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경기 하강을 막고,잠재성장률 5%를 달성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기업의 설비투자라는 데 이견을 다는 이는 없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는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정부의 각종 규제를 걸림돌이라 말한다.정부는 규제개혁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정해주(63) 규제개혁위원회 민간 위원장을 만나 규제와 기업 투자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근 5~6년 동안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의 중심에는 기업의 설비투자 감소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경기 하강을 주도하는 가장 큰 요인이 설비투자 감소라는 것이다.

2001∼2005년 설비투자 증가율은 연평균 1%에 그쳤다. 지난 1991∼1996년 11.1%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이다. 또 1971∼1980년에는 19.6%, 1981∼1990년에도 12.1%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지적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땅값이 비싸고 노동 시장 유연성이 부족한 것이 투자 부진의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중국의 국내외 시장 침투 확대로 중소·수출기업들의 채산성이 악화된 데다 경제의 성숙화로 기업의 신규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수익 모형 창출이 어려워졌고,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위험 회피 경향이 커지고 경영행태가 보수화된 점 등을 꼽았다. 외부 환경에 소극적인 기업에서 투자 부진의 원인을 찾고 있음이 읽혀진다.

그러나 기업 측의 시각은 다르다.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과 각종 규제가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지난 5월 기자단 세미나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투자 감소는 불합리한 규제들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규제 강도가 중국이나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보다 더하다”고 지적했다. 기업은 투자를 하고 싶은데 정부가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의 주체가 기업이라는 것은 굳이 언급할 이유가 없다. 이는 투자 주체의 활동을 촉진시켜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투자 저해요인은 기업이 하소연하고 있는 규제 쪽에 무게의 중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지난 6월8일 만난 정해주 규제개혁위원회 민간 위원장도 이에 대해서는 이견을 달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가 대통령 직속으로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한 것도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적극적인 의지라고 밝혔다. 또 과거 공무원들이 모여 규제개혁을 논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기업 등 민간부문이 함께 자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기업의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를 개선 혹은 철폐하겠다는 의미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정 위원장은 외환위기와 함께 출범했던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으로 실질적인 규제개혁위원회의 산파 역할을 했다.

- 규제개혁위원회의 출범 배경은 무엇이었습니까. 또 그 필요성은 무엇입니까.

규제개혁위원회 이전에는 행정쇄신위원회라는 게 있었습니다. 법에 기초한 조직이 아니라 정부령(令)에 의해 설치된 임시기구였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규제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행정규제법 제정 시 규제개혁위원회 설치 근거를 마련하고 총괄기구로 출범시켰습니다.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 규제개혁을 강하게 추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IMF 관리체제였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규제개혁의 필요성이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외국자본의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규제가 너무 많았거든요. 이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무척 강했습니다. 국민의 정부의 모토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아닙니까. 여기에서 시장경제는 규제개혁이 필요한 과제가 됐습니다. 정부 주도로 인해 외환위기를 초래했기 때문에 정부의 경제에 대한 간섭과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었습니다. 당시 규제개혁은 국가적 아젠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 국가적으로 중요한 아젠다였다면 추진 실적은 어땠습니까.

한마디로 획기적이었습니다. 규제에 대한 전면 조사부터 시작했는데 1만1000여 개가 나오더군요. 부처별로 무조건 50%를 줄이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졌어요. 이유가 없었습니다. 50%를 줄이지 못하면 그만한 이유를 내놓으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50%를 없애고 25%는 개선을 했습니다. 허가사항이면 신고로 바꾼다든지 해서 전체의 75%를 건드렸습니다. 부처에서도 난리가 났죠. 장관 평가 1순위였거든요. 이렇게 일단은 한 번 떨쳐낸 작업을 한 겁니다. 대청소를 한 거죠.

- 그런데 지금은 다시 늘고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사회활동이 다양해지고 경제 환경이 급변하다 보면 규제는 늘기 마련입니다. 복잡다단한 국가 행정을 정리하려면 규제가 늘어나기 마련인데 그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준과 절차를 어느 정도 합리화하느냐 하는 게 보다 중요합니다. 지금 참여정부의 규제에 대한 기본 방침은 필요한 규제는 그대로 지속한다는 겁니다. 사회적 규제가 그 예입니다. 또 국민의 정부 시절 양적으로 50%를 일괄 줄였던 것은 좀 무리였습니다. 당시 부작용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때문에 지금 규제가 다시 늘어난 것은 그 반작용입니다.

- 부작용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를 들면 국민의 정부 시절 용인 연수원 화재 사건이 있었지 않습니까. 어린 학생들이 많이 희생됐는데 이는 일정한 조건만 갖췄다면 소방검사를 대폭 없앴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방검사를 완화해 제때 소방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었습니다. 즉 안전에 관한 규제까지도 많이 없앴던 것입니다. 이런 규제가 다시 생겨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 규제보다 사회적 규제가 증가한 것입니다.

- 우리나라를 가리켜 규제공화국이라고 말합니다. 규제개혁위원장으로서는 유쾌한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개발연대를 살아올 때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 주도의 개발을 했잖습니까. 정부 주도라고 하는 것은 정부의 간섭에 의해서, 정부의 규제에 의해서, 정부의 지배에 의해서 개발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또 당시의 정부는 참으로 권위주의적으로 통치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것이 행정만능주의, 행정편의주의적이었습니다. 행정적으로 해야 한다고 하면 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통행금지가 있어야 한다면 있어야 했던 거죠. 이런 속에서 규제를 굉장히 많이 양산한 나라였습니다. 한마디로 규제 속에서 살아왔던 겁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로 오면서 이제는 시장 주도 경제로 가야 한다, 민간 주도 경제로 가야 한다, 그리고 인권을 생각해야 한다 하면서 규제개혁에 대한 인식도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규제개혁에 대한 의지는 어떻습니까.

당연히 국민의 정부 때 의지가 강했습니다. 그러나 20~30년 묵은 규제를 털어내다 보니까 양 위주의 규제개혁을 했습니다. 반면 참여정부는 필요 없는 규제를 없애는 것도 하지만 규제의 질을 중요시합니다. 규제의 합리화, 즉 풀건 풀고 지킬 건 지키자는 겁니다. 국민의 생존, 보건, 안전, 위생, 환경 등 지킬 건 지키되 기준과 절차를 명료하게 해주자는 거죠. 참여정부의 가장 큰 규제개혁의 변화는 품질을 높이자는 겁니다.

- 참여정부가 맞추고 있는 규제개혁의 초점을 유형으로 설명한다면 무엇입니까.

규제에는 경제적 규제와 사회적 규제가 있습니다. 경제적 규제는 많이 없앨수록 좋은 겁니다. 시장이 자율적으로 작동되고 민간 주도 경제로 변화합니다. 사회적 규제도 가능하면 주체들에게 자율과 책임을 맡겨서 창의성 있게 해나가면 좋은데 민간에 방치했을 때 공통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키 어려운 게 많습니다. 환경, 보건, 소비자 보호, 안전, 생명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건 규제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규제 하면 최소한의 규제가 아니라 몇 십 배, 몇 백 배 규제를 가하거든요. 때문에 규제로 인한 비용이 많이 듭니다. 또 고통도 배가 됩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규제만 하자는 겁니다. 공무원들이 편의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지 말고 정확하게 기준을 정해주자는 겁니다. 모호하게 기준을 정해놓으면 행정 자의적으로 판단을 하게 됩니다. 참여정부의 규제개혁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한 단계 앞서가고 성숙해지고 있는 거죠.

- 그런데도 체감적으로 다가오는 경제적 규제는 여전히 많습니다.

그런 말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관계 부처 간 얽혀있는 것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성과도 있었지만 체감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근본적인 규제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수도권 입지 규제와 같은 것들입니다. 또 우리나라의 재벌집단은 특수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가 있습니다. 재벌의 여러 가지 문제점, 문어발 경영이라든지, 독과점을 막기 위한 출총제(출자총액제한제)라든지 하는 규제가 많습니다. 그러한 규제가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다보니까 다른 규제를 아무리 많이 없앤다 하더라도 체감적으로는 여전히 규제가 많다고 느껴지는 겁니다. 커다란 두 개의 덩어리가 아직 안 풀리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도 매년 그것의 철폐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실 재벌그룹들이 과거 규제의 수혜자들 아닙니까. 규제 덕분에 성장한 거죠.

- 비단 대기업뿐만 아니라 창업 등 진입 규제에 대해 중소기업들도 불만을 하소연합니다.

창업 규제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예전부터 제일 먼저 공장설립을 간소화하고 창업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전수 조사를 하고 역추적 조사를 해 모델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처럼 간소화됐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입지 규제는 많이 하고 있습니다. 농지는 농지대로, 산지는 산지대로, 또 관광이나 수산자원은 그것대로 보호하기 위해 입지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수도권과 오지 규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입지 규제를 모르고 공장을 세우려 합니다. 용도변경을 하려다 보면 오래 걸리잖습니까. 도장도 많이 받아야 하고 관계부처 협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민간인들은 용도변경은 잘 모르고 이게 왜 어렵냐고 합니다. 산업단지 안에 공장을 짓겠다면 금방 됩니다. 그러나 공장이 들어서면 안 되는 입지에 공장을 설립하려 하니까 창업이 어렵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다고 용도를 변경해 공장을 설립하도록 해주면 특혜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입지 규제 철폐가 가장 어렵습니다.

- 규제개혁이 지향하는 것은 작은 정부와 시장 개입의 축소 아닙니까. 그러나 반대인 것 같습니다.

사실 규제를 줄인다고 하는 것은 작은 정부거든요. 민간의 권한, 자율성을 높여주는 겁니다. 참여정부를 보는 입장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참여정부의 캐치프레이즈는 참여와 자율입니다. 개혁과 지배가 아닙니다. 그리고 참여정부만큼 탈권위주의적인 정부도 없었습니다. 탈권력으로 가면서 개혁 주체별로 너희들 알아서 해라, 자율적으로 해라. 이것을 큰 테두리에서 보면 규제개혁과 같은 겁니다. 때문에 저는 규제개혁의 정신과 일치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 규제개혁이 미진한 이유와 관련해 공무원들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공무원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잘 압니다.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공무원들은 자기 것을 지키려하지 내놓기 싫어합니다. 또 속성상 자기가 맡은 임무 수행에 책임을 다하려고 합니다.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행정편의적이든 행정만능적이든 규제를 강화해 책임을 다하도록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잘못될까봐 규제를 자꾸 강화하는 거죠. 그러나 공무원도 이제는 사고를 바꿔야 합니다. 우리 국민도 우리 기업도 이제 많이 성숙했거든요. 옛날하고 다릅니다. 이제는 맡겨도 되는데 공무원들은 걱정인 겁니다. 이런 규제를 만들어 보고를 받고 챙기고 사전 허가를 받도록 단속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지금 중앙정부는 대체로 민간 자율에 많이 맡기는 편인데 지방행정에서는 아직도 챙겨야 된다는 의식이 강한 것 같습니다. 또 일일이 챙기는 것을 공무원의 당연한 업무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 규제가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투자를 이끌어내는 규제개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규제개혁위원회에서 규제를 철폐하는 것도 사실상 투자를 진흥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외국인 투자도 마찬가지고 국내 투자도 활성화시키기 위해,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기 위해 자꾸 규제를 완화하고 철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위원회의 알파 오메가입니다. 기업을 참여시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금 한창 논의를 하고 있는 43개 핵심 덩어리 규제 내용을 보면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철폐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잘만 협의되면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투자 활성화에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대기업의 투자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출총제 같은 규제가 완화되면 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 출총제 폐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데,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제가 어떻게 한마디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아마 7월중 정부에서 출총제를 위시해 전반적인 로드맵에 따라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결정이 있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재벌그룹의 특성상 문어발식 경영을 막고 순환출자 방지 등을 위해 출총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투자 저해 요인으로 지적을 많이 합니다. 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는 이제 출총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생각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재벌그룹들의 투명성이 상당히 높아졌거든요. 예전과는 달리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 않습니까. 삼성과 현대가 당한 것 보십시오. 조금만 잘못해도 더 크게 비화됩니다. 이제는 재벌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고 투명경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기술의 복합화·융합화가 가속화되지 않습니까. 산업도 그렇고. 그러다보니 이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저 산업에 투자해 기술을 가져와야 합니다. 지배구조도 많이 개선되었지 않습니까. 때문에 이제는 전향적으로 생각해 대규모 기업집단이 스스로 알아서 하고, 정부는 사후적으로 체크만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공정거래법도 투자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규제라고 말합니다.

그건 공정거래위원장에게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웃음). 다만 공정거래법의 기본 취지는 경제력 집중을 완화시키자는 겁니다. 또 하나는 사전에 불공정 거래행위 즉 담합행위를 없애자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공정 거래 질서를 만들자는 거죠. 궁극적으로 기업 활동을 촉진시키자는 거죠. 그러나 경제력 집중을 막으려다보니까 규제가 생겨났습니다. 이율배반적인 거죠. 독과점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법이 있고, 사전 규제를 하거든요. 그러나 이제는 사전 규제, 사전 제한보다는 대기업의 여건이 과거와는 달라졌기 때문에 사후 규제, 자율적인 경영 활동을 보장하고 사후에 이를 감시하고 규제하는 메커니즘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사전 규제하는 공정거래법도 앞으로는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고 생각하는 집단이 기업이라는 인식을 가지면 안 됩니다. 정말 기업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걸 걱정하면 절대 규제철폐 못합니다. 기업들의 성숙한 의식을 믿고 맡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