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외환위기를 거치며 자의든 타의든 많은 변화를 겪어야 했다. 패러다임 자체가 변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경제 뿐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 걸친 변화가 이뤄졌고, 그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기업경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변화의 폭풍을 이기지 못한 수많은 기업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살아남은 기업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또 다른 생존경쟁을 하고 있다. 이 같은 기업경영 환경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투명성 강화다. 개발연대 커튼이 드리워진 밀실에서 담합으로 가능했던 성장방식은 이제 가능하지 않다. 주주들에 의한 감시, 시민단체에 의한 감시, 감독기관에 의한 감시가 한층 강화됐기 때문이다. 앞서 기업들 스스로도 과거와는 달리 스스로의 자정노력으로 투명경영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보다 원활한 업무 처리를 위해, 단기간의 성장을 쫓는 이들에 의해 여전히 존재하는 검은 거래는 이들 직·간접적인 여과장치에 의해 걸러지고 있다. 그러나 여과장치까지 빠져나가는 바이러스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공정거래위원회를 가리켜 재계에서는 ‘경제검찰’이라고 말한다. 이는 정책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다. 때문에 근본적인 처방을 요구한다. 반면 검찰은 ‘수술 집도의’에 비유된다. 근본적인 처방보다는 새살이 돋을 수 있도록 환부만을 도려내기 때문이다. 경제검사를 일컫는 비유다. 엄밀히 한국 검찰에서 경제검사의 개념은 그 의미가 빈약하다. 전문가를 발굴해 육성하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배당사건에 따라 검사 개개인의 학습에 의존하는 시스템이 전부다. 설사 전문가의 반열에 올랐다 하더라도 경제사건에만 집중할 수도 없다. 2년을 주기로 한 순환보직제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경제검사는 존재한다. 경제사건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경제사건을 전담하는 부서도,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검찰청사에 간판을 내걸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

 뉴욕검찰청을 꿈꾸다



 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7층. 많은 기업·기업인들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이곳엔 경제검사들이 포진하고 있는 금융조사부가 자리를 잡고 있다. 검찰청을 통틀어 서울중앙지검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부서다. 725호실 부장검사실에서부터 한 줄로 늘어선 금융조사부 검사실에는 그동안 많은 기업인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웃으며 금융조사부를 찾았던 기업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도살장 끌려가듯 침울한 표정으로 서울중앙지검 엘리베이터의 7층 버튼을 눌러야 했고, 7층 복도를 걸어야 했다. 이 가운데에는 재벌그룹 회장도 있었고 유명 연예인도 있었다. 일부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못하기도 했다.

 검찰청에서는 경제검사의 산실로 불리지만, 재계에서는 저승사자가 버티고 있는 사지(死地)로 부르고 있는 이유다. 



 저승사자가 버티고 있는 사지(死地)

 검찰청은 올 정기인사에서 금융조사부에 2명의 수사검사를 추가로 배치했다. 부부장 자리도 다시 마련했다. 인력난으로 미제(未濟)사건이 쌓여가고 있는 것을 감안한 인사라는 게 게 검찰 측의 설명이다. 또 초대 부장검사 출신의 이인규(48) 검사를 금융조사부를 관장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 임명했다. 이인규 3차장검사 아래에는 박성재(43) 부장검사가 포진, 금융조사부의 야전사령관을 맡았다. 이어 임진섭(41) 부부장검사, 이원석(37)·신호철(41)·손영배(34)·전석수(44)·이주형(36) 검사가 한 팀을 이루고 있다.

 임 부부장 검사는 공적자금수사반 부실채무기업특별조사단에서 근무한 바 있다. 이원석 검사는 지난해 10월 삼성 에버랜드 사건의 주임검사로 활약했으며, 대검찰청 근무 때에는 철도청 유전 의혹 담당검사로 파견되기도 했다. 신호철 검사는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의 공인회계사로 지난해 두산 비자금 사건과 대선자금 수사를 맡은 경력이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과 함께 조사부에 투입돼 두산 사건을 맡았으며, 2003년 대전지검 근무 당시 대선 자금 수사팀으로 차출돼 중수부에 합류했던 것이다. 특히 신 검사는 1998년 변호사로 활동하다 다시 검찰로 돌아와 춘천지검 검사에 임용된 특이한 경력의 보유자다.

 손영배 검사는 공적자금수사반에서 활동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전석수 검사는 신호철 검사와 함께 두산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다. 막내 이주형 검사는 지난해 임진섭 부부장검사가 주임검사를 맡았던 삼성 에버랜드 사건에 투입돼 활동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렇듯 수사검사가 추가 배치되고 이인규 검사까지 지휘라인에 포진하자 재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본격적인 재계 비리 수사가 기획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서다. 금융조사부는 아니더라도 검찰의 수사를 경험했던 기업·기업인들은 이미 새로 부임한 박성재 금융조사부 부장검사를 비롯해 소속 검사들의 면면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모 대기업 법무담당자는 “개인신상에 대한 자료들은 벌써 파악했다”며 “수사 스타일 등에 있어서도 전혀 낯선 검사가 없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금융조사부가 경제검사의 산실로 재계에 두려움의 대상으로 부상한 것은 ‘SK 회장실 습격사건’ 이후다.

 지난 2003년 2월17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본사사옥에 서울지방검찰청(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와 수사관 40여명이 침입(?)했다. 이들은 SK 직원들의 육탄 저지선을 뚫고 최태원 회장의 집무실을 포함한 구조조정본부 등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당시 SK그룹은 참여연대의 고발로 SK글로벌의 분식회계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었다.

 이날 오후 7시30분까지 10시간 가까이 계속된 압수수색에서 검찰은 최 회장의 직접 개입을 입증할만한 문서를 대량 확보했다. ‘콥(COPR, SK㈜를 일컫는 사내 명칭) 주식확보 방안’, ‘검찰조사 대비 대책’, ‘가상 시나리오’, ‘검찰조사 대비 질의 및 응답’, ‘형사사건 향후 예상’, ‘비상시 행동대응 절차 및 보안강화 계획’ 등이 이날 확보했던 내부문서들이다. 특히 이들 문서에는 최 회장을 대신해 그룹 차원에서 ‘누가 희생양이 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대책도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압수수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월19일 서울 삼청동 SK글로벌 문서보관소를 또 털었던 것이다. 이날 확보한 문서는 사과상자 250여개 분량으로 검찰청까지 운반하는 데 2.5톤 트럭이 동원되기도 했다.

 그동안의 관행을 뒤집고 재벌그룹 회장실에서까지 전격적으로 실시된 두 차례의 압수수색 결과, 1조2000억원에 달하는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은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냈다. 최 회장과 손길승 당시 그룹회장이 사법처리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SK그룹 본사와 SK글로벌 문서보관소에 들이닥쳤던 검사와 수사관들은 금융조사부 소속이 아니었다. 금융조사부가 발족된 것은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2003년 4월이었다.

 ‘SK 회장실 습격사건’을 금융조사부의 악명과 직접 연결해 해석하는 것은 당시 습격사건의 주체였던 서울지방검찰청 형사9부가 2개월 뒤 금융조사부로 간판을 바꿔달았기 때문이다. 비로소 한국의 경제검사에 대한 개념이 형식적으로나마 갖춰진 것이다.

 SK 분식회계 사건 수사는 검찰의 대기업 비리 및 금융사건 수사를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검찰 관계자들은 해석한다. 뇌물사건이나 기업 부도사건 처리와 관련된 부수적인 수사에서 대기업과 금융권의 비리를 바로 수사대상에 올리게 된 것도 이 때부터다.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사건을 뒤처리했던 소극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경제 및 금융 비리를 앞서 밝혀내는 수사로 전환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금융조사부의 모델은 미국 뉴욕검찰청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의 경제사건 수사가 적극성을 띄면서 새로운 조직과 시스템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 모델이 뉴욕검찰청이었던 것이다.

 뉴욕검찰청은 1990년대부터 월스트리트의 내부자 거래와 리서치 조작 및 회계부정을 수사하고 사법처리함으로써 미국의 대기업과 금융권의 부정척결에 앞장서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엔론사태는 물론 수많은 월스트리트의 부정사건을 수사하며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을 단죄했던 뒤에는 모두 뉴욕검찰청이 존재했다. 때문에 뉴욕검찰청은 ‘월가를 지키는 파수꾼’이란 명성을 얻었다. 또 <타임>지는 “미국 정부나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손도 못댄 월가의 고질적 부패에 메스를 가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 질서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며 뉴욕검찰청의 스피츠 총장을 2002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월가를 지키는 파수꾼 ‘뉴욕 검찰청’

 경제규모가 커지면 기업·금융사건의 범죄수법은 대담해질 수밖에 없다. 또 갈수록 첨단화되고 지능적인 범죄가 기승을 부리게 되지만 금융조사부 출범 이전만 해도 검찰은 사후약방문격 수사에 매달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수사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주가조작 범죄의 경우 증권거래소나 증권업협회의 1차 감리, 금융감독원의 2차 조사, 그리고 난 후 검찰 고발이라는 3단계를 거치는 동안 수사는 지연되고 범죄자들은 제2, 제3의 범죄를 저지르거나 이미 증거를 인멸하고 도주했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또 범죄의 징후를 발견하거나 첩보를 입수해도 수사 장비와 인력이 미흡해 금감원에 재차 분석을 의뢰해야 하는 등 검찰 자체만으로는 수사를 진행할 능력도 여력도 없었다.

 SK 분식회계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이인규 당시 서울지검 형사9부 부장검사가 금융조사부 출범 3개월 전 “금융·증권 범죄는 갈수록 신속·지능화되는데 검찰은 그동안 인력과 역량 부족으로 느리고 비효율적인 수사관행을 고수해 왔다”면서 “앞으로는 주가조작 징후가 보이면 즉시 수사에 착수하는 등 실시간 감시시스템을 구축해 작전세력이 주식시장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던 것은 그동안의 한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새로운 시스템과 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금융조사부의 탄생에는 이 같은 검찰 스스로의 한계와 SK 분식회계 사건을 수사하면서 지능화·극대화되고 있는 기업비리에 대응할 수 있는 조직신설에 대한 요구가 맞물려 있었다.

 2003년 4월 검찰은 조직개편을 통해 서울지검 형사9부를 금융조사부로 간판을 바꿔달고, 기업·금융 관련 사건을 전담하는 경제수사팀을 신설했다.  편제도 2차장 산하에서 특수부를 관할하는 3차장 산하로 옮겼다. 그리고 초대 금융조사부장에 SK 분식회계 사건의 야전지휘관이었던 이인규 형사9부장을 임명했다.

 당시 검찰 주변에서는 금융조사부 출범에 앞서 형사9부가 SK 분식회계 사건을 데뷔작 차원에서 준비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금융조사부의 기업·금융비리 척결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SK 분식회계 사건을 통해 사전 경고했다는 것이다.

 물론 금융조사부 출범 이전에도 형사9부가 경제사범 전담 부서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특수부에서 전담하다시피 했던 경제사건을 2001년 7월 조직개편에서 형사9부로 하여금 증권·금융 수사전담 부서로 신설한 것이다.

 설립 초기 형사9부는 ‘특수1부 2중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특수1부에서 넘어온 고발사건을 뒤처리하는 청소부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2년 10월 명동 사채업자 반재봉씨 등 3조원대 불법 주식대금 가장납입 사범들을 무더기 구속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오상수 전 새롬기술 사장과 전재완 전 프리챌 사장, 김도현 모디아 대표 등을 잇달아 구속하면서 비로소 경제전담 부서로서의 이미지를 쌓았다. ‘치밀한 준비와 원칙수사를 무기로 100%에 가까운 수사 성공률’은 당시 형사9부를 향한 검찰 내부의 부러움 섞인 찬사도 쏟아졌다.

 특히 2003년 1월 형사9부 산하에 ‘금융·증권범죄분석실(Financial & Securities Crimes Analysis Unit)’이 설치됨으로써 수사는 아연 활기를 띠었다. 금융·증권범죄분석실은 주가조작을 실시간 감시하고 시세조작 징후가 나타났을 때 신속히 수사에 착수해 작전세력을 검거하고 주주피해를 최소화하는 첨단 수사 시스템을 갖추는 데 기여했다. 이로 인해 평균 3~4개월씩 걸리던 주가조작 사건 수사가 한 달 정도로 짧아지고, 이미 범행이 끝난 ‘죽은 범죄’가 아닌 현재 진행 중인 ‘살아있는 범죄’를 수사할 수 있었다. 여기에 방대한 데이터 처리를 위해 최첨단 컴퓨터망이 설치됐고, 형사9부가 처리한 모든 사건을 매뉴얼로 만들어 경제범죄 수사의 참고자료로 활용토록 했다.

 이 같은 시스템은 SK 분식회계 사건 수사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상 형사9부의 마지막 수사였던 SK 분식회계 사건은 신설된 금융조사부의 성격을 명확히 했다. 이 사건 수사로 이인규 형사9부장에게 붙여진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은 지금 금융조사부를 일컫는 광의의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형사9부는 금융조사부 출범에 절대적인 결정적인 영향력과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올해 정기인사에서 이인규 당시 형사9부장이 금융조사부를 관장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부임하자 마치 금융조사부에 복귀한 것과 같은 해석과 전망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이에 다름 아니다. 금융조사부 기능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해석은 물론 3차장이 관장하고 있는 특수부, 마약·조직범죄수사부, 외사부, 첨단범죄수사부도 경제사건에 보다 역량이 집중될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실제 마약·조직범죄수사부를 제외하면 기업과 관계없는 부서는 단 한 곳도 없다. 때문에 이 차장검사가 경제 범죄의 사령탑이라는 해석도 전혀 무리는 아니다. 이런 점에서 재계의 관심이 이인규 3차장검사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금융조사부는 출범 이후 형사9부 시절부터 쌓아온 경제사건 수사 노하우를 통해 실질적인 성과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SK 분식회계 사건을 계기로 금융조사부 출범 직후 터진 대선 비자금 사건에 금융조사부 출신 검사들이 대거 투입돼 맹활약을 펼쳤던 것은, 그래도 대검 중수부에 시집보낸 딸자식 일이었다. 전 국민적 관심이 온통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에 집중돼 있을 때 서울중앙지검 7층 금융조사부 검사실에도 소환된 기업체 임원들과 대표이사 그리고 오너들의 발걸음이 잦았다. 



 수사범위 점차 보폭 넓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퇴출을 피하기 위해 수백억원대의 주가조작과 그 피해를 다른 금융거래 업체에 떠넘긴 종금사와 대주주 업체가 6년 만에 덜미를 잡힌 것은 대형사건의 시작에 불과했다. 중견건설업체 남광토건의 이희헌 사장과 코스닥 등록업체 휴먼컴의 홍승표 사장이 금융조사부에 의해 회사 돈 횡령혐의로 구속된 건 2004년 10월. 그로부터 한 달도 안 돼 최용선 한신공영 회장이 같은 혐의로 또 구속·수감됐다. 이 사장은 570억여원을, 최 회장은 300억원의 회사 돈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앞서 선물거래가 시작된 이래 첫 선물 작전세력을 적발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2004년 8월 국채선물에 대한 허수 주문으로 선물시세를 조작한 혐의로 J투신운용 펀드매니저 신모씨 등 3명과 선물계좌간 통정매매를 통해 시세를 조종하거나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로 S투신운용 펀드매니저 김모씨와 H투신운용 펀드매니저 고모씨를 기소한 것이다.

 이 사건은 증권범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규모 자금운용과 기관투자자 중심의 조직적 거래방식으로 인해 시세조종이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돼왔던 선물시장에서도 소수의 작전세력이 움직이고 있음이 처음 확인됐기 때문이다.

 금융조사부의 초창기 수사는 대체적으로 시세조종 및 주가조작 등 증권 관련 범죄와 회사 자금횡령 등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1990년대 후반 벤처신화의 주인공이었던 장성익 3R 대표이사의 168억원 횡령, 사이어스와 AMIC, 이스턴테크놀로지, 삼화기연, 코리아링크 등 코스닥등록기업의 전·현직 대표와 실질소유주들의 범죄행각이 그것이다. 모두 대기업이 아닌, 신흥 소규모 벤처기업들과 중견기업들 뿐이었다. 지난해 12월 회사 돈을 담보로 유상증자 대금을 대출받고 수백억원대 분식회계를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장흥순 터보테크 대표와 한국상호저축은행 대표이사로 재임 중 대출 사례금 5억원을 받은 혐의(특경가법상 수재)로 유한수 전 전경련 전무를 구속 기소한 것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금융조사부는 대기업과 재벌그룹 수사에 한계를 보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금융조사부는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금융조사부가 올 초 발표한 헤르메스 주가조작 사건은 그동안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며 한국 시장을 무차별적으로 공략, 이익금을 회수해갔던 외국계 투기 자본에 일침을 가한 금융조사부의 한판승이었다.

 헤르메스 주가조작 사건은 지난해 7월 삼성물산의 적대적 M&A설과 관련해 불공정거래 혐의로 금융감독당국이 비거주 외국계 펀드와 외국인 펀드매니저를 처음으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증권·금융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특히 검찰 수사가 시작되지 헤르메스 최고 경영자인 토니 왓슨 등 3명의 경영진이 지난해 12월 해명할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면서 자진출두 의사를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결국 이들은 입국과 함께 금융조사부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금융조사부의 한 수사관은 “아마도 금융조사부가 설치된 이래 외국인 회사의 외국인 경영자가 수사를 받기 위해 입국해 7층 복도를 밟은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경영진의 해명에도 금융조사부는 헤르메스 법인에 대해 벌금 73억원에 약식 기소하고, M&A설을 흘린 펀드매니저 로버트 클레멘츠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기소중지처분을 하는 한편 클레멘츠와 공모한 대우증권 해외현지법인 직원 김모씨에 대해서는 혐의 없음 처분으로 사건을 매듭지었다.

 헤르메스 주가조작 사건은 한국 시장을 노린 해외 투기 자본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향후 투기 자본의 운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적대적 M&A에 노출돼 있는 한국 기업을 향한 외국계 투기 자본들의 입질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조사부는 이들에 대한 감시의 끈도 늦추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헤르메스 주가조작 사건의 성과는 금융조사부가 조사를 벌이고 있던 외환은행 헐값 매각의혹과 관련, 론스타 수사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론스타의 147억원대 탈세 혐의와 860만 달러 불법 반출 의혹이 함께 밝혀질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최근 금융조사부가 아닌 중수부로 배당됐다.

 한편 올 1월24일 금융조사부에는 전혀 의외의 인물이 피내사자 자격으로 조사를 받아 화제가 됐다. 영화배우 하지원씨가 그 주인공이다. 하씨는 지난해 5월 정태원 태원엔터테인먼트 사장과 함께 스펙트럼 DVD 전 최대주주 변모씨로부터 각각 66만 5000여주(약 11.67%)를 넘겨받아 이 회사 최대 주주가 됐으며. 그 해 6월 공시에서 “경영 참가 목적으로 주식을 매입했다”고 밝혔다. 유명 연예인의 경영권 인수라는 호재 때문인지 스펙트럼DVD 주가는 올랐고, 하씨는 지난해 8월 지분 투자를 단순 투자 목적으로 변경한다고 공시한 뒤 36만 4200주를 매각해 약 9억원의 시세 차익을 얻어 주가 조작 가담 의혹을 받고 있었다.

 지난 3월에는 영화배우 이영애씨에 대한 조사여부가 관심을 집중시켰다. 소위 ‘주식회사 이영애’ 파문으로 피해를 입은 뉴보텍 소액주주들이 뉴보텍과 한승희 뉴보텍 대표이사를 증권거래법상 허위공시 및 시세조종 혐의로 금융조사부에 고소장을 제출한 데 따른 참고인 조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보텍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이씨가 고소를 취하하는 선에서 원만히 합의됨으로써 국내 최고의 영화배우 이영애씨의 금융조사부 방문은 불발로 끝났다.

 현재 금융조사부는 미제사건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가운데 초미의 관심은 4건의 삼성 관련 사건이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사건,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매각 사건, 서울통신기술의 전환사채 편법인수 사건 그리고 e삼성과 관련 배임 사건 등을 일컫는다. 

 삼성 에버랜드 편법증여 사건은 허태학 에버랜드 전 사장 등이 1996년 11월 에버랜드CB 125만4700여주를 기존 주주들이 실권하자 이사회를 거쳐 최소 주당 8만5000원인 CB를 주당 7700원에 이재용씨 남매 4명에게 배정해 회사에 97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참여연대에 의해 고발된 건이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또 삼성SDS BW헐값매각 사건은 삼성SDS가 지난 1999년 이재용씨 등 특수 관계인 6인에게 신주 321만6738주를 주당 7150원에 인수할 수 있는 BW를 넘겨 편법 증여 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울통신기술 CB인수 사건은 서울기술통신이 1996년 11월 주당 5000원에 주식 전환이 가능한 CB 20억원어치를 발행, 이재용씨에게 15억2000만원어치를 넘겨줬다. 이재용씨는 한 달 뒤 CB를 모두 주식으로 바꿔 지분 50.7%(30만 4000주)를 확보, 최대주주가 됐고, 이즈음 삼성전자가 서울통신기술 임직원 5명으로부터 주당 1만9000원에 서울통신기술 주식 20만주를 매입하자 참여연대가 지난해 10월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e삼성 사건은 이재용씨의 인터넷 사업인 e삼성이 엄청난 적자 끝에 실패하자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지분매입 방식으로 손실을 떠안았다며 역시 참여연대가 이재용씨와 삼성 계열사 관계자들을 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이다.

 검찰은 주임검사가 각각 달랐던 이들 4건에 대해 효율적인 수사를 위해 박성재 금융조사부장을 주임검사로 배당, 일원화시켜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삼성 관련 사건은 박 부장검사의 직속라인인 이인규 3차장검사가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3차장검사는 지난 2월28일 검찰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 검찰에 고발된 삼성 관련 사건이 비슷한 성격과 시기에 일어나 전체적으로 수사하라는 의미로 금융조사부장을 직접 주임검사로 임명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3월14일 아침 금융조사부장실에서 만났던 박 부장검사도 책상 위에 쌓인 방대한 분량의 삼성 관련 자료를 가리키며 현재 정밀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금융조사부 검사 가운데에는 이미 삼성 에버랜드 사건의 주임검사로 1심에서 유죄를 이끌어낸 이원석 검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 1심 재판 직후 합류한 이주형 검사도 삼성 사건에 있어 전문가에 속한다. 박 부장검사는 이들 두 검사의 보조를 받으며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 등에 대해 업무상 배임죄로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배임)죄는 적용하지 않았던 1심 재판 뒤집기를 시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삼성 관련사건 등 미제사건이 일정 부분 해결된 이후 금융조사부의 행보는 특히 재계의 관심이다. 이인규-박성재로 이어지는 금융조사부 지휘라인이 기업 투명성과 주주 권익 확보라는 공통된 수사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이에 대한 기획수사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성재 부장검사도 “초반기에 이들 미제사건을 얼마나 해결하느냐에 따라 인지수사가 가능할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며, 그 가능성을 암시했다.

 과거 형사9부 출신의 한 검사는 “당분간 삼성 관련 사건이 금융조사부의 최대 현안이 될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미제사건에만 매달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지수사에 대한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게 최근 검찰수사의 추세이고 보면 금융조사부도 미제사건 해결과 인지수사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정착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금융조사부가 박성재 부장검사 부임 이후 한국의 경제검사의 위상을 또 어떻게 바꿔놓을지 검찰은 물론 재계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전성기 맞는 경제 검사들

 “말썽 소지 적다” 평검사 지원 많아



 제검사의 메카로 불리고 있는 금융조사부는 최근 몇 년 동안 검찰 인사 때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과거 공안부가 차지했던 자리를 2~3년 전부터 금융조사부가 차지한 것이다. 오히려 공안부는 형사부, 강력부와 함께 기피부서로 전락했다. 정기인사를 앞두고 평검사들로부터 희망보직 신청을 받으면 금융조사부 지원자가 가장 많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금융조사부가 검사들로부터 상종가 부서로 인식되고 있는 데에는 업무강도와 위험도가 적은 반면, 기록과 숫자를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하는 데다 말썽의 소지도 적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경제범죄의 첨단·지능화 경향에 따라 엘리트 검사들이 배치되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철저하게 증거 중심의 수사가 경제사건 수사의 핵심이라는 반증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경제검사는 ‘저승사자’아닌 ‘이승사자’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경제 관련 뉴스가 중심으로 부상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시대의 흐름이 경제검사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검찰 내에서도 경제검사들을 우대하는 분위기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여기에 금융조사부에서 익힌 경제이론과 실무경험은 다른 수사부서에서도 유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2월13일 단행된 부장검사급 정기인사에서는 경제검사의 상종가 추세가 그대로 반영됐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 등 최근 몇 년 동안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대형 경제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들이 핵심 요직에 배치된 것이다.

 반면 1980년대부터 출세가 보장된 검찰 내 최고 엘리트 집단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공안부 검사들은 이번 검사장급 이상 인사에서 단 한 명도 승진을 하지 못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상전벽해(桑田碧海). 검찰 주변에서는 공안부를 두고 이 두 고사성어에 비유한다.

 한국 경제검사의 인맥은 2001년 서울지방검찰청(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신설된 형사9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형사9부가 간판을 바꿔단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금융조사부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형사9부와 금융조사부를 거치지 않았다 해서 경제검사 인맥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 형사9부가 신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특수1부 검사들이 경제사건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또 형사9부 신설 후에도 형사10부가 경제사건을 분담하기도 했다. 금융조사부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대선 자금 수사 등은 대검 중수부에 배당됐고, 조사부에서는 두산 사건을 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형사9부와 금융조사부 출신 검사들이 경제검사의 성골이라면, 이외 부서의 경제검사들은 진골로 분류가 된다. 본업이 경제사건인 검사들과 부업으로 경제사건을 수사한 검사의 격은 다를 수밖에 없다.

 2003년 4월 신설된 금융조사부의 초대 부장검사는 이인규 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검사. 이 3차장검사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형사9부장 시절 SK 분식회계 사건으로 얻은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모든 것을 대변해 준다. 대검 미래기획단장에서 올해 검사장 후보 0순위인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영전했다.

 특히 3차장이라는 자리가 화이트컬러 범죄를 주로 다루는 특수1·2·3부와 관세·외환수사를 총괄하는 외사부, 기업의 기술유출 등을 수사하는 첨단범죄수사부, 시세조종 등 금융·증권 관련 수사를 담당하는 금융조사부 등을 포괄하고 있어 사실상 기업 관련 수사는 그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는 최근 “경제계에서 나를 ‘저승사자’라고 부른다고 하던데 차라리 ‘이승사자’라 불러 달라”며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별로 긴장할 일 없다”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누구를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리는 게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모든 수사에서 꼼꼼하게 사실관계를 챙기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검찰 간부 중에 통만 크고 디테일(구체적 사실관계)에 밝지 못한 사람은  문제가 있다. 물론 너무 세심한 것도 탈이지만 굳이 나누자면 디테일 없이 통만 큰 경우가 더 나쁘다”는 말에서 그의 스타일은 드러난다. 때문에 저승사자에서 이승사자로 돌아온 이 차장검사에 대해 재계가 긴장하는 만큼 3차장 관할 부서의 검사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인규 검사에 이어 김필규 변호사는 두 번째 금융조사부장 출신이다. 김 변호사는 2004년 5월 조아제약 임직원 및 일부 주주들이 복제돼지 개발사업과 관련해 내부 미공개 자료를 이용,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혐의와 383억원 유용에 대한 수사로 악명을 떨쳤다. 2005년 대구지검 형사1부장을 끝으로 지난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3대 국민수 검사는 금융조사부장에 이어 다시 이인규 검사의 후임인 대검 미래기획단장으로 이동했다. 재임 중 국 검사는 유상증자과정에서의 비리 등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엔지니어 출신의 코스닥 기업 대주주들이 경영 마인드가 부족해 회사 돈과 개인 돈을 구별하지 못했던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국 검사 재임 시절 금융조사부는 비로소 금융범죄 인지수사 부서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5년 4월 취임한 정동민 현 순천지청 차장검사의 최대 공적은 외국계 펀드 헤르메스에 대해 사법 사상 처음으로 73억원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 것이다. 대검 공보관에서 금융조사부로 옮겨온 정 검사는 온화한 성품과 합리적인 일처리를 중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금융조사부에 앞서 경제검사의 기틀을 다진 형사9부의 초대부장은 정진영 현 경기 고양지청장. 2001년 6월 이후 증권 및 금융사범에 대한 일제단속을 벌여 증권업계에서 유명세를 탔다. 총 202명이 적발된 44명은 구속 기소되고 118명을 불구속 기소된 한편 40명이 지명 수배된, 경제사건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대규모 사법처리로 밀어붙였다.

 이에 앞서 그는 이용호 사건을 지휘했으며 2001년 11월 삼애실업 등의 주가를 조작한 사실을 밝혀내고 이씨를 추가 기소한 한편 이씨와 대양상호신용금고 주가조작을 공모한 체이스벤처투자 대표 최병호씨를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대검 형사과장 시절에는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에 관한 합동단속반을 맡아 강력한 단속을 펼쳤다.



 “순환보직 인사로 전문적인 수사에 한계”

 일선 수사검사로는 금융조사부 시절 이인규 당시 부장검사와 함께 SK 분식회계 사건을 수사했던 소위 ‘이인규 사단’은 가장 많이 알려진 경제검사들이다. 이들은 금융조사부에서 흩어진 뒤 대검 중수부의 대선 자금 수사 당시 다시 팀을 구성해 혁혁한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유일준 헌법재판소 파견검사, 김옥민 변호사, 한동훈 검사(해외파견)가 그들이다. 이들 검사는 기업 비리를 수사하면서 기업의 재무회계 담당 임원들과 설전을 벌여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상당한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유 검사와 김 검사는 서울지검 금융조사부 시절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된 한화와 두산을 수사하다가 대선자금 수사에 합류했다. 한 검사는 2002년 2월 서울지검 금융조사부에서 대전지검 천안지청으로 발령이 났으나 직무대리로 남아 최태원 회장을 직접 조사하는 등 SK 수사에서 큰 활약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한 검사는 기업 회계장부 검토에 ‘동물적’ 감각을 타고났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인규 팀에는 합류하지 않았지만 SK 분식회계 수사 당시 최 회장을 직접 조사했던 이석환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는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의 대화에서 금융조사부 시절 이상수 의원으로부터 압력성 전화를 받았다고 폭로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서울지검 형사9부 근무시절부터 수많은 금융비리 사건을 처리해 ‘금융특수통’으로 분류된다.

 헤르메스 사건의 주임검사를 맡았던 허철호 울산지청 부부장검사도 경제통으로 분류된다.

 이외에 정진영 검사의 형사9부장 시절 부부장을 맡았던 김경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검사는 각종 경제비리 사건을 두루 맡아온 특수통이다.  1997년 한보 재수사 당시 김현철씨 비리수사팀에 차출되기도 했다. 1996년 서울시내 재개발조합비리사건, 서주산업 부도사건 등을 비롯해 1994년 부산지검 특수부 근무시절 지방국세청과 세무서 비리를 10여건이나 밝혀냈다. 현재는 브로커 윤상림 사건을 지휘하고 있다.

 수석검사였던 김인원 현 사법연수원 교수는 서울지검 특수2부에 재직하면서 건설회사 공문서를 위조한 뒤 회사매각으로 수천만원을 챙긴 회사 대표를 구속시켰던 사건으로 경제검사 반열에 올랐다. 이용호 게이트의 주임검사를 맡기도 했지만 이씨를 긴급체포했다가 풀어준 뒤 내사 종결한 일로 특검팀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형사9부와 금융조사부 출신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경제검사로는 채동욱 현 대검 수사기획관을 꼽을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재직 시 삼성 에버랜드 CD 저가발행 고발사건을 담당했고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 우지라면 사건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들 경제검사들이라고 항상 경제사건 만을 담당하지는 않는다. 검찰 근무 자체가 순환제이기 때문에 보직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들을 경제검사로만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형 경제사건을 담당했고, 그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했을 뿐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10월 박한별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삼성 에버랜드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터널을 뚫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곡괭이로는 몇 백 년을 가도 못 판다. 오랫동안 공판 때문에 수사가 멈춰 있었고, 굴착기 칼날이 녹슬어 있었다.  지금은 굴착기 칼날을 갈고 잘 드는 날로 바꿔서 장비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전문검사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분식회계나 전환사채 저가발행 등 기업범죄를 수사하고 혐의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회계장부 등을 읽고 분석하는 등 상당한 전문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실력을 갖춘 검사들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박성재 금융조사부장도 개인적으로 검찰의 순환보직제에 대해서는 시정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경제범죄가 갈수록 지능화되고 다양화돼 가는데 검찰의 전문적인 수사능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검사들의 경제관·기업관

 “도덕 불감증에 빠진 기업인들이 많다”



 “최근 횡령혐의로 조사받던 한 등록기업 대표는 ‘잠시 회사 돈을 빌린 것일 뿐’이라고 강변해 수사팀을 아연케 했다.”

 지난 2004년 말 국민수 당시 금융조사부장의 말이다. 코스닥 등록업체 대표들의 회사 돈 횡령 사건이 잇따라 터졌을 때 국 부장검사 뿐 아니라 금융조사부 검사와 수사관들은 회사 돈과 개인 돈을 구변하지 못한 채 ‘이게 무슨 문제냐’는 식의 항변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소위 벼락부자가 된 벤처기업인들로부터 공금횡령혐의와 관련해 자주 들을 수 있는 ‘내 돈 내가 갖다 썼는데 죄는 무슨 죄냐’는 식의 항변이다.

 당시 금융조사부에 근무했던 한 수사관은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것보다 이러한 행위가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설득하는 게 더 힘들었다”고 말한다.

 최근 금융조사부에 소환되는 기업인들이 자주 하소연하는 내용은 “가뜩이나 경기가 어려운데 기업수사는 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 검사와 수사관들은 답답해진다. 범법행위가 범법행위로 인식되어지지 않고 시대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면 사법부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 수사관은 “그럴 때일수록 시장을 어지럽히는 금융범죄를 철저히 단속하는 게 궁극적으로 경제를 보호하고 살리는 길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최근 이인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검찰 수사를 통해 SK그룹이 투명해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국내 검사 가운데 최고의 경제검사라는 칭호를 듣고 있는 그는 “한 때 SK그룹이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으로 고생도 했지만 주주 존중과 함께 주주들과 상의하는 올바른 의사결정 방식으로 기업구조가 바뀌었다”는 평가도 내놓았다. SK그룹이 분식회계 사건으로 회장이 구속되는 등 최악의 상황을 맞기도 했지만 그 같은 아픔이 없었다면 SK는 여전히 과거 구태의연했던 경영방식에서 벗어나질 못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금융조사부 출신의 전·현직 검사와 수사관들은 사석에서 금융조사부의 역할과 관련, 사람이 병이 나면 스스로 병원을 찾지만, 그것이 병이라 여기지 않는다면 죽을병도 방치하게 된다는 비유를 자주 인용한다. 병을 방치하는 환자는 가족 등 주변에서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기업에 적용하면, 기업의 부패가 경영진의 눈에 보이면 스스로 컨설팅을 받거나 구조조정 등을 통해 자정의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나 불법행위를 알면서도 기업 발전을 위해 불가피하다거나, 이를 적극 활용한다면 검찰이 수사를 통해 사법처리함으로써 재발을 방지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때 시장은 공정한 경쟁의 룰이 작동되고 경제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리는 게 목적”이라는 이인규 차장검사의 말은 경제검사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현재 검찰의 기업 수사는 권위주의 시절 기업들이 겪어야 했던 특정기업을 겨냥한 표적 수사 이미지로 기업들의 의해 왜곡되고 있다는 하소연도 빠지지 않는다.

 박성재 금융조사부 부장검사도 인터뷰에서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침해하지 않고 수사를 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범죄 수사의 목적인 투명성 강화, 증권범죄의 투자자 피해방지 등이 기업경영과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된다면 금융조사부가 개입할 이유가 없다는 원칙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형사9부 시절부터 현재의 금융조사부까지 경제사건을 담당했던 많은 검사들의 시각은 여기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기업들이 자의적으로 검찰의 수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데에 가장 큰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경제검사들은 도덕불감증에 빠진 기업인들에 대해서는 치를 떤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기업인들이 금융조사부에 소환되는 혐의는 대부분 도덕불감증에 의한 범죄들이라는 것이다.

 한 수사검사는 “건전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사건으로 사법 처리되는 기업인들이 많다”며 “조선시대 봉이 김선달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 들 때가 가장 허탈하다”고 털어놓는다.

 경제검사와 수사관들에게 인상적인 기업·기업인은 역시 삼성이다. ‘검찰이 먼저 증거를 들이대기 전에는 절대로 시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검찰 내에서도 유명한 삼성 관계자들의 피의자 조사 스타일이다. 특히 단서를 들이대더라도 굳게 입을 다문다는 특징을 보인다며 모 사장은 먹던 음식까지 토하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까지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터뷰 | 박성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사부 부장검사 |



 “정상적인 경영활동 침해 않고 수사할 것”



 으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에 소환되는 기업·기업인들은 긴장을 해야 할 것 같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725호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약간 흰 머리가 섞인 건장한 체격의 박성재(43) 금융조사부 부장검사가 책상에 앉아 두툼하다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높이 쌓아올린 문서 더미에 얼굴을 박고 있다. 인사를 하면 반갑게 맞아주는 게 통례가 아닌가.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던 만큼 서운함은 없다.

 겸연쩍게 인사를 나눈 박 부장검사는 동행한 사진기자와는 인사를 나누자마자 두 손을 내 저으며 촬영을 거부한다. 겸연쩍어 사양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그게 아니다.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나가달라”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잠깐 동안 사진촬영을 설득하지만 일순 사무실의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말이 뒤따른다.

 밖으로 얼굴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은 검사의 생리가 아닐까. 결국 사진기자는 물러설 수밖에 없다.

 마주 앉은 박 부장검사는 부드러운 얼굴과는 달리 강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스스로를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평한 그는 인터뷰 상대로는 최악이다.  한 마디 질문을 하면 보통 알고 있는 것에 들었던 이야기까지 보태 술술 풀어내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간단한 답변. 군더더기가 없는, 소위 단답형 인터뷰가 이어진다.

 박 부장검사가 금융조사부장으로 부임한 것은 지난 2월20일. 강력부와 특수부에서 수사검사로 활동하다 대검찰청 연구관과 감찰2과장 등 요직을 거쳐 다시 수사검사로 돌아왔다. 초대 금융조사부장이었던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인 이인규 검사가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낙점했다는 후문이다.

 박 부장검사는 지난 1998년 종금사 부실을 캐내면서 환란 사건 수사의 물꼬를 튼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또 2002년 대검연구관으로 재직 시 이용호 게이트 전담수사팀에 파견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를 수사했다. 주택사업공제조합의 다대만덕지구 토지형질 변경비리 연루의혹 수사도 박 부장검사가 부산지검 재직 시 활약했던 사건이다.

 그러나 박 부장검사에게 잊히지 않은, 그의 표현을 빌자면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은 홍경영 검사 사건이다.

 영화 <야수>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홍 검사 사건은 지난 2002년 5월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수사 도중 발생한 피의자 사망사건을 말한다. 홍 검사가 수사하던 사건의 피의자가 사망한 후 구타 혐의가 발견되면서 인권단체, 시민단체 등이 들고 일어나 홍 검사는 악인으로 낙인이 찍혔고 검찰 전체의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홍 검사는 재판과정에서 ‘깡패들도 자기 식구를 거두는데 왜 나를 버리냐’고 울부짖기도 했다.

 박 부장검사는 이 사건의 담당검사였다. 죄의 유무를 떠나 동료를 재판정에 세워야 했던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박 부장검사가 주임검사로 첫 번째 맡게 된 사건은 재계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4건의 삼성 관련 사건이다.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산더미 같은 서류 뭉치가 삼성 관련 자료라는 것은 인터뷰 도중 알 수 있었다.

 최근 이인규 3차장검사는 박 부장검사에게 삼성 관련 사건의 주임검사를 맡긴 후 기자들에게 “현재 검찰에 고발된 삼성 관련 사건이 비슷한 성격과 시기에 일어나 전체적으로 수사하라는 의미로 금융조사부장을 직접 주임검사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에버랜드 수사를 이어받은 금융조사부장은 업무보고 때 긴장을 좀 해야 할 것”이라며 바짝 긴장의 강도를 높였다.  금융조사부장 시절 기업 지배구조에 대해 공부를 좀 했기 때문에 내용을 웬만큼 알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검찰에 고발된 4건의 삼성 관련 사건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에버랜드 전환사채’, ‘서울통신기술 전환사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편법으로 증여하거나 인수했다는 사건과 이 상무가 인터넷 사업을 하다 입은 손실을 삼성 계열사들이 떠안았다는 ‘e삼성 사건’ 등이다.

 박 부장검사는 이 차장검사의 뜻이 ‘원칙대로 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를 금융조사부장으로 불러들인 것도 같은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한 치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 원칙주의자로 이 차장검사도 그를 인정하고 있는 것일까.

 참여정부 초기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대화에서 금융조사부 검사였다는 이석환 검사의 말을 빌어 조심스럽게 외압에 대한 견해를 물어본다.  간단한, 그러나 군말이 필요 없는 답변이 돌아온다. 

 “압력을 압력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금융조사부를 검찰 내에서도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한 부서로 규정한 박 부장검사는 수사 결과가 그렇듯, 특정 기업의 비리는 주변 영역으로 확장돼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면서 이들 범죄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인지 수사에는 아직 여력이 없어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지금 그에게 금융조사부의 현안은 ‘미제(未濟)사건 해결’이다. “이들 미제사건을 얼마나 해결하느냐에 따라 인지수사가 가능할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말에서 향후 인지수사의 강도가 느껴진다.

 특히 검찰의 순환보직제에 대해 시정되어야 할 제도라고 아쉬움도 피력한다. 2~3년마다 수사관들까지 바뀌다보니 전문가를 육성하는 시스템이 되어 있지 않다는, 전문수사에 대한 욕심에서다.

 지난 3월14일 출근과 함께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장실에서 만난 박성재 부장검사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들어야 했던 단어는 ‘원칙’이었다.

 금융조사부장 취임 소감과 수사의 기본 원칙 그리고 방향에 대해 말해 달라.

 “부임 이후 직접 담당하고 있는 사건이 없다. 이렇게 인터뷰를 할 만큼 사실 할 말이 없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다를 게 뭐가 있겠나. 원칙적인 방향에서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기업의 비리 혐의를 엄정하게 밝혀나갈 뿐이다. 정당한 경쟁, 공정한 경쟁은 기업들도 원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그것을 방해하는 범죄를 원칙에 따라 수사할 뿐이다.”

 금융조사부에 대한 재계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것 같다. 예전에 비해 금융조사부의 기능과 역할도 강화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검사가 늘었을 뿐이다. 미제사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굳이 금융조사부가 강화됐다고 할 수는 없다.”

 강화는 아니더라도 금융조사부의 검사가 보강됐다는 것은 기업의 투명경영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다. 사회도 과거에 비하면 업그레이드됐고,  이를 받아들이는 문화도 업그레이드됐다. 모든 면에서 사회가 한 단계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업그레이드된 사회에서 과거와 같은 구태가 재연될 때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담당하고 있는 사건 가운데서도 삼성 에버랜드에 대한 관심이 많다.

 “(손으로 책상 위의 서류 덩어리를 가리키며) 저 뭉텅이가 삼성 에버랜드 자료다. 저런 게 스무 덩어리다. 지난 주말에 주임검사를 맡았다. 중요사건은 부장검사가 주임검사를 직접 맡기 때문이다. 삼성 에버랜드 사건은 자료 자체가 방대하다. 지금 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 수사 중인 사건이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다.”

 기업 관련 수사에서 가장 큰 고충은 무엇인가.

 “사건을 수사하는 데 쉬운 게 있을 수 있겠나. 다만 기업은 특성상 내부 단속이 잘 돼 있어 피의자와 참고인 등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자료만으로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게 가장 어렵다. 이것 또한 외부인이 파악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또 일반인 수사와 기업인 수사가 다른 점이 있다면 변호사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도 결국은 똑같다. 그들이 다르게 보이면 수사를 못한다. 신분이 다르다고, 또 돈이 많다고 다르게 보인다면 수사할 수 있겠는가. 내부 자료를 입수하면 좋겠지만 그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침해하지 않고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기업들의 로비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글쎄. 나는 겪어보질 않아 모르겠다. 수사와 관계없는 기업인들을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이유도 없다. 기업들 눈치보고 수사한다든가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검사로서의 전공은 어떤 분야인가. 또 기억에 남는 수사는 어떤 사건이었는가.

 “강력부와 특수부에서 사건을 다뤘던 평범한 수사검사였다. 따로 전공이 있을 리 없다. 대검 감찰과장으로 일을 하면서 검찰 조직과 활동에 대해 많이 보았다. 남들에 비해 조금 더 관심이 있을 뿐이다. 기억에 남는 사건은 홍경영 검사 사건이다. 가장 가슴 아픈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종금사 수사도 기억에 남지만 그땐 어렸고, 철모를 때였다.”

 어떤 경제관과 기업관을 가지고 있는지 듣고 싶다.

 “금융조사부가 하는 일 자체가 기업범죄, 금융범죄, 증권범죄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기업범죄는 기업의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기업의 경영활동은 주변 영역으로 확장돼 영향을 미친다. 투명하지 않으면 주변 영역에 있는 이들이 피해를 입는다. 증권범죄는 공정경쟁을 해치는 행위다. 주가조작, 허위공시, 불법주식거래 등이 여기에 속한다. 대다수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부분이 제대로 작동되면 투명경영이 가능하고, 주주권익도 확보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금융조사부 검사들을 소개해 달라.

 “공적자금수사반에서 활동한 경력을 가진 검사가 3명이다. 임진섭·이원석·손영배 검사다. 전석수·신호철 검사는 두산 사건을 담당했다. 신 검사는 공인회계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막내인 이주형 검사가 있다. 모두 기업, 금융 분야에서는 전문가라고 믿고 있다. 수사관들도 전문가 못지않다. 검찰은 현재 순환보직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오래 근무하면서 전문가로 육성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아쉬움이 있다. 앞으로 시정돼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동안 금융조사부는 대형 사건들을 통해 유명세를 탔다. 신임 부장으로 부담이 될 것 같다.

 “전임자를 염두에 두고, 또 전임자와 비교해 일을 하지는 않는다.”

 인지수사가 많이 줄었다는 통계를 봤다.

 “금융감독위원회·증권선물거래위원회 등으로부터의 고발 사건이 아닌, 인지수사하기가 지금으로서는 힘들다. 지금은 모두가 알고 있는, 시중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수사하고 있다.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반기에 이들 미제사건을 얼마나 해결하느냐에 따라 인지수사가 가능할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재벌 수사 때마다 검찰의 결론에 대해 말이 많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사건 자체가 이해관계가 크다는 게 우리 부서의 특징이다. 한 건 한 건 쉽게 처리하지 못한다. 검사들도 온갖 노력을 다해 결론을 내린다.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은 증거법과 심증에서 오는 차이다. 예를 들면 무죄는 두 종류다. 죄가 없어 무죄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증거가 없어 무죄가 되는 경우도 있다. 수사결과에 대해 비난이 나오는 걸 보면 답답하다.”

 참여정부 초반 대통령과 평검사의 대화 때 금융조사부에서 근무했다는 한 검사가 압력을 받았다는 말을 했다.

 “압력을 압력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피의자는 다양한 견해를 피력하고 싶어 한다. 또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피의자를 대신해 견해를 피력한 사람이 내 윗사람일 수도 있고, 지인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원칙대로 일하면 그만 아닌가. 금융조사부장으로 내가 선임된 것도 이처럼 원칙대로 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검찰은 정책을 다루는 곳이 아니다. 범죄를 수사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금융조사부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일 자체도 어렵고 힘들 것이라고 말들을 한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 있다고 죄가 면책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돈이 없다고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공정한 수사를 한다면 기업들도 불만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대검 근무 때보다 퇴근도 늦을 것 같다.

 “저녁을 먹지 않고 8시쯤 퇴근해 집에 가서 식사를 한다. 내가 저녁을 먹고 가면 검사들 퇴근시간은 최소 식사시간인 1시간 정도 늦어진다. 내가 야근을 하면 검사들은 더 늦어지고…”

 경제 분야 공부는 어떻게 하는가.

 “욕심은 있지만 능력이 안 된다.(웃음) 경제사범을 다뤄야 하다 보니 범죄혐의를 찾기 위한 공부를 하기가 쉽다. 경제학이니 하는 체계적인 공부는 어렵다. (책장을 가리키며) 저길 보면 알겠지만 경제 범죄론 등과 같이 범죄와 관련된 공부를 사건에 따라 선별적으로 할 뿐이다. 선배들이 정리해 놓은 수사기록과 방법 등을 바탕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건을 맡으면 사건수사와 병행해 공부하는 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