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 같더군요.” 지난 8월31일 밤, 서울 종로구 신문로 자택으로 들어서는 한덕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을 맞은 부인 최아영씨는 한 부총리에게 이렇게 한마디를 건넸다. 그날 오전 한 부총리가 발표한 ‘부동산정책 대(對)국민 담화문’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최씨는 농담처럼 ‘계엄령을 선포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겠지만, 한 부총리로서는 어쩌면 투기세력에게 계엄령을 선포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날 오전 10시, 정부가 두 달 반 이상 준비해 온 8·31대책이 발표될 과천정부청사 1층 재정경제부 브리핑룸에는 100여명의 기자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발표 15분여 전 일찌감치 한 부총리가 브리핑룸에 들어섰고, 그를 중심으로 왼쪽엔 추병직 건설교통부장관과 이주성 국세청장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문원경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 제2차관과 양천식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이 자리를 잡았다.

 “국민 여러분! 저는 정부 부동산정책의 책임자로서 오늘 매우 결연한 의지를 갖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대국민담화문 발표가 시작됐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한 부총리가 들고 있는 담화문 원고에는 문장마다 끊어 읽어야 할 곳이 표시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강조해서 읽어야 할 두 곳도 별도표시가 돼 있었다. 전날 밤 한 부총리는 원고를 다듬으면서 직접 이런 표시들을 기입해 넣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숱한 강연과 연설을 해왔지만 이렇게 한 적은 없었다.

 “원고만 내려다보고 읽지 않고 수시로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보다 보니 읽던 줄을 놓치고 건너뛸까 봐 내내 걱정이 됐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나중에 기자와 만난 한 부총리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만큼 그도 긴장했다는 것이다. 35년 관료생활을 해온 그로서도 8·31대책과 같은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무려 14장이나 되는 담화문을 읽는 동안 그는 표시한 대로 맨 앞과 맨 뒤 부분에서 두 차례에 걸쳐 목소리에 힘을 줬다. 바로 이 대목이다.

 “이제 정부는, 부동산정책이 시간이 흐르고 나면 바뀌고 말 것이라는 생각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부동산투기는 이제 끝났습니다’.”

 “부동산을 수단으로 정당하지 못한 이익을 얻을 수 없도록 ‘부동산투기는 끝났다’고 선언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성원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담화문은 ‘부동산투기는 끝났다’는 선언으로 시작해서 끝이 난 셈이다. 이것은 사실상 부동산투기 세력을 발본색원하겠다는 ‘계엄령’이나 마찬가지였다.



 밤마다 격론을 통해 안건 만들어

 8·31대책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옛날처럼 정부가 뚝딱뚝딱 만들어 일방적으로 발표하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지난  7월  초부터 매주 하나의 주제를 정해 정부와 여당 고위 관계자들이 만나는 부동산 고위 당정협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고, 그 결과를 언론에 브리핑했다. 한 부총리와 추병직 건설교통부장관, 이주성 국세청장 등 정부 측 고위인사들과 정세균 열린우리당 대표, 원혜영 정책위원장, 채수찬 당 부동산기획단장 등 여당 측 고위인사들이 참여하는 고위당정협의에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물 위를 유유히 헤엄치는 백조의 우아한 자태는 물밑에서 열심히 휘젓는 백조의 발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했던가. 고위당정협의와 언론브리핑의 뒤에는 이를 위해 밤마다 격론을 통해 정책안건을 하나씩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른바 8·31대책의 핵심 4인방이 그들이다.

 이들은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 내에서는 계급장(행시 기수) 떼고 승진한다는 김석동 차관보(행시 23회), 김용민 세제실장(17회)과 권도엽 건설교통부(이하 건교부) 정책홍보관리실장(21회) 등 정부부처 1급들과 김수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6월 중순, 부동산투자에 일가견이 있는 강남아줌마들이 즐겨보는 이른바 <스페셜리포트>에 ‘김석동’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페셜리포트>는 재야 부동산 고수(高手)들이 작성해 유료로 제공하는 일종의 부동산 투자보고서. 재경부 차관보가 왜 이런 보고서에 이름이 오르내렸을까.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풀이했다. 

 “재야 고수들은 정부의 정책이나 부동산시장 동향 등을 분석해서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데, 정부가 8월 말에 내놓을 부동산대책을 만드는 핵심라인의 특징이나 과거 경력 등을 볼 때 앞으로 어떤 대책들이 나올 수 있는지를 짚어 내는 정보가 가장 중요하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대충 감이 오지 않겠느냐.”

 김 차관보가 부동산정책에 정부 측 대책팀장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과천 관가에서는 뭔가 강력한 조치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소문이 돌았다.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정부에서 주어진 권한을 휘둘러 시장을 평정했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던 그는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명언’으로도 유명하다. 금융전문가인 김석동 차관보에게 시선이 쏠린 것은 그의 풍부한 ‘대책’입안 경험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5·8 부동산 대책반장(1990년), 금융실명제 대책반장(1993년), 금융개혁법안 대책반장 및 부동산실명제 총괄반장(1995년), 한보대책 1반장(1997년), 금융개혁법안  대책반장(1997년)….

 별명이 ‘대책반장’일 정도도 경제현안이 터졌다 하면 위에서는 그를 찾았다. 이러니 8·31대책에 김 차관보가 빠질 리 없었다.

 김용민 세제실장은 투기수요를 솎아낼 세제정책을 책임졌다. 올 6월 국세심파원 상임심판관에서 재경부 세제실장에 컴백한 그는 밖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난 2002년 이미 종합부동산세를 처음 기획·입안한 인물이다. 사람들은 대개 종부세가 2003년 9월 정부가 보유세 개편정책을 통해 처음 발표했고, 두 달 뒤인 10·29대책 때 시행시기를 2006년에서 2005년으로 조정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보다 1년 앞선 2002년, 3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실거래가 과세정책을 내놓았던 김 실장(당시 재산소비세국장)은 팔지 않으면 그뿐인 양도세만으로는 부동산을 잡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보유세를 강화할 묘안을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당시 김문수 재산세과장(현 부동산실무기획단 부단장)과 함께 지금과 같은 국세(國稅) 형태의 종합부동산세 도입안을 기획, 당시 최경수 세제실장에게 보고했다.

 김 실장은 재경부 세제실에서 아직 깨지지 않은 기록을 하나 갖고 있다. 세제실 내 5개 과의 과장을 모두 거친 것이다. 사무관 시절을 당시 재무부 이재국 금융정책과에서 보냈으면서도 세제실로 옮겨온 뒤 소비세과, 소득세과, 재산세과, 조세정책과, 기본법규과 등 무려 5개의 과장보직을 섭렵한 것이다. 이어 재산소비세국장을 거쳐 국세청 법무심사국장, 국세심판원 상임심판관 등 세제맨이 가 볼 만한 곳은 두루 다 거쳤다.

 김 실장은 8·31대책이 발표된 뒤 기자에게 “종부세가 부동산 많이 가진 사람들을 무조건 두들겨 잡으려는 세금으로 아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값 거품은 비싼 대형아파트가 선두에 서서 중형과 소형까지 끌고 가는 일종의 ‘기러기 현상’을 보이기 때문에 날아오르는 선두무리부터 잡아야 해결할 수 있다”면서, “집값 급상승을 주도하는 비싼 집부터 보유세를 합리화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10ㆍ29대책 입안과정은 ‘낭만적’이었다”

 부동산문제에 대해 빼놓을 수 없는 청와대인사가 바로 김수현 국민경제비서관이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철거지역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을 하면서 서민들의 주거고통을 직접 체험했다. 서울대 도시공학과와 대학원을 거쳐 환경계획학 박사학위를 딴 뒤 한국도시연구소,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을 거쳐 청와대에 들어왔다.

 지난 2003년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비서관 시절, 당시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을 도와 10·29대책을 만드는 데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10·29대책의 입안과정은 다소 ‘낭만적’이었다고 비판했다. 8·31대책 발표 전 사석에서 만난 김 비서관은 이렇게 말했다.

 “10·29대책을 만들 때 정책담당자들의 마인드는 과거 금리가 8~9%였을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정도 금리수준에서 정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냐’는 마인드로 10·29대책을 만들었다. 지금은 정책금리가 3%대다. 금리가 이렇게 낮다는 사실과 이에 따른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감안해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10·29의 실패 경험이 약이 되고 있다.”

 그날 새벽 김 비서관은 청와대브리핑에 글을 하나 올렸다. 8·31대책에 대한 일부 왜곡보도 때문에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올렸다는 ‘부동산정책을 둘러싼 오해와 과장’이라는 글이다. 여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부 언론의 논조는 무엇에 화들짝 놀란 듯, 아니면 진작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듯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먼저 ‘세금폭탄으로 투기와는 무관한 선량한 서민층까지 피해를 볼 것’이라는 얘기다. 서민용 주택마저 세금이 몇 배씩 오른다는 내용이 주조를 이룬다. 이번 정책은 3%의 부동산 고액·과다 보유자가 주로 영향을 받고, 상위 10% 정도에 대해 불균형한 세제를 바로잡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언론의 논조는 마치 97%의 국민이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권도엽 건교부 정책홍보관리실장은 요직인 주택국장 자리를 역대 두 번째로 장수했다. 부동산시장에서는 그를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 코드를 잘 읽고 있는 인물로 평가한다. 행정고시 합격 뒤 일선 세무서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지난 1982년부터 건교부에서 도시건축심의관, 국토정책국장, 주택국장 등을 거친 주택토지 전문가로서 부동산시장 생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로 통한다.

 “일주일은 목요일에 시작해서 수요일에 끝이 난다”, “함포사격 뒤 보병을 상륙시키겠다. 보병에게는 보약도 필요하다”, “1022호의 산고(産苦)요, 투혼이었다”, “52명의 최정예부대가 투입됐다.”

 8·31대책에 관여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자가 들은 표현들 중 일부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정부와 여당의 고위인사들이 만나 정책을 논의한 고위당정협의는 매주 수요일 열렸다. 예컨대 여기서 ‘주택 투기수요 억제책’이라는 한 가지 주제가 집중 토의되고 나면 곧바로 그 다음 주 수요일에는 ‘개발이익 환수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식으로, 사전에 1주일 뒤 정책안건이 예고가 된다. 따라서 대책팀은 한 주는 수요일 당정협의로 끝이 났고, 목요일은 그 다음 주 수요일 당정협의를 위해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날이 됐다.

 목요일부터 다음 주 화요일까지 각 부처에서 보내온 안건자료 분석, 재경부 차관보 주재회의, 1급 자체회의, 부총리 주재회의, 정문수 청와대보좌관 주재회의, 여당 측 기획단과의 회의 등을 거쳐야 겨우 수요일 당정안건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8·31대책 실무작업반 조직은 관련부처 1급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장 김석동 차관보)를 중심으로 수요대책팀·공급대책팀·금융대책팀·총괄팀과 청와대 총리실이 붙었다.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수요=재경부 김석동 차관보, 김용민 세제실장, 김문수 국장(부동산실무기획단 부단장), 박동규 과장, 행자부 박연수 지방지원본부장, 김대영 지방세제관, 국세청 전군표 차장 등

 ▲공급=건교부 권도엽 정책홍보관리실장, 강팔문 주택국장, 이재영 토지국장, 박서호 주택정책과장, 정완대 토지정책과장 등

 ▲금융팀=금융감독위원회 이우철 상임위원 등

 ▲총괄팀=재경부 이승우 정책조정국장, 최원목 정책조정총괄과장 등

 ▲청와대 총리실=정문수 경제보좌관, 김수현 국민경제비서관, 김재호 국민경제자문회의 복지노동실장



 전쟁 앞둔 전략ㆍ전술처럼 정책 수립

 이들은 10·29대책에 대한 반성을 8·31대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10·29대책은 참여정부 출범 첫 해에 야심차게 내놓은 부동산정책이었지만, 1년 만에 약효가 확 떨어져 강남·분당·판교·용인 등 집값 급등세 확산에 속수무책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10·29대책은 정책적으로도 결함을 안고 있었다. 투기적 가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수요관리 정책의 기본틀은 8·31대책으로까지 연결됐다.

 그러나 중·대형 아파트 선호와 이로 인한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공급대책이 약했다. 수요대책마저도 입법과정에서 약화돼, 종부세의 경우 애초 기준시가 6억원 이상 주택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국회에서 9억원 이상으로 풀어졌다. 3주택 양도세·중과세도 결국 시행되긴 했지만, 지난해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가 시행유예를 주장하면서 정부의 약화된 정책의지를 시장에 노출시켰다.

 이 전 부총리는 3주택 중과세가 경기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다. 그는 이후 사석에서 자주 부동산경기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3~4월까지 건설 쪽이 살아날 조짐을 뚜렷이 보이지 않으면 올해 경기회복이 물 건너갈 수도 있다”고 기자에게 말할 정도로 건설경기  회복에 대해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 경제팀이 “건설경기가 다소 악화될 것을 감수하고라도 부동산정책을 집행하겠다”며, “공공부문이 건설경기를 보완토록 하겠다”는 식으로 강경수를 두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던 셈이다.

 10·29대책에서 제시된 공급대책은 구체적이지도 못했고, 액션플랜도 빈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의 공급정책 의지를 보여주는 수준에 그쳤고, 수요만 누르면 문제가 잘 해결될 것이라는 식의 해법이었다는 것이다.

 8·31대책은 이 같은 10·29대책의 실패경험을 보완한 것이다. 전쟁을 앞두고 전략·전술을 짜듯이 정책이 수립됐다. 김석동 차관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상황판단이 제일 중요했다. 진단이 정확해야 제대로 처방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당시 판단은 적(투기수요)의 힘이 최고조에 이를 때라는 것이었다. 이걸 둔화시키려면 함포사격(세제 등 강력한 수요억제)을 퍼부어야 한다. 그 다음 보병을 상륙(적절한 공급)시켜 적의 힘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진지(강남 등 급등지역)를 장악해야 한다. 함포만 때리면 1년 정도는 간다. 그러나 1년만 지나면 또 적들이 기어나온다. 이게 10·29대책의 실수였다. 그 다음 보병(공급)들에게 보약을 먹여 제대로 힘을 쓰도록 해야 한다. 보약이란 국세청 조직을 상시 가동해 투기를 감시하고, 무엇보다 시장투명화를 위한 제도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8·31대책은 정부로서는 전쟁의 작전을 짜듯 하나하나 실행계획이 수립됐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초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과천정부청사에서 멀지 않은 그레이스호텔 룸 지배인은 재경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형 온돌방인 1022호를 8월 말까지 한 달 가까이 빌리겠다는 것과 자금에 여유가 없으니 일반 객실은 그날그날 사정에 따라 1~5개까지 매일 유동적으로 빌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싸게 해 달라”는 ‘압력’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어 바로 책상과 PC, 회의용 테이블, 소파 등을 실은 트럭이 그레이스호텔로 들어왔다. 이들 짐짝은 1022호로 신속하게 옮겨졌다. 대형 온돌방 한쪽은 회의용 테이블이 차지하면서 회의실이 됐고, 벽 쪽에 책상과 PC들이 배치되면서 작업실이 됐다. 소파도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 8·31 실무대책 사령부가 차려지면서 실무작업반의 합숙이 시작된 것이다. 호텔 청소담당 아주머니들은 대책반원들이 입회를 해야만 청소를 할 수 있었다. 보안문제 때문이었다.

 1022호는 몇 가지 정부의 주요 대책들이 만들어진 유서 깊은 곳이다. 금융감독기구 통합작업과 금리자유화작업, 한보대책 등이 여기서 만들어져 발표됐다.

 정문수 경제보좌관과 김수현 비서관도 8월31일이 다가올수록 1022호를 자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한덕수 부총리에게 올라가는 보고도 잦아졌다.

 이백만 국정홍보처 차장은 그레이스호텔 1022호가 부동산정책의 산실이었고, 여기서 정책을 만들어 내기 위한 투혼이 발휘됐고, 산고가 있었다고 표현했다.

 ‘수요억제를 위한 세제의 강도는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공급확대는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강남수요를 대체할 신도시 건설은 필요한가, 서민 주거안정 대책은 어떻게 할 것인가, 토지를 이번 대책에 포함시킬 것인가, 개발이익은 어떻게 환수할 것인가, 공급정책에 대한 그림은 확실하게 그릴 것인가 말 것인가.’

 8·31대책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이 이곳에서 논의됐다.

 10·29대책에 관여했던 한 인사가 한 가지 조언을 했다. “회의를 거듭하고 대책 발표일이 다가올수록 대책의 강도는 점점 세질 것이다. 이를 잘 조절해야 한다.”

 초강력 투약만이 만능이라는 식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수위조절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공급대책을 세워야 하는 건교부 측은 세제에서 좀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고, 수요를 관리해야 할 재경부는 공급 쪽에서 확실한 대책을 꺼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론도 심상치 않았다. 심지어 1주택 이상 소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 국회의원의 인기가 치솟는 일도 있었다. 

 한 부총리는 대책팀에 세제 개편 원칙을 제시했다. 보유세는 ‘합리화’, 양도세는 ‘강화’, 거래세는 ‘완화’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지나치게 낮게 적용돼 온 보유세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양도세는 투기를 제어할 만한 단계까지 강화하고, 대신 거래동결을 막기 위해 거래세는 인하해야 한다는 것.



 한덕수 부총리의 세제 개편 원칙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율 적용을 놓고 의견이 크게 갈렸다. 현행 제도는 3주택 이상에 대해서만 60% 단일세율을 매기고 있는데, 2주택자부터 60% 단일세율을 적용하고, 3주택자에 대해서는 70%로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종합부동산세도 캡(cap,증가상한선)을 벗겨 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재경부 세제실을 포함한 온건파의 판단은 좀 달랐다. “양도세가 70%가 부과된다고 치자. 양도세에는 주민세 등 여러 가지 세금이 덧붙는다. 실질적인 세부담은 90%가 넘는다. 여기에 거래수수료 등 부가비용이 더해지면 원금이 깨질 수도 있다. 종합부동산세 역시 캡을 씌워야 한다. 종부세 상한선을 지난해 납세액의 1.5배에서 3배 정도로 높이면 투기억제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백만 차장은 “캡을 씌우지 않으면 극소수이긴 하지만 일시적으로 10배 가까운 세 부담을 안길 수 있고, 이 정도 수준이면 세금이 아니라 징벌이라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재경부는 수도권 주택에 대한, 특히 중대형에 대한 총수요와 총공급을 전망하고 수급을 맞추는 ‘그림’이 딱 나와 줘야 시장에 먹힌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이 같은 재경부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대신 새로운 강남수요 대체지는 투기가 작용하지 않는 국·공유지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파·거여·마천 지역 200만평 신도시계획은 이렇게 탄생했다. 일부에서는 송파가 이 총리 아이디어라고 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건교부에서 제안한 여러 후보 리스트 가운데 송파를 찍은 셈이다.

 종합부동산세를 ‘개인별 합산’에서 ‘세대별 합산’으로 전환시킨 결정도 논란이 심했다. 그러나 지난 2003년 위헌판정을 받은 금융소득 부부합산과세와는 달리 위헌을 피할 수 있다는 법률전문가들의 보고서를 믿고 전격적으로 도입이 결정됐다.

 주택과 땅(나대지 등)을 합산하는 방법도 검토가 됐다. 정문수 경제보좌관은 “이건 복잡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겁이 나서 결정을 못 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8·31대책 자체가 정책을 입안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일’이었다. 우선 10·29대책의 실패를 딛고 서야 했다. 10·29대책을 발표한 뒤 당시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이번 부동산정책은 현행 헌법체제 아래에서 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모든 분야의 대책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 강력한 정책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더 이상의 정책은 ‘사회주의식’밖에 없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오락실 두더지처럼 한쪽을 잘못 찍어 누르면 어느새 다른 쪽이 더 강하게 튀어나오는 것이 바로 부동산시장이다.

 김석동 차관보는 “정책의 판이 워낙 크니까 무서운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면서, “그래서 건교부와 재경부, 행자부, 국세청 등 정부부처들이 처음부터 힘을 모아 협의해 나갔고, 당정협의를 거치면서 계속 여론을 수렴해 나가는 사상 초유의 정책 형성단계를 거친 것”이라고 말했다. 

 정문수 보좌관은 기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세제 면에서는 우리가 구상했던 것보다는 약화됐다. 2주택 양도세·중과세는 지난 6월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결심이 선 것이었다. 올해 5·4대책(내년부터 2주택 양도세 실거래가 과세, 2017년 보유세 실효세율 1%)을 내놓을 때만 해도 부동산이 이 정도로까지 문제가 될 줄 몰랐다. 나이브했다. 8·31대책은 1주택자는 최대한 보호하고 2주택부터는 거기서 부동산 이익을 얻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번 대책으로 거품 형성 전 집값 수준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세대별 합산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위헌을 제기해도 위헌결정이 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처음에는 주택과 나대지까지 합산해서 종부세를 매겨 볼 것도 검토했는데, 세율체계가 복잡하고 나대지 판정기준도 간단치 않아 포기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겁도 났다. 세대별 합산을 하면서, 주택과 나대지까지 같이 묶어 버릴 경우 도대체 세금이 얼마나 될 수 있는지, 어떤 반발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겁이 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통해 탄생한 8·31대책은 부동산가격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공급대책의 일환으로 발표된 송파신도시 때문에 언론의 맹공을 받기도 했다. 대책팀으로서는 억울한 내용도 많았다. 8·31대책 훨씬 이전의 이 지역 주택값 인상분까지 8·31대책의 영향으로 뒤집어쓴 것.

 정부는 “국세청의 최정예 부대 52명을 투입해 투기단속을 하겠다”면서, “송파 투기자는 평생 관리하겠다”고도 했다. 시장전문가들은 “솔직히 송파지역으로 들어가서 먹을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고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다. 8·31대책에 대한 정부 의지나 정책설계도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8ㆍ31대책은 이제 정부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장에서 작동하고 시장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