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재계에는 ‘스타 CEO’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고 있다. ‘스타 CEO’란 대부분 재벌그룹의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들로, 오너들 못지않게 위세가 당당하면서도 늘 이야깃거리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쌍수 LG전자 부회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좾전 삼성전자 사장좿 등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미 유명세를 치르는 ‘스타 CEO’들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스타들이 앞 다퉈 찾고 있는 곳이 있다. 해외 IR좾investor relation좿 행사나 정부에서 주관하는 모임이 아니다. 바로 대학강단이다. 요즘 몇몇 대학들이 현장경험이 풍부한 사장들을 교수로 영입하여 한 학기 수업을 통째로 맡기거나 특강을 하는 방법으로 이들을 초빙하고 있다. 이들 역시 대학강단에 서는 순간만큼은 ‘사장’이 아닌 ‘교수’다. 파릇파릇한 생동감이 느껴지는 그 현장 속으로 직접 뛰어 들어가 봤다.
강의 | 금융기관론   교수 |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타 CEO들 틈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사람은 단연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다. 김 전 은행장은 지난 2월부터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초빙교수로 활동 중이다. 그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장을 맡았다. 김 전 행장은 은행장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금융권에서 손을 뗀 듯 보였지만, 최근 열린우리당이 그에게 광주시장에 출마할 것을 권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 차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요즘 들고 다니는 명함에는 선명히 ‘서강대 교수’라고 찍혀 있다. 그는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학기에는 매주 두 차례 화요일과 목요일에 경영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금융기관론(Management of Financial Institutios)’을 강의하고 있다.

 지난 10월 11일 오후 3시. 서강대 마태오관 202호에는 그를 기다리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인기’는 그가 배정받은 강의실의 규모에서도 알 수 있다. 202호실은 학생 200여명 이상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강의실. 수업이 시작되기 10분 전부터 학생들이 속속 자리에 앉았다.

 “김 전 행장의 수업이 인기가 좋은 모양이네요.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수강생 틈에 끼여든 기자가 묻자, 대뜸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김정태 교수님이요? 생생한 강의를 들을 수 있잖아요.”

 경영학과 99학번이라는 이아무개씨는 자연스럽게 그를 ‘김정태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여러 재계 관계자들에게 그는 아직까지 ‘전 국민은행장’이라는 직함이 익숙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학생들에게만큼은 ‘교수님’으로 자리매김 했음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그의 강의계획서는 금융기관론 교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금융의 현장에서 몸소 체험한 내용을 이번 강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전수함으로써 미래 잠재 금융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을 심어 준다.’

 드디어 3시 정각. 김 전 행장은 넥타이를 매지 않은 편안한 재킷 차림으로 강단에 섰다. 2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 이제 수강생들과 익숙해진 탓인지, “잘들 지냈어요?”라는 인사와 함께.

 마침 이 날의 주제는 ‘LG카드 이야기’였다.

 강의가 시작되고 나서야 비로소 왜 학생들이 그토록 CEO들의 강의에 매료되는지 알 수 있었다. 기본적인 경영학 지식을 물론이고, 현장에서 직접 보고 접한 생생한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어지간해서는 듣기 어려운 당시 숨겨진 뒷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왔다. 때로는 전직 은행장으로서 하소연하는 듯한 발언도 이어졌지만.

 김정태 전 행장은 영락없는 교수님이다. 그의 뒤에 든든히 버티고 있는 화이트보드에 도표를 그리고, 펜을 잡는 손이 예사롭지 않았다.

 “만약에 LG카드가 부도났으면, 한국 금융산업이 무너졌을까요?”

김 전 행장이 학생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의 질문에 학생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예전에 카드회사가 어떻게 영업을 했는지 기억나세요? 어느 날 갑자기 삼성이니 LG 등 대기업들이 카드시장에 뛰어들면서 길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무차별적으로 고객을 확보하기 시작했죠. 카드는 단순한 플라스틱 껍데기가 아닙니다. 직접 현찰을 손에 쥘 수 있는 수단이죠. 곧이어 생겨난 신용불량자, 돌려막기 등, 카드회사의 위기는 커져만 갔죠. 어느 날이었어요. 하루는 시중 은행장들이 모두 (정부 관계자들에게) 불려갔죠. 느닷없이 LG카드에 돈을 빌려 줘야 한다는 겁니다. LG카드가 위험하고, 또 만약에 부도가 나면 한국 금융사업이 어렵다는 명목이었죠. 처음에는 LG카드를 사려는 기업이 있는데, 당장 유동성 위기가 오면 안 되니까 딱 두 달만 은행들이 돈을 빌려 주면 된다고 했죠.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어요.”

 김 교수의 생생한 묘사에 학생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이후 그는 LG카드에 시중 은행자금이 투입되기까지 과정을 낱낱이 설명했다. 학생들은 때론 웃고, 또 때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강의에 집중했다. 김 전 행장 역시 때로는 그의 사견을, 또 때로는 지극히 일상적인 경영학 용어들을 쓰며 사태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수업은 단순한 수업이 아닌 듯 했다. 그가 현장에서 느꼈던 점, 후회와 반성 등이 모두 한데 어우러진 장이었다. 학생들은 이런 것들이 결코 일반 교수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이 강의만의 장점이라고 꼽는다.

 “솔직히 유명한 분 강의 듣는다는 거 신나는 일이잖아요. 기회가 매번 오는 것도 아니고요. 이렇게 리얼하게 설명해 주시는 분도 드물어요. 단순한 경영학 지식이 아닌 현장 얘기를 듣는다는 것이 이 강의의 가장 큰 장점이죠.”(경영학과 99학번 이아무개씨)

 실제로 김 전 행장은 화술이 뛰어났다. 수업과는 무관하지만, 그의 강의를 듣는 미래의 CEO들을 위한 처세술 얘기도 함께 담아 이야기했다.

 “공식 회의석상에서는 아닌 말로 할 말, 안 할 말 다 할 수 있어요. 두려울 게 없는 거죠. 그런데 가끔은 휴일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정부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저녁에 시간 어때? 소주나 한 잔 하지.’ 대충 이런 내용이죠. 솔직히 이런 얘기를 들으면 거절할 수도 없고, 나중에 일어날 상황이 뻔히 눈에 보여서 식은땀부터 납니다. CEO의 입장에서는 이런 것들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겠죠?”

 순간 강의실에는 폭소가 터졌다. 진심으로 솔직하고, 담백한 얘기. 기자 역시 어느새 김정태 교수의 강의 매력에 서서히 젖어들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재미있는 강의만 펼치는 게 아니었다.

 그의 수업은 학생들끼리 조를 나눠서 리포트를 제출하는 형태로 성적을 매긴다. 그는 이들 조 모임에서 초청을 할 때마다 꼬박꼬박 참석한다고. 그의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흔쾌히 점심도 사 주고,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눌 만큼 ‘정이 있는’ 수업이다.



 강의 | CEO 경영특강   교수 | 이철우 롯데마트 사장



 정태 전 행장이 본격적으로 강단에 섰다면, 일명 ‘일일교수’라는 이름으로 대학을 찾는 CEO도 많다. 롯데마트의 이철우 사장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이 사장은 지난 76년 롯데쇼핑 영업기획 과장으로 입사해 지난 86년에 롯데백화점 임원으로 진급, 롯데백화점 창설 공신으로 유명한 CEO다. 그는 지난 98년에 롯데리아 대표이사 사장, 지난 2003년부터는 롯데의 할인점인 롯데마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최측근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박경규 교수는 이번 학기에 ‘CEO 경영특강’수업을 맡고 있는데, 이 자리에는 굵직한 재계 CEO들이 강의에 나서고 있다. 정몽준 의원의 강의 일정도 잡혀 있다.

 지난 10월6일 오후 4시. 수업이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학생들이 삼삼오오 강의실로 들어섰다. 마태오관 101호 강의실은 250석 규모의 대형 강의실인데, 이미 대다수의 학생들이 들어와 자리하고 있었다. 강의는 외부의 일반 청강생들에게도 열려 있다.

 ‘유통산업의 변화와 혁신’이 이날의 강의 주제.

 롯데그룹은 국내의 최고 유통그룹이지만, 할인점 부문에서만큼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학생들의 관심이 더욱 큰 듯 느껴졌다.

 “여기 학생들 중에서 롯데마트 한 번도 안 가 본 분 손들어 보세요. 괜찮아요. 많이 손들어도 됩니다.”

 이 사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몇몇 학생들이 번쩍 손을 들었다.

 “음, 생각보다 많네요. 우리 잘못이군요.”

 손을 든 몇몇 학생의 얼굴에는 멋쩍은 표정이 역력했다.

 “하긴 3년 전인가요. 고객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롯데마트에 왜 안 가십니까’하는 질문이었죠. 조사를 해보니 각양각색이더군요. 찾는 물건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또 인기 있다고 가니까 그 물건이 품절이라며 매장에 없더래요. 그뿐인가요. 가격이 비싸다는 고객, 서비스가 나쁘다는 고객. 와~,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런 유통기업은 망해야죠.”

 롯데 CEO의 솔직담백한 고백에 강의실에 폭소가 일었다.

 “근데요, 제가 구원투수로 온 겁니다. 아까 롯데마트 안 가 보셨다는 분들, 가 보세요. 많이 좀 도와주세요.”

 이어진 그의 재치 있는 말솜씨에 학생들의 기립박수가 터졌다. 이후 그의 강의는 이어졌다.

 롯데그룹 내에서 롯데마트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 현재 시장현황, 향후 전략 등이 주를 이뤘다. 이 수업을 듣는 문기혜씨(경영학과 2학년)는 “수업시간에 미리 사회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게 이 강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강의실에서 경영학과뿐 아니라, 사회학과, 컴퓨터공학과, 국문학과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사장의 솔직담백한 강의는 단순히 그룹 홍보나 경영학 지식을 전달하는 데만 있지 않았다. 이 사장은 그가 CEO로서 행했던 몇몇 실수와 뼈저린 경험담도 학생들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 사장에게 위기가 닥친 것은 그가 롯데마트 대표이사에 막 취임하고 나서란다. 이 사장은 지난 2003년 7월, 야심차게 ‘최저가격 10배 보상제’라는 제도를 내놨다. 이는 롯데마트에서 판매 중인 물건이 최저가격이 아닐 경우, 고객들에게 10배의 보상을 해준다는 파격적인 제도였다. 경쟁사에서는 판매 물건이 최저가격이 아닐 경우에 그 차액을 돌려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할인점 업계 후발주자인 롯데는 더 강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던 것.

 “혹시 여러분은 ‘가파라치’라는 신조어를 아세요? ‘최저가격 10배 보상제도’를 시행한 첫 날이었어요. 세상에나~, 온가족이 롯데마트에 나와서 매장을 샅샅이 돌아다니면서 타사보다 비싼 물건들을 골라내는데요. 이제야 말하지만 정말 눈앞에 노래지더군요. 할인점에서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최저가격으로 판매를 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론에서 시작한 제도였죠. 그런데 결과는 완전 참패였습니다. 롯데마트는 고객들에게 몇 달 만에 수십억원의 보상금을 돌려줘야 했거든요. CEO도 가끔은 잘못된 판단을 내립니다. 나중에 여러분이 이 자리에 오르면 이런 사례들을 귀담아 듣고 더 잘 하세요.”

 실제로 롯데가 야심차게 내건 이 제도는 불과 4개월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1시간 10분의 수업이 언제 끝났는지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이어진 학생들의 질의 시간. 수강생들은 롯데그룹과 관련된 질문 이외에도 평소 자기가 꿈꿔 왔던 눈앞의 CEO에게 개인적인 질문도 마구 쏟아냈다.

 “한 기업에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위기는 없으셨는지요?”

 “위기가 왜 없어요. 숱하게 많죠. 그런데요, 우선 샐러리맨이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은 허튼 생각이기 쉬워요. 샐러리맨에게는 부를 일궈 내는 것보다는 일을 통해 느껴지는 성취감과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하루 일이 고민스럽다면, 회사에서 1년을 보내기 어렵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오래 근무할 수 있는 비결이죠.”

 이 수업을 듣고 있는 노주환씨(경영학과 2년)는 이런 유명 CEO들을 강의 현장에서 보는 것 자체가 즐겁단다. 노 씨는 “평범한 경영학과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기업체의 CEO를 꿈꾼다. 그런데 이미 그 자리에 오른 선배 경영인들의 모습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수업을 듣는 의미가 충분하다”며 웃음 지었다.



 강의 | 글로벌 광고전략   교수 | 배동만 제일기획 사장



 은 날 조금 더 이른 시간. 성균관대학교에서는 삼성그룹 CEO들의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성균관대학교는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가을 학기에도 삼성그룹 계열사의 CEO들이 번갈아가면서 수업을 하는 ‘CEO특강’을 열었다.

 지난 학기와 달라진 점이라면, 이번에는 외부 청강생들의 출입을 통제했다는 점이다. 지난 학기, 기자는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성균관대 측은 출입하는 학생들의 학생증과 신분증을 일일이 검사하고, 강의실 입장을 허가했었다. 하지만 이번 학기에는 그마저 철저히 차단했다.

 학교 측은 “강의실이 협소하기 때문에 수강생을 제외하고는 받지 않기로 방침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대신 강의내용은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고 했다.

 이 날 강의를 맡은 사람은 배동만 제일기획 사장. 배 사장은 지난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에스원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은 데 이어, 지난 2001년부터 제일기획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그룹 내에서 삼성의 브랜드를 세계적 브랜드로 바꾸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날 강의실 앞에서 만난 김아무개씨(경영학과 3년)는 오늘의 강의가 유난히 흥미가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기업들이 이미지로 승부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삼성의 이미지는 뭔가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가 있죠. 이런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한 CEO의 강의라고 하니 더 관심이 가요.”

 이 날, 배 사장의 강의의 주제는 ‘글로벌 광고전략’이었다. 특히 제일기획이 삼성의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어떤 식으로 광고를 제작했는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배 사장의 얘기.

 “솔직히 IMF 이전에 삼성전자는 부실한 회사였어요. 그런데 IMF를 겪으면서 회사의 모든 것들이 바뀌기 시작했죠. 상시 구조조정 체제로 전환했고, 무엇보다도 변화의 물결을 몸소 느꼈죠.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삼성브랜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정말 우리는 어느새 변화하고 있더군요.”

 국내 최대 광고회사의 대표이사인 만큼 수업 중간중간 현재 외국에서 방영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광고 동영상을 소개했다.

 배 사장은 강의를 무려 1시간 40분 동안 휴식 없이 진행했다. 다소 긴 수업시간, 하지만 수강생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수업에 몰두했다고 한 수강생이 전했다. 배 사장은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에게 CEO로서, 인생선배로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사실 이 수업을 듣는 여러분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뭘까 생각해 봤어요. 아마 어떻게 하면 나도 CEO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 아니겠어요?”

 수강생들이 질문을 시작하기도 전, 배 사장은 특유의 구수한 목소리로 학생들을 향해 물었다.

 “광고회사의 CEO인 내게 묻는다면,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우리는 현재 속도 위주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평면이 아닌, 매사에 입체적인 사고를 해야 해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변화의 속도를 늦추지 말 것. 그것이 CEO가 될 수 있는 첫 번째 자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배 사장의 이날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그가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한 인상이었다고 답했다.

 “나는 결혼을 좀 늦게 했어요. 근데 지금 여러분, 공부하는 게 다는 아닙니다. 대학시절에 건전한 이성교제를 통해 일찍 결혼하는 것, 그것도 무척 중요하거든요. 일찍 결혼하는 게 효도입니다.”

 다소 엉뚱하기까지 한(?) 삼성 CEO의 수업은 그렇게 끝이 났다.



 강의 | CEO 경영특강   교수 | 표현명 KTF 부사장



 난 10월 13일. 서강대학교 마테오관의 한 강의실에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광고 한 편이 계속 흘러나왔다. ‘국민동생’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문근영이 출현한 KTF사의 CF이다.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들어오는 수강생들의 눈이 일제히 그리로 향했다. 이 날은 표현명 KTF 부사장(마케팅부문장)의 특강이 있는 날이었다. 표 부사장은 자사의 휴대전화 TV광고를 계속 틀어 무의식중에도 ‘KTF’를 각인시키는 듯 느껴졌다.

 표 부사장은 지난 2001년부터 KTF에 합류해, ‘좋은 시간 되세요(Have a good time)’, 오렌지 감성 등 KTF의 마케팅부문 전반을 지휘하고 있는 공학박사다.

 “유비쿼터스가 뭔지 쉽게 설명하실 분 계세요? 통신업계에서 가장 민감한 화두 중 하나예요. 이제는 더 이상 전화를 걸고 받기만 하는 시대가 아니죠. 우리나라의 통신시장은 이미 3세대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모바일뱅킹, 텔레매틱스, 메신저까지 이제는 휴대전화 하나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시대죠.”

 표 부사장의 강의가 시작됐다. 젊은이들이 가장 열광하고, 또 관심이 지대한 분야라서 그런지 학생들의 눈빛이 빛났다.

 그는 준비해 온 프레젠테이션 자료, 동영상 화면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며 시각적 효과를 염두에 둔 ‘비주얼(visual)강의’를 이끌어갔다. KTF의 현황과 통신시장의 전반적 상황, 전략, 마케팅 기법 등 경영학에서 다룰 수 있는 모든 주제를 포함하고 있었다. 물론 CEO로서 맛보았던 성취감과 고객들의 성향을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실패담도 곁들여졌다.

 “KTF에서 ‘10만원 무제한 월정제’라는 요금을 선보인 적이 있었어요. 사실 밤새도록 통화를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예측은 경영진에서 하지 못했죠. 와~, 그런데 정말 그런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냥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잠을 자는 건지, 정말 밤새도록 전화를 하더라고요. 아마 그 사람, 기네스북에 올라도 될 겁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키득키득 웃음이 피어 나왔다. 표 부사장은 통신 사업자에게는 부담이지만, 고객을 위한 마케팅 기법이 어떻게 빛을 발하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학생들은 적절한 예시를 들 때마다 강의에 조금씩 빠져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기자의 옆자리에 앉은 한 학생의 말.

 “세상에는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많잖아요. 이론과 실제의 괴리감이랄까. CEO강의를 통해서 그런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오늘도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데요.(웃음)”

 평소에 신문지상을 통해서나 만나볼 수 있는 대기업의 CEO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대학 강단에 선 순간만큼은 ‘CEO’가 아니라 ‘교수님’이었다.