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는 서울시장을 비롯한 16개 시·도지사, 230곳의 시장·군수·구청장, 733명의 시(市) 의원과 도(道)의원, 2888명의 시·군·구 의원을 선출한다. 앞으로 4년간 지방자치를 이끌어 갈 일꾼들을 뽑는 것이다.

지방선거가 올해처럼 전국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지방선거가 부활된 1991년에는 시·군·구 의원을 먼저 뽑고, 이어 석 달 뒤 시·도 의원을 뽑았다. 1991년 지방자치제를 부활하면서 지방의회를 먼저 선거로 뽑되, 그 순서도 기초의회부터 광역의회로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구성토록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방선거 기원은 195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대에는 지방의회를 선거를 통해 구성했고, 1960년 서울시장, 도지사 선거까지 실시됐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지방선거는 사라졌다. 박정희 정부가 중앙주도형 경제개발을 내세우면서 지방선거가 폐지됐던 것이다. 올해처럼 서울시장 등 시·도지사부터 기초의원까지 동시선거가 시작된 것은 1995년 6월이다. 1998년 2회 동시 선거부터 4년마다 우리 국민들은 지방자치를 이끌 사람들을 뽑는 지방선거를 치르고 있다.

5·31 선거의 정치적 의미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자치를 이끌 일꾼을 뽑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전국 동시 선거로 자리 잡은 뒤, 이 선거가 갖는 정치적 비중 또한 커졌다. 지방선거는 대통령선거, 총선과 더불어 3대 선거라 할 수 있다. 올해의 경우, 지방선거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다른 어느 때보다 크다. 여야는 대통령 선거를 1년6개월여 앞둔 시점에 치러지는 5·31 선거를,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는 계기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그 결과에 따라 정치권의 대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선거를 진두지휘하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두 당의 대표적인 대선 후보들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이들은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2002년 6월 지방선거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지방선거에서 격돌했던 것이다. 2002년 지방선거가 민주당의 참패로 막을 내리면서,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추락했고, 이후 줄곧 “후보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식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공세에 시달렸다. 지방선거 직전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 민주당에서 계속 ‘노무현 후보 흔들기’가 이어졌던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정몽준 의원과의 후보 단일화 협상을 통해 극적으로 마무리됐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한나라당에선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회창 후보가 마치 대통령이 된 듯 한 분위기였다. 민주당에서 탈당한 사람들이 대거 한나라당으로 왔고, 이 후보의 당내 입지는 직언하기도 힘들 만큼 공고해졌다.

2002년 지방선거 때는 여야의 대선 후보가 이미 확정된 뒤에 치러졌다는 점에서, 올해 5·31 선거와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는 후보가 확정된 뒤라 대선 후보를 바꾸거나 급격한 정치권 재편을 하기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지방선거 결과로 여야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릴 경우, 정치권은 요동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특히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이번 선거에서 무기력하게 패할 경우 대선 후보의 입지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이미 당내에선 정 의장과 경쟁해 온 김근태 최고의원계가 지방선거 이후의 정치권 빅뱅을 점치며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선 지방선거 패배 후 당이 해체될지 모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만약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경우, 여당 내에선 고건 전 총리와의 연대, 민주당과의 통합 문제 등이 본격 거론되면서 당내 갈등이 촉발될 전망이다. 또 올 하반기부터 개헌논의가 시작될 경우, 여기서 생긴 정치적 공간을 무대 삼아 정계 개편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동영 의장은 지난 2월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절반은 이겨야 한다”고 했지만,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 여당 내에선 서울시장·경기지사 중 1곳, 전북 수성, 광주시장·전남지사 중 1곳, 충청권 ‘대전시장+α’ 등의 기준을 내놓곤 있지만, 선거가 끝나면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도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이번 선거에서 패할 경우, 당내에서 심각한 도전을 맞이할 전망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이나 손학규 경기지사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들은 선거법상 중립 의무 때문에 선거에 직접 관여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는 없지만, 만약 선거 결과가 한나라당이 아닌 다른 당 후보가 이기는 쪽으로 나오게 되면 텃밭도 못 지켰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대선 레이스에서 커다란 암초에 부딪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체 판세

지방선거 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대략 3가지이다. 우선 후보 경쟁력, 정당지지율, 투표율 등을 꼽을 수 있다. 후보 경쟁력만 놓고 보면, 어느 정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각 당별로 특징은 있다. 열린우리당이 여권 프리미엄을 이용, 전·현직 장·차관과 대기업 CEO 출신 등을 영입해 일단 외형상으론 호화 진용을 갖췄다. 그러나 이들은 선거 경험이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지역 기반이 취약하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등 야당은 주로 당내 인사를 후보로 내세웠다. 이른바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현직 의원이나, 현직 시·도시지사 등이 후보로 나섰다. 이들은 기성 정치인 이미지가 강해 참신함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지만, 선거 현장의 경쟁력에선 앞선다는 평가다. 시·도 의원이나, 시·군·구 의원은 정당별로 두드러진 차이를 찾기 어렵다.

정당 지지율에선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열세다. 3월 이후,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의 지지율 격차를 좁혀가고는 있지만, 한나라당에 여전히 10% 가량 뒤져있다. 한나라당 쪽으로 출마자들이 몰리고, 열린우리당이 후보를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현상이 벌어진 것도 바로 정당지지율 때문이다. 올해 초만 해도 한나라당의 정당지지율이 열린우리당의 두 배 가까이 됐는데, 이를 좁혀가고 있다는 게 그나마 여당엔 위안거리다. 이 같은 정당지지율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여야는 선거가 다가올수록 치열한 정치공방과 폭로, 선전전 등을 벌일 전망이다. 실제 3월 이후 여야는 황제골프, 황제테니스를 비롯한 온갖 의혹과 비리 폭로전으로 일관하고 있다.

투표율 역시 열린우리당에 불리하다. 열린우리당은 20~30대에서 한나라당보다 우세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40대 중반 이후에선 절대적인 열세다. 그런데 40대 중반 이후의 투표율이 높은 반면, 20대 투표율은 극히 저조하다.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이 투표장으로 나오지 않는 상황이 또 한 번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2002년 지방선거의 경우 전국의 투표율은 48%대였다. 서울의 경우 45%였다. 우리나라의 투표율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이 같은 경향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정당지지율과 투표율 등을 감안하면, 전반적으로 선거 구도는 열린우리당에 불리한 편이다. 결국 열린우리당이 이런 구도의 어려움을 어떻게든 뒤집으려고 할 것이다. 역대 선거 때마다 보여 온 폭로전과 정치 공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정치권에선 온갖 종류의 음모론과 소문들이 떠돌고 있다.

각 지역별 상황

전국적으로 보면, 열린우리당의 전선(戰線)은 전국에 걸쳐 펼쳐져 있는 반면, 야당들은 자신들의 텃밭에서 승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수도권에서 한나라당과 격돌해야 하고, 호남에선 민주당, 충청권에서 한나라당·국민중심당과, 영남에선 한나라당에 도전하는 양상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호남을 뺀 지역에서 수성, 내지는 공략에 나섰다. 민주당은 호남, 국민중심당은 충청권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수도권의 기초 의회와, 울산시장 등에 희망을 걸고 있다.

지난 2002년 선거 때는 한나라당이 16명의 시·도지사 중 11명을 당선시켜 69%의 당선 점유율을 보였다. 98년 지방선거에선 16명 중 한나라·국민회의가 각각 6명씩으로 나란히 37.5%씩을 점했었다. 시장·군수·구청장 232명 중에서도 한나라당이 140명을 당선시켜 점유율 60.3%였다. 한 당의 당선 점유율이 50%를 넘은 것은 87년 이후 역대 지방선거, 총선에서 유례가 없는 압승으로 기록됐다. 2002년 선거 때는 전국 득표 면에서 한나라당은 시·도지사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880만 표를 얻어 487만 표를 얻는 데 그친 민주당을 393만 표 차로 크게 앞섰다.

①수도권

이번 선거의 최대 승부처다. 열린우리당에선 서울시장에 강금실 후보와 이계안 의원, 경기지사에 진대제 후보 등을 내세웠지만, 인천시장 후보는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해 막판까지 고민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서울시장을 놓고 오세훈·맹형규 후보와 홍준표 의원 등 3파전이, 경기지사에는 김문수·전재희·김영선 의원이 경쟁중이다. 한나라당 인천시장 후보는 현 시장인 안상수 시장이 나섰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서울과 경기 중 한곳에서만 승리해도 “참패를 면했다”며 선전했다고 주장할 태세다. 그만큼 수도권의 비중이 높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오랜 공을 들여 영입해 왔다. 강 후보는 여당의 기대대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바람을 일으켜 일단 후보 경쟁력에선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이 정치권을 떠나있던 오세훈 전 의원을 경선에 참여시키면서, 서울시장 선거는 ‘바람 대 바람’, ‘이미지 대 이미지’의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며, 결국 승패는 누가 지지층을 얼마나 투표장으로 이끄느냐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경기도에서는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이 여유 있는 선두로 나선 가운데, 삼성전자 CEO 출신으로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 후보가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 의원이 한나라당 후보, CEO 출신인 진 후보가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선 것을 놓고 당적이 바뀐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②충청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국민중심당의 3파전 양상이다. 열린우리당은 충북에 한범덕 전 정무부지사, 충남지사에 오영교 전 행자부 장관, 대전시장엔 현 염홍철 시장을 내세웠다. 한나라당은 당내 경합이 치열하며, 국민중심당도 아직 대진표가 완성되지 못했다. 열린우리당은 대전시장 1곳은 확실한 우세로 보며, 나머지 지역에서도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3곳 모두 석권을, 국민중심당은 대전과 충남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③호남권

전북과 광주·전남으로 나눠볼 때 정동영 의장의 고향인 전북 지역에선 열린우리당의 전반적인 우세가 점쳐지며, 광주와 전남은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대선을 앞두고, 누가 호남의 맹주인가를 겨룬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의 주요 승부처이기도 하다. 전북에선 한때 강현욱 현 전북지사가, 이 지역 출신인 고건 전 총리의 지원을 받아 무소속 내지는 민주당으로 출마한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결국 불출마하기로 했다. 정동영 의장과 열린우리당이 호남의 몇 퍼센트를 석권하느냐는 앞으로 대선 판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만약 정 의장이 전북에서도 고전하고, 광주·전남 선거의 상당부분을 내줄 경우 대선 후보로서의 그의 입지는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반대로 민주당은 전남 서부 해안 벨트의 우위를 바탕으로 광주와 전남을 석권하겠다는 자세이며, 이렇게 되면 앞으로 대선 정국에서 주요한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게 된다.

④영남권

한나라당이 텃밭인 영남 지역을 얼마나 수성하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열린우리당은 대구시장에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 경북지사에 박명재 전 중앙공무원 연수원장, 부산시장에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 경남지사에 김두관 최고위원 등의 호화 진용을 구축했다. 이 같은 노력이 얼마나 결심을 거둘지 관심이지만, 역대 선거와 투표율 등을 감안하면 전망이 밝지는 않다. 반대로 한나라당은 잇단 공천 잡음 등 비리가 부담이다. 한나라당에서는 경쟁 상대가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한나라당 공천에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사람들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민주노동당은 강세지역인 울산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고, 한나라당은 박맹우 현 울산시장의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

⑤강원·제주

강원도는 한나라당 김진선 도지사가 크게 앞서가는 가운데, 다른 정당들은 막판까지 출마 후보를 정하지 못할 만큼 고전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선 한때 엄기영 MBC 앵커를 영입하거나 노무현 대통령의 386 측근인 이광재 의원이 출마하는 방안이 검토됐으나 불발로 끝났다.

제주도는 한나라당이 삼성물산 CEO 출신인 현명관 후보를 영입해 오자, 김태환 현 시장이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열린우리당은 막판까지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