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류 제품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할 마지막 관문으로 디자인을 꼽는다. 디자인 경영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다. 런던에서 활동 중인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고시노 미치코씨가 말하는 ‘디자인’.

난 5월, 미치코런던 브랜드를 세계적으로 키운 일본계 디자이너 고시노 미치코씨가 내한했다. ‘미치코런던’은 지난 90년대 국내에서도 꽤나 유행했던 패션 브랜드다. 고시노씨는 미치코런던이 가지고 있는 새 브랜드 런칭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녀를 만나 ‘디자인과 경영’에 대해 물었다.

-디자이너로서 한국의 이미지는 어떤가.

색채가 무척 강렬하다. 일본도 화려하고 원색을 많이 쓰는 나라지만, 한국에 오면 일본보다 진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한국에 오면 주로 강남에 숙소를 정하는데, 다른 지역은 색채가 강렬해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낯설다. 강남은 그런 면에서 다른 지역과 달리 느낌이 익숙하다.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느낌, 이미지를 본다. 최근 2~3년 동안 한국은 최신 트렌드를 수용하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진 것 같다.

-현재 입고 계신 옷차림은 젊은 사람도 쉽게 소화하지 못할 것 같은데, 젊은 취향을 좋아하는가?

내 옷차림에 대해 관심을 갖는 나라는 일본하고 한국뿐인 것 같다(웃음). 내가 살고 있는 영국에서는 지금보다 더 심하게 입고 다녀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사실, 디자이너인 내가 봐도 파격적이다 싶은 건 오히려 내 언니(준코 고시노)쪽이다. 멀리서 봐도 ‘아, 저건 우리 언니 옷이다’하는 느낌이 올 정도다. 동양은 특히 나이가 들면 특정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통념이 있다.

서양과의 문화 차이인데, 나는 입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어떤 옷이든 입을 수 있다고 본다. 내가 살고 있는 영국에서 친구들이 대부분 30대다. 나이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이지만 생각은 얼마든지 내 맘대로 할 수 있지 않은가.

-디자이너는 유행을 창조는 영역인데 영감은 어디서 어떻게 얻는가?

생활 자체가 디자인인데, 먹고 마시고 보는 것 모두 소재가 된다. 영감이란 건 모호한데, 그렇게 생활하다 보면 ‘다음에는 어떤 색상, 어떤 트렌드가 올 것 같다’는 예감 같은 게 자연스럽게 든다. 그게 디자인과 연결되는 것이다.

-자신이 만든 것의 모조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내가 만든 게 예뻐서 따라하는 거니까 개인적으로는 기분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선 분명 피해가 크다. 한국에 진출한 이후에도 한국을 떠날 뻔하기도 했다. 너무 많은 카피 제품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 것을 어떻게 지키고 보호해야하는지 나 스스로도 몰랐다. 내가 디자인한 제품은 나에게 보물처럼 소중한 것이다. 물론, 때로는 모조품을 정품보다 더 잘 만든 경우도 본 적 있지만(웃음). 보물을 지킨다는 인식 아래 제품마다 홀로그램을 부착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2~3년 전부터 한국은 ‘디자인 경영’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산업 전반에 걸쳐 디자인 분야가 주요 관심 영역이 됐다. 외국으로 디자인 공부를 위해서 많이 나가기도 한다. 세계적인 디자인이 학습을 통해서 가능한지 궁금하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디자인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추세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시야를 넓힌다는 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디자인으로 연결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디자인의 핵심은 결국 자기가 보고 자란 것에 있지 않나 싶다. 내가 어떤 옷이나 제품을 디자인했을 때, 그게 어디서 시작된 건지 의식하지 않고 만든다. 그렇지만 만들어 놓고 나서 보면 내가 고른 색상이 어릴 적 집에서 봤던 기모노 색상이었다는 걸 알곤 한다.

고시노 미치코씨의 조부는 기모노를 만드는 장인이었고 부친은 양복 디자이너였다. 모친은 일본의 유명한 여성복 디자이너 고시노 아야코로 고시노씨의 두 언니 히로코씨와 준코씨도 도쿄와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다. 집안 전체가 디자이너인 셈이다.

미치코씨는 “어릴 때부터 재단하고 남은 천 조각, 가위, 재봉틀이 우리들의 장난감이었다”고 회상했다.

-여러 나라에 자신의 브랜드로 패션을 파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디자인과 경영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운가?

당연히 경영이다. 나에게 디자인은 밥 먹고 잠자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경영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훌륭한 경영인을 모시고 나는 내가 잘하는 일을 할 뿐이다. 난 기독교인으로 아침마다 ‘훌륭한 경영 전문가가 지켜주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기도한다. 내가 경영 부분에서 하는 일은 그것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