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5월10일 염동연 열린우리당 사무총장이 오찬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5·31 지방선거를 20일 가량 앞둔 시점이었다. 20여명에 가까운 기자들을 만나자 염 총장은 한숨부터 쉬었다. 그는 사실 5·31 지방선거 결과엔 큰 관심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염 총장은 “솔직히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에 대한 언론인들의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어서 오늘 이 자리에 초대한 것”이라고 했다.

당시 상황은 5·31 지방선거가 20여일이나 남았는데도, 선거 판세는 이미 끝나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열린우리당과, 경쟁자인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율 차이는 여론조사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15%포인트 가량 벌어져 있었다. 지역별로는 20%포인트 이상 차이 나는 곳도 많았다. 게다가 16개 시·도지사에 출마한 후보들의 지지율 격차는 더 컸다.

열린우리당이 기대를 걸었던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의 선거 20일 전 판세는 사실상 절망적이었다.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가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에 20%포인트 가량 뒤졌고, 진대제 후보도 김문수 후보에 15~20%포인트, 최기선 후보도 한나라당의 현역 시장인 안상수 후보에 20%포인트 이상 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16개 시·도지사 중 한나라당이 11곳 이상, 열린우리당이 대전과 전북 2곳 정도, 민주당이 2곳에서 승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던 상황이었다.

이렇다 보니, 국회 다수당이자 집권당의 사무총장이 선거를 20일 앞두고 기자간담회를 갖고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얘기해 달라”는 말까지 하게 된 것이다.

염 총장뿐만이 아니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5·31 지방선거 한 달을 앞두고 대부분 ‘5·31 이후(以後)’에 대해서만 얘기하려 했다. 애써 ‘지방선거 승리’를 역설하는 당 지도부의 모습과 대조를 이뤘다. 당 지도부 입장에선, 질 때 지더라도 지지층이 패배의식에 빠져 아예 투표장에조차 나오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의 분위기는 달랐다. 현장에서 지방선거 지원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어야 할 의원들이었지만, 일찌감치 일손을 놓은 듯했다. 오히려 지방선거 이후 밀어닥칠 정치권 재편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지 않아도 2월 전당대회 때부터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 당이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던 탓에 이런 얘기는 전파력이 무척 강했다. 기자들이 이런 얘기를 보도하기도 하자, 우상호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의원들에게 선거 끝날 때까지만 이라도 이런 비관적 전망을 하지 말아달라고 ‘함구령’이라도 내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대다수의 여당 의원들이 우려하고, 예견했던 것처럼  5·31 지방선거 이후의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총체적 위기를 맞게 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많은 것을 잃었다. 무엇보다 여권의 대선후보들이 직접 선거를 진두지휘했지만, 별 다른 힘도 써보지 못한 채 패배했다는 게 충격이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1, 2위로 뽑힌 정동영 당 의장과 김근태 최고위원이 주축이다. 이들은 지난 3년 반 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여권을 이끌어 온 인물들이다. 이번 선거 패배를 계기로, 이들 두 후보만으로는 1년 반 뒤의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지 않느냐는 얘기가 여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두 사람 입장에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정·김 두 사람이 장관직을 마치고, 당에 돌아올 때 지방선거 패배는 어느 정도 예견됐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지지층 붕괴로 ‘속앓이’

노무현 정부 3년을 지나면서 민심이 등을 돌린 탓에, 올해 초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15% 안팎으로까지 떨어졌었다. 도저히 집권당의 지지율이라고 하기 힘든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정·김 두 사람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선거 지휘를 맡은 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대패한다”는 당내 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여권의 대표적인 대선주자들을 투입됐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선거 패배라는 정치적 책임을 두 사람이 고스란히 끌어안을 수밖에 없게 됐다. 지난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대패했을 때도 ‘노무현 당시 대선후보 책임론’이 나왔었다. 대선후보로 확정된 지 불과 석 달도 채 안된 시점에, 대선을 6개월여 남겨놓고 후보 교체론까지 제기됐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선이 1년6개월이나 남아 있다. 따라서 제3의 후보를 물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질 전망이다.

열린우리당이 이번 선거에서 무기력하게 패한 가장 큰 원인은 지지층의 붕괴다. 무엇보다 호남표의 분산이 가장 큰 이유다. 또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40대 이하 젊은 유권자들도 등을 돌렸다. 결국 앞으로 대선까지 열린우리당은 무너진 지지층을 다시 모으는 데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민주당 분당 이전 상황으로 호남표를 다시 결집시키고, 젊은층과 개혁지향층을 끌어 모을 아젠다를 제시해야 한다. 벌써부터 민주당과의 통합론이 나오고, ‘민주 평화 개혁세력 대연합론’ 같은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필요에서다. 이는 대대적인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계개편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이미 몸값이 뛴 민주당이 호락호락하게 나올 리 없다. 무엇보다 큰 변수는 정치권 밖에 머물면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고건 전 총리의 움직임이다. 만약 고 전 총리가 주축이 된 정계개편이 벌어진다면, 열린우리당의 몸값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권의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기 힘든 문제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지금과 같은 정치 지형을 허물어야 할 절박한 필요는 있지만, 이를 추진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게 여권의 고민이다. 이런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여권의 암중모색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