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들과 4년 만에 산행에 나선 남영선 (주)한화 사장은 한껏 들떠있었다. 집결시간인 오전 9시보다 30여분 먼저 집결장소인 서울 북한산 평창매표소에 도착해 있었다. 오전 9시가 훌쩍 넘어선 시각, 평창매표소 주변에는 겨우 열댓 명의 임직원들 모습만 보였다. 그러나 남 사장의 얼굴엔 사람 좋은 온화한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지난 4월29일 노동절을 맞아 임직원들과 산행에 나선 남영선 (주)한화 사장을 따라나섰다.

슬 기다림이 지루해진다고 느껴지는 순간, 도로를 따라 왁자지껄한 소음이 밀려왔다. 200여명에 달하는 임직원이 한꺼번에 도착한 것이다. 벌써 지친 얼굴들이었다. 서울 장교동 회사에서 출발한 버스가 평창매표소까지 올라오지 못해 200여m 아래의 가나아트센터 근처에서부터 걸어온 모양이었다.

쉴 틈도 없이 바로 평창매표소 계단을 올랐다. 두 명씩 혹은 세 명씩 짝은 지은 직원들이 길게 줄을 늘어뜨리며 목적지인 대남문을 향했다. 남 사장은 직원들이 모두 계단에 오른 것을 본 후 꼬리에 따라 붙었다.

“4년 전까지만 해도 한화는 매월 임직원 등반대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외환위기와 주5일제 근무를 실시하게 되면서 사라졌습니다.”

남 사장에 따르면 한화의 북한산 등반대회는 1980년대 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 산을 좋아한 김 회장이 몇몇 임직원들과 산행에 나섰다가 등산이 임직원 단합에 좋은 것 같다면서 자주 산에 오르자고 한 것이 시작이라고 유래를 설명했다.

남 사장은 (주)한화가 이어온 임직원 등반대회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그는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하나 될 수 있는 것은 역시 등산이 최고인 것 같다”며 예찬론까지 읊었다. 한 발 더 나아가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서로 협력하면서, 모든 갈등이 사라지고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가는 동료라는 생각만 남게 된다”고 등산 경영론까지 피력했다.

사실 산행이라는 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얼마나 끈적끈적하게 해주는지는 산을 올라본 사람만이 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와 인사를 나누고, 물 한 모금 달라 손을 내밀어도 흘겨보는 이가 없는 곳이 산이 아니던가. 하물며 같은 회사 동료라면 업무상으로는 불편했던 관계였다 하더라도 남만 못하겠는가. 정상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주어졌을 때 모두의 힘으로 낙오자까지 함께 이끌듯이, 가시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경영목표로 인해 흐려질 수 있는 동료의식이 산행을 통해 확인된다는 게 남 사장의 등산 경영론이다.

“임직원 한마음으로 하나 되는 데 등산이 최고”

채 30분을 오르지 못했지만 벌써 낙오자(?)들이 생겨났다.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목을 축이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아예 바닥에 퍼질러 앉아버린 직원도 눈에 띄었다. 그래도 모두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젊은 총각 처녀들이 그런 체력으로 결혼이나 하겠어?”

쉬고 있는 직원들을 추월하며 남 사장이 농담 한마디를 던졌다. 그러나 산을 오를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남 사장의 뒤로 처지는 직원들의 수가 늘어났다. 평창매표소에서 대동문을 거쳐 대남문까지는 북한산 등산코스 가운데 초보자들에게 가장 무난한 코스로 알려지고 있다. 급격한 경사에 의한 오르막길이 없고, 오르막이 있으면 평지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과 평지가 이어져 단체산행으로는 제격인 코스로 정평이 나있다.

대남문을 코앞에 두고 대동문에서 잠시 쉬었다. 절반 이상의 직원들을 먼저 도착한 남 사장이 맞이했다. 4년 만에 처음으로 산행에 나선 남 사장 역시 예전과는 다른 모양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흑석동에서 반포까지 한강 고수부지를 따라 새벽운동을 하고 있지만 젊었을 때 단숨에 올랐던 산행은 더 이상 남 사장의 몫이 아니다.

남 사장의 출근시간은 아침 7시30분. 저녁 술자리도 간단하게 끝낸다.

“홍보팀장 시절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라이프사이클입니다. 그땐 체력관리도 하지 않았고, 매일 주독에 빠져 있었거든요. 지금은 술을 먹어도 가볍게 한 잔 하고 일찍 집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일찍 출근해 업무를 챙깁니다.”

지난해 (주)한화 대표이사 사장으로 부임하기 전, 남 사장은 구조조정본부에서 한화그룹의 대변인인 홍보팀장을 역임했다. 홍보팀장 2년 만에 그의 몸에 이상징후가 나타나 정밀진단을 받기도 했다.

대동문 주춧돌에 앉았던 남 사장이 몸을 일으켜 다시 길을 잡았다. 일부 직원들은 이미 대남문에 올라 있었다.

“한 번 쉬면 이렇게 뒤로 처지고 맙니다. 또 쉬고 난 뒤에 다시 오르려면 그만큼 힘도 들거든요. 사람 사는 것도, 기업을 경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창매표소에서부터 대동문까지, 조금은 힘들더라도 쉬지 않고 한달음에 올랐던 남 사장의 속마음이 내비쳤다. 당장 힘들다고 쉬게 되면 그 다음은 더 힘들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쉬지 않고 오르는 게 오히려 낫다는 것이다. 회사의 경영환경이 좋아졌다고 조금 여유를 부리거나, 목표로 했던 성과에 도달했다고 느슨한 자세를 가진다면 그 반대의 경우엔 오히려 임직원은 물론 회사의 성장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뜻도 함께 담겨져 있었다.

출출했을까. 점심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직원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깔았다. 이들이 짐 보따리를 풀어 펼치자 순식간에 대형 연회장을 방불케 했다. 김밥을 비롯해 과일, 육류, 음료수 등, 이 많은 음식을 누가 어떻게 가져왔을까 아연실색할 정도였다.

“직원들이 배낭에 한두 가지씩 나눠 담아 가지고 온 것”이라는 게 이현규 인사팀 차장의 설명이다.

예전 생각이 떠오르는지 남 사장이 입을 열었다.

“총무과장 시절이었을 겁니다. 구기동에서 쉬지 않고 올라오는데 배낭이 너무 무거워 정말 낑낑대고 올라왔습니다.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무겁나 하고 배낭을 열어보니 수박 한 덩어리가 들어있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은 가능하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국립공원 내에서 취사가 가능해 밥을 해먹는 재미도 쏠쏠했다고 남 사장은 기억을 더듬었다.

한편 남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 200여명은 이날 ‘뉴 한화’ 건설을 다짐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대남문에 집결한 임직원들은 2006년 경영목표 달성을 위한 결의문을 낭독하고, 100% 안전을 기원하는 무재해 기원제에 이어 단합행사를 갖는 등 산상에서의 ‘뉴 한화’ 건설 결의대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남 사장은 “2006년은 ‘New 한화’를 향한 혁신의 첫걸음을 내딛는 의미 깊은 해”라고 전제하고, “경영목표 달성을 위해 필사의 각오로 경쟁우위를 확보하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