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에너지 자원 국유화 바람의 끝은?

시아에서 시작된 에너지 자원의 국유화 움직임이 이제는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등 남미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러시아는 2004년 말 자국 내 석유생산량 2위이며 최대의 민간 에너지 기업인 유코스그룹을 해체하고 국유화를 추진했다. 러시아 정부는 유코스에 대해 탈세 혐의를 잡고 자회사인 유간스크네프츠가스를 매각해 벌과금을 납부하도록 지시했다. 결국 유코스의 핵심 석유 채굴 회사인 유간스크네프츠가스는 공매를 거쳐 최종적으로 국영 석유 회사인 로스네프츠로 넘어갔다. 2005년에는 국영 가스 기업인 가스프롬이 러시아 5위의 민간 석유 회사인 시브네프트 지분 75%를 매입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자국 원유 생산의 3분의 1을 국유화하였고 에너지 산업에 대한 국가 통제도 강화했다.

2005년 1월1일에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외국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유전지대 32곳에 대한 통제권을 국가가 환수한다고 발표했다. 외국 기업이 운영하던 유전을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 회사(PDVSA)가 60% 이상의 지분을 갖는 합자회사를 통해 운영하도록 하고 외국 기업에 부과하는 로열티를 종전의 16.6%에서 33.3%로, 소득세는 34%에서 50%로 조정했다.

5월에는 볼리비아가 에너지 산업의 국유화를 선언하면서 외국 회사들에게 에너지 자원의 생산과 유통을 모두 볼리비아 국영 에너지사(YPFB)에 넘기라고 명령했다. 볼리비아에는 브라질 국영 에너지 회사인 페트로브라스를 비롯해 스페인과 아르헨티나 합작회사인 렙솔 YPF, 영국의 브리티시 페트롤레움(BP)과 브리티시가스(BG), 프랑스 토탈, 미국 엑슨모밀 등 국제 석유 회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 중 멕시코와 페루도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자원 국유화에 합류할 것으로 보이며, 쿠바는 조만간 주요 산업을 국유화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원 국유화 경향은 러시아와 중남미 국가들뿐만 아니라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자원 보유 개발도상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자원 국유화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중 하나는 최근 수년간 국제 원유 가격 상승과 함께 에너지 자원의 가치가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세계 원유의 대표 유종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서부텍사스유(WTI)의 2002년 평균가격은 배럴당 26달러였으나 현재는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섰다. 국제 원유 가격 상승과 더불어 천연가스와 석탄 등 다른 에너지원의 가격도 급속히 상승했다.

이에 따라 자원 보유국들은 자국의 부존자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국가의 수익을 보다 더 증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중남미 국가의 경우 1990년대 신자유주의 물결과 함께 추진한 에너지 산업에 대한 민영화가 국부의 해외 유출만을 초래했다는 상황 판단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더욱 확고해 지는 것 같다. 또 다른 원인은 세계 에너지 시장에 중국이 등장하면서 국제 에너지 질서가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등장으로 에너지 질서 변화

종래 원유 수출국이었던 중국은 경제성장으로 석유 수요가 급속히 증가하는데 비해 국내 원유 생산은 정체됨으로써 1996년부터 원유 순수입국으로 전환됐다. 이제 중국은 국내 석유 소비량의 절반가량의 원유를 해외에서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앞으로도 원유의 해외 의존도는 계속 높아질 것이다. 에너지 확보가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된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를 국가 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활발한 에너지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에너지 외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인근 러시아는 물론 에너지 자원 보유국인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 개발도상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2004년 이후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미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남미 국가들을 방문하거나 남미 국가의 지도자들을 중국으로 초청하여 에너지 및 경제협력 협정을 맺고 있다.

최근 중남미지역의 국가들이 에너지를 매개로 반미적인 경제동맹을 구축하는 데에는 세계 에너지 시장에 중국이라는 거대한 투자자이자 거대한 수요자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 국제 에너지 질서의 변화에 따라 자원 보유국들은 부존자원을 자국의 정치·외교적 영향력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에너지 자원의 국유화 경향은 앞으로 세계 에너지 시장의 불안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에너지 자원에 대한 국가통제 강화는 에너지 시장의 투명성을 저하시키고 투자의 위험성을 증가시킬 것이다. 이는 곧 에너지 자원 보유지역에서 국제 에너지 회사들의 투자가 위축되고 에너지 생산이 감소되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자원의 국유화 경향은 이미 세계 원유 공급을 감소시켜 최근 원유 가격 상승 요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제2위 산유국인 러시아가 에너지 산업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면서 러시아의 원유 생산 증가율이 크게 둔화됐기 때문이다. 2005년 러시아의 원유 생산 증가율은 2.4%에 머물렀는데, 그 이전 7년 동안 원유 생산의 연평균 증가율은 8%였다.

자원 국유화 경향은 에너지 소비 세계 10위, 석유 소비 세계 7위인 우리나라의 에너지 확보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고 현재 4% 수준인 석유의 자주개발 비율을 2013년까지 15%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해외 유전개발 투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자원 국유화의 경향은 우리의 목표달성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특히 남미는 우리의 해외 석유 개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지역으로 국유화 조치가 확산될 경우 기업들의 투자손실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에너지 자원의 국유화 경향으로 인해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진출할 때 정부의 역할이 더 확대되고 정부의 자원외교도 더 강화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원 보유국 정부가 해당 국가의 자원개발을 주도하는 상황에서는 정부 간 협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자원 보유국들은 자국의 자원개발 사업을 참여국과의 전략적 관계 구축에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므로 참여국 정부와의 협상을 선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자원 보유국들이 자원 산업에 편중된 경제구조를 탈피해 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진출할 때 플랜트, 조선, 통신 산업 등 국내 주력산업과 연계하여 함께 진출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3차 오일쇼크 진짜 없을까?

김현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최근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급등세가 지속되고 있다. WTI(서부텍사스중질유) 가격은 배럴당 70달러 초반 대에서,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60달러 후반 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석유 수급이 빠듯한 상황에서 ‘이란 핵문제’, ‘기타 산유국 공급 불안’, ‘미 휘발유 시장의 공급 차질 우려’라는 3중 악재가 가세하며 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최근 석유 시장의 뇌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이란 사태가 악화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예측도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초유의 유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나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아직 크게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1~2년 전부터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50달러를 차례로 돌파할 때마다 나왔던 ‘3차 오일쇼크론’은 어느덧 호들갑이 돼버렸다. 지나친 고유가로 인한 석유 소비 감소를 우려하던 OPEC에서조차 이제 세계 경제는 유가 60달러 시대와 공존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최근의 유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패닉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1, 2차 오일쇼크와 비교할 때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 것인가.

흔히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에너지 위기의 전형은 1970년대 에너지 소비국들의 경제를 마비시키다시피 했던 두 차례의 오일 쇼크이다. 두 차례의 오일 쇼크는 물량 위기의 전형적인 사례로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1979년 2차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1차 오일쇼크는 1973년 가을 발생한 제4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발생했다.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전쟁을 계기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 산유국으로 구성된 OAPEC(아랍석유수출국기구)은 친이스라엘 정책을 표방하는 미국, 네덜란드 등의 국가에 대한 금수조치와 생산량 자체의 삭감을 단행했다. 중동 산유국들에 의한 돌발적인 석유 공급 삭감은 원유 가격의 폭등을 야기한 결과, 배럴당 2.9달러였던 두바이유 고시 가격은 1974년 1월에 11.65달러까지 오르게 된다. 3개월 만에 무려 4배나 폭등한 것이다. 1978년 12월 호메이니의 주도 하에 이란이 회교혁명을 일으키면서 OPEC의 원유 수출 2위이던 이란은 원유 수출을 전면 중단하게 된다. 이로 인해 2차 오일쇼크가 발생했으며, 2차 오일쇼크를 계기로 원유 가격은 다시 3배나 급등하게 된다.

최근 유가 급등 1, 2차 오일쇼크와 달라

1, 2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불과 5, 6년 만에 10배에 달하게 된 원유 가격의 폭등으로 인해 세계 경제는 대불황에 빠졌다. 또 석유 소비국과 석유 생산국 사이에는 막대한 부(富)의 이전이 이뤄지게 됐다. 1974년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두 자리 수의 물가상승률과 마이너스 성장이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1973년 6.4%였던 세계 경제성장률은 1974~1975년 중 연평균 1.1%로 성장세가 둔화됐다. 불황으로 인해 세계 원유 수요도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2차 오일쇼크 이후에도 세계 경제는 생산비용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교역 조건이 악화되면서 디플레이션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979년 4.1%에 달했던 세계 경제성장률은 1982년 0.2%로 하락했다. 원유 수요도 80년 이래 4년간이나 감소세를 지속했다.

1, 2차 오일쇼크는 한국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석유 위기로 인한 세계 경제의 침체는 수출주도형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또 높은 석유의존도와 중동지역 의존도는 유가 급등으로 인한 충격에 기름을 부었다. l차 오일쇼크 당시 우리나라의 석유의존도는 54%, 2차 오일쇼크 당시 석유의존도는 63%에 육박했다. 또 당시 우리 경제는 대부분의 원유 도입을 중동지역에 의존하고 있었다.

반면 최근의 유가 급등은 이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첫째, 과거의 오일쇼크가 돌발 상황에 따른 공급충격으로 단기간에 유가가 급등한 반면, 최근 유가는 세계 경제성장에 따른 수요 증가로 유가가 비교적 시간을 두고 상승해 왔다. 따라서 경제가 유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둘째, 1,2차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경제가 유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내성을 확보하게 됐다. 70년대에 비해 석유의존도는 감소했으며, 에너지 효율은 개선됐다.

셋째, 실질가격 및 실질실효가격 기준으로 볼 때 최근의 국제유가는 과거 1, 2차 오일쇼크에 비해 아직 낮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가격 기준으로 보면 올해 1사분기 국제유가는 1차 오일쇼크기보다는 높지만 2차 오일쇼크기에 비하면 76% 수준에 불과하다. 물가상승률과 석유 소비 의존도를 함께 반영한 실질실효가격 기준으로 보면 올해 1사분기 국제유가는 2차 오일쇼크기의 49%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실질실효 기준 유가로 판단할 때, 국제유가가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배럴당 70달러 이상이 될 때로 판단된다. 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수준이면, 세계 경제는 1차 오일쇼크 시에 상응하는 충격이 예상되며, 배럴당 115달러 수준에 이르면 2차 오일쇼크 시에 상응하는 심각한 경제적 충격이 발생하며 불황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배럴당 115달러 수준의 고유가 시대는 도래할 것인가.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거나 경제제재를 가하고 이에 따라 이란이 보복성 석유 감산을 단행하는 경우, 또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국제유가가 단기적으로 배럴당 100달러 이상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위기 대응의 측면에서 볼 때 1, 2차 오일쇼크 때와 비교해 가장 큰 다른 점은 석유 수요국들의 비축 능력으로 인해 공급 측면의 안전망을 일정수준 확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70년대 발생한 두 차례의 오일쇼크는 석유에 대한 각국의 필사적 욕구를 강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이후 석유는 군사적인 전략 물자뿐만이 아니라 경제안정을 위한 필수 재화로서 각국의 전략적 확보와 비축의 대상이 돼 왔다. 또 IEA(국제에너지기구)는 26개 회원국에 90일분 이상의 석유비축을 의무화하도록 하고 있으며, 그 결과 회원국들은 현재 40억 배럴의 비축분(이 중 14억 배럴이 정부통제)을 보유하게 됐다. 따라서 공급 차질로 인한 유가 급등 시에는 IEA의 비축유 방출이 패닉에 따른 추가 급등을 억제하고 공급부족을 상쇄하는 기능을 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