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53) 국립극장장이 성과에 따라 책정되는 연봉 체계에서 올해 1억2000만원으로 중앙부처 공무원 가운데 최고 연봉을 기록해 화제가 되고 있다. 배우였던 그가 행정가로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국립극장은 과거에 비해 무엇이 달라졌을까.
 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연장인 국립극장. 1950년 아시아 최초의 국립극장으로 건립된 이후 우리의 문화수준을 끌어올리는 문화리더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일반 행정기관으로서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던 국립극장에 2000년 최초의 공채 출신 극장장으로 김명곤씨가 취임했다.

 그는 공익성과 예술성, 효율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국립극장 혁신에 나섰다. 국립극장은 일반 행정기관이었던 1999년보다 연 관객은 20여만명에서 40여만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고, 재정자립도도 7.5%에서 17.5%로 대폭 늘었다. 70%선이던 공연장 가동률도 90%로 높아졌고, 유료관객 점유율도 20%대에서 49.5%로 상승했다. 그는 운영의 비효율성을 없애고, 기획·홍보·마케팅 역량을 최대로 발휘해 극장 가동률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영화 <서편제>에서 딸(오정해 분)에게 약을 먹여 장님이 되게 한 후 소리를 가르친 유봉 역으로 유명한 그를 국립극장 사무실에서 만났다.



 국립극장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 극장직원들이 일하는 분위기는 말 그대로 공무원이었죠. ‘안 왔으면 좋겠다’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공연을 보러 오면 직원들의 마음자세가 달라 보이더군요. 국립극장의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영혁신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데 치중했습니다. 관객을 유치하고 홍보와 마케팅에 치중하면서 자립도가 두 배 반 이상 높아졌습니다. 이제는 전체적인 측면에서 프로그램의 예술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1기의 경영성과를 바탕으로 내실 있게 프로그램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죠.

 국립극장을 운영하는 건 세 마리의 토끼를 잡는 걸 말한다고 합니다. 예술성과 공익성, 효율성이 그것입니다. 그동안 국립극장으로서 공익성에 무게를 뒀다면, 이제는 한국 최고의 극장으로서 예술성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예술성에 주력하기 위해 예술감독제도를 정착시켰습니다. 기존의 구시대적이며 권위주의적인 단장제를 없앤 것입니다. 초기에는 150명에 이르던 직원을 75명으로 줄였습니다. 서구식 제도의 도입에 상당한 진통도 있었죠.  쉽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프로덕션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초기의 하드웨어에서 이제는 무게중심을 소프트웨어로 옮긴 것입니다. 예술단체들이 극장에 의지한다면 독자적 경영이 어렵습니다.”



 국립극장을 새롭게 변모시켰습니다. 하지만 돈 버는 것과 예술성과는 반비례합니다. 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첫 1년간은 침체돼 있던 각종 실적을 올리기에 열중했습니다. 1년간의 실적을 평가해 본 결과 두 배 반 정도가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많은 실적을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대관료 올리고 티켓 가격 올리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지만 국립극장의 경영이 그래서는 안 됩니다. 국립극장은 돈 안 되는 작품과 싸우고 있습니다. 시장성이 취약한 국악, 창극, 무용 등의 장르를 위축되지 않고 창작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국립극장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현재 국립극장의 재정자립도는 17.5%입니다. 제가 오기 전에는 7.5%였습니다. 18%대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서도 보통 15~30%의 재정자립도를 적정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경영성과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술경영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습니다.

 “예술경영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지 10년이 채 안 됐죠. 영국 국립극장장인 트레버 넌은 국립극장 운영을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놓인 외줄을 바퀴 하나짜리 자전거로 건너면서 동시에 접시를 돌리는 것에 비유합니다. 저는 그의 말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양 절벽은 예술과 경영을 말합니다. 외발자전거를 탄다는 건 균형감각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죠. 거기다 접시까지 돌리는 건 관객을 의식한다는 걸 뜻합니다. 이처럼 예술경영이란 균형감각을 가지고 고객을 의식하면서 그들을 기쁘게 하고 만족스럽게 하는 과정입니다.”



 예술경영과 일반경영과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바로 예술작품입니다. 창조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창작의 기본요소입니다. 하나의 예술작품을 내놓는 것은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입니다. 예술가의 섬세한 능력이 중요하죠.

 일반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판에 박은 듯한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던 걸 이제는 타깃고객을 상대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 생산합니다. 예술가들도 예전에는 ‘볼 테면 보라’는 식이었죠.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창조자와 수요자 사이에 호흡을 같이 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국립극장도 예전에는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한 일도 이러한 일방향을 쌍방향으로 바꾸는 작업이었습니다. 극장장과 직원 간의 이해와 신뢰, 함께하는 경영을 펼친 것입니다. 직원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참여하게 했습니다.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도 개발하고, 창조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극장이 관객을 외면한 채 홀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타깃관객 개념을 도입해 맞춤형 작품을 시도한 것이 한 예입니다. 어떤 관객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 작품을 구상하면서부터 모든 것을 맞춥니다. 맞춤형 작품의 경우 성공적인 경우가 많았고,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한류가 요즘 이슈입니다. 극장장께서도 한류의 유지와 확산에 관심과 걱정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한류는 문화강국으로서 이미지를 키우기 위한 좋은 기회입니다. 한류의 확산 방법론을 제시하신다면.

 “영상물은 동시다발적이며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연물은 시간적·공간적인 한계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술작품이 지니는 영향력은 대중문화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10여년 전 한창 홍콩영화가 인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지 않습니까.

 이에 반해 예술작품은 그 영향이 오래가고, 특히 오피니언리더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류도 핵심적인 문화예술계를 겨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네트워크가 잘 짜여져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지난 6년간 국립극장의 문화네트워크는 굉장히 넓어졌습니다. 세계 400여개의 페스티벌에 국립극장을 소개해 그들과 연결되면서 해외네트워크를 형성했습니다. 외국의 뛰어난 예술가를 초빙하기도 하고, 우리 예술가를 파견하면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해외교류에 있어 틀을 잡았다고 봐도 될 겁니다.”



 해외네트워크를 통한 우리 공연물의 성공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죠.

 “리어왕을 국악과 한국무용으로 연출한 <우루왕>은 지난 5년간 해외 페스티벌의 개막작품으로 공연돼 왔습니다. 터키 국립극장 등에서는 기립박수를 받으면서 주변 나라에 퍼질 수 있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코리아판타지>는 세계적인 안무가인 피나 바우쉬씨가 국립무용단의 전통 레퍼토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작품입니다. 독일 전역에서 순회공연을 펼쳤으며, 세계 각국에서 공연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연출가 에릭 비니에씨는 지난 2002년 국립극장을 처음 방문하면서 프랑스의 고전이면서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품인 <귀족수업>에 한국음악과 무용을 섞어 <귀족놀이>라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도 내년 프랑스 5개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하게 됐습니다.

 국립극장은 조만간 ‘국제아트마켓’을 열 계획입니다. 한마디로 공연예술작품의 시장판을 벌이는 겁니다. 우리나라와 외국의 작품을 소개하는 판이죠.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되는데 외국 바이어들도 많이 참여할 것으로 보여 우리 예술작품을 수출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했다기보다는 세계적인 것을 한국화한 역발상이 돋보입니다.

 “미국 할리우드의 느낌이 동양인의 얼굴로도 먹힌 겁니다. <우루왕>의 경우 ‘리어왕을 어떻게 해석했나’가 중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리어왕을 서구적으로 해석한 반면, 우리는 씻김굿, 국악 등 전통적 어법으로 해석했습니다. 해외 전문가들은 충격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익스피어가 한국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국립극단의 <떼도적>도 쉴러의 원작을 한국적으로 만들어 독일에서 반응이 좋았습니다. 독일 만하임국립극장 ‘쉴러페스티벌’의 폐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만하임국립극장은 이 작품을 보고 우리와 자매결연을 맺고 싶다고 했죠.”



 해외에서 우리 공연이 기업들의 상품 수출로 연결된 사례도 있었나요.

 “물론입니다. 특히 콜롬비아 보고타, 터키, 튀니지 등의 공연에서 그랬습니다. 삼성이나 LG 등 대기업의 지사장들이 공연 한 번으로 연매출의 4~10%를 올렸다고 말하더군요. 신문 1면에 한국 관련기사가 난 것도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튀니지에서는 대기업에 협찬을 부탁했지만 처음에는 심드렁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기업 지사장은 공연 후 리비아도 같이 가자고 졸랐습니다. 문화의 힘을 느낀 거죠. 어떤 대사님은 10년 외교를 하루에 다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공연작품이 국가 브랜드를 업그레이드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극장장께선 올해로 임기를 마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여기서 근무하면서 계절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봄이면 개나리와 진달래에, 요즘엔 솔바람이 정말 시원합니다.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더 연임하면 거의 10년을 극장장으로 지내게 됩니다. 한 사람이 너무 오래하다 보면 정체되기 마련입니다. 조직도 정체되겠죠. 새로운 극장장이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때죠. 한 사람으로서의 한계도 있고,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 연극도 하고 싶고, 뮤지컬도 만들고 싶습니다. 영화감독도 하고 싶고요. 특히 전통적인 것을 현대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국립극장장을 6년간 하셨습니다. 이러한 경력이 외부에서 발현될 수 있는 자리도 많을 것 같은데요.

 “글쎄요… 외국의 극장장은 예술가로서는 사실 최고의 영예입니다. 차관급 이상의 예우를 받습니다. 러시아 볼쇼이극장장은 장관급 이상의 예우죠. 연출가가 대부분 맡지만 배우가 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지금은 외부에서 뭘 하고 싶다는 특별한 욕심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공무원이 극장장을 하다가 예술인이, 그 다음에는 전문경영인이 맡고 있는 추세입니다. 새로운 트렌드 아닌가요.

 “그런 방향으로 가야 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외국에서는 예술감독과 행정·경영감독이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원화돼야 하지만 예술감독이 중심이 되고 경영감독은 지원체계가 돼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예술감독제가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에 가면 예술과 경영 간의 갈등이 심합니다. 예술경영·행정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연극에는 우연히 발을 들여 놓았다고 들었습니다. 기자ㆍ교사 등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계신 적도 있었습니다. 왜 연극에 뛰어들었나요.

 “연극은 ‘느닷없이’ 시작했습니다. 펑크난 대역을 떼우면서 입문했죠. 수익 없는 연극인생을 산 지 15년이 넘었습니다. 20살 때 입문했지만, 사실 졸업할 때까지도 연극인으로 살 생각이 없었습니다.

 첫 직장이었던 <뿌리깊은 나무>에서 기자 생활을 하는데 연극이 하고 싶어 미치겠더라고요. 그래서 학교로 갔습니다. 방학 때 연극할 수 있겠다 싶었던 거죠. 교사극단에 들어가 연극을 했죠. 연극반 만들어서 학생들과도 연극을 했어요. 하지만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교사도 관두고 연극인의 길로 들어섰죠. 처음에는 자신만만했습니다. 1~2년 고생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밥 굶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죠. <서편제>로 뜰 때까지 7~8년 동안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돈 걱정만 없다면 연극만 하고 살면 제일 좋겠습니다.”



 보통 연극인들이 생계비도 못 벌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회나 국가에서 시스템적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나 방안은 없을까요.

 “소득 3만달러 시대가 되면 가능할 겁니다(웃음). 프랑스의 사례를 보면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프랑스에는 예술가들을 위한 각 장르별 보험제도가 있습니다. 1년에 두 편 출연하면 정부가 최저생계비 정도의 수당을 지급합니다. 국가로서는 어마어마한 투자죠. 소극장에도 기본 운영비가 지급됩니다. 작품에 대한 지원제도도 따로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예술활동을 하도록 국가가 시스템화한 거죠. 하지만 프랑스도 엄청난 재정부담으로 인해 축소하고 있습니다.”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기업의 메세나 활동도 대기업 위주로 추진되는 등 문제가 많습니다. 또 지원 분야도 돈 되는 뮤지컬, 오페라, 발레 등에 편중돼 있는 느낌입니다. 전통예술이나 연극 등에 대한 지원은 소홀합니다. 예술의 부익부 빈익빈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무엇보다 CEO의 마인드와 취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 기업들은 서구문화에 지원하는 경향이 큽니다. 우리 전통문화에 지원해 달라고 얘기해 봐야 구걸하는 것 같을 정도입니다.

 전통문화에 대한 지원에서는 세금감면 등 더 많은 혜택을 주면 안 될까요 (웃음). 아마 금방 고쳐지진 않을 겁니다.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국립극장은 르노삼성자동차와 3~4년째 파트너십을 맺고 있습니다. 르노삼성은 처음에 문화스폰서의 방향을 한국 고객들에게 자신들의 좋은 이미지를 심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국립극장에 대해 테스트를 하면서 문화마케팅 측면에서 분석적·논리적으로 접근하더군요.

 한국 기업들은 감각적이거나 자신들의 취향 위주로 접근하면서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기적인 행사 지원에 치우치기도 합니다.”



 기업의 CEO들에게 문화마케팅의 정도(正道)를 말씀해 주신다면.

 “국립극장과 르노삼성과의 파트너십 형태가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르노삼성은 파트너십을 맺기 전에 국립극장에 대한 분석을 먼저 했습니다. 처음에는 무료공연인 토요문화광장부터 지원하기 시작해 열대야페스티벌, 정월대보름축제, 전통국악창작가요제 등으로 범위를 점차 넓혀 나갔죠. 이러한 전략적인 문화마케팅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이용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신뢰하고 서로 상생하는 장기적인 관계를 맺는 겁니다. 문화마케팅은 10~20년의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기업 특성에 맞게 집중적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올해 대통령, 총리 다음인 세 번째로 많은 연봉을 받는다고 화제가 됐습니다. 다시 수입이 일정치 않는 연극인으로 돌아가야 되는군요.

 “지금은 실업대책이 시급합니다(웃음). 저보다는 집사람이 초긴장 상태입니다. 사실 예술가에게 매달 들어오는 고정적인 월급은 독(毒)입니다. 현실에 안주하게 되니까요. 새로운 도전에 겁을 먹게 되는 거죠. 저도 더 늙기 전에 에너지를 새롭게 쏟아붓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극장장으로서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었나요.

 “극장장으로서 ‘못 이룬 꿈’이 있습니다. 국립극장이 지금 이대로이어선 안 됩니다. 시설도 낡았고, 오래돼 공연자나 여기를 찾는 사람이 너무 불편합니다. 지방문예회관도 국립극장보다 훨씬 좋습니다.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국립극장을 특화해 전용극장으로 바꿔야 합니다. 얼마 전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업무보고시 국립극장 맞은 편 자유센터 부지를 매입해 창극·무용·어린이 전용극장 3개를 짓자고 말했습니다. 종합선물세트 식의 극장이 돼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국립극장은 공연예술 부흥을 위한 국립공연센터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립극장 일대를 문화단지로 조성했으면 합니다. 10년 정도의 장기계획을 세우면 예산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극장장이 이 일을 꼭 해줬으면 합니다.”



 국립극장이 명실공히 예술적인 품격을 갖추고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기관으로서 입지를 다지게 한 그는 내년이면 다시 가난한 배우와 연출가로 돌아간다. 일생을 바쳐 ‘예술의 마귀’가 되고 싶은 그가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예술혼을 어떻게 뿜어 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