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우리당 김근태 의원의 별명 중 하나가 ‘햄릿’이다. 큰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을 거듭한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실제 김 의원은 주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좌고우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03년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때도 맨 마지막으로 합류했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원내대표로 이라크 파병 동의안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표결 직전까지 망설였다.

그런 김 의원이 일생일대의 정치적 도박을 감행했다. 난파 위기에 몰린 열린우리당의 당의장을 맡은 것이다. 집권당 선거 사상 최악의 패배로 기록되며, 온갖 선거 신기록을 갈아치운 5·31 지방선거가 있던 5월31일, 김 의원은 정동영 당시 당의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당 내에서 앙숙 같은 사이였다. 두 사람 모두 2007년 대선을 정치적 목표로 삼고 있었고, 여당 내에서 각각 최대 계파를 이끄는 인물이다.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는 관계다. 실제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두 사람은, 한쪽이 왼쪽으로 가면 다른 쪽은 오른쪽으로 가고, 한쪽이 어떤 자리를 원하면 다른 편에서 달려들곤 하는 양상을 보여주곤 했다. 2004년 총선 직후 두 사람이 입각할 때 통일부장관을 놓고 경쟁했던 게 대표적인 예다. 아직도 그 진상이 분명치는 않지만, 김 의원과 정동영 전 의장은 통일부장관 자리를 놓고 한 달 가까이 신경전을 펼쳤고, 서로 ‘이렇게 된 것은 저쪽 책임’이라는 식의 비난을 서슴지 않았었다.

그랬던 두 사람이 5·31 지방선거 이후 마치 한배를 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그 시작은 선거 당일의 만남이었다. 정 전 의장 요청으로 성사된 이 만남에서,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자세한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정 전 의장이 김 의원에게 차기 당의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당규에 따르면 김 의원은 정 전 의장이 물러나면 당의장을 승계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여당 지도부는 선출직 최고위원 5명과 지명직 최고위원 2명으로 구성된다.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정 전 의장에 이어 2위 득표를 한 김 의원은 최고위원 중 당의장 유고시 이를 승계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문제는 당시 상황이 단지 정 전 의장의 사퇴만으로 수습될 수 있느냐는 당 안팎의 인식이었다. 선거 사상 유례가 없었던 여당 참패를 놓고, 지도부가 총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해 있었던 것이다. 김 의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 의원의 일부 참모들은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당직(최고위원)은 물론 의원직까지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를 보이는 것으로, 다음을 기약하자는 취지였다.

“독배라도 마시겠다”

그런 김 의원에게 정 전 의장이 “남아서 당을 수습해 달라”고 했다. 이때부터 김 의원은, 햄릿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긴 고민에 빠져들었다. 김 의원 측에 따르면, ‘만약 김근태마저 물러나면 열린우리당은 즉각 해체 과정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고민이 컸다고 한다. 일부에선 “이 기회에 만년 2인자 딱지를 떼고, 당 위기를 제대로 수습함으로써 여권의 대선후보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의견도 냈다고 한다.

김 의원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 당내에서 영남 실용파를 대표하는 김혁규 의원과 조배숙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며, 김 의원도 동반 사퇴할 것을 압박했다. 또 당내 실용파 의원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재야 운동권 출신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김 의원에게 여당을 맡길 경우, 여당의 개혁 노선이 더욱 강화되고 자칫 헤어나기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논리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 중진들이 나서서 회의를 거듭한 끝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발족시키기로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대위를 김 의원이 이끌도록 하되, 그 직책은 당의장으로 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비대위에는 당내 실용파 의원들이 대거 포진했다. 정 전 의장도 ‘김근태 당 의장 체제’ 출범을 배후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그래서 당 안팎에선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밀약이나 묵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선거가 끝난 뒤 일주일 가까이 침묵하던 김 의원은 당내에서 후임 지도체제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자, “독배라도 마시겠다”고 나섰다. 정치 인생 최대의 결단을 내린 셈이다. 김 의원이 현재 당 상황을 수습한다면, 여권 내에서 그의 입지는 굳건해진다. 내년 대선 가도에도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라면, 김 의원의 정치적 운명도 여기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본인도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독배’라는 말을 쓴 것이라고 한다.

김 의원은 당 의장 취임 후 주변을 놀라게 하고 있다. 당내 개혁파의 수장이었던 사람이 마치 실용파의 수장인 듯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김 의원 개인으로선 ‘재야 이미지 탈색’ 과정이고, 열린우리당에 덧씌워진 ‘개혁 맹동주의 색깔 지우기’인 셈이다. 김 의원은 취임 일성으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서민경제 회복”이라고 했고, “백성에겐 밥이 하늘”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재야파 출신에게선 듣기 힘든 “추가 성장이 필요하다”는 말도 했다. 그의 비서실장엔 현대자동차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계안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의 핵심 참모들인 재야파 의원들을 당직에 새로 배치하지도 않았다. ‘햄릿’의 대변신이다.

김 의원 등장 이후 열린우리당과 청와대 사이에는 심상치 않은 긴장이 감돌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표방한 개혁 노선에 김 의원이 도전하는 듯한 양상이다. 김 의원과 노 대통령은 같은 운동권 출신이지만, 가깝지는 않다. 오히려 쌓인 감정이 많다는 게 정설이다. 김 의원이 이끄는 열린우리당과 노 대통령의 청와대는 차츰 충돌 코스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