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가 끝나고 나면 각 정당은 저마다 사후 분석을 통해 민심의 향방을 읽는데 열심이다. 승리한 정당은 승리한 대로 패배한 정당은 패배한 대로 교훈을 찾아내 다음 선거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5·31 지방선거는 그 같은 사후 분석이 거의 필요 없는 선거였던 것 같다. 선거 전부터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참패가 점쳐졌을 뿐 아니라 선거 후에도 참패 이유가 경제난 때문이라는 데 대해 이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신임 당의장이 의장 직속기구로 ‘서민경제회복추진본부’를 설치하기로 한 것도 결국 서민들이 먹고 살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졌고 그 때문에 여당에게 등을 돌렸다는 점에 동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년 신년 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는 경제에 올인하겠다”고 밝혔다. 그 전부터 임기 중에 부동산 값만은 반드시 잡겠다는 약속을 국민들에게 여러 차례 했다. 서민들은 그 보다 더 반가운 게 없다면서 반겼다. 경제는 좋아지고 부동산 값은 안정된다는데 싫어할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거꾸로 가는 경제… 과속 조장 후 과속 티켓?

하지만 현실은 계속 거꾸로만 가고 있다. 좋아져야 할 경제는 나빠지고 안정돼야 할 부동산 값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취임 이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4%대에 머물렀을 뿐 아니라, 국민들의 체감경기라고 할 수 있는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은 작년 0.5%에 이어 올 들어 마이너스(전기 대비 -0.6%)로 돌아섰다. GDP가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생산을 했나에 초점을 맞춘 지표라면, GNI는 국민들의 호주머니에 돈(소득)이 얼마나 들어왔나에 초점을 맞춘 지표다. 따라서 수입 물가는 올라가고 수출 물가는 오히려 떨어지는 요즘과 같은 경우 열심히 생산해 내다 팔지만 우리 손에 남는 게 별로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수출이 선전을 해 주는 바람에 기업들이 공장을 돌리고 있지만 고유가와 환율하락으로 채산성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게다가 임금상승률이 최근 3년 연평균 7%를 넘고 있는 가운데 노사관계는 특별히 나빠진 것도 없지만 뚜렷이 좋아진 면도 없다. 이런 와중에 투자를 하고 고용에 나설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이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나는 속도가 3년 동안 연평균 23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국민들의 체감고용지수가 평년 정도를 유지하려면 한 해에 일자리가 적어도 40만 명은 늘어나야 하는데 턱없이 모자라는 숫자다.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가 많아야 호주머니 사정도 좋아지면서 신규 취업자는 물론 전직자도 신바람이 날 텐데 그 반대 상황이 계속되면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소득과 일자리가 내리막길을 걷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오르기만 하는 게 부동산 가격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에 맞춰 정부가 한 달에 한 번 꼴로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잠시 주춤거리다 다시 오르는 패턴이 계속되고 있다. 부동산 대책의 결정판이라는 2005년 8·31 대책에 이어 올 들어 3·30 추가대책이 나왔지만 브레이크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행정수도다, 기업도시다, 혁신도시다 하면서 전국의 땅값을 부추겨 놓고 강남 등 일부 지역에 세금 폭탄을 터뜨려 부동산 시장을 잡으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게다가 수년 동안 낮은 금리에다 많이 풀린 돈이 부동산으로 갈 것이 뻔한 데도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최근까지 그 돈을 거둬들일 생각을 않았다. 또 정부는 주택 공급을 느릴 생각은 않고 재건축 억제 등 오히려 공급 억제에 나섰다. 급기야 얼마 전에는 정부와 청와대의 고위관리들이 거품 붕괴론을 들고 나왔다. 집값이 지나치게 많이 오른 7곳을 ‘버블 세븐’이라면서 거품이 꺼질 것이라고 위협했다. 제한 속도가 없는 것처럼 액셀러레이터를 마음껏 밟도록 부추겨 놓은 다음 제한 속도를 넘었다면서 과속 티켓을 발부하겠다는 격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들은 소비 여력을 거의 다 소진했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자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이런 저런 수단으로 돈을 빌려 부동산에다 올인했다. 이 바람에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가계대출+신용카드 등 판매신용) 비율이 작년에는 사상 최고수준인 64.7%에 달했다. 2002년 64.2%를 고점으로 2003~2004년에는 61%대로 떨어지다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에 따라 도시근로자의 부채상환비율이 최근 25%대까지 치솟았다. 월평균 300만원의 가처분소득(소득에서 세금, 보험 등 제외)을 올리는 가구의 경우 25%인 75만원 정도를 부채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다는 뜻이다. 부채상환비율이 1997년 13%대에서 두 배 정도 급상승했다는 것만으로도 개인들이 그간 얼마나 많은 돈을 빌렸고 그에 따른 원리금 상환 부담에 시달리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이 바람에 통상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느는 ‘자산효과(wealth effect)’도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여기다 최근에는 한국은행이 뒤늦게 금리마저 올리고 있어서 개인들의 금융 부담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투자 또한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잇따른 부동산 안정 대책에 따른 건설투자의 부진은 그렇다 치고 경제의 장기적 성장 동력이라는 설비투자가 수년째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수치(증가율)로만 보면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다. 설비투자(물가상승분을 제외한 실질 기준) 증가율이 2003년 -1.2%에서 2004년 이후 3~5%대의 증가세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예전과 같은 탄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GDP 대비 설비투자의 비율인 설비투자율이 2003년 이후 3년 연속 10%를 밑돌고 있다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1973년에 10%를 넘기 시작한 이후 설비투자율이 10% 아래로 추락한 경우는 최근 3년을 제외하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8.4%) 한 해 뿐이었다. 올해 역시 설비투자율이 10%를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예상돼 우리 경제의 장기적 성장잠재력 저하를 염려해야 할 정도다.

결국 하반기 우리 경제는 소비의 위축 가능성이 높고 투자마저 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 경제의 둔화와 환율 하락으로 수출마저 둔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대다수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올해 성장률을 ‘상고하저(上高下低)’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GDP 성장률이 상반기 5.5%에서 하반기에는 4.6%로 떨어지면서 연간으로는 올해 5.0%의 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반면 민간연구소들은 좀 더 비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성장률이 상반기 5.7%에서 하반기에는 4.0%로 급락하면서 연간 성장률을 4.8%로 전망했고, 현대경제연구원도 거의 비슷한 전망치를 내놓았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현재 경기는 살리고 부동산 시장은 안정시켜야 하는 상충된 정책 목표를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다. 한국은행의 입장에서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금리를 내려야 하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금리를 올려야 하는 입장이다. 정부의 재정정책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하반기 경기의 지나친 하강을 막기 위해서는 재정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깎아주고 싶지만 부동산 시장을 보니 그럴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국은행이 지난 6월8일 콜금리를 한 차례 더 인상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국은행이 올해 5.0%의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은 것은 작년 12월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경기회복세가 상당히 강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생산과 소비 등 주요경제지표들이 주춤거리고 있는 가운데 콜금리를 올렸다는 것은 그만큼 경기에 자신이 있든지 아니면 향후 금리 정책 방향의 무게를 물가 압력 해소와 부동산 시장 안정에 두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경기에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작년 10월 이후 계속된 네 차례의 금리 인상은 하반기 경기 흐름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조어(造語)vs조경(造經)

만약 하반기에 경기가 예상보다 더 나빠져 성장률이 3%대로 떨어질 경우를 한번 예상해 보자. 소비자물가의 상승 압력은 한국은행이 예상하는 대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성장률의 하락으로 고용과 소득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물가까지 오르면 개인들의 금융 사정은 최악을 치달을 것이다. 여기다 미국, 유럽, 일본의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요즘보다 주가가 더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도 상승보다는 하락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 개인들이 많은 돈을 빌려서 부동산에 올인한 상황에서 부동산은 물론 주식까지 빠지면 소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 나타나지 않았던 자산효과가 부동산 가격이 빠지면서 ‘부(負)의 자산효과(negative wealth effect)’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수출기업들은 영향이 없겠지만 내수기업들은 매출이 줄어들면서 소비와 투자가 동시에 줄어드는 2003년의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현 정부는 말을 만드는 ‘조어(造語)’에는 능하지만 내놓은 정책이나 말을 실천하는 ‘조경(造經)’에는 젬병이다. 특히 부동산 정책을 보면 규제에다 규제를 덧칠하는 모양이어서 과연 이게 제대로 된 정책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부에서는 내놓는 부동산 대책마다 먹혀들지 않자 최근에는 ‘오기(傲氣)’가 작동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할 정도다. 오죽하면 ‘버블 세븐’이라는 새로운 말을 지어낸 다음 그 곳의 거품이 곧 꺼질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겠는가? 이런 와중에 앞에서 본 것처럼 하반기 경제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견해가 주를 이루고 있다.   

국민신뢰를 위한 3가지 조건

선거가 끝난 이후 정부와 청와대, 여당이 서로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갑론을박을 계속하고 있다. 신속하게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기업과 국민들은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동산과 세금 등 향후 경제정책 방향을 신속하게 제시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아울러 어떤 정책을 내놓더라도 대다수 국민들의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첫 번째는 오기를 버리고 국민들에게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와 스포츠에서는 때로 오기가 통할지 모르지만 경제에서는 절대 금물이다. 일부 오기에 야합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수많은 기업과 국민들은 매우 합리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랬다저랬다 하거나 아니면 말고 식의 발언이나 정책을 가급적 줄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근태 신임 당의장이 일관성이 있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서 논어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 자공의 대화를 인용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공자는 정치에서 ‘군대, 식량, 신뢰’의 세 가지가 중요하다면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이 신뢰라고 말했다.

세 번째는 전반적인 분위기로 자리 잡고 있는 반(反)기업(인), 반(反)부자 성향을 누그러뜨리는 노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 현 정부가 내놓은 정책 중에 어떤 것이 반기업, 반부자 성향을 가진 것이 있느냐고 항변만 해서는 안 된다. 기업과 일반 국민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되짚어봐야 하는 게 정부와 청와대가 해야 할 일이다. 실제로 겉으로는 규제 완화를 외치면서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반기업, 반부자 성향이 드러난다면 힘들여 투자에 나설 기업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또 돈 있는 사람들이 국내에서 소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그들이 돈을 쓸 때 박수치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 작년에 해외 여행객이 사상처음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일반 여행객(유학, 연수 제외)들이 쓴 돈만 120억달러(12조원)에 달했다. 이 돈 중 10~20%만 국내에서 써도 동네 슈퍼나 김밥집 주인들이 허리를 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노무현 대통령도 선거에서 한 두 번 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할 것이 아니라 경제를 무엇보다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 경제를 챙겨야 한다는 말이다. 가장이 경제를 챙기지 않는 가정에서 행복과 웃음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대통령이 경제를 챙기지 않는 나라에서는 국민들의 고통과 한숨만 늘어날 것이다.

만약 이 같은 세 가지 조건이 만족되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 한국은행이 시의적절한 정책을 내놓는다면 국민들의 불안이 가시면서 우리 경제가 하반기에도 정부와 한국은행의 말대로 성장 기조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생각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은 우리 경제가 성장 동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R&D와 교육 등 선별적 분야에 대한 재정 지출의 확대와 함께 시중 금리가 과도하게 상승하지 않도록 한국은행이 콜금리 인상 속도를 적절히 조절해 나가는 일이다. 또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수도권 공장 건설 규제 등을 전향적으로 폐지 또는 완화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기업의 투자가 살아나야 고용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개인들의 소득과 소비가 늘어나는 선순환(善循環)에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