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거품붕괴에 따른 자산가격 하락으로 장기불황에 허덕이던 일본경제가 최근 들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의 주요 경제지표를 고이즈미정권 출범 시기와 비교하면, GDP 성장률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되었고, 5.4%에 달했던 실업률이 4.5% 수준으로 하락했다.  또한 기업도산 건수의 감소를 배경으로 부실채권 규모가 크게 줄어들어 부실채권의 처리 문제가 거의 해소된 것으로 평가된다. 2005년 10월 소비자물가지수가 0.0%를 기록해, 1998년부터 지속되었던 디플레이션이 곧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를 고조시키고 있다. 최근 이러한 일본경제의 변화를 입증이나 하듯이, 니케이(Nikkei)지수가 1만5000엔대를 회복한 이래로 연일 최고치를 경신한 바 있다.

 일본경제는 1990년대 두 차례의 단기적인 회복 국면을 시현한 바 있다. 첫 번째는 1995년  후반부터 1997년 초반까지로 일본정부의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경기가 일시적으로 회복되었다. 두 번째는 2000년 후반부터 2001년 초반까지 세계적인 IT 붐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미국의 IT 거품붕괴 여파로 성장세가 급락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일본기업의 경상이익이 3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지속적인 이익성장 기반을 구축했고, 이런 기업실적의 호조에 힘입어 설비투자가 호조를 보였으며, 장기간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던 개인소비도 회복세로 전환되면서 성장률을 견인하고 있다. 이는 과거처럼 재정적자를 동반하는 경기부양책에 따른 일시적인 경기회복이 아니라, 수출과 더불어 설비투자와 소비 등 민간수요가 경제성장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잃어버린 10년’의 원인과 정부의 구조개혁

 일본을 포함해 해외의 경기 전망 기관들이 향후 일본경제가 개인소비와 설비투자를 주축으로 하는 내수 주도의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 이제는 일본경제가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이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일본경제가 활력을 되찾게 된 이유는, 바로 일본정부와 기업의 지속적인 구조개혁 추진에 의해 달성된 성과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일본경제의 회복요인을 점검하기 위해서, 우선 일본 장기침체의 구조적 요인을 규명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일본정부와 기업의 대응노력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우리 경제에의 시사점을 도출하는 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

 거품붕괴 후 일본의 성장추이를 살펴보면,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연평균 실질 GDP성장률은 1.1%에 불과했으며, 급기야 1997년과 1998년에는 사상 유례 없는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하며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어 왔다. 이처럼 일본경제가 장기침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구조적인 원인은 거품붕괴 후 급격한 자산가치 하락에 따라 은행의 부실채권 처리를 계속해서 미루어 온 결과로, 금융과 실물 부문 간 위기의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일본의 기업과 금융기관은 주가, 지가 등 자산가격의 대폭 하락으로 거액의 부실채권이 누적되었다. 이런 부실채권 처리 부담으로 인해 기업은 이익을 신규투자보다도 과거의 채무변제에 충당했고, 은행도 자금을 신규투자로 확대시키지 못해 기업 부문의 투자를 대폭 억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일본정부는 디플레이션이 경제 전체로 파급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총수요 관리에 집중된 재정정책을 추진했지만, 수차례의 경기부양책으로 엄청난 재정적자를 떠안게 되었다. 애초부터 과도한 재정확대정책은 일본의 장기불황을 극복하는 데에 적절한 처방책이 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필요했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한 것이다.

 고이즈미정권이 2001년 출범한 이후에야 비로소 구조적인 장기불황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급과잉 문제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일본정부는 장기불황에 지쳐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정서를 기반으로 기업, 노동, 금융, 공공 부문으로 개혁의 범위를 점차 확대시켜 나가면서, 국가시스템 전반을 바꾸기 위한 전방위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첫째, 기업의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의 개혁 과정에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제도와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일본정부는 기업이 사업 재편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정비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기업들도 기업간 사업 통합을 통해 대형화와 합리화를 달성했다. 또한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서 근로자 파견과 비정규직 사원의 증대,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처우개선안 등이 마련되었고, 이에 기업들은 수익에 따른 탄력적인 고용을 운영할 수 있게 되어 과잉고용 문제를 서서히 해소시켜 나갔다.

 둘째, 고이즈미내각은 출범과 동시에 금융청을 새롭게 발족시키면서, 부실채권 문제의 조기 해결을 통한 금융시스템 안정화에 중점을 둔 금융구조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금융청은 2002년 10월 부실채권 비율을 50% 삭감시킨다는 구체적인 목표치를 책정한 ‘금융재생프로그램’을 발표하게 된다. 이후 일본정부는 주요 은행의 부실채권 처리를 가속시켜 은행경영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고, 주요 은행들도 부실채권 규모를 정확히 공개하고, 은행경영 정상화를 위해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2005년 3월 일본정부의 금융개혁 목표치를 초과 달성한 결과, 일본 구조개혁의 최대 걸림돌이던 부실채권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셋째, 공공 부문의 개혁은 정부가 관여하는 사업을 줄이고, 이를 민간에 이양해 정부 규모를 축소함과 동시에 재정 건전화를 도모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지금까지 공공 부문 개혁의 추진 현황은 특수법인의 통·폐합과 민영화를 추진해 재정지출을 삭감했고, 특수법인이 사용하는 자금을 공급하던 우정공사를 민영화시키는 단계까지 전개돼 왔다. 앞으로도 ‘관(官)’이 독점하던 공공서비스를 민간에 개방시킴으로써, 관료 체제의 규모와 역할을 축소하는 공공 부문의 개혁이 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한편 일본중앙은행은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을 극복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 디플레이션에 있다고 판단, 디플레이션 극복을 위한 금융완화정책을 적극 전개해 왔다. 이에 일본중앙은행은 콜금리를 0% 수준으로 유지하는 한편, 시중 은행이 보유한 주식을 매입하고, CP를 구입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유동성 공급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런 금융완화정책은 금융기관에 대한 불안 심리로 인한 유동성 위기를 억제하는 한편, 경기회복 기대의 고조와 함께 증시의 회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기업의 구조조정

 일본기업은 거품시기의 부작용인 3대 과잉(과잉설비, 과잉부채, 과잉고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고용과 임금을 억제하고 설비투자를 보류하는 대신에 자금 운용을 채무 삭감에 우선적으로 충당하는 구조조정 노력을 끊임없이 강구해 왔다.

 그 결과 일본기업의 고용체감지수와 설비체감지수는 2005년 9월, 모든 산업과 업종을 기준으로 3%포인트, -2%포인트를 기록, 1992년 수준까지 회복되었다(그림 참조). 일본기업의 고용과 설비에 대한 과잉감이 전체적으로 해소되었고, 고용의 경우에는 고용체감지수가 오히려 마이너스로 전환되는(고용이 부족하다는 인식으로 변화하는) 추이가 나타난 것이다. 또한 과잉채무에 대해서도 일본기업은 우선적으로 인건비와 설비투자를 억제함과 동시에 불필요한 자산정리, 자기자본 확충, 재고조정을 통해 부채를 꾸준히 삭감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에 따라 부채비율은 1990년대 들어 지속적인 하락세를 견지해 현재 거품시기 수준까지 개선되었다.

 이처럼 3대 과잉의 해소를 통해 일본기업들은 저성장 아래에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로 변화되었다. 이는 일본기업이 ‘선택과 집중’이라는 경영합리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본기업은 1990년대 전반까지 거품시기의 윤택한 자금 조달을 배경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 핵심사업 이외의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왔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분야로 사업 다각화를 전개해 온 기업들은 경영자원의 분산으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없게 되어 저수익 체질로 고착되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획기적인 경영전략의 개혁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필요성에 입각해 시행된 저수익사업의 합리화, 아웃소싱 활용, 인력감축 등의 효과가 발휘된 것으로 해석된다. 구체적으로 손익분기점 비율이 2003년 모든 산업 기준으로 85%로 거품붕괴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점은, 일본기업이 구조조정을 가속시켜 고정비용을 감축함으로써,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수익구조를 강화해 왔음을 입증해 준다.

 이렇듯 일본기업의 수익성은 기업 스스로 구조조정 노력의 결실로 크게 호전되어 왔다. 일본기업들은 기업수익 개선을 통해 증가된 캐시플로우(Cash Flow)를 보다 적극적으로 설비투자와 고용확대에 충당함으로써 장기불황을 극복해 일본경제가 자율적으로 회복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 경제에 남긴 시사점

 최근 우리 경제는 내수부진 장기화에 따른 수출 의존형 성장세가 유지되고 있으나, 수출 증대가 기업수익의 향상과 설비투자의 증대로 연계되지 않고 있어, 1990년대 일본경제의 악순환을 답습할 수 있다는 우려를 증대시키고 있다. 물론 일본경제가 직면했던 구조적인 문제와 우리나라가 직면한 현실이 반드시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의 경험과 극복을 위한 노력은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안겨 준다.

 앞서 살펴본 일본이 장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실시했던 갖가지 노력에 비추어 보면, 우리 경제가 침체된 개인소비와 위축된 설비투자 상황을 조기에 회복하고, 이를 통해 선순환 경기회복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정부의 일관된 정책방향 제시와 추진, 이를 토대로 한 기업의 적극적인 구조조정 노력이 가장 시급하다는 것이다.

 우선 정부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책보다 기업 스스로가 변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투자 환경,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금융시장 안정화 같은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획기적인 단기성과를 노리기보다는 서서히 느리지만 단계적인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일본식 개혁 추진을 교훈으로 삼아 점진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일련의 개혁 과정은 정치 및 경제 전반에 팽배한 기득권과의 전면전을 의미하므로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국민의 요구를 결집해 개혁의 원동력으로 유도하는 리더십과 추진력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한편 일본의 경기회복 과정에서 크게 부각된 면은 정부 자체의 역할보다는 기업의 역할이 오히려 중시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기업도 과거의 구태의연한 경영 자세에서 탈피해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보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한 강도 높은 개혁을 전개해야만 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체질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일본기업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 실시했던 노력은 오히려 이제 우리가 보다 더 적극 추진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