하거나 더 어렵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더 어렵다’가 40.4%로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고, ‘IMF체제 당시와 비슷하다’는 대답이 32.7%로 그 뒤를 이었다. ‘IMF체제보다는 경영하기가 낫다’고 응답한 사람은 26.9%에 그쳤다.

 기업경영의 어려움에서 기인한 위기의식은 현재의 경영상황에 대한 인식에 그대로 나타났다. 현재 한국경제가 위기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66.7%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소 동의’ 비율도 23.5%로 나타났다.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채 10%가 되지 않았다.

 한국경제가 위기라고 응답한 기업인들은 위기에 처한 원인으로 ‘한국 경제의 방향성 상실’(52.6%)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기업이나 경제를 경시하는 풍토’(31.6%)가 그 뒤를 이었다.



 IMF체제 상황 vs 2005년 10월 상황

 IMF체제는 이후 기업인들의 경영방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경영 개선을 위한 노력을 묻는 질문에 ‘제품 개발능력 향상 및 R&D투자’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는 응답이 28.6%로 가장 높았고, ‘개인별 생산성 제고(인원 감축과 조직 효율성)’가 25%, ‘마케팅 및 신시장 개척’(23.2%) 순으로 응답했다. 큰 위기를 겪고 나서 유동성의 중요성에 대한 인 식도 커져 ‘현금의 흐름과 자금관리’라는 답변도 16.1%를 차지했다.

 8년이 지난 지금, 같은 위기를 맞지 않기 위해 ‘기업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기업인들은 ‘마케팅 및 신시장 개척’(35.1%)이 가장 필요한 것으로 꼽았다. 그 뒤를 ‘제품 개발능력 향상 및 R&D투자’(28.1%)를 꼽았고, ‘개인별 생산성 제고(인원 감축과 조직 효율성)’(21.1%)가 그 뒤를 이었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그동안 R&D투자에 중심을 두었다면, 앞으로는 마케팅과 신시장 개척에 중심을 두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IMF체제는 기업인의 기업경영 자세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경영인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묻는 질문에, 기업인들은 차례로 ‘투명경영’(32.7%), 진취성과 도전성(27.3%), 자금에 대한 이해(27.3%)를 꼽았다.

 IMF체제 이후 국내기업은 해외기업과 생존경쟁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8년이 지난 지금, 국내기업들의 86.2%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해외 환경에 매우(33.3%), 조금(52.9%) 영향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걸로 나타났다. 해외환경 중 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원유 등 원자재 가격 급등’(57.1%)으로 가장 높았다. ‘해외 저임금 기반 제품과의 경쟁’(24.5%), ‘환경 등 각종 규제 강화’(10.2%)가 그 뒤를 이었다.

 기업인들은 해외기업과의 무한경쟁 속에서 국내기업의 대응능력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기업과의 경쟁상황에 대한 대응능력은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49%)와 ‘별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46.1%)는 답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해외기업과 비교할 때 경쟁력을 묻는 항목에는, ‘조금 앞서는 편이다’(37.3%), ‘비슷하다’(39.2%)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그런가 하면 ‘조금 뒤지는 편’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21.6%에 달했다.

 공공부분과 비교한 기업의 경쟁력에 대한 기업인들의 ‘우월감’은 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우 앞선다’(37.5%)와 ‘조금 앞서는 편이다’(39.6%)라는 응답이 70% 이상을 차지했다. ‘조금 뒤지는 편’이라고 응답한 기업인은 21.6%에 불과했다.

 한국경제 위기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 ‘방향성 상실’에 대한 처방으로, 기업인들은 ‘기업과 민간 경제인이 주체가 되어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73.1%)고 생각하는 걸로 나타났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경제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는 현재의 방향에 대해서는 19.2%만이 찬성하는 걸로 나타났다.

한국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는 주관식 질문에는 ‘경제를 중시하는 사회풍토, 규제 완화’와 같은 요구와 함께 ‘미래성장 동력 발굴, 투명경영’ 등 기업인 스스로의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한 답변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