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인천의 한국유리 공장에서 시작된 한국 유리산업이 내년이면 50주년을 맞는다. 모래에서 뽑아내는 유리는 인류 5000년 역사 이래 가장 효율적인 투명 제품으로 최근에는 건축 내외장재로 여타 건축 자재의 자리를 빠르게 위협하고 있다. 전북 군산에 위치한 한국유리 공장을 찾아 한국 유리산업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1957년 인천에 자리한 한국유리 인천공장, 7개월 동안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유리물 생산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연한 주황색의 유리물이 용해로에서 솟아오른 것. 그러나 최초 용융을 통해 만들어진 유리는 깨지고 말았다. 이윽고 두 번째 원료 투입으로 만들어진 유리물에서 전후 최초의 판유리로 만들어졌다. 근대 한국 유리산업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그렇게 피어올랐다.

“최근 가장 큰 걱정은 핵심 원료인 모래(규사) 공급처인 중국이 모래의 해외 유출을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 외에도 베트남, 호주 등지에서 모래를 수입하고 있긴 하지만 중국에서의 원자재 수입 통로가 막히면 운송비 상승 등으로 인해 타격이 예상됩니다.”(최중돈 군산공장 생산팀 이사)

원자재 가격 상승, 유리산업에도 ‘빨간불’

군산공장에서 만난 최중돈 이사(한국유리 군산공장 생산팀)는 대뜸 원자재난 걱정을 토로했다. “중국 유리 제품의 국내 유입으로 가뜩이나 걱정이 큰 마당에 원자재난까지 겪게 되면 국내 유리산업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유리 제조업체는 서해 안면도 등 국내 해안 모래를 채취해 유리를 제조했다. 그러나 환경문제와 국내 모래 원가의 상승으로 인해 국내 모래 사용이 어려워지면서 해외에서 원자재를 조달해왔다.

한국유리(주) 군산공장은 새만금 방조제의 시작 지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안에 위치한 군산산업단지 안에 있다. 유리 제품은 크게 판유리, 안전유리(자동차용), 특수유리, 유리섬유로 나뉜다. 판유리 제품 외에도 한국유리는 국내 자동차 유리 시장의 50% 점유하고 있고, 특수 유리 제품 중 전자레인지에 들어가는 오븐 트레이는 전 세계 수요량의 60%를 한국유리에서 공급하고 있다.

군산공장은 유리 제품 중 가장 대중적인 유리 제품인 판유리를 생산하고 있다. 생산 규모는 연 50만 톤(2005년)으로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 판유리 생산 공장이다. 건축물의 창문이나 유리문 등에 널리 쓰이는 판유리는 가장 대표적인 유리 제품으로 한국유리는 군산공장과 부산공장에서 국내 전체 생산량(연 160만 톤)의 40%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1993년부터 시작된 한국유리의 해외 진출은 93년 중국 남경, 96년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에 이어 세계적인 유리 제품 생산업체인 프랑스 상고방그룹과의 전략 제휴를 통해 폴란드에 자동차용 안전유리공장을 설립하기도 했다.

“판유리 제조공장은 국내에 군산공장과 부산공장이 있고 중국의 남경과 청도에 각각 생산라인이 있습니다. 각 라인은 최고의 판유리 제조공법인 플로트 공법(Float Process)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요. 6개 생산라인 중 군산공장에만 3개의 생산라인이 있습니다.”(최중돈 생산팀 이사)

3개의 생산라인 외에 반사코팅막을 입히는 코팅 설비와 방범 기능 및 차음 성능이 우수한 대형 크기의 접합유리(Laminate Glass)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도 갖추고 있다.

최중돈 이사의 안내로 생산라인 현장 취재에 나섰다. 최 이사는 “유리 제조공정은 용광로에서 철을 생산해내는 공정과 흡사하다”고 했다. 여러 연료를 배합해 로(爐)에 넣은 다음, 고온으로 가열한 제품을 성형하는 과정이 철의 제조공정을 닮았다는 것이다. 연료배합에서 최종 제품 생산까지 인력에 의지하지 않고 설비와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제품을 생산하는 장치산업이라는 점도 닮은 꼴. 강병주 관리팀장은 “1개 라인에 투입되는 근로자 수가 채 10명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용융로의 불을 꺼뜨릴 수 없기 때문에 24시간 지속적으로 유리물을 만들고 제품을 생산하는데, 1일 3교대 근무라고 해도 24시간 작업에 투입되는 인력이 30명이 채 되지 않는 셈이다. 실제로 22만 평의 너른 공장과 생상라인에서 근로자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최 이사는 “원료배합부터 최종생산까지 모든 공정이 자동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리를 녹이는 ‘용융로’는 1급 보안 시설

유리 제조공정은 크게 4단계로 나뉜다. 원료 조합-용융-청징-성형 및 절단이 그것으로 제품의 특성에 따라 원료의 배합을 바꾼다. 판유리의 경우 규사, 소다회, 석회석, 백운석, 망초 등의 원료가 조합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원료는 규사로, 바닷가나 강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래의 주성분이다. 산호 퇴적물 등을 제외한 일반 모래는 규사 성분이 98~99%다.

가장 먼저 유리의 주원료인 규사와 석회석, 백운석, 소다회의 비율을 정하고 이들의 양을 정확하게 측정한다. 군산공장에서는 원료 공급 장치가 전자동으로 이뤄지도록 설계돼 있다. 원료 공급 장치는 각 원료의 칭량(무게를 재는 과정)부터 혼합, 용융로(Furnace)로의 운반과 투입까지를 자동으로 이뤄지게 한다.

용융로는 제철공장의 용광로와 같은 이치로 불에 강한 내화물로 만들어져 있다. 수명은 통상 10년인데 군산공장 측은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연구 활동을 통해 용융로의 수명을 5년 이상 연장시켰다고 했다. 한국유리 측은 융용로에서 유리물이 생산되는 공정의 취재 노출을 꺼렸다. “용융로 설비는 유리를 만들어내는 핵심 기술과 시스템이 결집된 결과물이므로 사내 1급 보안 설비라서 회사에서도 대표이사 이상의 주요 인사만이 설비를 직접 볼 수 있다”고 강병주 관리팀장은 설명했다.

원료가 녹으면 액체 상태의 유리물이 생산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등 환경 유해 가스가 발생한다. 김병유 기술연구소 이사는 “청징(Fining) 공정을 통해 유해성분을 제거한 다음 대기 중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환경 문제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액체 상태로 용융된 유리물은 용융주석이 밑에 깔려 있는 주석 욕조 속으로 서서히 흘러가 널판지 모양으로 꼴을 갖추기 시작한다. 유리보다 무겁고 동시에 유리에 젖지 않는 용융주석 위로 유리물이 흘러가면 유리는 액상 금속 위에 뜨게 되고 판형으로 넓어지면서 동시에 두께는 얇아지게 되는 것. 액체 상태인 주석물 위에 역시 액체 상태인 유리물이 흘러 들어가지만 서로 섞이지 않는 이유는 두 물질 사이의 비중 차이 때문이다. 주석의 비중이 5.8인데 비해 유리의 비중은 약 2.5로 물과 기름을 섞이면 물과 기름이 분리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주석 욕조 안에는 질소와 수소의 혼합가스가 공급됩니다. 건물이나 창문의 유리창을 보면 표면이 깨끗한데, 이 혼합가스가 주석 욕조 안의 유리물을 계면장력과 중력이 평형상태로 도달하게 해주기 때문이에요. 컵에 담긴 물이 완전한 수평을 이루는 모습을 연상하시면 됩니다.”(김병유 기술연구소 이사)

판으로 모양이 갖춰진 유리는 약 650℃ 정도가 된다. 이때 유리는 표면과 안쪽의 온도에 차이를 갖고 있는데 잘못 냉각시킬 경우, 유리가 파손되거나 불량품이 발생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서냉공정이 있다. 계산된 공정에 따라 서서히 유리를 식힘으로써 유리의 안쪽과 바깥쪽의 온도 차이를 줄여주는 과정으로, 이 또한 첨단 센서를 통해 실시간 온도가 측정되고, 컴퓨터에 의해 자동 제어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서냉공정을 마친 유리는 80℃ 이하로 온도가 안정된다. 서냉공정을 마치면 비로소 완전한 제품형태의 판유리 모습을 보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검사 공정을 마치면 비로소 상품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과거에는 사람이 긴 막대기를 이용해 육안으로 검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레이저와 고정밀 카메라가 장착된 자동 결함 검사장비가 불량품을 선별하죠.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한 0.5mm에 불과한 작은 결점까지 판별해 낼 수 있을 정돕니다.”(김병유 이사)

결함이 발견된 부위에는 하얀색 스프레이가 자동적으로 뿌려지게 된다. 결함이 발견된 상품은 포장단계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파괴되는데, 파괴된 유리는 따로 모아 두었다가 원료들과 함께 용융로로 들어가 재탄생하게 된다. 철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고철이 일정부분 사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판유리는 최대 330×120인치 크기로, 두께는 2~19mm까지 다양합니다. 소비자의 용도에 따라 크기와 두께를 조절하죠. 대부분 건축용, 자동차용으로 쓰입니다.”(최중돈 생산팀 이사)

출고된 유리에는 모든 생산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바코드가 부착된다. 바코드에는 생산일자와 시간을 포함해 어느 생산라인에서 생산됐고 원료의 구성 비율, 유리의 광학적 측정치, 색상, 기계적 물성 등 제품 품질에 관한 정보가 모두 기재된다.

중국산의 국내 시장점유율 최고 30%로 추정

유리의 주원료인 모래(규사) 공급에 대한 차질만큼이나 판유리를 생산하는 군산공장의 큰 고민은 중국산 저가 유리의 대량 유입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 프랑스의 세계적인 유리 제조업체인 상고방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중국 현지에 2곳의 생산라인을 두고 있기도 하지만 텃밭인 국내 시장에서 저가 중국산은 25~30%의 시장점유율을 가질 정도로 위협적이다. 생산기술 측면에서 중국산은 국산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지만 가공된 유리 제품은 원산지 표시 의무가 없기 때문에 소비자로서는 이를 식별하기 어렵다는 점도 중국산 유리 제품이 국내에서 활개 치는 큰 이유 중 하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중국산의 점유율이 30%선에서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중돈 생산이사는 “결국 품질관리와 중국 현지화 전략을 동시에 구사해야만 중국산의 위협에 맞설 수 있다”고 했다.

군산공장은 최근 라미네이트 제품의 생산에 역점을 두고 있다. 2개의 판유리에 필름을 넣어 접합시켜 만들어지는 라미네이트 제품은 건물의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은 선진국에서는 학교나 공공건물에서는 필수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 관련 법규가 없지만 안전 의식이 높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머지않아 국내에서도 많은 건물에 채택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라미네이트 제품은 판유리 제품에 비해 가격이 5배 정도 높기 때문에 회사의 수익을 높이는데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plus interview

김용섭 한국유리 군산공장장/상무

“원자재 확보 위해 정부가 나서야”

김용섭(52. 상무) 공장장은 2004년 4월 한국유리 본사에서 인사총무팀장으로 일하다 군산공장 최고책임자로 부임, 420명의 임직원을 지휘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높은 인건비 구조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지난 50년간 숱한 고비를 넘기며 한국 유리산업을 이끌어 온 만큼 최근의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안팎으로 처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김 상무는 ‘뼈를 깎는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들었다. 임직원의 위기의식과 해내고자 하는 도전의식이 이미 충만하고 다양한 노력이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자신감의 근거로 들었다. 끝으로 김 상무는 원료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노력을 호소했다.

“중국 정부의 규사 수출 금지 움직임은 일개 기업이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국내 기업이 안정적으로 규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해 주길 바랍니다. 한국 유리산업의 경쟁력이 안정적 원료 확보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약력 _ 동국대학교 졸업. 1978년 한국유리 입사. 1999년 군산공장 관리팀장. 2000년 한국유리 인사담당 이사, 2005년 군산공장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