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너 앙드레김, ‘오리지날 리’의 이신우, ‘이광희 룩스’의 이광희, ‘울티모’의 김동순, ‘마인’의 문미숙, ‘로라’의 한계석, ‘마담포라’의 이철우 등 현재 대한민국 패션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이들의 뿌리는 모두 한 곳이다. 현재 SBS 드라마 <패션 70’s>에서 배우 이혜영씨가 맡은 장봉실 역은 이들의 스승을 모티브로 태어났다. 이 드라마의 타이틀이 이들의 스승이 저술한 책 제목과 동일한 데서도 알 수 있다. 국내 패션의 현대화를 이끈 패션계의 대모 최경자(95) 국제패션연구진흥원 이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8월9일 만난 최 이사장은 은빛의 컬이 진 머리에 곱게 한 화장, 분홍색의 매니큐어에 흑과 백이 어우러진 실크 원피스를 입고 있어 아흔이 넘은 나이를 의심케 했다. ‘패션디자이너 최경자’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인터뷰와 촬영을 앞두고도 그녀의 무릎 위에는 한 권의 패션 잡지가 펼쳐져 있었다.

 “워낙 예쁜 것을 좋아하세요. 보시다가 예쁘다고 생각하시면 불러서 같이 보게 하시죠.”

 최 이사장의 딸 신혜순(68) 국제패션디자인학원 원장의 말이다. 지난해 갑자기 몸에 이상이 왔다는 최 이사장은 현재 거의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여서 딸 신 원장을 통해 최 이사장의 ‘역사’를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최 이사장의 육체적 건강은 양호해 보였다.

 최 이사장은 1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아침 8시 반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일과를 반복해왔다. 일에 대한 열정과 의욕이 넘치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교육자였던 것.  

 “어머니는 일에 대한 열정이 많으신 분이에요. 바쁘신 일정으로 가정적인 어머니의 정은 느끼지 못했지만 패션업계에서의 그 분의 열정과 사회적 공헌은 정말 존경합니다.”

 신 원장에 따르면 ‘최경자’는 개명한 이름이다. 최 이사장이 12살 되던 해, ‘최보배’라는 자신의 원래 이름이 성공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남에게 존경받을 만한 이름으로 바꿔달라고 아버지를 졸랐다는 것. 그러자 아버지는 ‘공경할 경(敬)’자를 사용해 ‘최경자’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었다고 한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어린 나이를 고려하면 여성의 성공한 삶을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패션계에 입문했다. 일본에서 음악공부를 하던 중 고향에서의 갑작스런 화재 소식으로 진로를 바꾼 것.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그녀는 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는데, 그러다 차츰 패션디자인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1933년 ‘동경 오차노미즈 양장 전문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패션공부를 시작했고 그렇게 패션계에 첫 발걸음을 들여놓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패션디자이너로서의 삶만이 아니라 패션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았고 교육자로서도 많은 것을 이뤄냈다.

 “나는 젊은이들을 보면 참 기분이 좋다. 요즘 젊은 후학들을 보면 그들의 뛰어난 감각에 감탄이 저절로 나오기 때문이다.(중략) 디자이너로서보다는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살아온 내 선택이, 내 인생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에 사로잡힌다.”

 최 이사장은 자신의 책 <패션 70년>에서 이렇게 그녀의 종적을 남겼다.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당차게 걸었던 그녀의 선구자적 리더십이 여성경제인 1세대로 주목받기에 모자람이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나폴레옹 같은 분이셨어요. 그만큼 배짱 두둑하고 리더십 강한 여장부였죠.”

 최 이사장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무려 18개나 가지고 있다.  1955년 최초의 디자이너 모임인 대한복식 연우회 창설, 1964년 차밍스쿨 설립, 1968년 최초의 패션전문지 <의상> 창간 등이 대표적인 예다. 1976년에는 편정희 8대 국회의원과 함께 여성경제인협회를 설립해 여성경제인협회장을 역임했고, 1979년에는 명예회장을 지냈다. 1989년 국무총리로부터 모범 여성경영인상을 수상하는 등 여성기업인의 활발한 활동과 여성창업을 적극 지원하는 여성경제인 1세대로서 끊임없이 노력해 지금도 많은 여성기업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최 이사장은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인정하지 않았던 시절, 남편 고 신형균씨의 외조를 받아가며 패션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1세대의 디자인에 대한 감각과 2세대의 패션 마케팅 전략이 오늘날 패션산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요?”(신 원장). 

 1세대 패션계의 대모 최경자씨와 2세대 패션 교육자의 길을 걷는 신 원장. 2대에 걸쳐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모녀의 모습에서 오랜 세월 동안 손맛을 살려 장을 담그는 장인의 모습이 느껴진다.

 현재 신 원장의 가장 큰 소망은 자신이 건립했던 한국현대의상박물관을 다시 살리는 것. 지난 1993년 현대 의상 자료를 수집해 서양 의상의 과거·현재·미래를 한눈에 조감할 수 있는 전문박물관을 건립했지만 경영난으로 현재는 휴관 중이다. 신 원장은 문화관광부의 인가를 받은 이 박물관이 복지가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에 의해 다시 개관돼 패션을 공부하는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