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김 두 장관은 “피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선뜻?”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양측 참모들 사이에서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격론만 오가고 있다고 한다.
 린우리당의 주요 대선후보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괴롭기 짝이 없는 처지다. 측근들 표현을 빌면, 정치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작년 4월 총선 때, 두 사람은 여당의 투톱으로 선거를 이끌었다. 그 결과는 대성공. 불과 47석짜리 미니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152석이라는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했던 것이다. 이어 선거가 끝난 지 두 달여쯤 뒤, 정·김 두 장관은 나란히 입각했다. 명분은 좋았다. 여당의 주요 대선후보로서 국정운영  경험을 쌓게 하겠다는 게 노무현 대통령의 구상이었다.

 그로부터 1년 반 가까운 세월이 지난 요즘, 두 사람은 당 복귀를 준비 중이다. 노 대통령도 공개적으로 ‘더 이상 붙잡지 않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두 사람은 대권 수업을 마치고 금의환향을 하는 심정이어야 할 듯싶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다. 정·김 두 장관은 정치적 위기라고 불러도 될 만큼 힘든 상태다. 우선 장관으로 있는 동안 두 사람의 지지율은 크게 떨어졌거나, 제자리걸음이었다. 여권은 두 사람이 장관을 하면서 국민들 사이에 새로운 이미지도 심고, 이에 따른 지지율 상승도 기대했다. 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떤 정파에도 속하지 않은 고건 전 총리,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승승장구하듯 지지율을 끌어올린 반면, 두 사람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두 사람의 단순 지지율을 합친 수치가 고 전 총리나 박 대표, 이 시장 한 사람의 지지율만 못 한 상황이 돼 버렸다. 물론 두 사람의 잘못이라고만 하기는 힘들다. 두 사람의 지지율 하락은 노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전반의 동반추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권의 주요 대선후보로서, 1년 반 전 입각하겠다고 나섰던 두 사람의 정치적 도박이 실패한 것만은 분명하다.

 더 답답한 것은 바닥 모를 수렁에 빠져 버린 지금의 여당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은 작년 총선 이후 실시된 각종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올해 실시된 재·보선에선 선거가 실시된 27곳에서 한 군데도 이기지 못하는 ‘27:0’이라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이 와중에 노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온 ‘열린우리당 문희상 체제’가 무너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정·김 복귀론’이다. 여당의 대표 선수들을 불러들여 내년 5·30 지방선거에서 정면승부를 걸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쉽지 않다. 10%대 중·후반에 머물고 있는 지금 여당의 지지율로는 전국 어디에서도 승리를 점치기 어렵다. 특히 지방선거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시장이나 경기지사 선거의 경우, 한나라당은 입후보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는 반면, 여당에선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여당 내 패배의식을 씻어 내고 분위기를 반전시킬 카드로 등장한 게 정·김 두 장관이 당에 복귀해, 내년 2월로 잡힌 전당대회에서 두 사람이 당권을 놓고 1차 승부를 벌이고, 여기에 모아진 국민적 관심을 바탕으로 지방선거에 나가자는 논리다. 그러나 여권 어느 누구도 이렇게 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이렇게라도 해보자’는 심정이다.

 그러나 이 카드에 치명적 위험이 있다. 우선 정·김 두 사람이 내년 전당대회에서 맞붙었을 경우, 여기서 진 사람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게다가 지방선거에서마저 또 다시 참패한다면, 여당은 2007년 대선에 쓸 카드마저 다 날려 버리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열린우리당은 정당으로서 계속 존재하기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 사분오열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여당 인사들 입에서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김 두 사람은 당 복귀를 앞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당초 두 사람이 내년 초 복귀한다는 것은, 노 대통령은 물론 당사자들과 양측 측근들 모두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던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처럼 정치적 생명을 다 걸어야 하는 올인 상황이 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두 사람 모두 전당대회 출마나 당권 장악은 포기하고, 대신 지방선거 선대위원장을 맡는 방식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임기응변으로 지금 여당의 상처를 수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여당은 다른 무엇보다 반등에 필요한 탄력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여당은 그 동력을 정·김 두 사람의 살신성인에서 찾으려는 듯한 분위기다.

 요즘 정·김 두 장관은 “피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선뜻?”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양측 참모들 사이에서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격론만 오가고 있다고 한다.

 두 장관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노 대통령과 유시민 의원 등 여당 내 친노 그룹이다. 임기 후반에 접어든 노 대통령과, 주요 대선후보인 두 장관 사이엔 어쩔 수 없는 긴장과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요즘 상황은 이런 통상적인 구도 이상의 긴장이 엿보이고 있다. 노 대통령 주변 측근들은 정·김 두 장관의 당권 장악을 ‘레임덕’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농후하다. 청와대 측은 이를 어떻게든 늦춰 보려는 생각이 강할 것이다. 지난 10월 국회의원 재선거 참패 후, 노 대통령이 직접 ‘문희상 체제 구하기’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당시 노 대통령은 문희상 의장 체제가 내년 지방선거까지 계속되길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당 쪽에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는 여당 내부 쿠데타로 좌절됐다.

 정·김 두 사람을 향한 여권의 요구는 거의 불가능을 가능케 하라는 주문처럼 보인다. 두 사람에겐 잔인할 수밖에 없는 연말연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