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열(62) 전 경제부총리는 재직 시절 ‘황소’ 또는 ‘워커홀릭’으로 불렸다. 일 욕심만큼은 관가에서도 알아줬다. 이런 그가 최근 바이오 벤처기업 ‘알앤엘바이오’ 회장으로 재계에 한발을 들여놨다. 5·31 지방선거 경기지사 하마평에도 올라있는 그를 만나 경제 원로로서 현 한국경제 진단과 향후 거취를 들어봤다.

난 4월5일 오후 3시30분 서울 양재동 성문빌딩 4층 알앤엘바이오 회장실에서 만난 임창열 전 부총리는 손아귀 힘이 셌다. 171Cm, 80Kg의 몸매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비해 단단해보였다.

그가 내민 명함엔 ‘임창열’이란 이름 석 자 밑에 휴대전화 번호만 달랑 적혀 있었다. 직함이 많지 않냐고 묻자 알앤엘바이오 회장 명함과 사단법인 국제아동돕기연합(UHIC) 명예회장 명함도 잇따라 건넨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중국 허난성 경제고문도 맡고 있다.

“딱 꼬집어 현 직업을 묻는다면 뭐라고 하십니까”라고 묻자 그는 (뜸을 들인 후) “민간 경제 자문역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근 알앤엘바이오 회장직을 맡은 것도 그 차원이라고 덧붙인다.

그가 기업체 회장직을 맡은 게 처음은 아니다. 2003년 2월 민영 통신사인 뉴시스 대표이사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회장이란 호칭이 아직은 낯설다.

그는 “수원 중앙침례교회 교우인 라정찬(42) 알앤엘바이오 대표와의 인연으로 비상근 명예직을 수락했다”고 했다. 알앤엘바이오는 지난해 7월 대원이엔티를 사들여 거래소에 우회 상장한 바이오 벤처기업. 현재 알앤엘바이오의 대외 업무와 국제협력 조언이 그가 맡은 주 임무다. 지난 3월15일부터 현재 일주일에 2~3일씩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창해에탄올 고문직도 맡아

단답형으로 말을 잇던 임 전 부총리는 바이오 분야가 생소하지 않냐는 질문에서 말문이 활짝 트였다.

“현재 중국 경제가 쾌속항진하고 있고 일본은 기술력에서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은 ‘샌드위치 경제’에 처한 셈이죠. 제가 통상산업부 장관시절이던 지난 1997년 ‘벤처육성 특별조치법’을 만든 것도 이 같은 관점에서 였습니다. 현재 IT(정보기술) 분야는 한국이 앞서있지만 BT(바이오기술) 분야는 그렇지 못합니다. 알엔앨바이오는 4월13일 창립하는 통합줄기세포은행인 ‘바이오스타’ 사업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바이오스타는 고려구로병원장을 지낸 박용균 교수가 대표를 맡고 저는 자문위원장으로 참여할 계획입니다. 바이오스타는 황우석 교수 사태처럼 윤리 문제가 동반된 배아줄기세포은행이 아닌 성체줄기세포은행입니다. 현재 임상실험 단계를 거쳐 조만간 치료제 개발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대뜸 ‘바이오에탄올’ 얘기를 꺼냈다. 바이오에탄올은 부시 미 대통령이 올 초 국정연설에서 6년 내 상용화하겠다고 강조한 미래형 대체에너지다.

“현재 브라질에서는 사탕수수에서 에탄올을 추출해 연료로 활용중입니다. 자동차를 예로 든다면 ‘100% 에탄올 연료 자동차’가 굴러다니고 있지요. 유럽과 미국에서도 부분 상용화중입니다. 지난해 중국 길림성에서 대규모 바이오에탄올 공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에서는 벌써 동북3성(요령성, 길림성, 헤이룽장성)에서 이른바 ‘(에탄올을) 섞지 않은 연료’는 사용금지령이 내려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도 벌써 10년 전부터 테스트 단계에 있고요. 한국은 많이 늦었습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가장 급한데도 말입니다. 현대차가 85% 에탄올을 섞은 연료 차 기술을 갖고는 있지만 아직 상용화는 먼 얘기입니다.”

그는 현재 창해에탄올 고문직도 맡고 있다. 이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직함이다. 그는 대체 에너지 개발을 위해 지난해 파푸아뉴기니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낙엽관목식물인 ‘카사바’에서 바이오에탄올 추출 개발을 현지 정부와 합의했다고 했다.

또 최근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 초청을 받아 4월중 출장 계획도 잡고 있다. 그는 “인도네시아 내각 미팅에서 ‘IMF 극복 노하우’ 강연을 하는데 이때 산유국이자 석유 수입국인 인도네시아에 ‘바이오에탄올 연료’에 대해 훈수를 할 예정”이라고 들려줬다. 이때 한국과 손잡고 가칭 ‘한-인니 에탄올 파일럿 공장’을 만들자고 제안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일할 땐 밀어붙이는 ‘황소’ 스타일

그가 요즘 바이오벤처에 많은 열정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볼 때 ‘임창열’이란 인물은 역시 IMF(국제통화기금) 체제 당시 경제부총리로 기억하는 이가 많다. 그 자신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자리로 ‘경제부총리’를 꼽는다. 통상산업부 장관과 경제부총리, 경기도지사를 역임한 정통 관료로서 임 전 부총리는 어떤 사람일까.

그 역시 한국의 ‘성골’로 통하는 KS라인(경기고-서울대) 출신이다. 1970년 행정고시 7기로 관료에 입문했다. 출발만 경제기획원에서 했지 줄곧 재무부에서 성장해온 이력이다. 특징이 있다면 10년간 외국물을 먹었다는 점이다.

1980년 주영국대사관 재무관, 1986년 IMF 대리이사, 1989년 세계은행(IBRD) 이사를 지냈다. IMF 쇼크 때 경제부총리로 기용된 것도 알고 보면 이 같은 경력과 무관치 않다.

그는 세계은행과 IMF 출신 한국인 모임인 ‘브렌턴우즈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여기엔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진동수 조달청장 등이 주요 멤버다.

지인들의 인물평에 따르면 그는 ‘추진력과 실무지식을 갖춘 관료’로, ‘금융지식이 해박하고 영어가 유창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실제 1989년 당시 그는 파견국 이사들을 설득, 한국인 최초로 세계은행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임 전 부총리는 IMF 이사 시절 재미있는 일화를 한 토막 곁들인다. 외환위기 당시 방한한 휴버스 나이스 IMF 실무단장과의 인연이다. 나이스는 그가 IMF 대리이사로 있던 1980년대 말 IMF 아시아국 부국장 출신.

한국이 1980년대 말 연간 100억달러 흑자를 내자 세계의 통화정책기구 격인 IMF가 한국이 불공정 무역관행과 환율을 틀어막는 정책을 쓴다며 ‘현장 조사’를 보낼 때 ‘암행어사’가 바로 나이스. 그런 그가 10년도 못돼 이번엔 부도위기에 몰린 한국의 구원투수(?)격으로 내한한 것. 임 전 부총리는 “나이스 단장과는 좋은 인연인지 악연인지 모르겠다”며 웃는다.

경기지사 시절 그는 ‘황소 같은 도지사’로 아랫사람들에겐 ‘피곤한 지사’였다. 밤 12시에 공관에서 결재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서울의 16배나 되는 땅을 다 돌아보려면 차가 집무실이었다”는 게 그의 회고담이다. 재임 시절 경기도 연평균 성장률을 23% 올렸던 것도 일벌이기 좋아하는 지사 밑에서 고생한 경기도 공무원 덕분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그는 이번 5·31선거에서도 하마평이 나돈다. 현재 민주당적을 갖고 있는 그는 “한 곳 이상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면서도 “아직 확답을 드릴 처지가 못 된다”며 거취에 대해선 분명한 답을 미뤘다.

(인터뷰가 한창 진행될 즈음 라정찬 알앤엘바이오 대표와 박용균 통합줄기세포은행 원장이 찾아왔다. 4월13일 발족한 줄기세포은행을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30분 뒤 인터뷰는 이어졌다.)

“잠재성장률 6%대로 올려야”

경제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다시 말이 쏟아졌다.

-정부는 우리 경제가 회복국면에 돌입했다고 보고 있는데 체감경기는 아직 싸늘합니다. 현 경기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습니까.

중장기적으로 보면 낙관론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현 시점을 딱 떼놓고 보자면 경기회복을 단언하긴 어렵다고 봅니다. 어쩌면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위험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정부가 경기회복 선언을 했다면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 3년의 경제 성적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물가를 잡았고 수출이 잘돼 국제수지가 개선되고 대외 채무가 줄어든 것은 잘한 점입니다. 특히 외환보유고는 IMF 당시 39억달러에서 현재 2100억달러로 세계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고무적입니다. 반면 성장 면에선 불만족스럽습니다.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3.9%에 불과한데 이는 세계 평균보다도 못한 성적표입니다. 특히 설비투자가 마이너스였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기업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겠지요.

-구체적 해법을 제시한다면요.

국가 경제는 노동력 투입, 생산성 제고, 자본 투입 등 세 가지가 좌우합니다. 일단 노동 투입 면에선 여성인력활용이 급선무입니다. 임금피크제를 적극 도입하고 외국인 근로자를 더 과감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요. 최근 GM대우가 과거 해고된 근로자들을 복직시킨 건 대표적 모범사례에 들어갑니다. 투자 면에서는 규제완화가 필수입니다. 파주 LCD 단지는 규제완화의 위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2001년 9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경기도 방문 때 ‘파주 외국인 전용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제의했고 김대중 대통령도 OK하셨습니다. 그 결과 파주 월릉면 일대 100만 평의 규제를 풀자 세계 제일의 LCD 단지가 생겼습니다. 저는 이것을 100억달러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규제를 푸니 기업이 먼저 투자를 제안했던 것이죠.

-정부는 수도권 규제완화보다는 국가균형발전 전략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의 균형발전이 더 큰 과제입니다. 그러나 수도권 규제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도 단위로 끊고 천편일률적이에요. 가령 연천만 해도 서울보다 넓은 땅인데 인구는 5만 명으로 낙후돼있습니다. 이런 곳에 규제를 풀어야 합니다. 연천, 파주, 철원 등 휴전선 벨트를 산업벨트화할 수도 있습니다. 개성공단서 만든 제품을 김포를 통해 수출하고 고양(킨텍스)에서 전시할 수 있게 말입니다. 도별로 자를 게 아니라 시군단위로 행정을 세분화해서 규제정책을 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기지사 재직 때 ‘접경지역지원법’을 건의해 제정했지만 현재 수도권 규제로 사문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을 가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참여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푸는 게 좋을까요.

하나 물어봅시다. 양극화 문제가 어제 오늘의 얘기일까요? 원래 다 있는 겁니다. 결국 성장과 분배 문제로 돌아가는데요. 통상 경제개발기엔 성장, 선진국에 들어서면 분배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는 성장도 늦고 분배도 제대로 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있는 사람 것을 뺏어 없는 사람에게 주는 방식으론 답이 안 나옵니다. 지름길은 소득이 높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겁니다.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일할 수 있게 하고 일하지 않는 사람보다 잘 살게 하면 양극화 문제가 수그러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올해 성장률을 어떻게 예상하는지요.

대략 4~5%선 아닐까요. 문제는 한해 한해의 성장률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국가 경제의 기초 체력이랄 수 있는 잠재성장력을 끌어올리는 게 관건입니다. 제가 봤을 때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이 5% 이하가 아닙니다. 최소한 6%까지는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없는 게 자원 빼고는 뭐가 있습니까. 세계 최고의 인적자원을 갖고 있고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 세계적인 기업까지 다 있습니다. 문제는 투자가 막혔고 그 원인이 불합리한 규제에 있어 성장 동력이 제 기능을 100% 발휘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겁니다.

서부개발시대 가교역 포부

경제 문제에 대해 강한 어조로 주장하다 인터뷰 말미 다시 지방선거 출마 계획을 묻자 “아직 결정된 게 없다”며 목소리 톤이 낮아졌다. 이 질문에 그는 “현행 정당의 공천제도는 없어져야 한다”며 “일할 사람을 뽑아야지 지방선거가 정치의 입문 코스가 되어서야 되겠냐”고 비판했다.

그는 요즘도 새벽 5시면 눈을 뜬다. 첫 일과가 신문 10여 개를 훑는 것. 용인 수지가 자택인 그는 인근 광교산에 오르는 게 취미다. 30년간 쳐온 테니스는 요즘에도 일주일에 두 번은 코트에 나설 정도다.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할 때 ‘행정가’로 발을 내딛어 1만달러 시대엔 ‘경제 전문가’로 살아온 그의 향후 계획은 뭘까. 이 질문에 그는 중국 허난성 경제고문으로서 자신의 계획을 들려줬다.

“중국 허난성은 중앙정부가 추진 중인 서부대개발의 시발점이 되는 곳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옛날 삼국지를 봐도 이곳(중원)을 따면 천하(중국)를 제패한다는 바로 그곳입니다. 인구도 1억 명으로 중국 최대 성이지요. 한국 기업들이 현재 광동성과 산동성 일대에 몰려 있는데 이곳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서부대개발을 하고 있는 중국과 한국 기업의 가교역을 하고 싶습니다.”

summary

현 경기 진단 
“경기회복 판단 이르다. 일본식 장기 불황도 우려 ”

현 정부 평가  긍정: 물가안정, 국제수지 개선, 대외 채무 감소,  외환보유고 세계 4위

                     부정: “3년간 연평균 3.9%는 기대 이하”,  “최소 6%대 잠재성장률 가능”

올해 예상 성장률  4~5%

한국 경제 최대 현안 “잠재성장률을 6%대로 높여라”

양극화 문제 대안 “일자리 늘리는 게 최고 상책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관직  IMF 관리 체제 때 경제부총리

5·31 지방선거 계획 “한 군데 이상서 제의받았다. 아직 확답을  내릴 수 없다”

건강관리  자택 인근 광교산 등반, 일주일 2회 테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