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년 전 삼성그룹 수뇌부는 플래시메모리를 놓고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물론 주역은 최종 결정을 내린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모든 공은 그룹 회장에게 돌아간다. 그 배후에는 실무적인 결단이 주효했고, 그 주인공이 바로 황창규(黃昌圭)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이다.

 늘날 삼성전자를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불리게 된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휴대전화와 플래시메모리 반도체, 이 두 가지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삼성전자반도체는 전통적으로 PC에 주로 들어가는 D램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해 왔다. 하지만 갈수록 PC의 판매량은 줄어들고, 휴대전화·MP3플레이어·디지털카메라 등 첨단 정보기기가 이를 대체하기 시작하자,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D램 세계 1위’라는 명성에만 만족할 순 없었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D램에 대한 대안으로 플래시(Flash)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다시 세계 반도체시장을 석권하게 된다. 플래시메모리는 D램과는 달리 전원을 꺼도 저장된 정보가 지워지지 않는 반도체를 가리킨다.

 D램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PC시장의 경기가 좋지 않으면 생산업체로선 옴짝달싹할 수 없다. 공급과잉 상태를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플래시메모리는 다르다. 디지털카메라나 디지털캠코더, 휴대전화기, USB(초소형저장장치)드라이브 등에 핵심부품으로 들어가면서 디지털 저장장치의 혁명을 이끌고 있다. 노키아 등의 휴대전화 업체들도 이젠 삼성전자의 플래시메모리가 없으면 제품을 만들지 못할 정도이다.

 플래시메모리는 크게 낸드(NAND)형과 노아(NOR)형으로 나뉜다. 낸드형은 내부회로가 비교적 단순해 고집적(高集積), 대용량(大容量)으로 쓰이기에 유리한 편이다. 지난해 전 세계 시장규모는 낸드형이 70억달러, 노아형은 84억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하지만 낸드형의 비중은 갈수록 커져 2000년 13%였으나, 2004년에는 45%로 증가했다. 삼성전자는 플래시메모리 중에서도 바로 이 낸드형 제품을 만들어 낸다.

 지금 삼성전자반도체가 막강한 이유는 단순히 시장점유율 1위라는 데 있지 않다. 바로 삼성전자가 ‘시장의 룰’과 ‘게임의 법칙’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지위까지 올랐다는 데에서 이유를 찾는다. 실제로 각종 전자정보기기 완제품이 부품인 플래시메모리의 규격이나 가격을 정하는 게 아니라, 플래시메모리의 생산에 맞춰 완제품을 생산하는 형편이다. 기존의 전자부품과 완제품 사이에서 볼 수 있던 관계가 역전된 형태를 띤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플래시메모리 강자가 되기까지 삼성전자에는 중요한 결단의 순간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삼성그룹 수뇌부는 플래시메모리를 놓고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물론 주역은 최종 결정을 내린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모든 공은 그룹 회장에게 돌아간다. 그 배후에는 실무적인 결단이 주효했고, 그 주인공이 바로 황창규(黃昌圭)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이다.



 확신에 찬 결단의 연속

 사실 기업경영이란 ‘끊임없는 결단의 연속’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순간순간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가 회사의 미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역사 또한 이병철(李秉喆) 초대회장 시절부터 끊임없는 의사결정의 축적으로 이뤄졌다. 원래 중대한 결정이나 결단에는 항상 반대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의사결정이란 어찌 보면 지극히 외로운 작업이다. 실패할 경우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황기일 때, 앞이 캄캄할 때 몸을 사리면, 호황기일 때, 남들이 모두 뛰어들 때 열매를 따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삼성전자반도체의 성공에는 결단의 순간이 큰 의미를 지닌다. 가령 1974년 삼성이 처음 반도체사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그룹 내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이건희 당시 동양방송 이사는 반도체사업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고, 끝내 사재(私財)를 털어 부천에 있는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시작인 셈이다. 그뿐 아니다. 1987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김광태 삼성전자 상무는 “당시 누적적자가 어마어마한 상황에서 다시 그만큼의 액수를 쏟아 붓는 3라인 건설에 나섰다”며, “결국 이 같은 모험적 의사결정이 성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당시는 일본의 선두업체들도 불황의 여파에 몸을 움츠리던 실정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과감하게 3라인 투자를 결정했고, 최단기에 적자를 한꺼번에 해소했다. 이후 남들이 조심스러워하던 300㎜(12인치) 웨이퍼를 도입할 때에도 ‘위험을 품은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종전의 200㎜(8인치) 웨이퍼에 만족하던 업체들은 자칫 수조원의 손실을 입을지 모른다고 우려를 나타냈으나, 삼성이 먼저 300㎜를 치고 나감으로써 시장을 선도했다. 사실 삼성전자반도체에는 이런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결단과 성공의 수레바퀴’를 되풀이하던 삼성전자이기에 플래시메모리를 놓고 단행한 결단도, 오늘날 경제인들 사이에서는 자주 회자된다.



 90년대 초 플래시메모리 개발 착수

 삼성전자는 90년대 초부터 플래시메모리 개발에 착수, 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독자적인 플래시메모리 기술개발에 나섰다. 모바일(mobile) 정보기기 시대를 맞아 플래시메모리시장이 급속하게 커질 것을 예견하고 준비작업에 나선 것이다. 첫 번째 고민은 플래시메모리시장이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낸드형으로 가느냐, 노어형으로 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위험부담을 줄이려고 일단 두 가지 기술을 모두 개발하기 시작했다.  90년대 말이 지나면서 플래시메모리시장에 대한 전망은 밝아지기 시작했고, 삼성전자는 낸드형 쪽으로 기울었다.

 드디어 2001년. 당시 세계 낸드형 플래시메모리시장에서 1위를 기록하던 일본 도시바가 삼성전자에 중요한 제안을 한다. 낸드 플래시메모리를 합작으로 개발하자는 제안이다. 도시바는 당시 낸드형시장의 1위 업체다. 당시 시장점유율에서 도시바에 뒤지던 삼성전자로서는 귀가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삼성 수뇌부는 고민이 많았다.

 이미 가슴속에 어느 정도 독자적인 개발안을 가지고 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당시 주무 책임자인 황창규 사장으로부터 ‘독자적인 기술개발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들었다. 물론 이건희 회장이 근본적인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황창규 사장이 과감하게 ‘노(no)’라고 외쳤다는 점이다. 이것이 오늘날 삼성전자반도체가 ‘D램 신화’에 이어 ‘플래시메모리 신화’를 계속 만들어 낸 비결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황 사장은 요즘도 그때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 그만큼 자신의 삶에서 중대한 결단의 시간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2001년 8월 초 일본 도쿄에 있는 오쿠라호텔. 당시 이곳에 머물던 이건희 회장은 황창규 사장을 현지로 급히 불렀다고 한다. 그 자리에는 윤종용(尹鍾龍) 삼성전자 부회장, 이윤우(李潤雨)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 이학수(李鶴洙) 삼성구조조정본부장도 함께 자리를 했다. 호출을 받고 달려온 사장들이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이 회장은 “호텔 옆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이 회장은 일행들과 함께 오쿠라호텔 근방에 있는 샤브샤브 음식점 ‘자쿠로’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에서 이 회장은 “도시바가 낸드 플래시 합작 제안을 해왔다”면서,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해 도시바를 이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 당시 주무 책임자인 황 사장은 잠시 고민했다. 도시바는 2001년 6월 D램 사업을 정리하면서 낸드 플래시메모리 사업에 승부수를 띄우고 삼성에게 제휴를 제의해 왔던 것이다. 도시바는 낸드 플래시메모리 원천기술 특허를 보유하고, 당시 세계시장 점유율도 46%로 삼성전자(26%)보다 크게 앞서 있었다.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던 황 사장이지만, 이건희 회장을 향해 “회장님, 우리가 굳이 도시바와 손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낸드 플래시는 우리 회사가 수종(樹種)사업으로 키워 온 핵심 프로젝트입니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해도 충분히 도시바를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건희 회장은 “도시바에 비해서 기술수준은 어떤가?”라고 물었고, 황 사장은 “지금은 약간 뒤지지만 수년 안에 따라잡을 수 있다”라고 대답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침묵과 긴장감이 흘렀다. 이 회장은 “도시바를 앞지를 방법이 있는가?”라고 다시 물었고, 황 사장은 “나름대로 방안이 있다”라고 대답했다. 황 사장은 단호한 표정으로 “저는 90년대 중반 메모리연구소장 시절부터 앞으로 메모리반도체시장은 플래시메모리가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독자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건희 회장  “도시바 기분 나쁘지 않게

 정중하게 거절하라” 지시


 황 사장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이건희 회장은 적잖이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결국 이 회장은 “도시바가 기분 나쁘지 않게 정중하게 거절하고 우리 페이스대로 나가자”고 말했다.  결국 삼성전자가 새로운 회사 수익원으로 떠오른 플래시메모리의 사업방향을 결정짓는 순간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사실 이 같은 결단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는 업체가 전략적 제휴를 제안할 경우 2위 업체가 여간해서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2위로서는 1위와 함께 비교적 편안하게 시장을 나눠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도시바로서는 삼성전자의 잠재력에 군침이 돌았다. D램을 만들면서 축적된 삼성전자의 각종 기술과 노하우, 그리고 풍부한 자금을 잘 활용하면 삼성전자를 계속 자기 밑에 두면서 느긋하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물론 삼성전자가 이런 계산속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의 전략을 알아도 이쪽에 기술력과 자금력이 없다면 뻔히 알면서도 백기(白旗)를 들 수밖에 없는 게 기업세계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손을 잡는 대신 독자개발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이후 1년 만에 도시바를 추월해 버렸다. 2000년만 해도 시장점유율 26%로 도시바에 이어 2위를 차지했던 삼성전자는, 현재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선 뒤 50~60%의 점유율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 같은 저력을 발휘하게 된 배경은 바로 그 ‘자쿠로회동’에 있다는 지적이다. 당시 삼성 수뇌부가 느낀 절박감과 비장함이 곧 현장에서 ‘플러스알파’의 힘을 발휘하도록 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도시바는 삼성전자 때문에 전 세계 플래시메모리시장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 현재 양산(量産)과정에서 90~70나노 공정을 적용하고 있으며, 내년 1분기부터는 60나노 공정을 도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도시바는 현재 생산량의 60%를 90나노 공정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올 4분기 이후에 70나노 공정을 도입할 예정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2004년 2분기부터 300㎜ 라인에서 낸드 플래시 생산을 시작했으며, 올 3월부터는 아예 전용(專用)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바는 현재 생산량의 95%를 200㎜ 라인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샌디스크와 합작투자한 300㎜ 라인은 올 2분기부터 가동해 2006년 말에 가야 생산량의 25%가 300㎜ 라인에서 이루어질 전망이다.

 그만큼 기술적으로 삼성전자에 뒤져 있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하이닉스가 맹추격에 나섰다. 하이익스는 현재 115~90나노 공정을 적용하고 있으며, 70나노 공정을 2005년 말에 도입할 예정이다.

 이런 과정에서 황창규 사장은 신념을 굳히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황 사장을 만나면 언제나 긍정적인 표정과 자신감이 엿보인다. 그에게는 ‘실패’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유목민(nomad)이론에 관심 많아

 세계 반도체업계에서 황 사장은 ‘황의 법칙’(황창규 사장의 성을 딴 법칙으로, 메모리 신성장이론이라고도 불림)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세계 반도체업계에선 인텔 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1965년에 주창한 ‘무어의 법칙’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바이블로 통해 왔다. 그 이론의 핵심은 ‘반도체의 집적도(集積度)는 1년 6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하며, 이를 주도하는 것은 PC 위주의 정보산업’이란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컨버전스(융·복합화)가 확산되고, 보다 뛰어난 저장매체를 요구하는 모바일기기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이 같은 트렌드를 일찌감치 간파하고 2001년 황 사장이 발표한 것이 바로 ‘황의 법칙’이다. 이것은 반도체 집적도가 1년에 두 배씩 증가하며, 그 성장을 주도하는 게 모바일기기와 디지털가전 등 이른바 ‘비(Non)PC’라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황 사장은 1999년 256메가 낸드형 플래시메모리 개발을 시작으로 2000년 512메가, 2001년 1기가, 2002년 2기가, 2003년 4기가, 2004년 8기가, 2005년 16기가 등으로 매년 ‘황의 법칙’을 실현시켰다.

 황 사장은 개인적으로 ‘유목민(nomad)이론’에 관심이 많다. 그는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이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근거로 ‘유목민적 기질’을 내세운다. 늘 한곳에서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도전하는 유목민의 기질이 한국인에게 있다는 얘기다. 황창규 사장은 기자에게 “플래시메모리 신화는 상당 기간 계속될 겁니다. 그렇게 한곳에서 큰 성공을 거둔 다음, 다시 또 다른 먹을거리를 찾아서 열심히 이동하고 뛰어야지요. 믿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