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혼회원 수 1만여명을 넘어선 국내 최대 결혼정보업체 ‘듀오’. 국내에 새로운 개념의 결혼정보업이 뿌리내린 데엔 한 중견기업 2세의 ‘결단’이 녹아 있다. 정성한(43) 듀오 고문. 그는 국내 브레이크 마찰재 1위 업체인 상신브레이크 정도철 회장의 외아들이다. 연간 매출액 1000억 원대 중견기업 후계자 수업도 바쁠 텐데 그는 ‘중매쟁이’ 길로 나섰다. ‘정신 나갔냐’는 소리 들어가며 창업했던 게 ‘결심’이라면, 부친 정 회장의 ‘2~3년 내 답이 나오지 않으면 깨끗이 손을 털라’는 엄명을 깬 건 그의 ‘결단’이었다.
 혼 전 족히 100번은 맞선을 봤다는 정성한 고문. 그는 “당시 ‘마담뚜’ 횡포가 워낙 심했다”고 말한다.

 나가보면 사진과 다른 인물이 허다했고 집안, 학벌도 가짜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유학 시절 미국서 봤던 결혼정보업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는 게 그의 경험담. 그는 “바로 그때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한다.

 “남들은 십중팔구 (결혼정보업에) ‘문제’가 있다고 했어요. 지인들은 ‘왜 그런 일을 하려 하느냐’고 뜯어말렸지요. 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분명 (결혼)시장은 있는데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만 해결하면 비즈니스로선 최상 아닌가 생각했던 거죠.”

 문제는 부친의 반대를 극복하는 일. 그럴듯한 사업계획서에 연간 매출 목표치까지 제시하며 매달렸던 그의 고집에 정 회장이 눈감아주며 내민 돈은 단돈 3000만원.

 미국 미주리대 MBA를 딴 후 1992년 9월 상신브레이크에 입사해 모아둔 5000만원과 은행빚 2000만원을 합쳐 1억원으로 서울 교대에 사무실을 낸 게 1995년 2월이었다.

 어렵게 창업했기에 초기 열정은 남달랐다. 인적 DB 구축이 급선무였다. 업종 특성상 ‘정보력’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각 대학 동문 주소록을 수집하는가 하면 대학가 졸업식에 팸플릿을 돌릴 때 받았던 냉소는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교대역 ‘원룸’ 생활도 이력이 붙어갔다.

 그러나 사업은 안 풀렸다. 2~3년을 죽어라 뛰었지만 매출액은 연간 2억~3억 원 안팎. 직원 월급에 사무실 임대료 빼고 나면 적자일 때가 더 많았다.

 잘 나가는 고급 손님은 소위 ‘마담뚜’에 몰렸고 나머지도 대부분 ‘결혼상담소’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걸어놓은 데드라인인 97년 말은 벌써 눈앞에 닥쳐 있었다.

 “아! 정말 그 땐 미치겠더라고요. 직원들에겐 ‘나를 따르라’고 외쳤지만 퇴근 후엔 혼자 소주잔을 기울였고, 그때는 담배도 하루 2갑은 족히 피웠던 것 같습니다.”

 그의 머릿속엔 ‘고(Go)냐 스톱이냐’밖에 없었다. 뜬눈으로 밤샌 후 아침에 회사에 나가 보면 ‘왜 나는 안 받아 주냐’는 이혼남부터 ‘딸 아이 인생 망쳐 놨다’는 50대 아주머니의 생떼뿐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그의 선택은 ‘여기서 죽을 수 없다’는 것. CEO는 고독하다는 사실도 그때 배웠다.

 일단 부친께는 숫자를 부풀리는 고육책으로 걱정을 덜어드렸다고 한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방송사를 노크했다. 1997년 말 당시 유일한 짝짓기 프로였던 MBC ‘사랑의 스튜디오’에 무작정 찾아갔던 것. 당시 주철환 PD(현 이화여대 교수)에게 ‘남녀 매칭 코너를 만들면 더 재미있지 않겠냐’고 제안했던 그 한마디가 듀오를 살려 낸 ‘결정적 한방’이었다.

 그는 “사업이란 게 참 한순간이더라”며 웃는다. 인지도가 급격히 높아지며 100~200명하던 회원 수가 금세 1000여명까지 불어났던 것. 여기에 기존 회원 간 성혼율이 향상되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1~2년 새 매출액이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것으로 ‘게임 끝’이었다.

 현재 듀오의 회원 수는 2만여명. 성혼회원 수만 1만여명에 달한다. 서울을 비롯, 12개 지사 네트워크를 갖췄고, 미국과 뉴질랜드에 해외 지사망도 뚫은 상태다.

 여기에 2003년 선보인 ‘프로필 매칭 시스템’은 업계에 히트 아이디어로 꼽힌다. 기존 1년에 10회 상대를 소개하던 횟수제에서 탈피, 월 4명의 희망 상대를 추천해 주는 ‘기간제’ 서비스로 전환한 게 회원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회원 수 1위, 성혼커플 수 1위, 시장점유율 1위’란 공식 인정도 받았다. 지난해 매출액은 140억 원. 그가 사업 포기를 결심했던 7~8년 전에 비해 50~60배 이상 불어났다. 실제 얼마 전 일본 <도쿄신문>은 “듀오가 한국서 결혼 방법의 한 모델로 성공했다”는 기사를 냈을 만큼 평판도 자자해졌다.

 정 고문은 “만약 그때 그만뒀더라면 결국 ‘사기꾼’ 소리만 듣다 끝났을 것”이라며 “고집도 부릴 땐 부려야 한다”고 말한다.

 사업 안정기에 접어든 2001년부터 그는 고문 직함으로 일한다. 현재 상신브레이크 부사장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월, 화, 수요일 3일은 대구서 일하고 목, 금요일엔 서울서 듀오 일을 본다.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한때 KBS 앵커였던 신은경씨가 CEO로 일한 적도 있다. 현재는 전문경영인이자 외사촌 형수인 김혜정 대표가 CEO를 맡고 있다.

 정 고문은 인터뷰 말미에 “연간 150회 이상 ‘미팅 이벤트’를 주선하려면 대표가 말 주변도 있고 외향적이어야 하는데 제 성격은 숙맥”이라며 사람 좋은 웃음으로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